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어머니가 08년에 내신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중의 일부 내용
(귀찮으면 파랑 글씨만 읽으셈)
어머니, 밀어주실 능력이 되십니까?
어린 시절 연아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다른 부모들은 ‘우리 애가 천재 아닌가?’ 싶을 만큼 특별한 일화도 많았다는데, 연아는 그런 에피소드도 없었다. 굳이 남달랐던 점을 꼽자면, 다른 아이들보다 좀 일찍 걸었다는 것 정도다. 보통 돌을 전후해서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연아는 8개월 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너무 일찍 걷는다고 주변에서 걱정을 해줄 정도였다.
그러다 과천시민회관에서 스케이트 강습을 받으며 나는 코치 선생님으로부터 연아가 특별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은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연아의 점프력이 좋다고 했다. 점프를 하도록 한번 잡아 올려주면 그 감각을 놓치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한다고 했다. 그런 재능은 남들과는 다른 타고난 감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7개월의 과정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정식으로 상담을 청해왔다. 레슨을 계속 받으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투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아니 비장할 정도였다.
“언니는 시키려면 취미로 하면 좋겠고, 동생은 좀 밀어줘서 크게 키워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입니다. 그럴 생각이 있으십니까?”
여기까지였다면 그저 조금 소질이 있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다음 말에 나는 가슴이 쿵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실례지만 가정 형편은 어떠신지요? 스케이트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입니다. 어머니, 아이를 계속 밀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밀어줄 수 있을까?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바로 계산기부터 두드려봤다. 취미로 시작했던 단체강습은 한달 수강료가 4만9천원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한다. 그 비용은 35만원이었다. 이런 이유로 취미에서 특기로 접어들 때 부모들은 큰마음을 먹어야 된다.
먼저 큰애를 그만두게 하고 그 돈 4만9천원을 연아 쪽에 밀어주기로 했다. 가계에 들어가는 모든 지출은 스케이트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했다. 취미로 할 때와는 씀씀이의 급이 달라졌다. 취미로 하는 것은 9만원짜리 스케이트면 충분하지만, 선수가 되는 것은 1백만원짜리 스케이트를 신어야 하는 일이다.
→ 연아 어머니는 시민회관에서 연아 스케이트 강습을 해주던 코치로부터
연아가 남들과는 다른 타고난 재능이 있으니 연아 언니는 취미로, 연아는 선수로 키워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음.
결국 어머니는 연아 언니를 먼저 그만두게 하고 연아는 선수로 밀어주게
됨으로써 연아의 피겨선수생활이 시작
극성 엄마는 제1의 전문가
아이뿐만 아니라 내 생활도 정리해야 했다. 스케이트장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데려다줘야만 했다.
나와 연아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오직 스케이트만을 위해 남겨두었다. 그것은 단순히 스케이트 선수를 만들겠다는 엄마의 욕심이 아니라, 아이의 꿈과 희망을 위해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연아 어머니, 아직 멀었어요? 우리 불 꺼야 돼요.”
“조금만요. 아직 두 세트 더 남았어요.”
밤이면 밤마다 스케이트장을 외로이 지키던 우리 모녀가 수시로 들었던 말이다. 전용 링크가 없는 탓에 피겨 선수들은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연습 시간을 피해 오전 한 차례와 저녁 한 차례씩 연습을 한다. 안타깝지만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 선수들도 매일 밤 12시, 1시까지 연습을 하고 녹초가 돼서 돌아간다.
빙판 위에서의 코치는 선생님이지만, 빙판 밖에서 몸을 푸는 훈련을 시키는 건 내 담당이었다. 코치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조심스럽게 시작했던 일이, 캐나다 전지훈련 이후 전문 트레이너에게 역할을 넘겨주기까지 10여 년간 내 몫이었다.
