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남성을 전부 등 돌리게 한 일본 여배우 짝짓기 사건
이스탄불 시내 블루 모스크의 야경. 사진 출처 연합
터키는 이슬람국가다. 국민의 95% 이상이 알라를 믿는다. 하지만 실제 이슬람교도가 그 정도 숫자는 아니라고 한다.
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투르크 왕정시대에서 터키 공화국으로 넘어오던 과도기에, 현재의 터키공화국 시대를 연 아타투르크 대통령이 전국의 행정체계 개편을 위해 ‘국민증’(일종의 주민등록증)을 대대적으로 발급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가 되어버렸다. 개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종교 표시란에 ‘이슬람교’로 통일해 일괄 기입하는 바람에 그리 됐다고 전해온다. 터키의 국민 종교에서 제외된 5%는 쿠르드족이다.
EU가 만들어진 이후 가입을 간절히 희망하는 터키를 EU 회원국들이 번번이 퇴짜 놓은 것도 종교를 이유 삼는다.
히잡을 쓴 터키 소녀들. 사진 출처 연합
알라를 경배하든 안 하든 간에 터키는 명실공히 이슬람국가 남성들이 가장 선망하는 나라다. 왜냐고? 남성 친족에 의한 여성 가족의 ‘명예살인’을 허용하는 국가이며 공개 장소에서 남녀간 스킨쉽도 쉽지 않은 나라이면서, 서구에서 온 이방인조차 화들짝 놀라게 만들만큼 화끈한 대중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옛날 하렘시절의 터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21세기 최첨단 나노 센서빌리티 하이테크 문화를 접목한 고농축 신세대 이슬람국가라고 마음 다잡고 보더라도 놀라게 된다. 아주 깜깜놀…
터키는 연 3천 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관광대국이다. 낯선 이들의 발길이 가는 곳, 묵는 숙소 도처에서 이방인을 기다리는 ‘찐하고’ ‘핫한’ 인쇄물과 영상물이 넘쳐난다. 도심 뒷골목들은 성性 개방 수위가 기대치를 훨씬 넘는, ‘야한’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손님을 맞고 보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신문과 잡지에서, 어디서나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 영상과 맞닥뜨린다.
탱고를 추고 있는 터키남성.
사진 출처 blog.joinsmsn.com/ethnic9113/5487396
터키 알리 코스컨 무역산업부장관이누드 인쇄물을 펼쳐 든 이유는?
사진 출처 google
TV도 빠질 수 없다. 대낮에 토플리스 여인들이 화면을 채우고 외설스런 TV프로그램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야한 뮤비도 넘쳐난다. 전부 사랑을 갈구하는 노래들이다. 점심시간 찾아 간 식당 TV에서도 마주친다. 시원하게 벗은 여인이 페티쉬를 자극하는 몸짓을 반짝이 무대의상처럼 온 몸에 두르고 끈끈한 노래를 부른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꿀 내용의 뮤비들이다. 네덜란드의 밤 문화도 터키에 비하면 약과이지 싶다.
터키 방송에선 참한 차림에 속하는 가수의 모습. 사진 출처 로이터연합.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력’에 좋다는 식품, 약품도 많이 팔린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꼭 마주치는 ‘쿵짝 메들리 송’ 만물 판매대처럼, 휴게소 간이 판매대엔 빠지지 않고 정력제가 진열돼 있다. 기념품 숍에선 남성 성기를 뻥튀기한 소품도 흔히 보인다.
터키 대중문화가 이렇듯 남성 위주의 문화로 극대화한 까닭 역시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 명예를 위해 여동생과 아내를 죽여도 죄가 안 될 정도로 여성에게는 순결을 강요하지만 강한 남성성은 존경해 마지않는다. 능력 있는 남성이 여러 여성을 취해도 자랑이 되는 사회. 그래서 터키는 남성에게 ‘성 권하는 사회’다.
그렇다고 터키 남성이 정말 많은 수의 부인을 맞지는 않는다.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지만 4명 이상의 부인을 두는 것은 율법으로 금하고 있다. 터키의 성 범죄율이 서양에 비해 현저히 낮은 걸 보면 성적으로 개방 된 사회는 결코 아닌데 대중문화만 ‘남성천국’이라는 얘기다.
터키와 이집트의 춤이 한데 섞였다는 밸리댄스 공연 장면.
사진 출처 bellydan.tistory.com/entry/%25ED…58A%25A4
앞글이 길었다. ‘터키의 성 풍속’을 길게 쓸 수밖에 없었다. 본론이 짧기 때문이다.
대략 10년 전 벌어진 일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2002년으로 기억한다. 개방적인 대중문화가 주류이다 보니 터키는 외국 방송사와 연계한 프로그램도 많이 방송한다고. 일본의 니혼TV가 터키 국영방송에 6개월 여 프로그램을 내보낸 적이 있었다.
청춘남녀가 나오는 짝짓기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애초 이 방송을 기획했던 니혼TV는 터키를 좋아하는 신인 여배우를 기용, 그녀와 결혼하려고 모인 다수의 터키남성 중을 골라 최종 배필을 선정한다고 선전했다. 신인 여배우의 이름은 나카조노 구니. 이 프로그램은 방송 초기부터 터키 일본 양 국가에서 앞 다퉈 보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배우자를 구합니다! 꽃 같은 24살의 아름다운 미혼 여배우, 아버지의 호텔을 경영수업하는 부잣집 딸, 나카조노 구니가 터키가 너무 좋아서 터키 남성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미혼의 터키 남성은 누구나 도전해주세요!”
