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억대 연봉자여서 선수협이 필요 없었다.단지 어려운 동료들을 돕고 싶었다"
[2006년 기자와의 인터뷰]
“2군 포수가 내 공을 받아준 적이 있다. 수고했다고 고기를 사줬는데 ‘얼마 만에 먹는 고기인 줄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선수 연봉이 300만 원(당시 2군 최저 연봉)이었다.
300만 원으로 야구 장비 사고, 시골에 있는 부모님께 생활비 보내드리고, 동생들 학비 대주면 남는 돈이 없다고 했다.
‘1군이든 2군이든 프로라면 최소한 생계유지는 해줘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구단은 2군 선수들을 무슨 낙오자 취급하며 머슴처럼 부렸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최고 연봉을 받는 것도, 슈퍼스타를 대접을 받는 것도 뒤에서 고생하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이제 음지에 있는 동료들을 위해 내가 먼저 움직이겠다’고 말이다.”
선수협을 만들려고 했던 최동원은 소속팀 롯데에 찍혀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었고, 이미 롯데에서 인대가 끊어지도록 공을 던져 기량이 저하된데다 상실감도 심해 은퇴하게 된다.
이후 20년이 지나 사직에서 롯데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하지만 롯데가 아닌 게임 마구마구의 초대였고, 대장암으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을때는 코치와 2군 감독으로 근무했던 한화이글스에서 장례를 치뤄준다.
최동원의 사후 롯데 자이언츠는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최동원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