오전 9시에 일어나서 새벽 1시가 넘어 잠들 때까지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 연아와 나는 언제나 함께했다. 경기도 군포의 집에서 오전에는 태릉선수촌, 오후에는 과천실내링크로 하루 3~4시간씩 아이를 태워 운전하고, 빙판에 들어가기 전후에 스트레칭을 시키고, 빙판에서 연습을 할 때는 주목해서 지켜보고, 집에 와서는 밥 먹이고 윗몸일으키기와 러닝머신 등 기초체력 운동 지도까지 엄마인 내가 한다. 그 사이사이 보고 느낀 것을 조언해주고, 짜증내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때로는 혼내고 야단치는 일도 엄마 몫이다.
부모로서의 역할은 한계가 있지만, 욕심을 내자면 얼마든지 그 이상도 뛰어넘을 수 있다. 나를 두고 극성 엄마라고들 한다. 그냥 웬만큼 하고 코치한테 맡기면 될 것을 너무 많이 간섭한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극성 엄마라도 좋다. 아이를 제일 잘 알고 분석해낼 수 있는 사람이 좀더 연구를 하면, 보다 큰 에너지를 낼 수 있는데 그걸 안 하는 것이 더 낭비라고 생각한다.
→전용링크장이 없어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연습시간을 피해
불이 꺼질때까지 남아서 연습해야 했으며 스케이트장은 집에서 멀리떨어져있고 링크장 이동도 해야했기에 엄마가 훈련에 항상 따라다녀야 했음.
그리고 빙판에서의 코치는 선생님이지만 빙판밖에서의 코치는 어머니였으며
아침 9시부터 새벽1시까지는 어머니와 연아는 항상 함께함.
(연아 자서전에 보면 새벽1시까지 훈련이고 보통 새벽2시에 취침이라 적혀있음)
백 바퀴 뛰어!
의지가 강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했을 때 그만큼 노력을 한다. 그런데 욕심만큼 실행이 안 될 때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연아 역시 그런 경향이 있었다.
연습이 잘 안 되면 잠도 못 자고, 울고 불며 그 속상함에 어쩔 줄 모른다. 한창 점프를 완성해가던 시기에는 한번 했다 잘 안 되면 그날은 종일 울면서 한다. 울면서도 끝까지 해낸다. 초반에 좀 하다가 안 되면 울기 시작하는데 끝까지 울음이 그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또 내가 나선다.
“울지 말고 해. 화내면 홧김에 힘은 나지만 점프가 흐트러지니까, 마음 추스르고 해. 그래야 제대로 되지.”
연아는 가끔 제 성질을 못 이기는 게 화근이었다. 스케이트장 위에서 뿐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그 이후 단단히 다짐을 한 뒤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버릇이 어느 날 또다시 나왔다.
“너 나와!”
나는 아이를 불러냈다. 선생님한테 양해를 구하고 스케이트를 벗으라고 했다. 그날은 아예 날을 잡았다. 단단히 가르치지 않으면 버릇을 못 고칠 것 같아서 작심을 했다.
“링크장 백 바퀴 뛰어!”
백 바퀴라고는 했지만 내가 그 말을 했을 때는 상징적인 의미로 한 것이다. 무릎이라도 꿇고 “엄마, 잘못했어요”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내 딸을 몰라도 단단히 몰랐던 것이다.
연아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뛰기 시작했다. 계단까지 있는 링크장 주변을 돌아서 뛰어야 했는데, 쉬지 않고 계속 돌고 돌았다. 그 딸에 그 엄마라고 했나. 나도 백 바퀴를 체크하기 위해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았다. 제대로 세기도 힘들 정도로 수없이 돌더니 백 바퀴를 다 돌았다며 내 앞에 와서 섰다.
나는 수첩을 봤다. 87바퀴였다. 뛰느라 정신이 없어 숫자를 놓친 모양이었다.
“뭐가 다야? 87바퀴야. 더 뛰어.”
이미 숨은 헉헉거리고 있으면서도 연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제 백 바퀴 벌은 다시 써먹을 수 없구나.’
