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로마제국 카이사르2

신지현 작성일 13.06.30 18: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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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1018&search_field=subject&search_value=%EB%A1%9C%EB%A7%88&no=17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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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는 휘하 정예군단을 이끌고 급하게 남하하기 시작했다

당시 로마 근방에는 정규군이 있긴 했었는데.

이들은 양이나 질에서 카이사르 군단을 당해낼 수 없었고,

폼페이우스의 주력군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속공으로 원로원파를 궤멸시켜 버리면 내전을 금방 끝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로마가 건설한 대표적인 고속도로인 아피아 가도를 통해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어가지만....

폼페이우스와 원로원파는 이미 로마를 버리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최남단의 항구인 브린디쉬로 철수함.

카이사르의 부대는 출항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중과부적으로 놓치고 말았다.

결국 내전의 조기 종결은 물거품....전쟁은 지중해 전체로 번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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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아 가도의 모습.

2천년전 건설한 도로가 저런 식이다.

1미터 가까이 콘크리트, 돌과 모래로 꽉 채워 도로를 만들고, 가장자리에는 가로수와 경계석.

문명 브금을 틀어주고 싶어지는 퀄리티.



전체적인 세력은 폼페이우스와 원로원파가 압도적이었다.

카이사르는 휘하에 12개 군단을 두고 있었고.

로마의 군단병은 통상 5천명으로 편성되는데, 카이사르의 군단은 갈리아 원정을 막 끝낸 상태라 결원보충도 안된 상태.

그러다 보니 실제 병력은 그 절반밖에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딸딸 긁어모아봤자 3만명도 안되는 병력.


반면에 폼페이우스는 로마를 버리고 튀긴 했지만 휘하에 11개 군단을 두고 있었고,

이들은 5만이 넘는 완전편제인데다가 빵빵한 지원을 받고 있었슴.

게다가 물자가 풍부한 그리스, 이집트를 기반으로 하여 아주 풍요로운 상태.


허나 폼페이우스 일파는 엄청 중요한 점을 잊고 있었지;;

바로 본국인 로마를 버렸다는 거;;

그 유명한 로마 군단병을 구성하는 로마 시민들, 그리고 정부를 지지하던 모든 백성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주었다.(커맨더 센터&scv 없는 테란꼴)

게다가 갈리아 정복의 대성공으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카이사르는 착실히 세력을 정리하고

본국과 스페인 지방에서의 세력기반을 튼튼히 하는데 주력하였다.




마침내 거의 1년이 지난 뒤 드디어 카이사르는 아드리아 해를 건너 그리스로 간다.

병력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군단 편제에도 결원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카이사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폼페이우스의 부대는 해적토벌 후 배가 띵띵하게 불러온 과거의 고참병인 반면에,

자신의 부대는 갈리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은 단순히 머릿수로만 하는게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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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폼페이우스의 육군, 해군이 모두 경계를 느슨히 한 틈을 타서,

카이사르는 부대의 반을 이끌고 브린디시 항을 떠나 그리스에 상륙.


나머지 반은 카이사르의 심복인 안토니우스가 통솔하여 본국에 남아있었다.

대부분의 해군이 폼페이우스 측에 있다보니, 군대를 한번에 수송할 수 없었기때문.

어쨋든 카이사르는 무사히 상륙하였지만....카이사르의 함대는 폼페이우스 측에 걸려서 모조리 사망....;;

안토니우스는 본국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허나 카이사르는 국지적인 실패에 얽매이지 않는다.

일단 디라키움이라는 도시를 다음 목표로 삼고 움직이기 시작함.

여기는 폼페이우스의 보급물자가 산처럼 쌓여있는 곳이었다.

내륙에서 뒹굴뒹굴하던 폼페이우스는 깜놀하고 급하게 막으러 왔지만,

카이사르가 벌써 진지를 건설해둔 탓에 골치가 아파졌다.


허나 카이사르 쪽의 상태도 완전 나쁜 상태.

안그래도 전체 병력이 반밖에 안되는데.....그마저도 절반이 없는 상태.

게다가 날씨가 풀리기라도 하면 폼페이우스 군에게 쌈싸먹힐 위기!

이때 카이사르의 심복....오른팔인 안토니우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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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모습.

 

정치적으로는 영 아니올시다였지만 군사적으로는 안토니우스는 근육빵빵 마쵸 짱짱맨.

카이사르와 연락이 끊겨 명령이 없는 상태에서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센스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카이사르의 본대와 무사히 합류하여 제대로 싸울 준비를 갖추었다.




자.....이제 카이사르는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허나 상대인 폼페이우스도 경력쩌는 장군.

물자가 부족한 카이사르와 굳이 싸울 생각이 없다. 말려죽이면 충분할 따름.


이에 카이사르는 다시한번 폼페이우스의 약점을 찌름.

