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하위키] 재일동포(在日同胞) 그리고 '재일 한국인'(在日韓國人)

띵성이 작성일 12.11.06 10: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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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위키백과의 '재일한국인'에 대한 서술.

Contents

1 재일 한국인이란? 2 일본에서의 시각 3 재일교포의 역사 4 재일 동포의 규모 5 관련용어/항목 5.1 양대 단체 5.2 관련 항목 5.3 유명한 인물 & 엔하위키에 등록된 인물 5.3.1 정치인 5.3.2 기업인 5.3.3 작가 5.3.4 학자 5.3.5 배우 & 성우 & 영화인 5.3.6 음악가 & 가수 5.3.7 만화가 5.3.8 스포츠 선수 5.3.9 범죄자 & 야쿠자 5.3.10 기타 5.4 재일교포에 대해서 다룬 미디어 6 같이보기


 

1 재일 한국인이란?

대한 독립 이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들과 그 자손, 그리고 독립 후 일본에 이민 간 한국인을 일컫는 말. 재일 조선인, 재일동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법적으로 교포의 기준은 해당 국가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이다. 그 나라에서 태어난 2세 이하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주해서 10여년 넘게 체류하여 영주권을 취득하면 한국에서는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해외교포로 등록되게 되어있다. 단, 재일교포는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일본 내 선거권이 없다. 영주권자도 엄연한 외국인이므로 '시민권'의 일부인 참정권을 갖는다는 것이 당연히 불가능하다. 참정권을 갖고 싶으면 귀화하거나, 정 일본인이 되기 싫으면 살던 터전을 다 버리고 조상의 나라로 귀국하는 수 밖에 없다. 귀화하지 않은 재일 한국인의 참정권에 대한 논란은 언제나 첨예한 대립을 이끌어내고 있다. [1]
일본에서 제일 많은 수를 차지하는 소수민족 재일 외국인 중에 가장 숫자가 많은 부류로 알려졌지만 사실 재일 중국인이 더 많다.화교 빠와

2 일본에서의 시각

일본인들은 앞뒤 다 자르고 재일(在日, 자이니치)이라고 부른다. 다른 외국인들에겐 "재일" 뒤에 해당 국가명을 붙이지만 그냥 "재일"은 한국계/조선계 일본인의 대명사로 굳어져 있다. 이는 재일'한국인'으로 할지, 재일 '조선인'[2]으로 할지 애매하기 때문. 민단계 위성채널인 'KNTV'의 앵커는 '자이니치 코리안'이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자이니치'(재일)의 뉘앙스는 다소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재일이라는 표현을 쓰는 일본인은 우선 경계하는 편이 좋다. 이들의 태도는 한국 내에서 "조선족" 출신 입국자를 바라보는 시각과 거의 흡사하다. 조선인을 깔보는 태도는 한일합방 때부터 이어져 온 데다가, 이 후 한국 경제가 나아졌어도 오히려 일본 경기침체가 침체해가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사실 재일이 아니라 일본어 이름을 얻고 귀화한 한국인도 까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정도면 인종차별수준. 우익들의 주장 중에서도 소위 유태자본론을 연상케 만드는 음모론이 섞여서 아예 재일한국인이 일본을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 겸 전투종족으로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재일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혐한들에게 뒤에서 조작질 한다는 의혹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덴츠, 소프트뱅크, 롯데. 하지만 이런 기업들은 회장이 한국계일 뿐이지 기업의 대부분을 일본인이 운영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 병크. 그렇게 힘이 쎄면 왜 차별받고 살겠냐? 일본인들 (특히 극우들)은 그냥 일본에서 사는 한국인이면 모조리 재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이 논리로 유학생이나 파견나온 회사원들도 영주권도 없는데 순식간에 재일교포가 될수 있다. 넷 우익의 활동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재일 조선인"문서 찾아보면 주로 "재일 조선인의 범죄행위 등" 위주로 매우 부정적인 형식으로 서술한게 많다. 2ch을 비롯한 넷우익에서 주도한것으로 추측. 사실 재일 조선인의 범죄행위가 심하지는 않다. 인구수가 많다 보니까 많아 보일뿐이지. 비율로 따지면 당연히 가장 많은 일본인과 재일 중국인이 더 심하다. 사실 일본인들은 다른 외국인들도 많이 싫어하는 편이다. 오죽하면 일본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중 하나로 꼽힐정도.

