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챔피언'최요삼' 재조명

짱아는목말라 작성일 20.06.12 1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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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1월 1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미국의 레이 맨시니와 장렬히 싸우다 14라운드에 TKO패배를 당한 김득구는 경기 직후 뇌사판정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산소호흡기를 떼어내는 것을 동의했고, 결국 김득구는 복싱경기로 인해 사망한 선수로 남게 되었다. 당시 경기 중 그가 입고있었던 노오란 트렁크 색처럼 국민들의 마음도 노오랗게 변해갔다. 과격하고 부상의 위험이 있는 복싱에 대해 복싱협회 관계자들은 물론 복싱팬들도 그 위험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고 이후 15라운드 제도는 12라운드로, 휴식시간도 60초에서 90초로 변경되었다. 그 슬픈 사건을 뒤로 하고 한국프로복싱은 이후에 수많은 세계챔피언들을 많들어냈으며 80년대 중후반은 복싱의 절정기를 달렸다. 시간이 흘러 복싱이 침체기를 겪기 시작했고 잃어버린 복싱의 인기와 함께 김득구 사건도 점점 잊혀져갔다. 하지만 26년 후 또 한명의 선수가 링위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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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10월 16일,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최요삼은 영등포중학교 2학년때부터 복싱을 시작했다. 이후 프로데뷔를 위해 숭민프로모션에 소속되었는데, 이 숭민프로모션의 경우 한국프로복싱의 대모인 심영자 여사가 운영권을 쥐고 있었다. 10명도 넘게 세계챔피언을 배출해 낸 그녀에게 최요삼이 들어왔고, 기대주였던 최요삼은 실력이 일취월장하며 세계 챔피언감으로 주목받게 된다. 데뷔 후 21전 중 1패만을 오점으로 남기고 20승을 거둔 최요삼은 태국의 강펀치 <사만 소자투롱>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사만은 태국의 복싱 영웅으로, 95년 움베르토 곤잘레스를 상대로 챔피언 타이틀을 뺏어왔다. 움베르토 곤잘레스는 주니어 플라이급 역대 올타임 넘버 원에서 장정구, 유명우, 마이크 카바할 등 수많은 선수들과 비교될 정도의 대선수였다. 95년 당시 그의 말년기라 전성기는 확실히 지나긴 했지만, 사만은 곤잘레스를 피범벅으로 만드는 강펀치를 날렸다. 눈두덩이에서 흐르는 피가 그대로 입에 흘러내리는 곤잘레스의 모습은 그대로 은퇴로 이어졌다. 그 혈전은 곤잘레스의 은퇴와 타이틀 상실, 사만의 챔피언 등극과 함께 95년 미국 복싱 잡지 <링>지의 올해의 경기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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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10월 17일, 한국에서 사만을 불러들인 최요삼은 영리하게 유효타를 적중시키면서 사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유리하게 포인트를 가져가면서 홈어드밴티지도 생각하면 충분히 세계 챔프 등극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10라운드 막판에 사만 특유의 강펀치가 최요삼의 털에 꽃혔다. 종소리가 난 후 코너로 돌아가면서 최요삼은 턱의 이상을 느끼고 턱을 움직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11라운드, 12라운드를 초인적인 기지로 버텨내면서 결국 판정승으로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후 1차 방어전을 무에타이 선수 출신의 차트 키타펫과 벌여 KO승으로 가볍게 성공한 뒤, 2차 방어전을 사만과의 리턴매치로 하게 된다. 당시 1,2차 경기지명권을 갖고 있는 태국 프로모터의 권한으로 리턴매치게 성사되었는데 잔뜩 벼르고 있는 사만이었기에 복싱팬들은 초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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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외로 최요삼은 사만을 KO로 무너뜨린다. 7라운드 왼쪽 잽으로 견제를 하다 사만의 안면에 맞게 되는데 그전에 누적된 데미지가 함께 쏟아나와 사만은 이내 반대편으로 쓰러진다. 당시 동급내에 최강자인 사만을 2번이나 격침시키면서 그 위용을 확인한 최요삼은 한창 전성기를 누릴때였지만 사양길로 접어든 한국프로복싱의 현실상 재정문제도 그렇고 방어전을 대비한 프로모터의 활동 약화도 큰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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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3차방어를 위해 일본원정을 결정하게 되는데, 당시 일본 챔피언이었던 야마구치 신고를 적수로 맞게 된다. 11승 2패 1무의 부족한 커리어 상대를 두고 원정까지 가야되는 현실. 하지만 최요삼은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면서 야마구치를 10라운드까지 우세하게 밀어붙이며 KO승을 거둔다. 물론 상대가 그리 강적이 아니었지만 불리한 원정 경기를 KO로 장식한 최요삼은 커리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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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차 방어전을 승리로 장식했지만, 역시 그에게 남은 건 챔피언 타이틀 뿐이었다. 자신의 프로모터였던 심영자 여사는 재정난으로 인해 최요삼과 결별했고, 최요삼과 비슷한 활동시기를 지니고 있었던 세계챔피언들이 모두 타이틀을 상실하면서 최요삼에겐 한국 유일의 세계 챔피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02년, 그때 한국의 여름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한일월드컵에서 무려 4강에 진출하면서 세계축구사에 새역사를 쓰게 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민들의 스포츠 그 자체였다. 6월의 흥분이 월드컵 종료후에도 축구열기로 이어지고 있을 당시, 7월 6일. 