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
최근 위드 코로나 또는 단계적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와의 공존을 바라보는 데이터 과학의 시각에서 코로나 19를 설명드릴 필요가 있어보여 짧은 글을 남깁니다. 많은 역학적, 수학적 가정이 생략된 글이라 엄밀하지는 않습니다.
1. 위드 코로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 많은 분께서 위드 코로나를 방역의 완전한 완화로 여기시거나, 위드 코로나가 코로나 19의 종식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의 실상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라는 단어는 이미 정해진 결말이며,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가 아닙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범유행을 시작한 순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델타변이바이러스가 등장하면서 백신 만으로 코로나 19를 통제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따라서 코로나 19는 이제 인류와 함께 계속 존재할 겁니다.
- 위드 코로나를 조금 더 엄밀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저는 위드 코로나가 일상생활로 복귀를 위한 단계적 절차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도 언뜻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간단한 숫자로 위드 코로나를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2. 이제는 3종류의 인간만 존재한다.
- 감염병의 수리과학적 모형으로 보면 이제 인류는 3가지 종류만 존재합니다. 1) 백신을 맞은 사람, 2) 코로나 19에 걸린사람, 3) 코로나 19에 걸릴 사람, 델타변이바이러스가 등장하면서 1)과 2)의 합은 전체의 90% 정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운이 좋게 코로나 19에 걸리지 않았던 10%의 사람도 점차 감염되기 시작할겁니다.
- 우리나라의 목표 백신 접종율은 사실상 전체 국민의 80% 수준입니다. 따라서 나머지 10%가 감염이 될 때까지 유행은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다. 즉 최소 500만명이 누적 감염될때까지 코로나 19는 빠르게 진행됩니다. 백신 접종에 따라 치명율이 매우 내려가겠지만, 남은 인구에 대한 치명율이 0.1%라고 가정해도 앞으로 5천명의 사망자, 중환자 이환비율이 3%에 불과하다고 해도 15만명의 중환자를 초래합니다.
3. 피해의 총량은 동일하다.
- 극단적인 시뮬레이션을 하나 제시해드립니다. 우리나라가 올해 12월로 백신 접종을 마무리 짓고 어떠한 조치도 하지않았던 시기로 돌아갈 때를 가정한 그림입니다. (교토대 정성목선생님이 항상 고생하고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 방역완화 즉시 확진자가 급격하게 증가해서 수만명 단위의 확진자가 발생합니다. 중환자도 매일 수천명이 재원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사망자도 급증합니다. 너무 당연한 결론입니다. 남은 백신 미접종 인구에서 거의 자연상태에 가까운 감염이 발생할테니까요.
4. 점진적 완화도 피해를 분산시킬 뿐 그 크기를 줄이지는 못한다.
- 순차적이고 점진적인 완화도 전체적인 피해의 총량을 감소시키지 않습니다. 피해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힘은 백신 접종율의 상승과 중환자에게 의미있는 치료제의 개발 정도입니다.
- 문제는 피해가 급증할 경우 생기는 부수적인 피해입니다. 지금의 치명율은 우리나라 정도의 의료수준이 유지된다는 가정에서 도출됩니다. 만약 순간적으로 확진자가 급증한다면 의료 붕괴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5. 위드 코로나의 방식에 따라 얼마나 피해를 나누어서 받는지 결정된다.
- 방역완화의 속도와 정도에 따라 향후 발생하는 곡선의 기울기는 달라집니다. 쉽게 4-5개월에 500만명의 확진자를 받아낼 것인가, 3-4년에 거쳐서 500만명의 확진자를 받아낼 것인가를 점진적 방역완화의 속도와 백신 접종율이 결정합니다.
- 또 중요한 점은 몇가지 필수적인 방역조치를 유지하면 피해를 최대한 분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확진자 격리, 접촉자 추적, 마스크 착용 등의 조치로 코로나의 전파속도를 조절한다면 500만명의 확진자를 최대 수년에 거쳐서 분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점진적 완화와 몇가지 필수적 조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 점진적인 완화와 필수적인 조치는 피해를 최대한 분산할 수 있지만, 급격한 완화가 이루어지고 필수적인 시스템에 대한 준비가 없다면 미국, 이스라엘, 영국이 방역완화 후 겪었던 동일한 상황이 우리나라에 재현될 수 있습니다. 곡선의 모양이 아닌 절대적인 수치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