3 재일교포의 역사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에 건너간 폐망한 백제의 유민들이 최초의 재일교포로 볼 수 있으며, 그 후 왜놈들의 해적질, 특히 임진왜란 때 잡혀단 조선인들도 재일교포로 볼 수 있겠으나 이미 남아 있는 자손들은 거의 다 귀화했다. 따라서 본격적인 재일교포의 시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간 강제노동인력이 해당한다. (당시 일본의 학정 때문에)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기도 하고, 중국과 만주에서 벌이는 전쟁, 그리고 나중에는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강제로 일꾼들을 징발해 갔었다. 물론 어느 정도 부유한 친일파 지주 집안 자식들은 유학 등의 목적으로 일본에 체류하기도 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 민간인(자경단)과 군경에 의하여 무차별적으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학살을 벌여 상당수의 조선인들이 희생되었다. [3][4] 이미 이 당시에 상당히 많은 수의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그들에 대한 취급이 어땠는지 이를 보아 짐작할 수 있다.
1929년에 미국 증권시장의 증시가격이 폭락하면서 시작된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조선의 경기가 더욱 나빠지자 일본에 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사람은 한층 더 증가하여, 1930년대 전반에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다 중일전쟁제2차 세계대전 등이 터지면서, 전쟁 말기 전시상황에서 구 일본군의 전방전선 및 일본 영토내로 강제 징용으로 뽑혀나가는 조선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도 많은 조선인들이 군수공장에서 일했었는데, 이때 원자폭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외에도 홋카이도,사할린등 석탄 다산지에서의 석탄 강제노동으로 끌려간 조선인도 숱하다. [5] 오늘날, 이들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에 대해서는 일본정부나 한국정부나 양측에서 전혀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해방후 일본에 체류하던 조선인 중 상당수는 한반도로 돌아갔지만, 생계나 정치적인 문제, 불안한 한반도의 정치상황때문에 잔류한 숫자도 많았고 이들이 사실상 재일교포 1세대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의 혼란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재일교포 사회에서도 북한을 지지하거나 남한을 지지하는 쪽으로 갈라서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재일교포 양대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이하 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가 발족되기 시작한다. 또한 이 시기에는 4.3 사건의 참화를 피하기 위한 제주도출신의 한국인이 대거 일본에 입항하고[6], 한국전쟁의 참화를 피하기 위해서 건너온 이들도 많았다.
해방과 전쟁 이후를 거친뒤로, 일본에 잔류한 재일교포들은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각종 사회적 차별에 여전히 시달려야 했다. 또한 남북간의 반목이 민단 vs 조총련이라는 형태로 재일교포 사회에서도 나타났었고, 이들은 서로 헐뜯기 바빴다. 그 와중에도 이 두 단체가 화해하려는 시도가 없는건 아니었지만, 대개 좌절로 돌아갔다.[7]
그 와중에, 1959년부터 1962년까지 3년 남짓한 기간 사이 일본 정부는 북한과 협의하여 자국에 있는 다수의 재일 조선인을 배에 태워 북으로 돌려보낸다. 형식적으로는 희망자에 한하는 것이었고 같이 결혼한 일본인 가족까지 함께 태워보내는 형식이었으나 내막을 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일본과 북한은 서로 win-win 거래를 한 셈이지만, 멋모르고 북한행 배에 탑승했던 9만명의 재일조선인과 1800여명의 일본인들의 운명은...[8][9]안습. 아무튼 이 과정에서 재일 조선인, 특히 조총련계의 반수 이상이 일본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결국, 북한에만 득이 되었고, 일본 내 조총련계 재일한국인들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때문에, 일본 내부에서는 조총련빨갱이 공작원, 민단파시스트 깡패라는 악명을 얻기도 했다. 이 항목 초반에도 잠시 나와있듯, 민단의 구성원 중 상당부분이 무직인데다가, 이 항목 끝에 서술되어 있는 재일한국인 중 민단계의 거물 상당수가 실제로 야쿠자라는 점, 그리고 심지어 그 야쿠자들이 한국정부로부터 민단 건설 및 교포사회 확립에 대한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다는 점[10] 에서 이런 오명을 얻은 흑역사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조총련계는 일본 내 민간인 납치사건과 관련하여 흑역사가 존재하고, 실제로 조총련은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을 비롯한 급진 과격단체와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시선이 고울래야 고울 수가 없다.
조총련계와 그 가족의 현재 처지를 단적으로 나타낸 비극적인 사례로, 옴진리교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의 주범 중 하나인 재일조선인 하야시 야스오(임태남)이 있다. 야스오의 아버지는 북한 출신의 조총련계 비밀공작원이었고, 이미 일본 경찰에게 항상 마크당하는 상태였다. 중학교 때까지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걸 몰랐던 야스오는 평소 재일한국인들을 멸시해왔으나, 아버지가 북파 공작원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걸 알게되자 대학교를 졸업한 후 전세계를 방황하며 돌다 옴 진리교 조직에 가입하게 된다. 교단 내에서도 운전사 등 한직에 위치했던 그는 아사하라 요코에게 스파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었다. 결국 도쿄 사건에 가담하게 된 그는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려고 남들은 사린가스 용액이 든 봉지 하나만 들고가는데 3개나 들고 나가서 더 많은 구멍을 뚫었으며, 지하철이 출발하는 타이밍을 잘 잡은 덕분에 그가 탔던 열차안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였다. 이 후, 1년여의 도주 생활 동안 가장 위험한 도주범으로 손꼽혔으며, 결국 1996년에 잡혀 사형판결을 받았다.
근래 들어서서 일본의 '단일민족 순수성'에 따른 폐쇄적 사상이 조금씩 유연해지면서 아시아계 노동자나 특히 화교에 대한 묘사가 미디어에 가끔씩 등장하는 데 반해 '재일 조선인'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언급을 회피하는 성향이 여전한 편이다.[11] 재일동포중에는 강제징용으로 온 사람도 많으시다.[12]