그러나 그렇게 혼이 난 덕분인지 이후에 얼음 찍는 버릇은 고쳤다. 다행이었다. 나 역시 그날 이후 백 바퀴 돌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또다시 뛸까봐 무서워서 말이다.
→ 연아는 그날 연습이 잘 안되면 잠도 잘 못자고 울고불고 속상해 했으며
연습할때에도 한번했다 잘 안되면 그날은 하루종일 울면서 훈련하고
울면서도 끝까지 해내는데, 가끔 제 성질을 못이겨 얼음 찍는 버릇이 있었다고함.
그 버릇을 고쳐줄 작정으로 연아에게 빙판 100바퀴를 돌라고 시킴.
이때 연아어머니는 내심 연아가 잘못했다고 무릎이라도 꿇을줄 알았는데
연아는 군말없이 100바퀴를 다 돌았고 연아 어머니는 수첩에 100바퀴를 일일히 체크하셨다고함..(두분 다 대단)
어쨌든 그후로 연아는 얼음 찍는 버릇은 고쳤다고함 ㅋㅋ
가족, 그 아름다운 동행
본격적으로 연아를 밀어주기로 한 뒤 나는 스케이트 외에는 모든 것을 끊어버리기로 작정했다. 집안일도 어느 정도 포기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점점 엉망이 돼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야말로 괴로웠다.
요즘은 아내가 아이 낳으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해서 아기를 돌보기도 한다지만, 우리만 해도 그런 것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세대다. 그러니 남편도 집안일을 온전히 자기 일이라고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연아가 세계에서 주목하는 선수가 되고 주위의 기대치도 높아지면서 남편은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
언젠가 지방에서 연아의 경기가 있어 며칠간 집을 비워야 했을 때, 미처 챙겨두지 못한 큰딸 애라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겹쳤다. 고모와 삼촌이 엄마 대신 졸업식에 참석했다. 마음이 아파 함께 머물던 다른 선수의 엄마와 나는 그날 엄청 울고 말았다.
연아의 오늘이 있기까지 남편과 큰아이는 뒤에서 묵묵히 받쳐준 숨은 공로자다. 어린 나이로부터 20대 성인이 될 때까지 크게 불만의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숨죽여 외로워했을 큰아이의 희생은 평생을 두고 갚아도 모자랄 빚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연아도 언제나 언니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캐나다에 있을 때 우리는 애라를 그리워한다.
“언니 보고 싶다. 우리가 언니를 책임져야 돼. 그치?”
이렇게 말하며 웃는 연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은 우리가 늘 마음속 깊이 외치는 다짐 같은 것이다.
→ 연아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연아어머니는 집안일에 소홀하게 되고 이에 연아 아버지가 집안일까지함으로써 힘들어 하기 시작함.
한번은 연아 지방경기때문에 연아언니의 졸업식도 못간적이 있다고 함.
그날은 연아 어머니도 엄청 우셨다고함..
연아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연아아버지와 연아언니는 뒤에서 묵묵히 받쳐준
숨은 공로자라함.
연아 어머니의 월간지 인터뷰 기사.
더 가슴 아픈것은 애라의 꿈을 꺾은 일이었다. 애라는 실용음악과에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박미희씨는 말릴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레슨을 받아야 했는데, 연아에게 모든 에너지를 써야하는 상황에서 도저히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박미희씨는 "요즘 노래 잘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라며 일축했고, 애라는 며칠 의기소침했다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달 후 여름방학을 맞아 연아가 전지훈련을 가 있는 동안 모처럼 애라와 시간을 보내던 중 노래방에 함께 가게 됐다.
애라의 노래를 듣다 박씨는 울음을 삼켜야 했다. '연아 때 처럼 일찍 알아보았더라면...'
