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세력의 5.18 왜곡에 대한 반박

coimbra 작성일 12.05.18 18: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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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세력의 왜곡과 그에 대한 반박을 담았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읽어보십시오.


1. 5.18은 김대중 정권때부터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5.18은 88년에 가동된「민주화합추진위원회」를 거치면서 노태우 정부 때 처음「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공식 인정 받았다.
◆ 이후 1993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5.13 담화, 1995년 12월 5.18 특별법 제정, 1997년 4월 12.12 5.18 사건 신군부 유죄판결 확정, 1997년 5월 정부의 5·18민주화운동기념일 제정을 통해 민주화운동이란 평가가 확고해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38896

 

2. 5.18 최초 사망자는 20일 저녁 사망한 경찰이다.

◆ 5.18 최초 사망자는 19일 새벽 사망한 청각장애인 김경철이다.

◆ 5월 18일 희생된 김경철씨는 공수부대에 의한 대표적인 과격진압 사례였다. 청각장애로 인해 말까지 할 수 없었던 김씨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공수부대의 눈에 띄어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그는 광주 적십자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뇌출혈로 이튿날 새벽 결국 사망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05981

◆김경철씨 사망자 조서
http://i45.tinypic.com/w2bl95.jpg

◆20일 김경철 이외에도 김안부(19일 밤), 김기현(21일 오전) 등의 희생자가 발생.

 

3. 광주시민이 계엄군에 먼저 발포했다.

◆1995년 검찰, 2007년 국방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계엄군이 먼저 여러 차례 발포했다.


◆(1995년 7월 검찰발표) 광주에서의 최초 발포는 5월 19일 오후 5시께 광주고 부근에서 있었던 바 (중략) 20일 밤11시께 3공수여단이 광주역 일대에서 3공수여단장은 경계용 실탄을 예하대대에 전달하고 대대장은 이를 장교 위주로 분배해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발포했으며 (중략) 21일 다시 전남대 앞에서 장갑차, 경찰가스차 등 시위대의 차량돌진 공격에 대응해 발포한 것으로 (중략) 시위대가 무기탈취에 나선 것은 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발포가 있은 후로 시위대는 광주 인근지역으로 진출, 화순,나주 등 지방의 지.파출소와 화순광업소, 한국화약 등 방위산업체 등에서 대량의 무기와 실탄을 탈취했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02648

◆(2007년 7월 국방부 과거사위) 최세창 제3공수여단장은 각 대대에 M16소총 실탄을 배부해 장착토록 지시했다. 당시 광주역에 투입됐던 이모 하사는 과거사위와의 면담에서 "지원 병력을 막아선 시위대를 향해 발포가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오후 1시경 비극의 전남도청 앞 발포가 자행됐다. 계엄군이 시위대에 밀리자 공수부대 중대장 이상 및 일부 하사관들에게 실탄이 분배됐고, 시위대가 밀고 들어는 장갑차에 11공수여단 무전병이 사망하자 집중 사격이 시작됐다. 당시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계엄군 중 일부는 위협사격을 가했지만 일부는 조준사격을 했고, 특히 인근 광주관광호텔 옥상 등 주변 건물에 저격병이 배치돼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다. 이에 대해 일부 공수부대원들은 "공수부대의 발포가 있기 전에 시민들 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다"고 진술했으나, 과거사위는 "계엄군 사상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총상에 의한 부상자나 사망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0034698 

 

4. 5.18 당시 시위대원이 장갑차를 조종했는데, 일반인이 어떻게 장갑차 조종을 할 수 있나?

◆광주 시민이 조종했던 장갑차는 KM900(CM6614)이다. KM900은 궤도장갑차가 아니라 차륜식장갑차이며, 핸들이 달려있어 조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또한 당시 버스기사, 트럭기사도 시위에 많이 참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광주 시민의 KM900 장갑차 운전이 불가능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5. 5.18 당시 광주교도소가 습격당했는데?

◆광주교도소는 광주-담양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사이에 있으며, 도로 옆에 바로 붙어있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에 배치된 계엄군에 광주 외곽을 봉쇄하여 폭도의 외곽진출을 절대로 허용하지 말라는 2군사령부 지침이 내려왔다. 제3공수여단은 광주교도소를 주둔지로 삼아, 광주-담양 국도와 호남고속도로의 통행을 봉쇄했다. 제3공수여단은 교도소에서 500m~1km 떨어진 도로에 바리케이드 설치하고, 광주 외각으로 나가려는 차량에 발포했다.
http://i50.tinypic.com/2ms2h3d.jpg (가운데 운동장이 보이는 건물이 광주교도소)

◆(광주교도소장 한도희) 시민군이 80년 당시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는 계엄사의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 시민군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면 교도소 주변에 시체가 있어야지 어떻게 도로에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시 교도소에는 3공수여단 병력이 중무장하고 있어서 교도소 습격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계엄군이 시 인근 지역의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무차별 발포한 것으로 알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64241

◆(1995년 12월 검찰 현장조사 결과) 광주교도소는 광주~담양 간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사이에 위치, 시외곽으로 빠져나가려던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다수의 교전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와 무관한 시민들이 도로를 지나다 매복병사들로부터 사격을 받았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22900329101009&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5-12-29&officeId=00032&pageNo=1&printNo=15638&publishType=00010

◆(2007년 7월 국방부 과거사위) 외곽도로 봉쇄작전 중 계엄군의 발포로 인해 가족과 함께 광주교도소 앞을 통과하던 차량, 아이들과 함께 광주를 떠나던 사람, 계엄군 주둔지역의 마을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12.12 5.17 5.18 보고서 100쪽>

 

6. 꼭꼭 숨겨져 있던 38개 무기고에서 어떻게 무기를 탈취할 수 있었나?