4 재일 동포의 규모

현재 일본 인구중 재일교포는 60만명이다. 그중 상당수가 오사카 및 관서지방에 몰려 살고있다. 특히 오사카의 이쿠노구는 츠루하시 시장으로 대표되는 일본 최대의 코리아타운[13]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14] 이러한 사정 때문에 오사카는 2ch 관서외 지방의 혐한초딩으로부터 오사카민국(대판민국, 大阪民國, 공교롭게도 대한민국과 한자가 비슷하다)이라는 욕을 듣기 일쑤다. 그렇다고 오사카의 한국인들이 순조롭게 정착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도 해방 이후 일본사회에서 자리매김할 때까지 차별로 인해서 불안하기는 별반 다를게 없었다.
재일동포도 3~4세대로 가면 일본인이라고 해도 이상할게 없을 정도가 된다. 이른바 "통명"이라고 불리는 일본식 이름을 쓰면서 한국어에 서툴고 일본어에 유창하다. 혹은 이 두 언어가 피진화된 '재일어'로 통칭되는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민족학교 등의 교육수단을 통해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꾸준히 교육받았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방황하다가 결국 일본인으로 살아가거나 귀화하는 케이스도 부지기수다.
관동쪽의 코리아타운으로 도쿄의 신주쿠구 오쿠보로 대표되는 동신주쿠 일대가 있다. 해방 이후 비교적 현대 일본에서 정착생활을 하기 위해서 건너오는 한국인들은 보통 재일교포 사회에서 뉴커머로 불리고 있다.[15][16] 재일교포에서는 이러한 뉴커머를 "한국인"이라 부르며 한국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에 뿌리를 내려 일본사회에 적응하려는 재일교포와 일본에 잠깐 있었다가 가는 한국인의 인식차이에서 오는 한국인의 경솔한 행동이 일본내에서의 재일교포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고 한다.[17]
또한, 한국에서 온 사람(아주 먼 친척)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한국에 가지도 않았는데 자기를 사칭하는 인간에게 유산을 빼았기거나, 한국에 가서 따돌림을 당하는 등의 사례가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로서 재일교포가 자기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세워진 한국학교에, 해외학교에서 3년을 지내면 재외교포로 대학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한국"에서 "한국인 학부모"들이 몰려와 "한국인 교사"와 "한국 교과서"로 "한국말"만 공부시키게 만들어 버려서 정작 재일교포가 제대로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참고로 일본에 있는 파칭코 점포의 8할은 한국계가 운영하고 있다. 그 8할 중에 5할이 북한계, 3할이 한국계.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한창일 당시, 일본 돈으로 미사일을 만든다며 일본내에서 파칭코에 대한 비난여론이 심하게 일어나기도 했다.[18] 현재는 한국에선 파칭코가 금지되어 있는데 일본에서 한국인이 파칭코를 운영해도 되냐는 식으로 까인다.[19]