최요삼은 멕시코의 호세 아르세를 불러들여 4차 방어를 치뤘다. 그나마 최요삼이었기에 구름관중이라도 들어와 타이틀 경기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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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가수의 오프닝 곡과 함께 당당하게 등장한 최요삼은 언제나 그렇듯 활기가 있어보였지만 그날의 악몽은 1라운드부터 시작했다. 호세 아르세의 초반 공세는 무서웠다. 1라운드 1분 40초 라이트훅이 안면을 강타했고 최요삼은 그대로 쓰러졌다. 이후 상황은 잘넘어가며 종소리를 들었지만 이후에도 계속 수세에 몰린다. 가뜩이나 펀치도 강한 호세에게 계속 펀치를 허용하지만 유효타는 그리 먹히지 않았다. 결국 6라운드 절망의 시간이 되었다. 6라운드 2분 누적데미지를 가지고 있던 최요삼은 호세와 근접전을 벌이다 펀치를 허용, 뒷걸음질치며 물러선다. 그리고 호세의 공격, 코너에서 몸이 휘청일 정도로 얻어맞던 최요삼을 보고 심판은 TKO를 선언한다. 데뷔 후 이처럼 무기력한 모습은 아마 그에게 처음이었을 것이다. 최요삼의 동생에 따르면 그때 최요삼은 라커룸에 들어가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고 혼자서 분을 삭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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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최요삼은 자신의 대선배였던 장정구를 코치로 모시고 세계 챔피언 재등극에 힘쓴다. 하지만 이미 전성기 기량을 잃어버린 상황과 복싱침체기를 겪고있던 한국에선 국내자본을 크게 들일 여력이 없었다. 이후 최요삼은 멘도사 베이비스와 잠정챔피언 매치를 벌이지만 판정패, 로렌조 파라와 세계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벌이지만 이 역시 판정패한다. 그렇게 실의에 빠진 최요삼은 은퇴를 결심하지만 이내 다시 복귀를 선언하면서 모습을 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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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상황에서 사비를 들여가면서 복싱생활을 이어간 최요삼은 WBO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획득에 성공한다. 비록 세계챔피언 타이틀은 아니지만 동양챔피언에 해당되는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세계권 진입을 노렸다. 하지만 그에 앞에 다가왔던 것은 비운의 순간이었다. 2007년 크리스마스. 12월 25일은 모두의 행복이었지만 그는 링위에서 운명하게 된다.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1차 방어전, 인도네시아의 헤리 아몰을 불러들인 최요삼은 12라운드 막판 펀치를 허용하면서 다운을 당한다. 곧바로 일어나 경기를 마친 최요삼은 그대로 쓰러진다. 의식을 잃어 코치진과 의료진에게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진전이 없자 병원으로 실려가게 된다. 뇌사판정 후 가족들은 수일을 기다리면서 그의 소생을 바랬지만 결국 산소호흡기 제거에 동의하면서 최요삼은 김득구 이후 사망한 프로복싱 2번째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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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문기사에선 최요삼은 그의 대선배 장정구와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영리한 두뇌와 뛰어난 근성, 그것이 그 두명의 어머니와도 마찬가지였던 심영자에게 속해있던 것에 필연적인 이유였다고 한다. 최요삼도 생전에, 자신이 사만에게 뺏어온 타이틀은 사실 장정구가 선수시절 갖고있던 라이트 플라이 타이틀이라면서, 장정구 선배의 타이틀을 자신이 되찾아 온 것이라고 회상한 바 있다. 그외에도 장정구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었다던 마의 4차 방어전, 도카시키와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최요삼도 호세 아르세와의 4차방어전 역시 그때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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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과의 타이틀 매치에서 턱이 부러져 3조각이 되었는데도 초인적인 기지로 버텨낸 그의 정신력은 실로 대단했다. 경기 후 부러진 턱을 상담받으면서도 담당의사에게 챔피언 등극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쇠퇴기를 일기에 적었다. 유가족과 사람들은 그의 일기를 보면서 더 슬퍼했다. 복싱을 포기하지 못하면서도 맞는것이 두렵다, 피냄새가 싫다...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이겨내지 못할 프로복싱의 선수였음에도 그가 느꼈을 심리적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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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가족들은 장기 기증에 동의하여, 최요삼의 장기들은 수명의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생전에는 복싱 영웅, 사후에는 장기 기증의 천사로 남게 되었다. 수년 후, 2009년에 그가 WBC 명예의전당에 헌액되었다는 것이 뒤늦게 확인되었고 그의 이름이 다시금 언론에 오르게 되었다. 어려운 순간임에도 복싱 글러브를 놓지않았던 그에게 영원한 챔피언이라는 수식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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