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로마제국의 카이사르end

신지현 작성일 13.07.07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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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1018&search_field=subject&search_value=%EB%A1%9C%EB%A7%88&no=17509

2부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1018&search_field=subject&search_value=%EB%A1%9C%EB%A7%88&no=18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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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부에서 카이사르는 암살자들 손에 죽었다.

허나 아직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슴...

카이사르는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로마를 아직 건설하지 못한 채 도중에 암살당했지만,

그의 유산을 물려받아 꿈을 이뤄줄 후계자를 찾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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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평범한 평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카이사르의 조카딸이었지만, 아버지의 신분이 일반인인 탓에 엄연한 평민.

하지만 친아버지가 죽은 후에 카이사르의 누나인 율리아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근처에서 그를 볼 기회는 상당히 많았슴.

옥타비우스는 어릴적부터 위장병에 시달린 병약한 소년에 불과했지만,

카이사르는 벌써 그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비록 카이사르 자신과 달리 군대 쪽에는 영 아니올시다였지만,

정치, 경제 등등 내정분야에서는 도리어 자기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유럽의 제갈량?!)

더군다나 옥타비우스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인 끈질김과 성실함을 갖고 있었슴.


이에 카이사르는 옥타비우스가 겨우 16살이 되던 해에

비밀리에 유언장을 작성해 두면서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해 둔다.

게다가 평민 중에서 대장군의 떡잎을 보이고 있는 아그리파 라는 충성스런 소년을 찾아다가

옥타비우스의 심복으로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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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리파의 흉상이다.

얼굴은 누구나 한번쯤 보았겠지만

미술 데생에 기초적인 교보재로 쓰인다고함.





그리고 2년 뒤인 기원전 44년 3월 15일.

서양에서는 불길함의 대명사인 3월 15일에 카이사르는 어이없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튿날인 3월 16일, 그의 유언장이 개봉되었는데.

거기에서 등장한 이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해 18세가 되는 어린 옥타비우스.


카이사르는 옥타비우스가 자신의 아들로 입적할 것과,

그에게 자신의 가문, 재정, 모든 정치적 유산을 남기겠다 하였다.

유언장을 개봉한 안토니우스는 멘붕.

당시만 해도 카이사르의 오른팔은 명백히 자신이라고생각.(사실 오른팔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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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이사르는 안토니우스를 후계자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장군으로서의 안토니우스는 그야말로 근육빵빵 마쵸 슈퍼맨!

허나....카이사르가 그를 로마 본국의 집정관으로 앉혔을 때,

안토니우스는 정치에서 적나라한 빵꾸를 보였다.


특히 카이사르를 지지하는 광신적인 젊은이들을 통제하지 못해서 폭력사태가 일어나고,

경제정책에서도 실수를 저질러 로마 경제를 흔들리게하는등.

카이사르 본인이 와서 이를 바로잡긴 하였지만, 이미 카이사르 마음 속에서는 낙제점을 받은 것.




유언장의 내용이 공개되자 수많은 로마 백성들, 그리고 군대도 놀랐다.

"도대체 옥타비우스가 누구야?"

아무런 관직도 성과도 없는 18세의 평민 꼬마였으니까.

허나 카이사르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후광 덕분에

수많은 카이사르 부하들이 그에게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유언을 전해들은 옥타비우스는 카이사르의 뜻을 잇기로 결심하였다.

로마를 주름잡은 최고권력자가, 아직 아무것도 한게 없는 자신을 이렇게 인정해 주었다니....

아마도 엄청난 감동을 받았지 않았을까 싶다.

옥타비우스는 카이사르의 본심을 이해하고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로 결심하였다.

바로 로마의 사회 체제 자체를 새로이 뜯어 고치는 것.


가이우스 율리우스 옥타비아누스 라고 이름을 바꾼 그는

양아버지의 부하들의 조언을 물리치고 로마로 향한다.

로마는 야심가 안토니우스와 암살자들, 공화주의자들로 대혼란인 상황.

허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자칫하다간 암살당한다는 측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옥타비아누스는 당당히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지.


상대인 안토니우스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한 세력.

백전노장의 장군인 데다가 카이사르의 오른팔이며 로마의 거물이었으니까.

안토니우스는 대놓고 그에게 태클을 걸기 시작함.




아무리 영웅의 떡잎이라도 아직은 애송이.

옥타비아누스는 꽤 난감해한다.

허나 여기서 의외의 인물이 끼어든다. 바로 로마의 유력자인 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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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는 카이사르와 친분이 깊지만, 반면에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어중간한 위치.

그는 근육맨 안토니우스가 위험하다 판단하고는,(전X갈마냥)

필리포스 왕에 빗대어 안토니우스를 겨냥한  필리피카이 라는 유명한 논설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탄핵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어린 옥타비아누스는 꽤 만만한 어린애라고 오판함.


키케로는 공식적인 자리나 문서에서 옥타비아누스를 꼬마라고 불렀다.