5 관련용어/항목

5.1 양대 단체

  •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약칭 민단)
  •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약칭 조총련)

5.2 관련 항목

5.3 유명한 인물 & 엔하위키에 등록된 인물

이하 목록에는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계 인물들도 있으니 주의. 일본 국적을 취득하여 귀화한 사람은 재일 한국인이 아니라 그냥 일본인이다.

5.3.1 정치인

  • 아라이 쇼케이(한국명 : 박경재) - 정치인. 1998년 주식 불법거래 혐의로 체포되기 전에 자살했다.

5.3.2 기업인

  • 손정의(일본명 : 손 마사요시[20]) - IT기업 소프트뱅크 창립자. 재일 3세.
  • 신격호 - 롯데그룹 회장.
  • 한창우 - 마루한[21] 그룹 회장. 2011년 말 자신의 전 재산인 2조원을 한일 양국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5.3.3 작가

  • 가네시로 가즈키 - 소설가. 단 국적은 일본으로 귀화한 상태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한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5.3.4 학자

  • 강상중 - 대학교수, 국제정치학자. 한국 국적자 중 최초로 도쿄대 교수가 되었다. 대학 시절까지 '나가노 테츠오'란 일본명을 쓰다가 1972년 한국에 온 후 한국명을 쓰기 시작했다.

5.3.5 배우 & 성우 & 영화인

  • 공대유 - 배우.
  • 박로미 - 성우.
  • 야스다 나루미(한국명 : 정성미) - 배우.
  • 와다 아키코(한국명 : 김현자) - 가수. 일본 연예계의 대모. 한국로 치면 김수미, 고두심씨 정도? 천하의 사와지리 에리카에게도 한소리한 여자다.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이하라 츠요시 - 배우.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최양일 - 영화감독.
  • 마츠다 유사쿠 (한국명 : 김우작) - 배우.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아라이 히로후미 - 배우.
  • 쿄 노부오(한국명 : 강창웅) - 배우. 인풍전대 허리켄쟈에서 고우라이쟈 중 한명인 쿠와가라이쟈 카스미 잇슈 역으로 활약했다.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타마야마 테츠지(한국명 : 김철) - 배우. 백수전대 가오렌쟈에서 6번째 전사인 가오 실버 오오가미 츠쿠마로 역으로 활약했다.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하쿠류(한국명 : 전정일) - 배우.
  • 홍영희 - 성우

5.3.6 음악가 & 가수

  • 김홍재 - 지휘자.
  • 소닌(한국명 : 성선임) - 가수.
  • (S.E.S멤버, 한국명 : 유수영, 일본명 : 쿠니미츠 슈)
  • 아이코닉(한국명 : 이아유미, 일본명 : 이토 아유미) - 가수.
  • 양방언 - 음악가.
  • 토와 테이(한국명 : 정동화) - 음악가.
  • JONTE(한국명 : 시종태) - EXILE 신멤버 오디션의 결승진출자, 후에 극단 에그자일 소속으로 활동 하였으며, 현재는 에이벡스 소속으로 가수로 활발히 활동중이다.
  • VERBAL(한국명 : 유영기) - 가수.

