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읒 몰래, 비읍 몰래, 이응 몰래.
아니, 그 누구도 몰래.
고백을 했다.
항상 게임만 하던 그 아이에게.
언제나 나에게 게임얘기만 하던 그 아이에게.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내가 좋아한다고 얘기하고도 당황스럽지 않았는지 평소처럼 대해주었던 아이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웃음을 얼굴에 띄우면서도 살짝은 불안해졌다.
'생각할 시간을 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언제나와 같은 대화속에서,
나만 초조해하고,
나만 갈급해하는듯한 느낌.
언제나와 같은 대화일뿐인데,
언제나와 같이 친구처럼,
언제나와 같이 친구로.
오늘은 체념할까.
서둘러 과제를 끝내고는 잠자리에 든다.
...
몇시간이 흘렀을까.
잠이 오지 않는다.
휴대폰을 꺼내들어 조심스럽게 메세지를 한자 한자 적어나간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기라도 한듯, 눈물이 먼저 나오기 시작한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기라도 한듯, 손끝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있잖아, 아까는 못 물어봤는데.. 나 혹시 차인거야? ㅋㅋ..'
...
'미안해 아직은 남자친구를 사귈 생각이 없어..정말 미안'
'미안하기는 뭘.. 그러면 내가 더 미안해지지..'
'진짜 많이 생각했는데.. 미안해..'
'자꾸 미안하다고 하면 내가 더 미안해진다니까....'
'미안해하지마.. 아직 내가 남자친구 사귈 마음이 없달까..'
'자꾸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니까 ㅠㅠ 과제는 다 했고?'
'응, 거의 다 했어..'
'ㅋㅋㅋ그래 다행이네 ㅋㅋ 괜찮아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말고 주무세요. 나도 언능 잘거니까.'
'응, 잘자요.'
내 마음이 다시 차가워진다.
차가워지는만큼 작아진다.
작아지는 나를 숨기려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내 몸이 슬퍼 미쳐 뿜는 온기를 더하여 이불의 포근함은 더해져간다.
몸이 포근해져 갈 수록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마치 뜨거웠던 심장이 차가워지는만큼 뜨거운 것을 흘려보내려는것처럼
마치 내 마음이, 자신감이 줄어들고 작아지는만큼 밖으로 내보내는것처럼..
내 머리와 마주하던 베개는 오늘만큼 내 가슴에 파묻히고 마주할일 없을것 같던 내 얼굴과 마주보고는 눈물을 숨겨준다.
숨어드는 눈물만큼, 작아지는 마음만큼, 식어드는 가슴만큼
머리가 아파온다.
목이 메어온다.
가슴 한켠에 구멍이라도 난듯 휑한 바람이 분다.
비로소 휑한 바람을 느끼며 잠에들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기를 빌지만.
눈을 뜬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온다.
우산을 어디에다 챙겨놨었더라.
왠지 오늘 아침은 비가 내린다.
2011년 4월 18일.
속초의 아침에는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만큼 흐느껴 운다.
아직 자고 있는 친구들이 깰까 조심스레 눈물을 흘린다.
친구들이 눈치챌까, 순진하다 비웃을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가슴을 움켜쥐고 아파한다.
그렇게 아프고 흐느껴 운 뒤에도
꿈이 아닐까 그렇게나 가슴을 쥐어짠 뒤에
얼굴에는 웃음을 띄운다.
웃는다.
주변사람들이 내 아픔을 모르게.
친구들과 언제나처럼 대화할 수 있도록.
그리고는 다시금 마음속으로 외친다.
내일도 힘차게! 내일도 활기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