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선 인터뷰 "가난이 왜 부끄러워요?"
달동네 소년은 철봉에 매달려 하늘을 바라봤다.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파란 하늘. 10년의 세월이 흘러 소년의 작은 꿈은 마침내 그 하늘에 닿았다. 그리고 소년의 이야기는 ‘민들레 꽃씨’가 되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퍼지고 있다. ‘건전한 젊은이 상’과 ‘효자의 아이콘’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양학선(20·한체대). 10일(한국시간) 런던 올림픽선수촌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 꼭 되돌려주고 싶은 ‘과분한 사랑’
- 대한체조협회 포상금(1억원), SM그룹의 2억 짜리 아파트에 이어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5억원의 격려금을 준다고 하던데….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인터넷에 제 이름 치고 검색해봐요. 너무 좋은 일이죠. 1억도 엄청 큰 돈인데 5억이나 도와주신다니…. 실감이 안나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감사해요.”
- 평생 지원하겠다는 ‘너구리’ 라면도 화제더군요.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던데….
“사실 어머니(기숙향 씨·43)는 다른 라면을 더 좋아하시는데, 제가 ‘너구리’만 먹으니까 종종 끓여주시거든요. 라면이 이렇게 이슈가 돼서 놀랐어요. 주변에서 ‘라면 먹으면 운동 잘 못할 거다’고 하시는데, 매일 밥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라면 먹고도 잘 하면 되죠.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도와주시는 마음이 다 감사한 일이에요.”
- 팬들은 양학선 선수가 ‘너구리’ 라면 CF를 하면 좋을 것 같다던데….
“CF야 기회가 된다면…. 그런데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 훈련비를 모아 부모님께 드렸다는 얘기 등으로 효자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아요.
“에이…. 어느 자식이라도 부모님께 저처럼 했을 거예요. 결과가 잘 나와서 제게 눈길이 쏠리는 거겠죠.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어느 집에서 저보다 더 가난하게 생활하면서 꿈을 키우는 선수들이 있을 거예요. 사실 저희 집도 비닐하우스에서 산 지 2년 됐는데, 이제야 알려진 거잖아요. 제가 그 선수들 마음 누구보다 잘 알죠. 제게 큰 사랑을 주신만큼, 꼭 그런 선수들을 돕고 싶습니다.”
● 가난이 왜 부끄러워요?
- 부모님께서는 ‘이런 데 사는 게 아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시더라고요.
“부모님이라면 다 그러실 것도 같아요. 하지만 전 한번도 저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어요. 제가 광주체고를 다닐 때에요. 미장일을 하시는 아버지(양관권 씨·53)께서 학교 기숙사 공사장에서 일하셨거든요. 체육관에 가다보면 멀리서 아버지가 보이곤 했어요. 그 때마다 아버지께 달려가서 반갑게 인사하고 그랬는걸요. 부모님이 창피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요. 왜 그걸 부끄러워해야 하나요? 부모님이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데요. 가난해도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열심히만 하면 그 대가는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믿어요. ‘가난해서 뭘 못했다’, 이런 말은 핑계가 아닐까요? 부모님은 제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물려주신 분들이에요. 돈 많아도 안 좋은 분들도 많잖아요.”
- 어떤 것을 물려주셨나요?
“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거짓말 하지 마라. 남 등쳐먹는 것 아니다.’ 그래서 항상 정직하게 운동해왔고, 그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 가르침대로 살아야죠. 또 좋은 몸도 물려주셨잖아요. 아버지께서 지금은 마르셨는데요. 젊으셨을 때는 근육도 많고, 날렵하셨대요. 태권도도 잘 하셨다고 하고…. 순발력은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같아요. 어머니는 지금은 살이 좀 찌셨지만…. 저도 런던 오기 직전에 알았는데요. 어머니께서 어릴 적에 육상을 하셨대요. 도마 종목 하려면 도움닫기도 중요하잖아요. 달리는 능력은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것 같아요. 감사해요.”
● 힘들 때마다 떠오른 어머니의 눈물
- 부모님은 아들이 방황한 적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출도 하고.
“중3 겨울방학 때였어요. 운동이 너무 힘드니까, 운동 안하는 친구들이 부럽더라고요. 그 추운 날씨에도 집 나가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어느 기사 보니까 포항에서 잡혀왔다고 나오던데, 잡혀온 건 아니고요. 경북 구미에서 선배 집에 있다가 제 발로 돌아왔어요.”
- 그 때 부모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어머니께서 ‘그렇게 힘들었느냐?’며 오히려 저를 다독여주셨어요. 펑펑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해요. 주름도 그 때 더 많이 생긴 것 같아 죄송해요. 저라고 운동하면서 왜 힘든 때가 없었겠어요. 그 때마다 저를 위해 우시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나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 지금의 양학선이 그 때의 자신에게 한마디를 해준다면?
“재능은 있는데 저처럼 삐딱하게 나가려고 하는 후배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지금 그만두면 그간의 노력이 다 날아가잖아. 끝까지 꿈을 꿔보자’라고요.”
● 먼 미래의 꿈은 교수
- 달동네에 살던 시절의 양학선은 어땠나요?
“그 때는 딱지치기를 참 많이 했는데…. 동네 애들 것 다 따와서, 딱지만큼은 제가 부자였어요. 지는 게 싫어서 손이 바닥에 쓸릴 정도로 딱지를 쳤어요. 어릴 때도 자존심이나 강단은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어떤 친구가 ‘피부도 까맣다’며 저를 계속 놀리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얼굴로 주먹이 날아갔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을 시작한 뒤로는 화나는 일이 있어도 한번 더 생각해요. 부모님 얼굴도 떠올리고….”
- 언제 체조에 재능이 있다고 느꼈나요?
“처음에는 그냥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철봉에서 놀았어요. 트램폴린도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남들보다 체조 기술을 빨리 배우긴 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올라갈 때였어요. 쓰카하라 더블(손 짚고 옆 돌아 몸을 펴고 두 바퀴 비틀기. 양학선이 금메달을 딸 때 구사한 쓰카하라 트리플보다 한 바퀴 덜 도는 기술)을 시도해봤는데 되더라고요.”(대한체조협회 김대원 전무이사는 “당시 쓰카하라 더블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쓰던 기술이다. 양학선이 어린 나이에 그 기술을 시도했다면, ‘도마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며 감탄했다)
- 앞으로는 어떤 꿈이 있나요?
“일단 4년 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에 도전하려고요. 채점 규정이 바뀌는 것을 봐서 신기술도 만들어야 하고요. 먼 훗날에는 한체대에서 교수를 하는 게 꿈입니다. 제 전문분야가 체조니까, 체조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싶어요. 운동 대신 공부만 하라면, 잘 할 자신 있는데…. 살면서 아쉬웠던 적은 있지만, 한번도 절망한 적은 없었거든요. 어떤 분들이 ‘큰 관심이 앞으로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고 하시는데,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제가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부모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예의바르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