5.3.7 만화가

5.3.8 스포츠 선수

  • 가네다 마사야스(한국명 : 김정태) - 야구선수. 야구감독.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강병수(일본명 : 오하라 헤이슈) - 야구선수.
  • 고지행(일본명 : 타카야마 토모유키) - 야구선수.
  • 김기태(일본명 : 가네시로 모토야스) - 야구선수.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김무종(일본명 : 타키무라 시게미) - 야구선수.
  • 김성근 - 야구감독.
  • 김실(일본명 : 타나카 미노루) - 야구선수.
  • 김영덕 - 야구감독.
  • 김용강(일본명 : 아마노 유우고) - 야구선수. 프로듀서. 탤런트
  • 김일융(일본명 : 니우라 히사오) - 야구선수. 야구해설가.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김정행(일본명 : 카나이 마사유키) - 야구선수.
  • 니시오카 츠요시 - 야구선수. 할아버지가 한국인인 한국계 일본인. 출처 김별명의 뒷통수
  • 리 타다나리(한국명 : 이충성) - 축구선수.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마츠이 카즈오 - 야구선수. 할아버지가 2008년 화재로 사망했다는 보도에서 할아버지의 이름이 한국이름으로 표기되면서 한국계설이 사실로 밝혀졌다. 국적은 일본.
  • 마고 - 일본의 프로게이머. 얼굴 생김새 때문에 계속 한국인이라고 의심을 받아왔음에도 계속해서 부정하다가, 2012년에 비자 문제로 트러블이 생겨 한국적임을 고백하였다.
  • 모리모토 히초리(한국명 : 이희철) - 야구선수. 국적은 일본.
  • 박강조 - 축구선수. 한국 최초의 재일교포 국가대표 선수.
  • 백인천 - 야구감독.
  • 송재박(일본명 : 요시모토 히로시) - 야구선수. 야구지도자.
  • 아라이 타카히로(한국명 : 박귀홍) - 야구선수. 국적은 일본.
  • 역도산(한국명 : 김신락) - 프로레슬링 선수.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 야구선수.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로, 출신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사실 역시 없다. 일단 현재 국적은 일본.
  • 이충남(일본명 : 야마모토 타다오) - 야구감독.
  • 장명부(일본명 : 후쿠시 히로아키) - 야구선수.
  • 장훈(일본명 : 하리모토 이사오) - 야구선수. 야구해설가.
  • 정대세 - 축구선수. 아버지가 한국인이나, 어머니가 재일 조선인. 아버지 국적을 이어 본인의 실제 국적은 한국이나 실제 거주지는 일본으로 되어 있고 선수 등록은 북한으로 되어있는 등 복잡한 내력을 갖고 있다.
  • 주동식(일본명 : 우다 토우쇼쿠) - 야구선수. 야구해설가. 야구지도자.
  • 최일언(일본명 : 야마모토 가즈히코) - 야구선수. 야구지도자.
  • 추성훈(일본명 : 아키야마 요시히로) - 전 유도선수. 이종격투기 선수. 국적은 일본.
  • 카네다 마사이치(한국명 : 김경홍) - 야구선수. 야구감독. 국적은 일본.
  • 카네모토 토모아키(한국명 : 김박성) - 야구선수. 국적은 일본.
  • 킨죠 타츠히코(한국명 : 김용언) - 야구선수. 국적은 일본.
  • 홍문종(일본명 : 도쿠야마 후미무네) - 야구선수.
  • 히야마 신지로(한국명 : 황진환) - 야구선수.

5.3.9 범죄자 & 야쿠자

5.3.10 기타

  • 조치훈 - 바둑 기사.
  • 최영의(최배달) - 무도가.
  • 진창현 - 세계에서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Master Maker)'[22] 칭호를 받은 바이올린 장인 중 한명으로, 그가 제작한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아 '동양의 스트라디바리'라 불렸다.

