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두산' 시라카와 끝내 NPB 미지명, 육성선수로도 못 뽑혔다... 이루지 못한 '코리안 드림'

빈손이아니야 작성일 24.10.25 18: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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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대에서 희망과 과제를 동시에 남겼던 일본인 투수 시라카와 케이쇼(23)가 자신이 원하던 일본프로야구(NPB)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했다.

시라카와는 24일 열린 2024년 NPB 신인 드래프트 회의에 나섰으나, 12개 구단으로부터 모두 지명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이날 7라운드까지 진행된 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았던 시라카와는 뒤이어 열린 육성선수 드래프트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무려 13라운드까지 지명권을 행사한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도 시라카와는 호명되지 못했다.

결국 시라카와는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됐다. 이미 고교 졸업 후 미지명되며 독립리그로 향했던 그는 지난해에도 좋은 성적(15경기 55⅔이닝 4승 3패 ERA 3.56)을 냈지만 선택을 받지 못했다. 시라카와는 지난 6월 "일본 독립 리그에서는 4년을 뛰는 선수가 많이 없다. 나도 지난해 독립 리그 3년 차에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고 생각했는데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지명받지 못해 그만두려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독립리그에서 뛰던 시라카와는 지난 5월 하순 해외 무대에 진출했다. SSG 랜더스가 KBO 리그 최초로 부상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 제도를 활용해로에니스 엘리아스 대신 그를 영입한 것이다. 대체 외국인 선수 제도는 6주 이상 치료가 필요한 외국인 선수가 재활 선수 명단에 복귀할 때까지 교체 횟수를 사용하지 않고 임시로 대체할 외국인 선수와 계약해 경기에 바로 투입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이다.

SSG와 계약하기 전까지 시라카와는 여권조차 없을 정도로 해외 경험이 전무한 선수였다. 그는 입단 당시 "처음에는 SSG의 제의에 많이 놀랐다. 그러나 해외에서 야구를 경험할 기회가 많이 없다고 생각해서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였기에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시라카와는 최고 시속 150㎞의 빠른 공과 포크볼의 조합을 앞세워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SSG에서 5경기에 등판한 그는 2승 2패 평균자책점 5.09를 기록했다. 본인이 긴장했다고 밝힌 6월 7일 사직 롯데전(1⅓이닝 8실점(7자책))을 제외하면 평균자책점은 2.49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구단 내부의 치열한 논쟁 끝에 SSG가 엘리아스와 동행을 선택하면서 시라카와는 팀을 떠나게 됐다. 그리고 브랜든 와델이 왼쪽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게 된 두산 베어스가 역시 부상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 제도를 이용해 그를 영입했다.

두산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첫 3경기에서는 모두 5이닝도 소화하지 못했고, 8월 8일 잠실 LG전에서는 6이닝을 던졌지만 6점을 내주는 투구를 보여줬다. 하지만 계약 기간 마지막 등판이었던 같은 달 16일 수원 KT전에서 8이닝 4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으로 최고의 투구를 선보였다. 마침 브랜든의 복귀가 미뤄지면서 두산은 시라카와와 연장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8월 23일 잠실 한화전에서 1회부터 4점을 내주는 등 4이닝 6피안타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그리고 이날 투구 후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고, MRI(자기공명영상) 등 검진 결과 팔꿈치 인대 상태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잔여시즌 등판이 어렵다는 판단에 결국 같은 달 27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9월 초 계약이 만료된 그는 조용히 한국 무대를 떠났다. 한국에서의 최종 성적은 12경기(57⅓이닝) 4승 5패 평균자책점 5.65였다.

이후 시라카와는 다시 한번 NPB의 문을 두들겼다. 일본 현지 매체에서도 지명 후보로 거론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부진과 부상이 겹친 탓인지 결국 올해도 선택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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