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전멸전

신지현 작성일 12.07.14 14: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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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고, 수많은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산화했다.


양측 군대가 충돌할 때 필연적으로 사상자는 발생했고,


이 경우가 심각하여 한쪽 군세가 심각하게 박살나는 경우를 <전멸>이라고 부른다.


보통 전멸이라고 하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싸그리 사망 또는 중상을 입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나,


군사학적 용어로는 전멸은 전원 옥쇄를 뜻하는 말이 아님.


군대의 전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전투를 속행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는 것> 또는 <전투 능력을 대부분 상실한 상태>라는 뜻.


보통의 경우 병사들의 30%가 사망한 경우, 이를 전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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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30%가 사망한 경우, 나머지 70% 역시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 (중상 or 패주)


따라서 고대에서 30%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경우, 그 전투는 혈투 또는 대전, 전멸전이라고 부른다.


여담으로 압도적인 규모의 군대가 침략을 들어갔을 때, 공격측 군세의 3%가 사망해도 이미 공격측에서는 전의를 상실한다는 말이 있다.


즉, 상당한 차이가 나는 전투임에도 아군이 3% 이상이 사망한 경우,


공격측 병사들 마음속에 "ㅅㅂ 우리가 존나 압도적인데 이렇게 죽어가면서까지 계속 쳐들어갈 필요가 있나?"


는 심리상태가 조성된다는 뜻이다.


소수의 저항군들은 전원 전사를 각오하고 싸우는 면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즉, 거대한 공격측 군세의 3~10%만 사망하더라도, 공격측 지휘부에선 이를 전멸 또는 궤멸로 간주하고 군을 물리는 경우가 많다.

각설하고,


역사상 있었던 전투 중에서 한쪽 군세가 전멸 상태에 이르렀던 처참한 전투들을 시간 순서대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함.


위에서 말한 대로 30%가 사망한 전투는 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우리들이 흔히 아는 완전 전멸 또는 그 지경까지 이르렀던 유명한 고대 전투들의 개요와 사망 현황만

뽑아서 다루도록 하겠음.


해전이나 공중전, 또는 민간인 대학살 등까지 포함하면 너무 이야기가 방대해지므로


고대부터 있었던 <육상전에서의 전멸전>만을 뽑아서 소개하도록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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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르모필레 전투 (기원전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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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00>으로 알려진 너무나도 유명한 전투.


그리스 연합군과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가 별였던 전투임.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황제의 군세 : 15만 ~ 20만. 수송 병력까지 합치면 대충 30만


그리스 연합군 :


레오니다스 왕의 스파르타 군 1300(정예 근위대 300 + 자유 스파르타 외부 시민병 1000)

펠로폰네소스 동맹 보병 3000

아카디아, 테살리 연합군 3000

헬롯 노예병 900


합계 대략 8000.

 


3일 동안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버티다가 후방이 뚫리면서 그리스 군 전원이 몰살당할 위기에 빠짐.


이에 레오니다스의 스파르타 군 300 + 테스피아 군인 700 + 테베 군인 400  이 후위에 남아 버티다가 전원 전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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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군 전사자 : 약 2만.
그리스 군 전사자 : 1500~ 2000명.

 

 

 

2. 플라타이아이 전투 (기원전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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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서술한 테르모필레 전투 이후에 벌어진 그리스 vs 페르시아 군의 전투


페르시아 군 : 12만 ~ 15만


그리스 군 : 스파르타 중보병 10000 + 아테네 중보병 8000 + 고른토스 중보병 5000 등 중보병 38700명 . 경보병 3만. 합계 7만


양측 병력의 무장 차이로 인해 벌어진 압도적인 전투였다고 한다.


페르시아 군 병력 4만을 제외한 나머지 군세가 모조리 전사 또는 패주.


그리스 군은 약 1천명 정도가 전사하였다.

 


 

 

 

3. 이소스 전투 (기원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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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정복왕 알렉산드로스 3세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황제의 군세가 맞붙은 전투.


페르시아 군 : 이모탈 10000 + 그리스 용병 10000 + 기병 11000 + 경보병 69000. 합계 약 10만


마케도니아 군 : 마케도니아 중보병 22000 + 경보병 13000 + 기병 5800. 합계 약 4만


알렉산더의 망치와 모루 전술이 절묘하게 적중하면서 페르시아군 대패.


페르시아 군 생존자는 약 4000명. 그 외는 모두 전사하거나 패주함.

 

 

 

 

 

 

 

4. 가우가멜라 전투 (기원전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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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알렉산드로스 3세와 다리우스가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벌인 대회전.


페르시아 군 : 이모탈 10000 + 그리스 용병 8000 + 기병 12000 + 전차 200대 + 페르시아 궁병 3000 + 징집병 약 8만.