5.4 재일교포에 대해서 다룬 미디어

6 같이보기

----[1] 민주당의 하토야마 내각에서 재일참정권 부여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민주당 강경파 및 자민당을 비롯한 대다수의 당들이 맹렬히 비난, 반대하고 있어서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도 2011년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실현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강경파인 노다가 총리가 되면서 흐지부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 북한의 공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의미.
[3] 요시노 사쿠조의 <<압박과 학살>>에는 2534명, 김승학의 <<한국독립연구서>>에는 6066명
[4] 관동대학살은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뿐만 아닌 류쿠(오키나와)인,부라쿠민, 쓰시마인, 일본에 거주하던 중국인, 심지어 좌파운동가/아나키스트 일본인(대표적으로 오오스기 사카에)들도 희생당했다. 그러나,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조선인들이 가장 많이 희생되었다. 허나 일본의 역사교육의 영향으로 인해 아직도 그것이 잘못인 지도 모르는 사람도 제법 있다고.
[5] 이에 대해서는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후반부에 제법 묘사되어있다. 홋카이도 답게 아이누 촌락도 나온다.
[6] 제주 4.3 사건에서 군정경찰 및 서북청년단 등의 반공 극우단체의 가혹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보트피플"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지역(주로 오사카 지역)을 피난처로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애당초 일제식민지 당시 제주 출신 중 1/4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살아서 거기 정착했거나 혹은 제주로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제주에 4. 3 사건이 발생하여 대규모 민중탄압이 있자 그것을 피해 그나마 연고가 있는 일본으로 피난한 것이다.
[7] 한민통등의 단체가 줄기차게 교민사회의 통합을 추진했고 한국의 민주화 운동도 지원하는 등 여러가지로 노력했으나 한쪽에서는 용공이라고 까이고 한쪽에서는 반동이라고 까였다(...) 단, 한민통 자체는 한국의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단체.
[8] 당시 북한행 배에 몸을 실은 교포들 대부분은 북한을 엄청나게 선진화된 사회,복지국가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70년대 중반까지는 소련 등의 각종 지원에 의해 남한보다 북한 경제사정이 더 나은편이긴 했지만, 이후 상황은 역전되고. 거기에 남한사회가 민주화 되는데, 북한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9] 강철환의 수필 <수용소의 노래>에서 작가의 조부모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으로 이민을 가 그 곳에서 자수성가한 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 시기 북한행 배를 타고 평양에서 정착하다 어느 날 작가의 어머니의 밀고로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다고 한다... 이 때 당시 많은 조총련계 재일조선인이 이러한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10] 박정희와 전두환 정부는 일본 내에서 조총련의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민단을 지원했다. 하지만 조총련처럼 학교를 세운다거나 하는 식의 지원이 아니고 그냥 민단이라는 단체에만 지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간에서 발벗고 나선 것이 한민통 이지만 위에도 기술했듯이 결과는 뭐.....
[11] 그나마 영화나 일반 문학에서는 재일 한국인 캐릭터가 조금씩이나마 등장하고 하는데, 아직도 서브컬쳐계열에서는 차라리 일반적인 한국인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눈에 뜨일 정도로, 재일 한국인 캐릭터의 수는 적은 편.
[12] 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강제징용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돈벌기위해서" 최근에 일본에 밀입국해온 "한국인" 아줌마다. 덕분에 진짜로 "살기위해서" 힘들게 일본에 건너간, 가난하고 약한 1세대 재일한국인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우익들이 몰려간다.(반격 못하는걸 아니까)
[13] 주의해야하는 건, "재일한국인의 코리아타운"과 "한국인의 코리아타운"이 있다. 동경의 신오오쿠보의 코리아타운은 원래 80년대쯤에 밀입국한"한국인"이 형성한 곳이다.
[14] 2011년 9월 8일에 방영된 KBS 특집 '쯔루하시 사람들'이 참고가 될 것이다.
[15] 여담이지만 뉴커머들의 선교활동이 최근에 조금씩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16] 참고로 이러한 뉴커머들이 모여서 세운 단체가 있는데 이것이 재일본한국인연합회다.
[17] 일본인 입장에서는 한국인도 재일교포도 구별이 안 된다.
[18] 실제로 북한계 점포들은 본국으로 꾸준히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는 듯.
[19]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계"라면 문제가 없지만.
[20] 특이하게도 성이 일본식 한자 독음이 아니라 한국식인 손(孫)인데, 이는 해당항목 참고.
[21] 일본 제일의 파칭코 그룹(물론 파칭코 외에도 다른 사업을 하긴 하지만 매출이 제일 높은 건 파칭코 쪽인 듯.). 그룹 회장이 재일교포다 보니 자사 로고에 영어, 일본어에 한글도 병기한다. 덧붙여 마루한이란 이름은 파칭코의 구슬(丸, 마루)과 한창우의 회장의 성에서 따와 지어졌다.
[22] 다른 이의 감독 없이 바이올린을 만들 수 있다는 뜻.
[23] 메인 캐릭터중 한명인 곽영사가 재일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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