◆90년대 초 예비군 무기를 군부대로 이관하는 사업이 추진될 때까지 향방 무기는 경찰서, 파출서에서, 직장 무기는 직장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남 지역 예비군 무기고가 200여개 넘게 있었다.

 

7.시위대가 쓰던 카빈에 맞은 사망자가 계엄군이 쓰던 M16에 맞은 사망자보다 많다?

◆제5공화국의 국방부는 총상에 의한 사망자 중 88명이 폭도 자신들의 난동으로 죽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제5공화국 국방부는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현존하는 5.18 사망자에 대한 검시자료는 보안사가 작성한 '광주사태 검시참여보고', 광주지검이 작성한 '5.18관련 사망자 검시 내용' , 광주시청에서 작성한 '광주소요사태 사망자 조서'로 3가지가 있다. 카빈 사망자만을 따져보자면, 보안사 검시 자료는 카빈 사망자 21명, 광주지검의 검시 자료는 26명, 광주시청 검시 자료는 12명이다. 세 자료에서 모두 카빈에 의한 총상으로 인정 된 사람은 8명이다.

1.보안사 검시자료 -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12.12 5.17 5.18 사건 조사결과보고서 중 참고자료 부분 2. 광주시청 검시자료 - 국가기록원
3. 광주지검 검시자료 - 광주광역시 5.18 민주화운동자료총서 20권

 

8.1991년 윤기권의 월북은 북한이 배후조종했다는 근거다. (화려한 휴가의 주인공이 월북했다고 왜곡하기도 함)

◆윤기권은 1962년 전북 정읍 출신으로, 1980년 광주 대동고등학교 학생이었다. 5.18의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1991년 3월 월북했다.
◆윤기권은 5.18 당시 신원이 확실한 고등학생이었으므로 북한이 파견한 간첩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 대단한 역할을 맡은 것도 아니다. 5.18 주역들의 대량 월북도 아니고, 단 한명이 월북했다고 5.18 전체를 매도할 수도 없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zb41pl7/bbs/view.php?id=ja_05&no=290
http://altair.chonnam.ac.kr/~cnu518/zb41pl7/bbs/view.php?id=ja_05&no=289

 

9. 북한이 5.18을 광주인민봉기라고 부르고, 매년 5.18 기념식을 여는게 의심스럽다.

◆북한은 5.18민주화운동 뿐만 아니라 4.19혁명(남조선인민봉기), 6.3항쟁(남조선청년학생봉기), 6월항쟁(6월 인민항쟁), 부마항쟁(10월 민주항쟁) 등 남한의 주요 민주화운동을 모두 기념한다.(괄호 안은 북한에서 부르는 명칭)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운동을 반미투쟁이라고 왜곡하여 북한 주민에 대한 선전수단으로 삼을 뿐이다.  북한에 있을 때 5.18 민주화운동 등 남한의 민주화운동을 반미투쟁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야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http://www.rfa.org/korean/in_focus/nk_518-05182009134816.html

 

10. 5.18 북한군 특부수대 개입설을 주장했던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의 증언 신빙성이 있는가?

◆5.18 당시 광주에 침투했다는 북한군의 숫자, 침투경로, 퇴각경로, 귀환인원이 매번 달라지고 일관성이 없다.

◆임천용은 2006년 8월 한국논단과 인터뷰에서 서해안 쪽으로 450명이 침투하고, 3분의 1이 귀환했다고 말했다. 특히 한 무리는 군복을 입고 계엄군 쪽에 침투하고, 절반쯤은 시민군 쪽에서 활동했다고 말했다.
◆2006년 12월 기자회견에서는 1개 대대가 침투해서, 3분의 2가 귀환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008년 임천용은 뉴스한국과 인터뷰에서 서해안과 동해한으로 각각 1개 대대씩 침투해서 절반이 귀환했다고 말했다.
(참고: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는 300명으로 구성됨)

1. 한국논단 인터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8300
2. 2006년 기자회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19&aid=0000017557

3. 뉴스한국 인터뷰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k2007021120301185542

 

11. 탈북자 단체의 5.18 증언집 '5.18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는 신빙성이 있나?
◆북한에 있을 때 5.18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봤다는 증언이 이 책의 포인트.
◆북한에서 5.18 당시 광주 상황을 TV를 통해 생중계로 봤다는 주장./1980년 당시 기술로 송신소, 중계소 하나없이 광주에서 수 백km 떨어진 평양에 생중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자만 골라 도끼, 칼로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을 보았다는 주장./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한 여자는 11명에 불과하며, 모두 M16 총에 맞아 사망했다.
◆전기톱으로 머리를 갈라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을 보았다는 주장./머리가 전기톱에 갈려 죽은 사람에 대한 검시기록은 없다. 머리에 총상을 입어 사망한 시신 사진을 왜곡한 것이다.

 

12.5.18 당시 북한군이 활동했다는 것은 북한 사람, 탈북자 사이에서 상식이다?

◆인민군 출신 탈북자 단체인 탈북군인협회 회장은 5.18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는 자유북한군인연합에 대해 "탈북군인협회와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일하는 방법이 달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 특히 보여주기 사업, 이벤트성 사업 등은 지양해야 한다. ‘북한 보급창고 등을 까고 나오자’ 식의 선동적이고 과격한 활동이나 ‘5?18 광주에 북한특수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주장 등도 현실과 맞지 않다."고 비판한 바 있다.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6100&num=5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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