<김연아의 가족 사진에는 혼자 감내해야 하는 큰 딸 김애라는 늘 없었다>
사실 김연아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 피겨 스케이트 선수로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훈련이라서 김연아는 중도에 스케이트 선수를 포기할까 생각도 여러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박미희 씨가 독학으로 피겨 스케이팅을 공부하며 24시간 매니저이자 코치로서 때론 친구로서 헌신적인 격려와 뒷바라지를 한 덕분에 세계적 피겨 스타이자 피겨여왕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연아가 피겨 스타로 성장하고 결국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까지 가족들의 헌신과 희생에는 고통도 많았습니다. 아버지 김현석 씨는 김연아의 훈련비를 충당하기 위해 항상 돈벌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큰 딸 김애라는 비록 외톨이처럼 힘들 수도 있지만 그런 아버지와 함께 가족의 울타리를 잘 지켜나가야 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동생 김연아를 위해 묵묵히 혼자 공부하고 친구들과 외로움을 달래야 했을 수도 있지만 책임감있게 잘 극복한 듯 합니다.
사실 김연아를 어머니 박미희 씨가 볼도는 동안, 큰 딸 김애라는 아버지 김현석 씨의 몫이었다고 합니다. 김현석 씨는 도금 관련 사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김연아의 전지 훈련비, 개인 코치비, 아이스링크 대여비, 의상비 등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해왔고 또 가장이면서 큰 딸 김애라를 보살피는 엄마 역할도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식사와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던 셈입니다.
동생 김연아가 점차 스포츠 스타로 성공을 위해 언니 김애라는 자신이 가져야 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양보했을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음악에 대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대신 간호사의 길을 가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김애라는 동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배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 나중에 어머니 박미희 씨가 음악의 꿈을 김애라 씨에 권유했지만 동생에게 행여 부담이 될 수도 있어 자신은 간호사로 남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김연아의 금메달 뒤에서는 친언니 김애라가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희생이 숨어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오직 김연아의 성공을 위한 희생의 연속이나 마찬가지 였을 것입니다.
→ 어머니가 하루종일 연아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를 하다보니
연아 아버지가 연아 언니를 돌봐야 했고, 식사,청소,빨래등 집안일까지
다 도맡으셔야 했으며 연아의 훈련비와 집안의 생활비까지
금전적인 문제까지도 다 해결하셨다고함.
그리고 연아 언니가 고딩때 실용음악과를 가고 싶어했지만
연아 때문에 형편이 되지 않아 못하게 했다고함.
몇달후 연아언니가 노래 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딸의 재능을 늦게 알아봐 연아언니에게 미안해해 했다고함ㅠ.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가 연아언니에게 음악의 꿈을 권유했지만
연아언니는 동생에게 부담될까봐 거절했다고함.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
연아는 어렸을 때부터 지고는 못 살았다. 연아는 게임이든 과제든 어떤 승부라도 꼭 이기려고 했다. 악착같이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도 남달랐다. 욕심만큼 잘 안 되면 엉엉 울면서 했고, 잠까지 못 자며 속상해했다. 연습도 남들 한 번 할 때 두 번씩 했다. 이러한 성향을 파악한 박미희씨는 연아가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려고 하면 꺼내 드는 비장의 무기가 생겼다.
“너 그러다가 ‘그럼 그렇지. 잠깐 반짝 했던 애구나’라는 소리 들으면 어떡하니? 다들 김연아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되겠니?”
“그러면 연아는 무섭게 다시 일어났어요. ‘의지’보다 더 큰 에너지는 없어요.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극을 주어야 해요. 물론 그 전에 무엇이 아이에게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하구요.”
아이들은 좋아하는 일은 스스로 배운다. 연아는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장면을 녹화해두고 수없이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반복해서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길 즐겼는데, 나중에는 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동원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각자 출전 선수 이름을 정해놓고 그 선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다. 놀이지만 아주 진지했고, 격식까지 지켰다. 연아는 비디오에서 봤던 동작을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 빠짐없이 해냈다.
집중력은 스케이트에서만 나타난 건 아니었다. 스케이트장을 오가는 차 안에서 영어 테이프를 틀어줬더니, 나중에는 저절로 영어를 하게 됐다.
