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에 결정적 역할
경제기반 취약해 한국으로 탈출 러시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때도 조선족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조선족이 대중투자와 무역에 있어 가교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옌볜 자치주에 자리잡은 한국 기업만 650여개다. 조선족은 중국의 투자관행 등을 이해하는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부동산과 같은 고정자산 투자에 있어서 조선족의 명의를 빌려 투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덕분에 한국 기업은 우리보다 30년 앞서 수교(1972년)하고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 기업들을 바짝 추격할 수 있었다.
농업이민으로 출발한 만큼 조선족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조선족자치주인 옌볜은 중국에서 ‘북방 논농사의 고향’으로 불린다. 기후가 건조해 밀재배와 낙농을 주로하는 북방에서 논농사를 짓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한반도에서 이주한 조선족은 논농사 기술을 북방에 도입했다.
한·중 수교 이후에는 한국인을 상대로 한 서비스업 진출이 돋보인다. 한국인 관광객이나 사업가를 위한 숙박업(호텔·민박)은 물론 요식업(식당) 등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관광가이드, 통·번역, 부동산 중개업, 아이돌보기(보모) 등에도 상당수 조선족이 종사하고 있다. 조선족 중 일부는 탈북브로커를 비롯 불법외화송금(환치기), 보이스피싱, 매매춘과 같은 지하경제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지하경제에 종사하는 조선족은 칭다오, 옌타이 등 한국인이 많은 항구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다.
경제적 기반은 취약한 편이다.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연간 GDP는 305억위안에 불과하다. 이는 지린성의 주도인 창춘의 2073억위안에 비해 거의 7분의 1 수준이다. 옌볜 자치주의 GDP `수준은 동북지방 41개 도시 가운데 28위에 불과하다. 옌지와 같은 도시주민의 연평균 수입은 1만600위안(약 200만원)으로 대도시인 창춘(1만2700위안)에 비해 2000위안 넘게 차이가 난다. 농촌 지역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해 농촌 주민들의 연평균 수입은 4400위안(약 80만원)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옌볜 자치주를 포함한 동북지역은 1990년대 이후 연해지방의 급속한 경제성장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취약한 경제기반은 옌볜 탈출을 부채질하고 있다. 옌볜 조선족자치주에서만 20만명 가까이 한국으로 취업이주를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대개 한국에 있는 친척이 초청하는 형식으로 한국에 입국한다. 자리를 잡은 후에는 옌볜 현지에 있는 일가친척을 다시 한국으로 초청하고 있다. 결혼이민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조선족도 3만8000명가량이다.
▲ 옌볜 조선족 자치주장 조선족 리룽시(왼쪽)와 당서기 한족 덩카이(오른쪽).
[출처] 중국의 소수민족 ⑨ 차오시엔족(朝鮮族·조선족) (에너제로하우스) |작성자 준쓰
원래 우리나라사람 = 같은 민족 이란 얘깁니다.
민족끼리 어쩌구 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으나... 이방인으로만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다?
아니면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