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언 박경수, 유니폼까지 벗을 순 없다

마크42 작성일 24.11.06 15: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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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30일, 10번째 생일을 맞은 소년은 밥을 먹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차려진 생일상을 마다한 채 온종일 묵언 시위를 했다. 야구부 입회를 약속했다가 번복한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다. 다음날 허락을 받고 곧장 야구부로 달려가 가입서를 작성한 그는 번듯한 유니폼을 입고난 뒤 비로소 활짝 웃었다.

그날 이후 30년간 야구와 동고동락하다 은퇴를 결심한 KT 위즈의 베테랑 박경수(40)를 최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만났다. “이상하게도 은퇴를 하고 일상이 더 바빠진 느낌이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을 만나고, 또 이런저런 자리를 나가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고 언급한 그는 “아직 가족들과 제대로 된 여행도 가지 못했다. 라커룸의 짐도 그대로다. 차근차근 주변을 정리할 계획”이라며 웃었다.

성남고를 나온 박경수는 지난 2003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았다. 입단 계약금은 4억3000만원. 서울 지역 최고의 유격수라는 평가와 함께 동기들 중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고 화려하게 데뷔했다.

‘류지현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을 안고 입단했지만, 프로의 세계는 녹록치 않았다. LG의 주전 내야수로 자리매김할 기회를 놓치면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새로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밀려 앞날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프로야구 막내 구단 KT의 탄생과 함께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2014년 11월 FA 계약을 통해 이적한 뒤 매년 20개 안팎의 홈런을 때려내는 중장거리 타자로 변신해 존재감을 키웠다. 클럽하우스에선 타고난 통솔력으로 후배들을 이끌며 정신적 지주로 거듭났다.

박경수는 “10년 전 KT에 합류한 직후 첫인상이 아직 또렷하다. ‘이 팀이 과연 프로 1군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면서 “당시 선배들이 많이 계셨지만, 내가 악역을 자처해 후배들을 혼냈다. 한참 지난 뒤 동생들이 ‘(군기반장 역할을 자처한) 형의 마음을 이제서야 알겠다’고 말할 때 뿌듯했다”고 했다.

은퇴 후 진로에 대해 박경수는 올 시즌 내내 고민을 거듭했다. 해설위원으로 새출발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일단 KT에서 코치직(보직은 추후 확정)을 맡기로 했다. 내년 2월 스프링캠프에선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후배들과 함께 뛴다.

박경수는 “나처럼 실패와 성공을 두루 경험한 선수는 많지 않다”면서 “LG와 KT를 거치며 쌓은 경험을 살려 지도자로서 후배들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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