“매일 이동하는 차 안에서 20, 30분 동안 영어 테이프를 들려주었어요. 특별한 효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죠. 그런데 얼마쯤 반복하자 연아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더라고요. 심지어 남자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로, 아이 목소리는 아이 목소리로 흉내 내면서요. 어느 날부터는 영어 책을 읽더라고요. 오로지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한 것만으로 스스로 깨우친 거예요.”
→ 연아는 어릴때부터 절대 지고는 못사는 성격. 게임이든 과제든
어떤 승부라도 꼭 이기려고 했고 악착같이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남다른 아이였다고함.
연습도 남들 한번할때 두번씩 했고 이런 연아의 성향을 파악한
연아 어머니는 연아가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려 하면
" 너, 잠깐 반짝했던 애구나?"
라는 소리를 하면 연아는 무섭게 다시 일어났다고함 ㅋㅋ
동기부여는 가장 달콤한 채찍질
연아의 점프는 세계가 알아준다. 점프의 정석으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로 점프력은 타고났다. 물론 점프를 위해서 하체 근력을 기르기 위한 근력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 점프를 배울 때 코치에게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상위권 선수 80%가 일부 점프를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상대적으로 연아가 빛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연아는 언제나 정석만 고집했다. 조금 더 쉽게 갈 수 있지만 회전수를 정확하게 채우기 위해 몇 배나 더 연습했다. 연아의 점프는 그렇게 완성된 것이다.
“가끔 회의가 들기도 했죠. 너무 정석만 요구하다가 아이를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렇게 늘 정확하게 연습한 것이 좋은 평가를 가져온 것 같아요. 기본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보답을 받게 마련이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하다. 연아도 마찬가지였다. 연아에게는 국제 대회 출전이 바로 동기부여였다.
“국제 대회 출전 이후로 스케이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막연히 재미있어서 타던 시기를 넘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시기로 옮겨간 거죠.”
세계 대회 우승까지 차지한 이후 연아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라이벌이 있었다. 일본의 동갑내기 선수였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트리플 악셀이라는 기술의 벽에 부딪혀서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인정해야 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분석해야 했어요. 연아의 장단점을 파악했고, 라이벌의 약점도 발견했죠. 그리고 바로 그 점을 공략했어요. 여기에 연아만의 장기를 만들어야 했죠. 바로 연기였어요.”
→ 연아의 점프는 점프의 정석으로 평가되고 있을정도로
점프력은 타고났다함.
상위권 선수의 80%가 일부점프를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어
문제가 되는데 연아는 언제나 정석만을 고집했으며,
조금 더 쉽게 갈 수 있었지만 회전수를 정확히 채우기위해
몇배나 더 연습했다고 함.
어머니는 가끔 너무 정석만 요구해 연아를 고생시키는건 아닐까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기본에 충실하면
언젠간 보답받을 생각으로 정확하게 연습시켰다고 함
피겨 스케이팅에서 점프를 할 때 선수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나쁜 습관이 있다.
몸이 먼저 틀어지는 습관이다.
왼쪽으로 회전하면서 점프를 해야하는 동작에 있어서 일단 위로 치솟을 때는
정자세로 해야한다.
그런데 몸의 관성에 의해 자꾸만 몸통을 먼저 틀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뛰기 전에 이미 몸이나 고개가 돌아가곤 하는데 그러면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똑바로 뛰어오를 때는 힘을 쓸 수 있지만 돌아간 채 찌그러진 몸은 힘을 쓸 수가 없다. 그것은 쉬지 않고 계속 바로 잡아야 하는 부분이다.
연아의 점프가 높고 강한 이유는 아마도 다른 선수들이 범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곧바로 뛴 다음 몸을 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역시 수만번의 연습과 점검 끝에 얻은 습관이다.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중에서(167-168p)-
스스로 자부심이 강하고 빈틈이 없는 사람일수록 남의 참견이 싫은 법이다.
연아는 운동하러 가기 전이나 시합 전에 "이거 가져가야 되지 않니?" "그건 챙겼니?" 하는 말 자체도 싫어한다.
