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사람들의 눈은 모두 FC서울과 광저우 헝다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으로 쏠려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경기보다 더 특별했던 경기가 이날 열렸다는 걸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한다. 챌린저스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포천시민축구단이 파주시민축구단을 누르고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그 누구보다도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한 사나이의 눈에는 이슬이 고였다.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던 최악의 순간을 극복하고 다시 그라운드에 서 그토록 원하던 우승을 경험한 포천시민축구단 오태환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보다 더 대단했던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지난 2008년 FA컵 32강 노원 험멜과 수원블루윙즈의 경기에서 오태환(왼쪽)이 태클로 서동현을 수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프로 입성을 꿈꾸는 오태환, K3리그를 정복하다
오태환은 전도유망한 수비수였다. 대신고등학교 시절 최전방에는 정조국이 있었고 최후방에는 바로 오태환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전국대회 우승을 이뤄냈고 프로축구 선수가 되겠다던 그의 꿈은 서서히 현실이 되고 있었다. 경희대에 진학하면서도 오태환의 수비력은 빛났다. 하지만 프로 입단을 앞두고 있던 4학년 시절 그는 발목 부상을 당해 드래프트에 도전하지도 못했고 결국 2008년 당시 내셔널리그 소속 노원 험멜에 입단하게 됐다. 이때만 하더라도 몸을 만들어 금방 다시 프로 무대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이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오태환은 노원 험멜에서도 사랑받는 선수였고 험멜 변석화 대표도 "같이 힘을 모아 꼭 프로로 가자"고 약속했다.
그의 2008년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2008 하나은행 FA컵 32강 수원블루윙즈와의 경기는 대단했다. 내셔널리그에서도 그리 강하지 않은 노원 험멜은 에두와 루이스, 신영록, 배기종, 백지훈, 안영학, 서동현, 이정수 등 쟁쟁한 선수들을 앞세운 수원을 상대로 90분 동안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는 명승부를 펼쳤다. 후반 교체 투입된 오태환도 수비진을 잘 이끌었다. 비록 승부차기 끝에 수원에 패하기는 했지만 오태환은 승부차기에서 두 번째 키커로 나서 득점까지 성공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그는 대학교 시절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한 차례 프로 입성 기회를 놓쳤지만 ‘빅클럽’ 수원을 상대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찾게 됐다. 내셔널리그에서도 그의 활약은 서서히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 문제가 걸렸다. 2009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오태환은 프로 입성 도전을 잠시 멈춰야 했다. 공익근무를 하면서도 축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K3리그(현 챌린저스리그) 팀을 찾던 중 포천과 인연을 맺게 됐다. 2008년 창단된 포천은 아직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다. 창단 첫 해에 삼척신우전자와 용인시민축구단에 각각 0-7로 대패를 당하는 등 6승 3무 20패 52득점 94실점하며 16개 팀 중 14위에 머문 약체였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오태환을 비롯해 능력 있는 여러 선수를 영입하며 칼을 갈고 있던 상태였다. 특히 오태환은 포천 유니폼을 입자마자 주장으로 선발돼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리더십 넘치고 솔선수범하는 그를 동료들이 따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포천의 기적이 시작됐다. 2008시즌에 한 번 이기는 것도 버거웠던 포천은 2009 시즌 6연승을 내달리는 등 독보적인 실력을 뽐내며 19승 10무 3패를 기록, 믿을 수 없는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특히 주장 오태환은 리그 MVP에 뽑히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비록 K3리그였지만 공익근무를 잘 마치고 험멜로 돌아가 컨디션 관리만 잘하면 더 큰 무대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이듬해 포천은 FA컵 1라운드에서 고려대를 4-1로 제압하고 2라운드에서는 동국대를 또 다시 3-1로 꺾으며 K3리그 사상 최초로 본선 32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32강전 상대는 오태환이 험멜 시절 맞붙었던 수원이었다. 비록 1-3으로 수원과의 경기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오태환은 선발로 경기에 나서 90분 동안 염기훈과 최성국 등 K리그 무대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렇게 그는 포천에서 좋은 기억을 안고 2011년 말 소집해제 후 다시 험멜로 돌아갔다. 당시 험멜은 연고지를 노원에서 충주로 옮긴 상황이었다. 오태환에게는 내셔널리그에서 다시 한 번 프로 무대 진출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오태환은 2011년 포천 소속으로 또 한 번 FA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희망을 이어갔다. (사진=연합뉴스)
청천벽력 같은 백혈병 판정
단단히 마음을 먹고 충주에 합류했지만 몸이 이상했다. 평소 체력이라면 자신 있던 오태환은 훈련을 할 때면 쉽게 지쳤다. 동료들을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잇몸에 피가 한 번 나면 멈추지 않았고 몸에 멍도 쉽게 들었다. 얼굴색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주위에서 많이 했다. 누구보다 오태환 본인도 자신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병원에 가기 전 증상을 인터넷 검색창에 쳐 봤더니 충격적인 검색 결과가 나왔다. '백.혈.병.' 말로만 듣던 그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증상으로 봤을 때 백혈병이 확실해 보였다. 마음을 굳게 먹고 찾은 동네 병원에서는 검사를 한 뒤 이렇게 말했다. "백혈구 수치가 낮아요. 일반적으로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는데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오태환은 어머니와 함께 곧바로 더 큰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정밀 검사를 끝낸 뒤 의사가 말했다. "백혈구 수치가 현저히 낮습니다. 