아까 이야기한 물자가 쌓여있는 보급기지인 디라키움.

폼페이우스는 좋든 싫든 카이사르를  얼른 추격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백전노장답게 상대에게 말려들지 않는다.


비록 디라키움으로부터 보급을 받지는 못하지만, 대신에 해군을 이용해서 보급을 시작함.

카이사르 쪽에서는 완전 빡치는 상황.

기껏 타이밍 잡아서 보급로를 끊어놨더니, 바다에서 잘만 수송해 오더라....


여기서 카이사르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른다.

병력, 물자 전부 딸리는 상태에서 장기전을 벌이는 것......;;

알레시아에서 한번 써먹은 작전이기도 하고, 진지건설에도 도가 튼 카이사르군이었지만,

상대는 야만부족이 아니라 로마 정규군이란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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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옛 진영을 버리고 북쪽의 디라키움 코앞으로 가서 새 진지를 세웠다.

폼페이우스는 이를 따라와서 다시 진영을 세웠고.

중간에 카이사르군이 가로막은 탓에 디라키움으로부터의 보급은 끊어졌다.

허나 폼페이우스 군은 바다를 통해 멀쩡히 보급을 받고 있었슴.




뭐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카이사르군은 공병대 따귀 후리는 실력으로 멋진 방어진지를 세웠고,

폼페이우스측은 한번 날을 잡아서 뚫어보려다가 도리어  털리기까지 한다.


허나 국지적으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상태.....

양 군의 격차가 너무 큰 상태에서 이러한 작전은 결국 구멍을 드러내었다.

카이사르 진영에서 도망친 배신자의 정보 덕에, 카이사르의 방어진지의 약점이 드러났고

폼페이우스가 그 부분을 두들김으로서 결국 진지는 몽땅 무너져 버렸다.

어느정도였는고 하면 군기가 바짝 들기로 유명한 휘하 군단들이,

통제 불능으로 도망칠 정도였었다고..


폼페이우스 진영은 축제분위기.....

특히 수도에서 피둥피둥 살이 오른 원로원 의원들은, 난생처음 겪는 야전 생활에 짜증이 난 상태여서

이들은 이미 전쟁에서 이긴 기분을 내면서 한껏 분위기 UP!


반면에 간신히 도망쳐서 군세를 추스린 카이사르의 상황은 완전 나쁘다.

허나 카이사르측의 최대 장점은 바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는 것.

갈리아전쟁 당시에도  밀리다 알레시아에서 뒤집어 버린 경력이 있었고

카이사르는 커다란 교훈을 얻고는 상황을 뒤집을 기회를 엿봄.

그 기회는 뜻밖에도 쉽게 찾아온다.


테살리아 지방에서 카이사르의 심복인 안토니우스 군과,

폼페이우스의 장인인 스키피오가 대치하고 있다는 것.

스키피오를 노리면, 한껏 고무된 폼페이우스군이 튀어나오리라 예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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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양 군은 파르살로스 평원에서 다시 마주쳤다.

카이사르는 마찬가지로 폼페이우스를 살살 꼬드겨 맞짱뜨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따라나오긴 했어도 결코 싸우려 하지 않는다.

상대를 말려 죽이면 충분한데 왜 싸우려 하겠나.


허나 운명의 장난이랄까.....

디라키움과 달리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유도에 따라 결전을 벌이러 나오고 말았다..

물론 전황은 크게 유리했다. 허나 쉽게 이길 걸 굳이 피흘리며 싸우고 싶어하는 장군은 B급 아니겠나?

A급인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계략을 눈치채고 굳게 지키려 했지만, 문제는 원로원 의원들이었다.

얼른 카이사르 찢어죽이고 로마로 돌아가고픈 양반들이 발광하는 것;;(역시 사람은 젊을때 고생을 해봐야된다)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에서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작전회의에서 '어떻게 이길까'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승리를 누려볼까'를 회의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파르살로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상상도 못한 결과가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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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에 나왔으면 야전군의 말대로 입닥치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정치인이 군대를 지휘하는꼴)






여기서 짧게 적어보자면, 당시 로마군의 전투의 기본은 망치와 모루 라고 불리는 전법이다.

모루 위에 물건을 올려두고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전법.

보병을 모루처럼 단단하게 앞에 펼쳐 적군을 맞아 싸우게 해 두고,

별동대가(주로 기병대) 적군의 옆구리나 뒤통수로 돌격함으로서 망치처럼 적을 깨부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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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우스는 정석중의 정석대로 카이사르를 깨부수려 하는데,

여기에서 카이사르의 작전이 빛을 발했다.

기병대가 제대로 속력붙여 달리기도 전에, 카이사르군 최고 정예병들이 가로막아 버리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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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이 폼페이우스군. 맨 오른쪽의 라비에누스는 기병대 지휘관이다. (본래 카이사르 심복이었지만 가문의 관계상 폼페이우스에게 투항하게 되었다.)