 합계 12만.


마케도니아 군 : 그리스 중보병 31000 + 그리스 용병 9000 + 기병 7000


이 역시 마찬가지로 알렉산더의 전술적 승리가 빛난 대전투.


회전에 참여한 페르시아 정규군들이 싸그리 궤멸당했고 징집병들 역시 상당수가 전사 또는 패주.


마케도니아 군의 전사자는 약 4000 정도였다고 한다.

 

 

 

 

 

 

 

 

 

5. 장평대전 (기원전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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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출토된 유골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와 조나라 간에 펼쳐진 대전투...라기 보다는 대학살.


초반부에 조나라의 사령관이 조괄이 돌격하다가 전사하고, 보급로가 차단당하는 바람에 조나라 군대는 전원 항복.


진나라는 이 포로들을 모조리 생매장시켜 죽였다고 한다.


조나라 군대 사망자 : 30만 전원 사망

 

 

 

 

 

 

 

6. 칸나이 전투 (기원전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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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최대의 전투이자 승리.


트레비아 전투와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에서 대패한 로마군이 지구전으로 시간을 뜬 뒤,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과 벌인 한판 전투.


로마 군세 : 8개 군단. 보병 80000 + 기병 6400


카르타고 군세 : 카르타고 및 갈리아 용병 혼성 보병대 40000 + 누미디아 포함 기병대 10000

 

알렉산더의 망치와 모루 전술을 한니발이 발전, 완성시킨 초승달 진형 + 양익 포위 섬멸전이 멋지게 맞아떨어진 대전투.

 

로마군 보병 47000명 전사, 기병 2000명 전사, 포로 20000.


카르타고 군 8000명 전사(대부분 갈리아 용병)

 

리비우스라는 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일방적인 학살 수준이었고, 로마군 몇몇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머리를 땅에 파묻어 자살했다.


파울리의 기록에 의하면 1분당 600명. 즉 1초에 10명의 로마군이 사망했다고 한다.

 

 

 

 

 

 

 

 


7. 자마 전투 (기원전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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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서술한 칸나이 전투의 영웅 한니발과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가 자마 평원에서 벌인

2차 포에니 전쟁 최후의 전투.

 

양국 최고의 명장들이 벌인 한판 승부로 승자는 로마군이었다.

 

카르타고 군세 :

한니발의 정예 보병 15000 + 켈트족 용병대 14000 + 리비아, 카르타고 시민병 14000 + 시민 기병 2000 + 누미디아 기병 2000 + 코끼리 80마리


로마군 군세 : 4개 군단. 보병 23000 + 기병 2500 / 누미디아 왕 동맹군 보병 6000 + 기병 4000

 

한니발의 코끼리부대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스키피오의 우세한 기병 전력 + 역포위 전술로 카르타고군이 무너지고 말았다.

 

카르타고 군 20000명 전사.(대부분이 한니발의 정예 부대원) + 포로 및 부상자 20000.


로마 군 1500명 전사. 3500명 부상.

 

 

 

 

 

 

 


8. 파르살루스 전투 (기원전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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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두 영웅.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벌인 대전투.


이 한판 승부에서 카이사르가 승리하면서 로마 권력을 한 손에 잡게 된다.

 

카이사르 군세 : 로마 중보병 22000 + 기병 1000

 

폼페이우스 군세 : 로마 중보병 45000 + 기병 7000

 

폼페이우스가 압도적인 기병 전력을 이용해 망치와 모루 전술을 시전했지만, 카이사르의 정예 보병대 2000명이 이를 막아내며 작전 실패.


반대로 카이사르의 기병대가 측면 돌파 및 포위에 성공하면서 전세가 역전당했다.

 

카이사르 군 200명 전사


폼페이우스 군 6000명 전사 + 포로 24000명

 

 

 

 

 

 

 

 

9. 토이토부르크 숲의 전투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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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정복에 나선 바루스의 정예 로마군과 게르만 병사들이 벌인 전투.


이 전투에서 아르미니우스(헤르만)이 이끄는 게르만 병사들이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 로마의 갈리아 지배는 물건너가게 된다


토이토부르그 숲에 매복한 게르만 병사들의 급습에 로마군단 대패.

 

로마군 3개 군단 20000명 + 종군 민간인 10000명 사망, 로마 군단의 상징 독수리 깃발 3개 상실


아우구스투스가 이 소식을 듣고, "바루스! 내 군단을 돌려다오!" 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10. 관도대전 (2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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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군웅이었던 원소와 조조가 벌인 대전.


이 전투에서 조조가 승리하면서 원소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패망하고 하북의 세력은 조조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삼국지 연의에 의하면 원소군 70만 vs 조조군 7만이라고 하나, 구라고.


