웽거의 첫번째 발굴.AC밀란의 전설.에투+앙리

쿠라라네 작성일 10.02.20 11: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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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년 10월생 라이베리아

 

88년 현 아스날감독인 웽거가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as모나코(87/88시즌 리그 우승팀)로 스카웃

그의 전성 기는 프랑스시절이었고, ac밀란 입단은 그의 전성 기의 정점을 지난 후였다.

 

 

1. 당시 유럽에 만연해있던 엉청난 인종차별의 설움을 딛고,,, 

  199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선수 로 뽑혔고, (호나우두의 센세이션이 없었다면 2연패했을 것)

  유럽최고의 선수(발롱도르) 로도 뽑혔고,

  아프라가 올해의 선수 3회 수상

  20세기 아프리카 선수 상 수상(유럽 : 베켄 바우어/남미 : 펠레/아시아 : 차범근)

      -> 그  유명한 카메룬의 영웅 로저 밀러를 제치고^^

 

 하지만, 현재 그의 존재를 모르는 축구팬도 많거나, 평가 절하하는 젋은 팬들도 많아졌다는 사실

 

 감독님의 지도를 받아 성장한 선수들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에 웽거는

 "모든 선수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튀랑, 프티, 앙리, 비에이라 같은 선수들 말이죠. 굳이 한 명을 고르라면 아마 조지 웨아 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를 모나코로 데려왔을때(1988년) 모두들 그를 비웃었지만 웨아는 피파 올해의 선수상(1995년)을 탈 정도로 큰 선수로 성장했죠."

 

 

2. 피파 올해의 페어플레이어상을 수상할 정도로 매너 굳.

  수많은 자선사업으로 마음씨도 굳  (모든 상금은 조국에 기부했고, 고국의 도로포장과 우체국 건설에도 많은 기부)

  피파 올해의 선수상 수상당시 웽거감독을 단상위로 불러올려 감사를 표했을 정도로 은혜를 잊지 않는 모습을 보임  

 

3. 월드컵 본선에 한번도 출전할수 없었던 비운의 스타 조지 웨아...

아프리카 내전으로 보잘것없는 선수층과 실력을 가진 나라...

나라가 돈이 없어 사재로 피파회비를 납부하고, 대표팀소집하여 태표팀 경비와 투숙비, 항공비 혼자 부담하고, (수백만달러가 듬) 좋은 감독 구하기에는 돈이 없어 그가 감독맡고, 선수로까지 뛰면서 월드컵에 나가려했으나,,,역시 실패....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하고,,,,정치인으로 변신했다.

 

 

4. 쉐바 이전에 조지 웨아가 진정한 무결점의 스트라이커였을지도 모른다. (나이들어서 쉐바에 밀려 ac밀란을 떠나게 되었지만)  184cm 의 키에 뛰어난 순간스피드와 유연성으로 많은 멋진 골을 기록

ac밀란 시절의 수많은 전설과 같은 드리블이 기억에 있지만,   전설의 90m 드리블에 이은 골도 기억나고,,,

특히나 96년 한국 국대 상대로 50m 드리블을 성공하면서 홍명보 선수를 평범한 수비수로 만들었던 모습 은 잊혀지지 않는다. (축동 161431 번 참조)

 

stealth glider님 글.

 

 

 

(tae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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