아래쪽은 카이사르군. 오른쪽에 4th Line이라는 부대가 바로 비밀병기다.

기병대가 속력을 붙이기 전에 돌격해오는 것을 가로막은 부대.

기병대가 달리지를 못하니, 그냥 말 위에 앉은 병사일 뿐.

노련한 카이사르군의 손에 당하거나 도망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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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대성공하여 폼페이우스 군의 최고 전력이 어이없게 GG쳐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적 옆구리를 못따고 물러났으니, 이번엔 자기 옆구리가 따이는 법.

도리어 카이사르군 최고 정예병들이 폼페이우스군 옆구리를 따러 들어온다.




패닉에 빠진 폼페이우스 군대는 모조리......

게다가 팔팔한 정예병인 카이사르와 달리, 피둥피둥해진 그의 부대는 재기하지도 못한다.

파죽지세라는 말과 같이 모래알처럼 부서져 버렸고, 폼페이우스는 자기 세력권인 이집트로 도망치게 되었다.


(사족을 붙이자면, 그날 카이사르가 눈여겨본 백인대장인 크라스티누스는 "죽을지라도 당신의 칭찬을 받도록 싸우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제일 먼저 돌격했고, 큰 공을 세우고 사망했다고 한다.)





결전에서 승리한 것은 카이사르.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폼페이우스 측의 군대가 저항하려 하지만, 이미 결판은 나 버렸다.

이렇게 되면 폼페이우스는 귀찮은 폭탄 신세가 되어버림;;

패전한 장군을 받아줬다가 괜히 최고권력자 눈밖에 나게 생겼는데.....누가 그를 받아주겠나.


결국 폼페이우스는 어이없게 암살당하고 그 머리와 반지가 카이사르 앞에 전해졌다.

카이사르 입장에서는  씁쓸한 상황이지.

차라리 살아 있다면 꼭두각시로 쓸 수도 있고....무엇보다도 한때 친척이자 동지였던 사람이니까.

허나 막상 죽어버린 후에는  시체팔이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했었다.




곧이어 로마의 속국인 이집트로 진군한 카이사르는 불손한 반란군을 제거하고

국가체제를 여왕에게 집중시킴으로서 나라를 안정시킨다. 이 여왕이 바로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그 와중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버린 건 엄청 불미스러운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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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문화나 학술을 중요시하던 카이사르의 성품을 본다면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어찌되었든 저 중요한 곳이 불타버렸으니......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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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루치 누님 짱짱걸!!!!

 

눈이 맞은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는 아들까지 낳게 된다.

카이사르는 승기를 몰아서 북아프리카, 스페인 지방도 모조리 청소.

그리고 이집트 동북부의 소아시아 지방에서 파르나케스 2세가 이끄는 적군도 깨끗이 청소.

이때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본국의 원로원에 보낸 글이 딱 세마디였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이로서 카이사르는 국내외의 모든 반대세력을 깨끗이 청소하고, 지중해 세계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허나 그는 술라와는 다른 타잎의 인간.

살생부 따위는 만들지도 않았고, 항복해오기만 하면 누구나 사면, 복권시켜 주었다. (이게 나중에 불씨가 된다....)

그리고는 로마의 사회구조 자체를 뜯어고치기 시작한다.


백성 전체의 수준이 낮은 데다가, 통신이나 교통이 매우 불편한 고대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어느세월에 우매한민중을 이해시키고, 설명하고, 협의하고, 투표할 수가 있겠나.

원로원과 민회로 이뤄지는 구 체제는 이미 그라쿠스 형제의 암살 등을 기점으로 완전히 낡아빠져 버렸고.

카이사르는 로마의 절대자가 되고 싶다는 야심을 분명 갖고 있었지만,

황제 체제야말로 제국을 제대로 굴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당시 로마의 황제는 아시아의 황제와는 좀 다르다. 글래디에이터 영화에서 콜로세움 장면 기억남?

감히 황제가 말하는데 백성이 우~우~거린다니.....중국 황제라면 싸그리 껍질을 벗겨 죽일 상황)


또한 소수 계층에만 경제력이 집중되는 경제 체제도 개선하는데 주력.

소수의 상류층은 수많은 노예를 기반으로 하여 라디푼티움이라는 대농장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로마 사회를 뒷받침하는 중산층들, 그리고 군단병으로서 복무하고 퇴역한 자영농들은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일례로 키케로 같은 갑부층들은 아예 집안에다 양식장을 만들고 생선을 키워 먹기도 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새로이 정복한 갈리아 땅을 바탕으로 로마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또한 묶여있는 돈을 돌게 함으로서 경제에 활력을 되찾게 하였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돈은 돌아야 돈이다.)