당장 입원해 골수 검사를 받고 치료에 들어가야 합니다. 백혈병입니다." 충격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의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는 믿을 수 없었다.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백혈병이 오태환의 몸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그라운드에서 남아 도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던 꿈 많은 청년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이야기였다. 공익근무를 마치면 충주 험멜로 돌아가 다시 한 번 프로 무대 입성에 도전해보려 했던 오태환에게는 절망적인 일이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충격이 심하긴 했어요. 어머니께서도 제가 충격을 받고 좌절할까봐 오히려 무덤덤하게 '한 번 열심히 치료해보자'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오히려 갑자기 이 소식을 접하게 된 주위 사람들이 더 많이 걱정해주셨어요."
그렇게 오태환은 충주에 복귀하자마자 다시 축구화를 벗어야 했다. 2012년 2월 응급실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뒤 곧바로 1인실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오태환은 백혈병과의 기나긴 싸움에 들어갔다. 그라운드에서 상대와 부딪히는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6개월 동안 항암 치료를 위해 가슴에 심장으로 향하는 관을 꽂았다.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그나마 먹음 음식도 다 토해내는 일이 매일 벌어졌다. 84kg이던 몸무게는 무려 10kg이나 빠져 있었다. 가슴에 관을 꽂고 있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라운드를 누비던 오태환은 이제 2~3m 앞에 있는 화장실을 혼자서도 가기 어려울 만큼 고통 속에 하루 하루를 보냈다. 잘생긴 외모로 인기도 많았던 오태환은 어느 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항암 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태환은 엄청난 고통을 참아내며 항암 치료를 이겨냈고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기 위한 재활까지 마쳤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그의 투병기
한 번 급격히 빠졌던 체중이 이번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기 시작했다. 병원에만 누워 있으니 체중이 90kg까지 불어난 것이다. 이미 축구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이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오태환은 극심한 신체적인 고통보다도 다시는 축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고통스러웠다. 몸은 백혈병 병동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축구장에 가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몰래 눈물을 흘렸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멋지게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 하루가 즐거웠는데 이런 병에 걸려 세상을 많이 원망했어요. 의료진도 다시 축구를 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했죠. 하지만 백혈병에 걸리기 전 목표가 더 좋은 리그에 가는 것이었다면 이 병에 걸리고 난 뒤에는 그게 어떤 리그건 상관 없이 단 한 순간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아보고 은퇴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오태환의 몸 상태는 물론 다시 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필요한 만만치 않은 재활 비용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항암 치료로 상할 대로 상한 몸을 다시 선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건 엄청난 본인의 노력과 주위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런 재활 치료에 드는 비용을 도무지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바람도 쐴 겸 찾은 경희대 동문회에서 누군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슬림&스트롱’이라는 재활센터를 운영하는 선배인 조승무 대표가 오태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뒤 이렇게 말했다. "다시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재활 비용 신경 쓰지 말고 언제든 나한테 말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줄게." 오태환은 고민할 것도 없이 이 재활센터를 찾았다. 처음에는 아직 백혈병이 완치도 되지 않은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극심하게 반대했지만 아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축구선수로의 복귀는커녕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도 걱정하던 이들이 많았지만 오태환은 마음은 더 굳게 먹었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준 2012년 마지막 날 이런 일기를 썼다. "올 한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화려하고 대단한 선수 생활은 아니었지만 제 축구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이런 모습이 될 생각을 하니 평생 두고두고 죽기 전까지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만해라. 현실을 생각해라. 너무 늦었다.' 이야기하지만 제가 운동을 다시 선택하고 도전하기에는 지금이 가장 젊은 나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항암치료보다 더 힘들 수도,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 해요. 끝이 빛나진 않겠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운동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생각하며 힘을 내보려 합니다. 2013년엔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이 아닌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 볼 준비들 하고 계세요. 꼭 다시 뜁니다." 오태환은 오로지 그라운드에 돌아갈 생각 뿐이었다.
