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일기

개박그륵 작성일 24.02.05 04:08:22 수정일 24.02.07 16: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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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 함부르크 시절

 

우리집은 가난했다.

 

내가 갓난아이 였을 때는

컨테이너에 산 적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세 가지 돈벌이를 하시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학원은 꿈도 꾸지 못했고, 또래 아이들에게는 일상적이었을 게임이나 여행, 놀 거리들을 나는 별로

해 본 기억이 없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며 소형 중고차

한 대를 구해오셨다. 120만 원을 주셨다고 했다.

비가 오면 창문 틈으로 빗물이 줄줄 샜지만

그래도 자가용이 생겼다며 우리 가족은 좋아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차가웠다. 주위에서 아버지가

'똥차'를 몰고 다닌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독일 유소년 구단 시절은 참 힘들게 버텼다.

한국 식당에 갈 돈이 없어서 허기를 꾹꾹 참았다.

유럽에서 뛴다는 판타지의 실사판은 늘 배고픈 일상이었다.

 

구단 전용 숙소에서 지내야 했는데 나처럼 없는 형편에는 감사했으나, 숙소의 식사가 한국인 청소년에게는 너무 부실했다. 시내 한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불가능했다.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인터넷으로 음식 사진을

검색해 구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 봐 그런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한국일을 정리하고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끌어모아 독일까지 날아오셔서 숙소 근처의

가장 싼 호텔을 거처로 삼으셨다.

 

그때까지 유소년 신분이었던 나는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1군 선수가 되고,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고, 함부르크 팬들을 열광시킬 때도 나와 아버지는 어렵게 지냈다. 가족과 함께 지낼 집도 없었고, 아버지는 자동차가 없어서 매일 호텔과 클럽하우스, 훈련장 사이를 몇 시간씩 걸어 다니셨다. 훈련이 시작되면 갈 곳이 없어 혼자 밖에서 몇 시간씩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셨다.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내가 함부르크 1군에서 막 데뷔했을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 실제 생활은 정말 차이가 컸다.

함부르크에서 골을 넣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11 아시안 컵에 출전하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며 한국 언론으로부터 칭찬이 쏟아질 때도

나와 우리 가족은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숙소에서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밥솥을 벽장 안에,

밑반찬을 책상 아래 숨기며 생활했다.

'라이징 스타' 아들을 둔 아버지는 매일 몇 시간씩 추위를 뚫고 먼 거리를 걸어 다녔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매일

마음 졸이며 기도만 하셨다.

 

TV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신성 손흥민의 일상은

대중의 짐작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 2019년 프리미어리그 시절

 

‘2019년의 손흥민은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에요. 프리미어 리그의 인기 팀에서 뛰는 프로 축구선수죠.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서 뛰어봤어요.

남들이 보기에 이런 제 모습이 화려해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겉모습입니다.

힘들었던 과거와 뒤에서 이루어지는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죠. 지금까지 어려웠던 날이 훨씬 많았어요.

좌절하고 눈물을 흘린 순간도 많았고요.

사실 지금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살고 있어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죠.

 

제 인생에서 공짜로 얻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드리블, 슈팅, 컨디션 유지, 부상 방지 전부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믿어요. 어제 값을 치른 대가를

오늘 받고, 내일 받을 대가를 위해서 오늘 먼저 값을

치릅니다. 후불은 없죠.

 

저는 지금 자제하고 훈련하면서

꿈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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