사람들은 엄마가 늘 함께 하기 때문에 연아가 의존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뭐가 필요하면 무조건 엄마한테 부탁하거나 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오히려 내가 뭘 챙겨주고 싶어도 간섭을 싫어하니 섭섭할 정도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도와주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다. 하지만 연아는 그런 건 딱 질색이다.
연아는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엄마의 역할만을 받아들인다.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中 148쪽..)
→ 사람들은 연아가 엄마한테 의존적일거라 생각하지만
연아는 참견받고 간섭받는 거 자체를 싫어하고 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엄마의 역할만을 받아들인다함.
선택의 기준은 늘 아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인생의 고비마다 가르침을 주고 의지가 될 수 있는 스승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특기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만큼 큰 행운은 없다. 연아의 경우도 맨 처음 재능을 알아봐주신 코치 선생님을 비롯해, 연아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주신 많은 고마운 분들이 있다. 그 분들 덕분에 연아의 오늘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마운 분들과도 헤어져야 할 순간들이 온다. 특기교육의 경우 전인 교육보다는 실질적인'기술'에 대한 교육이 주가 되기때문에, 아이가 그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방향 전환도 해야 한다. 만약 아이의 실력이 정체되어 있고, 도약해야 할 시점에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 변화를 고려해봐야 한다. 피겨의 경우, 코치 선생님도 사람이기때문에 제반 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내 아이에게 만족스러운 교육을 시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마냥 그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기다려야 할까? 만약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코치 선생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감정이 상하는 것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것보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나는 연아의 재능을 발견해준 코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따라갔다. 코치님은 피겨에 첫발을 들여 놓은 우리 모녀에게 중요한 조언들을 많이 해주셨다. 나 역시 모든 궁금증과 고민들을 코치님께 물어보고 의지하며 지냈다. 탄탄한 기술도 가르쳐주셔서 연아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는데 그 누구보다도 큰 도움이 되신 분이다.
그러나 벽에 부딪힌 순간이 있었다. 연아를 지도해주시던 코치님이 국가대표선수들을 맡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 일은 선택의 여지엾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였다. 그럼에도 코치님은 연아를 놓지 않고 대표선수들사이에 넣어서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아무래도, 국가대표를 지도해야 하는 입장이라 코치님의 관심은 꼬맹이 연아보다는 그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여름날 대나무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며 기술을 익혀가던 연아는 상대적으로 멈칫거리게 되었다. 속이 상했다. 코치님은 코치님대로 시간을 쪼개가며 어렵게 연아를 봐주시고 있었다. 그 마음을 생각하니 고맙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태를 온전히 참아내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내 속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의논도 해봤지만, 코치님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
"죄송하지만 코치님 상황 때문에 우리 연아가 주춤할 수 없으니, 코치님을 바꾸겠습니다. 이해해주세요" 코치님은 무척이나 섭섭해하셨다. 자신의 상황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연아를 위해 특별히 배려를 해왔던 것이라 어쩌면 냉정한 내 태도에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나 역시 우리에게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그 분을 떠나는 것이 마음아팠다. 그러나 내 결정은 확고했다. 코치님의 사정때문에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코치님은 연아를 보내주셨다.
'매정하다, 냉정하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코치를 선택하고 지도를 맡길 때, 철저하게 연아를 중심으로 판단했다. 인정이나 내 자신에 대한 평판 같은 것에 이끌리지도 않았다. 엄마들 가운데 몇몇은 뒷말이 무서워서, 또 인맥이 흔들리는 게 무서워서 코치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이렇게 그만두면, 코치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를 걱정한다. 그런 것이 발목을 잡고 미련을 갖게 만든다. 엄마들이 흔히 혼동하는 것은 코치 선생님과의 정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경우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한테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입장이나 감정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이다.