대략 이 정도의 예고 방송과 지면광고가 나갔을 것이다.
니혼TV의 이 기획물은 원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 현지에서 방영한 ‘전파소년’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 중 한 시리즈였다고. 일본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방송이라고 한다. 인기를 끈 것은 엽기 발랄한 기획 때문이었다. 예컨대 히치하이킹만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거나, 방구석에 틀어박혀 상품 추첨 엽서만 수천 통을 보내서 당첨된 상품으로만 먹고 사는 모습을 방송했다고.
웃자고 만드는 ‘전파소년’의 타켓이 터키가 된 셈이다. 방송 초기 동양의 선진국에서 일부러 찾아 온 미모의 일본 아가씨를 터키인들은 남녀노소 모두 좋아해 프로그램 방영 내내 시청률이 톱을 달렸다고 한다. 드디어 시간이 흘러 출연자들이 하나 둘 탈락하고 나카조노 구니에게 구애한 최종 생존자 3명만 남은 상황. 생존자들의 면모는 대강 이랬다. 젊고 잘생긴 ‘훈남’, 젊고 인기많은 스포츠스타 ‘몸짱남’, 돈이 아주 많은 ‘흔남(흔한 외모의 남자)’…
결과는? 여러분 예상대로다. 터키 국민을 무지 화나게 만들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종생존자인 ‘훈남’, ‘짱남’ ‘흔남’을 내버리고 여자가 떠났으니 말이다.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써 역사적으로 무역업이 흥했던 터키는 옛날부터 일본을 좋아하는 국가였다. 그래서 일본은 아시아 끄트머리에 위치한 터키와 유럽을 잇는 두 개의 다리 중에 하나인 술탄 마호멧 다리를 무상건설해주기도 했다(물론 고속도로에서 우리 국민 돈을 걷어가는 매킨리 사 같은 조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방송이 회를 거듭할수록 코미디 프로라는 애초 의도대로 터키남성을 놀리고 웃는 방향으로 방송이 나가자 차츰 이 사실을 깨닫게 된 터키인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방송은 터키를 조롱하기 위해 제작됐다”며 터키 정부도 일본을 비난하고 시청자들은 “터키경제가 어려워진 것까지 일본 탓”이라며 전국적인 ‘열폭’ 현상이 벌어졌다. 터키 언론과 방송까지 일본을 비난하고 나오자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할 것을 우려한 니혼TV 제작진과 나카조노 구니는 도망치듯 터키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
특히 터키인의 감정을 건드린 부분은 신문 광고에 “처녀”라고 일부러 쓴 점, 그리고 아빠가 부자라고 선전하여 165명의 터키 남성들이 응모하게 한 점이라고. 가부장 사회인 터키 남성을 등장시켜 당시 경제가 어려웠던 키 국내 사정을 응모자들을 통해 노출시킨 점이 특히 그렇다. 사건으로 비화한 후에 밝혀진 여배우의 실명이 ‘아마기 준코’라거나 터키 방송 당시 싸구려 호텔에 투숙했던 사실도 까발려졌다고 한다. 이 사건의 실제 책임이 니혼TV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 및 일본 제작진들이 출연 여배우에게 과실을 뒤집어 씌웠다고.
‘나카조노 구니 사건’ 말고도 유사한 에피소드는 또 있다. 수년 전 ‘에가시라’라는 코미디언이 터키에서 공연 중 군중 앞에서 하반신을 노출시켜 국제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나카조노 구니, 즉 아마기 준코는 이 사건 이후 활동이 전혀 없어 일본인의 기억에서 잊힌 존재가 됐다.
일본은 잊었지만 터키는 다르다. 그래서 ‘때린 이는 잊어도 맞은 자는 못잊는 것’이다.
그때 돌아선 터키남성의 ‘니뽄녀 증오심’ 발발 사건은 아직도 회자 중이다. 오죽하면 평생 터키를 처음 가보는 관광객에게 들려줄까. 터키 유명 관광지에선 일본인을 종종 만났다. 지진이 나고 원전이 터져서 이전보다 일본관광객 수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에페소, 트로이, 카파도키아, 파묵칼레를 돌아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며 블루 모스크에서도 마주치던 일본인들…
관광객이 터키남성을 접촉할 기회는 많지 않다. 주로 기념품 가게며 관광지 인근에서 만났던 터키 남성들은 우리 일행에게는 “대~한민국!”이라며 박수 치거나 “꼬레아? 브라더?”하며 반색을 해도 일본여성 관광객에게 웃는 모습은 못 봤다.
일본 여배우 단 한 명이 터키 남성의 등을 전부 돌려놓았다. 시작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었다고 해도 국민 정서를 건드리면 문제가 된다. 바늘구멍처럼 사소한 작은 일이 후쿠시마 원전 구멍만큼 커진 셈이다. 국제 외교에서 민간의 힘이 중요한 이유다.
참고로 나카조노 구니 사건은 일본 국내에는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다.
PS. 13일 오후 글을 올리고서 구체적인 사건 정황을 못 찾았다고, 팩트를 나시는 분 댓글로 남겨달라고 했었습니다. 댓글에서 spark라는 능력님께서 정확한 자료를 주셔서 글을 대폭 수정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