카이사르는 이외에도 공공건물을 건설하고 역법 개선, 법률 제정, 경제정책, 군사적 성과 등등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이를 통해 로마 백성으로부터는 굉장한 인기와 지지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반대파들도 커지기 시작했어.

특히 비상사태에만 발동되는 독재관을 종신으로 취임함으로 인해, 카이사르에게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나 카시우스 롱기누스라는 비열한 인간이 그 중심이 된다. (에바Q에서 두개의 창으로 나오지? )

카레 전투.....크라수스 휘하의 로마군이 궤멸당한 전투에서,

카시우스는 휘하 기병대를 이끌고 도망쳤던 놈이다.

물론 부하들의 개죽음을 피하려 했다는 변명도 가능하지만.....그정도 전력이면 크라수스의 본대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 비겁한 행동 때문에 카시우스는 출세길이 막혀버린 상태.

허나 이놈은 인망도 없는 놈이라 불평분자를 모을 수는 있어도 이끌지는 못했다.

여기서 나타나는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마르쿠스 브루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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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후렸던 유명한 여인인 세르빌리아의 아들이다.

브루투스 본인은 카이사르에게 악감정이 없었지만 자기 신념대로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했다가,

카이사르 군에게 항복하여 사면, 복권된 사람이었지.


카이사르가 왕이 되려 한다....라는 소문이 퍼지자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꾸미게 되고, 카시우스를 비롯한 몇몇 인물들이 여기에 가담하였다.

문제는 단 하나.

카이사르 옆에 붙어있는 근육빵빵 슈퍼 마쵸맨인 안토니우스.

안토니우스는 정치적 센스는 꽝이었지만, 장군으로서 그리고 전사로서는 그야말로 슈퍼맨이었다.

이에 안토니우스의 친구가 말을 걸어 그를 유인해 내기로 모의하였고,

결국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중앙 아시아에서 깝죽대는 파르티아를 작살내고 크라수스의 복수를 할 겸, 직접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원로원에서 전쟁 결의안을 통과시킬 예정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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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회의가 열리기 전 어수선한 상태에서 수십명의 암살자들은 카이사르를 둘러싸고 난도질하였고,

다 끝났음을 깨달은 카이사르는 "브루투스! 너도냐!?"라는 외침을 남기고는,

추하게 나동그라지지 않으려는지, 자신의 옷을 꼭 잡은 채 쓰러졌다고 한다.


마치 1979년 10월 26일의 상황처럼.

로마 제국은 한순간에 최고권력이 텅 비어버렸고,

공화정의 수호자 가 될 줄 알았던 암살자들은,

싸늘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신성한 구역인 카피톨리노 언덕의 신전으로 도망쳐 올라갔다.




이튿날인 3월 16일.

카이사르의 심복인 안토니우스는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한다.

일단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작성되어 있었기에 이를 개봉하였는데.......

여기에는 어이없는 글이 적혀 있었다.

18세의 꼬맹이인 옥타비아누스를 카이사르의 아들로 맞아들이고 율리우스라는 이름을 하사.

그리고 자신의 유산을 모두 그에게 남긴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2순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 데키우스 브루투스.

카이사르에게 찬동한 적도 없고 패배한 뒤 투항해온 마르쿠스와는 달리,

데키우스는 갈리아 전쟁 당시부터 카이사르를 옆에서 보좌한 유능한 인물이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데키우스는 카이사르를 암살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었지.

카이사르의 "브루투스! 너도냐!?" 라는 말은 아마도 데키우스를 가리켰을 확률이 높다.




3월 17일.

원로원 회의가 다시 열렸다.

암살자들도 이에 참석하였는데, 로마 시민들은 여전히 불온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지들이 공화정의 수호자 라고 믿었던 암살자들은 패닉상태.

이들은 암살의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카이사르 측의 안건에 모두 찬성표를 던지기로 한다.

겁먹은 암살자들은 안토니우스가 이끄는 카이사르측과 협의하여,

장례식을 거행하기로 합의하였다.




3월 18일.

이날은 카이사르의 장례식을 거행하기로 한 날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따르면 안토니우스의 열변이 불을 뿜었다고 한다.

카이사르의 시신이 화장되는 것을 보자,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로마 시민들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암살에 관여한 모든 놈들을 잡아죽이는 게 목표.


로마는 다시금 내전에 가까운 혼란 상태가 되었고,

이참에 자기가 로마를 손에 넣을 심산인 안토니우스는, 암살자들과 맺은 합의 때문에 앞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모조리 죽기를 바라며 조용히 방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로마의 운명을 짋어지게 된 어린 소년이 도착하였다.

(손이 오그라 드는 표현이지만 빈말이 아니라 진짜 그런 느낌이다)

그의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옥타비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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