항암 치료 후 체중이 90kg까지 불었던 오태환이 혹독한 재활 훈련으로 점점 축구선수로의 몸 상태를 찾아가고 있는 모습.
병상에 누워서도 늘 그려온 그라운드 복귀
오태환 스스로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일반인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혼자서 바로 앞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가능했던 몸을 이끌고 다시 축구선수에 도전한다는 건 무모한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했다. 재활의 고통은 병마와 싸우던 고통 못지 않았다. 백혈병과 싸우는 고통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지만 재활의 고통은 본인이 누구의 강요도 없이 선택한 고통이었다. 그렇게 거동도 힘들었던 오태환은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다. "병원에 누워 있을 때도 늘 그라운드에 서는 상상을 했어요. 다시 잔디를 밟는 모습을 떠올리니 재활의 고통 자체가 저에게는 즐거움이었죠. 재활이 힘들기는 해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오태환에게 힘을 주는 소식이 또 있었다. "태환아. 포천에서 너를 선수로 등록했대." 이미 그는 포천을 떠난 상태였지만 구단에서는 오태환의 쾌유를 빌며 그를 여전히 선수로 받아들였다. 선수 등록이 말소될 경우 오태환이 집에서만 시간을 보낼 것 같아 옛 동료들과 가끔 훈련장에서 바람이라도 쐬라는 포천의 작은 배려였다. 그러면서 포천 구단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애들 운동하는 거 나와서 구경도 하고 몸이 더 좋아지면 같이 운동도 해. 언제든 다시 운동장에 설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그때는 우리가 받아줄게." 충주 역시 오태환의 재활 소식을 듣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2008년 처음 인연을 맺을 때 "너를 꼭 프로선수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던 변석화 대표는 여전히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힘을 내서 꼭 다시 우리 팀으로 돌아와. 그때 그 약속 지키자." 오태환 곁에는 든든한 이들이 많았다.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전혀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걸을 수도 있게 됐고 더 나아가 조금씩 뛸 수도 있게 됐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초점 없는 눈으로 병상에서 빠져 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죽음과 싸우던 오태환에게는 기적적인 일이었다. 오태환은 욕심을 냈다. 2013년 4월 마라톤 15km 코스에 도전했다. 두 달 전 참가 신청서를 내면서도 '과연 두 달 뒤 완주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돌아올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죽어라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준비했다. 그리고 마라톤 15km에 도전하는 날 그는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벌였다. 길을 잘못 들어 무려 20km를 뛴 것이다. 1시간 17분 만에 20km를 완주했다. 길눈이 어두운 죄로 스스로가 "죽었다 살아날 만큼 힘들었다"고 할 만큼 힘겨운 도전이었지만 그는 결국 불가능할 것만 같던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오태환은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이런 고통을 이겨내야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죽을 각오로 뛰었어요."
모두가 안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반응이었지만 오태환은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파주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헤딩슛을 하는 오태환(30번)의 모습. (사진=포천시민축구단)
오태환, 기적적으로 그라운드에 돌아오다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오태환은 어느덧 그라운드에 설 수 있을 만큼 상태를 회복했다. 그리고 지난 5월 그는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경기도 연천에서 열린 제59회 경기체육대회에서 그는 다시 포천 유니폼을 입고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를 밟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고통스러운 재활도 버텨냈는데 막상 그라운드에 서니 덤덤하더라고요.” 이후 오태환은 챌린저스리그 서울 마르티스와의 경기에는 교체로 출전하며 약 22개월 만의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포기하는 게 당연할 것 같았던 그의 기적적인 복귀였다. 주장으로 팀을 이끌던 오태환은 아직 완벽한 컨디션도 아니고 워낙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며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잔부상에도 시달리고 있다. 또한 무척 선수층이 탄탄한 포천에서 이제 주로 벤치에서 대기하는 신세가 됐지만 이 자체가 너무나도 행복하다. 그는 올 시즌 5월 이후 팀에 복귀해 교체로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전성기 때의 70~80%에 불과한 몸 상태지만 그는 올 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인 청주직지FC와의 경기에서 백혈병 판정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 풀타임 활약했다. 영원히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프로 무대 입성도 이제는 다시 꿈꿀 수 있게 됐다. 이 와중에 ‘최강’ 포천은 시즌 최다승을 거두며 20승4무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통합우승을 확정지었다. 홈에서는 30경기 무패행진으로 ‘안방불패’의 신화를 이어갔고 12연승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한 포천은 플레이오프를 통해 올라올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태환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챔피언결정전까지 6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어요. 원래 한 번 안정된 포백 수비 라인이 바뀌기는 어렵잖아요. 기존 동료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었는데 이 6주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챔피언결정전에 나가는 게 제 새로운 목표였습니다.” 오태환은 혼자서 그렇게 묵묵히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경기 일주일 전 발표된 선발 명단에서는 그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인창수 감독은 오태환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챔피언결정전에서 그동안 안정적이었던 포백 수비진을 교체하는 모험을 걸 수는 없었다. 오태환은 실망스럽기도 하고 힘도 빠졌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 사흘 전 인창수 감독이 오태환을 따로 불렀다. “사이드백 (이)상돈이가 다쳤어. 발가락에 금이 갔더라고. 네가 대신 챔피언결정전에서 뛰어줘야겠어.” 오태환은 귀를 의심했다. 시즌 내내 팀에 보탬을 주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있던 오태환에게 중요한 경기에서 임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태환은 파주시민축구단과의 챔피언결정전 선발 명단에 극적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백혈병을 이겨낸 오태환이 챌린저스리그의 가장 중요한 경기에 나서게 된 것이다.