엄마는 지금 하는 고민이 나를 위한 고민인지 아이를 위한 고민인지 부터 판단해야 한다. 당연히 아이한테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엄마의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는 구겨져도 상관없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 인맥을 만들려고?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아니지 않은가.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나선 길이 아닌가. 그렇다면 답은 명확해진다. 모든 판단은 아이를 위해 내려야 한다.
아이가 장기간 실력이 늘지 않거나 막힘이 있을 때는 빨리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성장하는 단계별로 필요한 것이 다르기때문에, 선택도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야 한다. 그저 막연한 기다림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중심으로 냉철하게 판단했을때 후회는 없다. 내 경우도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모두 좋았다. 단 부작용은 적이 생길 수도 있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극성 엄마'라는 칭호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몸에 좋은 쓴 약을 꿀꺽 넘기듯, 삼켜버릴 줄 아는 배짱도 필요할 것 같다.
→ 연아의 재능을 발견해줬던 코치님은 연아에게 좋은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이에 연아도 전폭적으로 믿고 따라갔으나.
코치님이 국대를 가르치게 되면서 연아에게 상대적으로 소홀해졌고
나날이 늘던 연아의 기술도 멈칫하게 됐다고 함.
연아어머니는 코치님은 코치님대로 시간 쪼개서 연아를 봐주고
있는 마음은 너무 고마웠지만, 연아의 재능을 위해 코치님께
코치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고함.
당시 연아의 코치님도 서운해하셨지만, 연아 어머니도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그분을 떠나는건 마음 아팠다고함.
엄마들 가운데는 뒷말이 무서워서,
또 인맥이 흔들리는게 무서워서,
코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서
코치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아이의 장애물이 될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경우.
엄마는 지금 나를 위한 고민인지 아이를 위한 고민인지부터
판단해 아이에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쪽을 선택해야한다고 함.
물론 부작용으로 욕을 먹을수도 극성엄마라는 칭호가
따라다닐수도 있지만 그정도는 삼켜버릴 줄 아는 배짱도 필요하다고함.
2009년 연아아버지 인터뷰 중..
10여년 넘게 김연아를 지원해온 김현석 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현석 씨는 "평범한 가족처럼 사는 게 소원"이라고 대답했다. 김 씨는 "솔직히 가족의 희생이 너무 컸다. 이제는 다른 가족들처럼 모두 모여서 사는 게 작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개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선수 부모가 전면에 나서는 게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라며 "그래도 내가 연아 주변에서 너무 안 보이니까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어서 요즘은 경기장을 자주 찾는다"라고 밝혔다.
이기사는 2009년도 8월 아이스쇼때 연아 아버지 인터뷰인데..
연아 아버지 소원은 다른 가족들처럼 모두 모여서 사는게
작은소망이고 그동안 공개석상에 잘 안드러냈는데 갑자기
드러내게된 이유가 이상한 시선을 보냈다는 사람들 때문이라는데..
이 이상한 시선이 연아 부모님 이혼했다는 소문인 듯
다른 인터뷰보니깐 "(몇년간 떨어져서 살다 보니)
나도 (이혼 소문이 돌고 있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들었다. 그런 얘기 때문에 요즘 내가 자주 얼굴을 비치는 것" 라고 말씀하시는것보니깐..
그리고 이기사에서 아버님이 "연아가 만약 은퇴하게 된다면 그동안 받은 사랑과 도움을 보답하는 차원에서 후배를 길러내는 게 의무일 것"이래.
2006년 연아 인터뷰중..
2006년 3월 김연아가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기자가 연아에게 "딸이 태어나면
피겨를 시키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아뇨"였다. 가장 놀란 사람은 엄마였다. 박씨는 "왜 안 시킬 생각이니?" >
하고 딸에게 물었다. 연아는 "내가 겪어본 게 너무 힘드니까요. 하는 사람도, 시키는 사람도 그렇고. 안 시키는 게 나을것 같아요"라고 했다
→ 연아는 자신이 겪은게 너무 힘들고 하는 사람도 시키는 사람도
힘들기때문에 자기 자식은 운동 안시킬거라고 얘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