실제로는 약 10만 vs 1만의 전투였다고 역사가들은 본다.


조조군이 원소군의 보급기지인 오소를 공략하는데 성공하면서 원소군은 혼란에 빠졌고, 이를 조조군이 급습하면서 대패.

 

원소군 : 병사 800명을 제외한 나머지 군세가 전사 or 패주

 

 

 

 

 

 

11. 이릉대전 (2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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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나라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대대적으로 오나라를 침공했다가 육손의 화계에 말려 대패한 전투.


촉나라 군세 : 유비군 보병 37000 + 기병 3000 + 황권의 군세 10000 + 무릉 만족병 30000. 합계 약 8만


오나라 군세 : 육손군 약 50000.


이 전투에서 유비군은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고, 318명이나 되는 장수들이

오나라에 투항 또는 전사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만다.


이 패배로 유비군의 차세대 유망주나 신진 장수들이 대거 리타이어 당하면서 촉나라는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12. 카탈라우눔 전투 (4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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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최후의 자존심을 살린 전투. 전 유럽을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훈족의 아틸라 군을 대격파한 전투이다.


서로마 제국의 장군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이끄는 서로마 - 게르만 연합군이 훈족을 격파.


초반 기세넘치게 돌격하던 훈족의 후미를 절묘하게 타격해서 포위 섬멸을 이끌어 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훈족은 약 15000명이 전사하였고, 아틸라는 장작을 쌓아 놓고

자살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도망치는데 성공했음.

 

 

 

 

 

 

 

 

13. 살수대첩 (6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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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고-수 전쟁 당시, 수나라의 우중문이 이끄는 별동대를 을지문덕이 대파한 전투.


알려진 것과 달리, 고구려군이 수공을 썼다는 근거는 희박.


수나라군이 살수를 건너는 순간, 고구려군이 맹공을 가했고, 강을 도하하느라 병력 절반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있던 수나라군이 혼란에 빠져 패주.


선두가 붕괴하자, 후방을 따르던 군세가 대열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고구려군의 급습으로 전멸했다.

 

수나라 별동대 30만 중, 생존자는 2700. 나머지는 모두 전사, 패주, 포로


특히 수나라 장군 신세웅이 후위를 맡아 지휘했던 8군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전멸했다.

 

 

 

 

 

 

14. 까디시야 전투 (6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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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칼리파 휘하의 아랍 군대 vs 로스템 페로흐자드가 이끄는 사산 왕조 이란 군대가 벌인 대혈투.


이 전투로 지금의 이라크 일대가 이란의 손에서 아랍의 손으로 넘어간다

 

아랍 군세 : 25000~30000. 경무장 기병대와 체인 메일로 무장한 중무장 보병대가 주를 이루었음. 로마와의 전투로 단련된 베테랑 병사들.


이란 군세 : 40000~200000.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대략 10만 안팎으로 추정.

                상당수의 저질 징집병 + 정예 카타프락토이 기병대 + 유목 궁병대 + 코끼리 부대

 

 

4일 동안 밤낮으로 양측 군대가 싸워 서로 지친 상태에서


아랍의 장군 까까 븐 아므르가 기병대를 이끌고 이란 군대의 좌익을 급습.

이때 절묘하게 모래 폭풍이 몰아치며 이란군은 혼란에 빠지고,


아랍 기병대가 이란군의 중앙부를 돌파하면서 이란의 총사령관인 로스템이 전사.


이에 이란 병사들이 공황상태에 빠지며 퇴각하다가 궤멸당함.


이란 군의 절반 이상인 50000명 가까이가 전사했다고 한다

 

 

 

 

 

 

 

 

15. 황산벌 전투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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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너무나도 유명한 전멸전.


백제 멸망 직전에 황산벌에서 벌어진 계백의 군대와 김유신 군대의 전투.


5만의 신라군과 맞서 싸운 계백의 결사대 5000명이 전멸하였다.

 

 

 

 

 

 

 

 

 

 


16. 탈라스 전투 (7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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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탈라스 강 근처에서 벌어진 당나라 -  티베트 연합군 vs 이슬람의 압바스 - 카르룩 연합군간의 전투.


전투 도중 당나라 소속이었던 카르룩 유목민족이 배신 통수를 치면서 당나라 군대의 대패.


당나라 3만의 군대가 이슬람 압바스 왕조의 이슬람군 30만과 맞서 싸운 전투였다.


약 2달간 싸운 끝에, 당나라 군대 2만이 사망하고,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입고 퇴각.


포로들 중 당나라 제지공이 있어서 차이니스 특산품인 <종이>가 서방으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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