오태환은 팀의 무실점을 이끌면서 파주와의 챔피언결정전 4-0 완승에 힘을 보태며 우승을 감격을 맛봤다. (사진=포천시민축구단)
감격적인 포천의 챌린저스리그 우승
어쩌면 그에게는 이 경기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년 시즌 K리그 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한 오태환은 이번 드래프트 도전에서 실패할 경우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인연을 맺을 때 함께 프로에 가자고 약속했던 충주 험멜은 현재 K리그 챌린지 팀이 돼 프로화에 성공한 상황이고 변석화 대표가 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한 오태환의 선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드래프트장에서는 워낙 변수가 많아 어떤 결과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오태환은 어쩌면 축구 인생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이 챔피언결정전에 나서면서 각오를 다졌다. ‘혹시 나 때문에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팀에 해가 되지 말자.’ 그러면서 딱 1년 전을 떠올렸다. 오태환은 2012년 겨울 포천이 챔피언결정전을 치를 당시 항암 치료를 끝내고 약해진 몸으로 관중석에서 이 경기를 부러운 눈으로 지켜봤었다. 불과 1년 만에 오태환은 꿈에서나 그리던 이 무대에 다시 서게 됐다.
이를 악물고 뛰었다. 역시 예상대로 ‘디펜딩 챔피언’ 포천은 강했다. 전반 35분 포천 안성남이 팀의 첫 번째 골을 터뜨렸다. 파주 수비수 둘을 제친 안성남은 몸을 날리며 슈팅을 날렸고 이 공은 그대로 파주 골문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 순간 최후방을 지키고 있던 오태환은 흐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 “울컥하더라고요. 이런 감격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이후 포천은 후반 들어서도 맹공을 퍼부으며 세 골을 더 추가했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오태환은 감정을 다스리는 게 힘들었다. 자꾸만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종료 휘슬이 울리고 포천은 파주를 4-0으로 제압하며 챌린저스리그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오태환은 힘든 시기 그에게 많은 힘을 준 동료들과 뜨겁게 포옹하며 이 우승을 즐겼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오태환이 다시 이 자리에서 동료들과 함께할 것이라 믿는 이들은 없었지만 그는 이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는 여전히 일주일에 26개의 알약을 먹는다. 백혈병은 2년 동안 경과를 지켜보고 재발하지 않아야 완치 판정을 내리는데 오태환은 완치 판정을 받으려면 아직 9개월 동안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한다. 조그마한 몸의 변화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어서, 동료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눌 수 있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K리그 드래프트에 다시 한 번 도전하면서 어쩌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항암 치료 과정에서 늘 그렸던 희망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 그의 꿈이 이뤄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지만 바로 앞에 있던 화장실도 혼자의 힘으로 갈 수 없었던 그가 이런 꿈을 꿀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기적이다. 비록 그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한 축구선수는 아니지만 그 어떤 상대보다 더 두려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진정한 영웅이다.
오태환이 백혈병을 이겨내고 엄청난 노력을 통해 보여준 기적은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축구가 있어 오늘이 행복합니다"
오태환에게 마지막으로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생사의 기로에까지 섰던 그에게서 무언가 거창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많은 울림을 줬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뒤로는 지금이 가장 감사해요. 내일 당장 내 몸이 어떤 상태일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오늘이 즐거우면 그걸로도 저는 즐겁고 행복하죠. 축구를 다시 하면서 몸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지만 지금 행복하면 그게 행복한 거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축구를 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축구가 있기 때문에 아마 제가 그 힘든 병도 이렇게 잘 이겨내고 있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로 무대에 꼭 다시 도전해 백혈병으로 고통 받은 많은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며 재활을 했는데 더 오래 축구선수로 그라운드에 서고 싶습니다." 그의 위대한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