허나 옥타비아누스는 꼬마 주제에 정치스킬 9단을 찍은 놈.

발톱을 감춘 채 키케로의 비위를 살살 맟춰주며 안토니우스를 견제하는 데 써먹는다.


그틈을 타서 어찌어찌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하고, 이 돈으로 카이사르의 유언을 실행에 옮긴다.

법적으로 정식 상속자로 임명되는 동시에, 로마 시민과 군단병에게 유산분을 나누어 준 것.




게다가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생전에 파르티아를 깨부수기 위해 6개 군단을 준비해 두었는데,

그중에서 4개의 군단. 즉 2군단, 3군단, 4군단, 35군단이 안토니우스의 명에 따라 로마로 복귀하였는데.

갑자기 3군,4군이 명령을 거부하고 옥타비아누스에게로 가버림.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의 유산 명목으로 큰 돈을 뿌리긴 했지만,

군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로마 군단병이 돈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병사들 ,백인대장들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카이사르의 후계자라는 후광이 주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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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00명으로 이뤄지는 백인대. (Centrio. 사령관은 백인대장, 혹은 백부장.)

6개의 백인대로 구성되는 대대. (Cohort. 여기서부터는 장교가 지휘한다.)

10개의 대대로 구성되는 게 바로 군단 (Legion. 군단장은 장군 레벨) 이다.



갑자기 강력한 2개 정규군단을 손에 넣은 옥타비아누스.

이로서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의 세력을 탄탄히 할 수 있었다.

카이사르라는 이름의 가치를 , 이 꼬맹이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거다.




안토니우스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꼬맹이 따위는 언제든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된 셈.

아직 쥐방울만한 사이즈이긴 하지만, 괜시리 잘못 건드렸다간

로마 시민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상황.

이에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누나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문관인 레피두스를 끌어들여서 2차 삼두정치를 결성하였다.


이미 카이사르 암살이라는 비극을 겪은 이들은,

더이상 관용과 용서를 베풀 생각이 없다.

당장 암살자들을 비롯한 반대파들을 숙청하기 시작.

특히 안토니우스는 자기에게 태클을 걸던 키케로를 죽이고 싶어 안달난 상황.


여기서 무서운 점은 옥타비아누스가 눈하나 깜짝않고 키케로를 죽이는데 찬성한 거다.

노련한 변호사인 키케로를 살살 구슬려 이용하다가,

쓸모없는 방해물이 되었다 싶으니 대번에 안토니우스 손을 빌려 처리하는 것.


이어서 외국으로 도망친 암살범들.

데키우스나 마르쿠스, 카시우스 등등의 세력을 처단하러

이들은 각각 로마제국 각지로 흩어지지.(카이사르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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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빵빵 마쵸맨 안토니우스는 대번에 적군을 처리.

반면 옥타비아누스 쪽은 좀 힘들었다.

옥타비아누스 본인은 군사 지휘가 꽝인 데다가,

아그리파 역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애송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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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안토니우스. 오른쪽의 꼬마가 옥타비아누스다.

대놓고 개무시하는 안토니우스.




허나 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놈이 강하다고 하던가?

옥타비아누스는 반군을 일망타진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는 연합하여

최후의 전투인 필리피 회전에서 브루투스 군대를 패배시키고 대청소를 끝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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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제 외부의 위협은 일단 정리되었다.

그럼 내부의 권력투쟁이 일어날 차례!!


문관인 레피두스는 실제 병력이나 세력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고, 로마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두 파벌로 갈라졌슴.





여기서 이 두명은 각각 자신의 그릇을 명백히 보여준다.

옥타비아누스는 아직 반군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로마 포함 서부를 택하였고,

안토니우스는 물자가 풍부한 그리스, 이집트 등의 동부를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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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붉은 부분은 옥타비아누스.

동쪽의 보라색 부분은 안토니우스의 영역이다.



물론 안토니우스의 새로운 애인이 된 클레오파트라의 매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릇의 차이가 크지;;

십여년 전에 자신의 주군 카이사르가 왜 이겼는가....그 교훈을 잊어버린 건지;;

안토니우스는 편안하고 풍요로운 동부를 택하고 말았다.

옥타비아누스가 반군들 잡느라 지치면, 풍요로운 동부에서 세력을 불려서 한칼에 잡겠다는 심산이지만

로마 백성들에게 이미 안토니우스는 남남이 되어버린 것. (넌이미 로마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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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걸 모르는 안토니우스는 쭉쭉빵빵 클레오파트라에 안겨 세월을 보낸다.

그사이 옥타비아누스는 죽을 고생을 하며 반란진압에 시간을 보냄.




안토니우스의 삽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아내는 법적으로 어디까지나 옥타비아누스의 누나 안토니아.

과거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ㅍㅍㅅㅅ로 아들까지 갖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생활에 불과하였다.

법적으로는 엄연한 남남이고 절대로 정치에는 개입시키지 않았슴.


허나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저서.

아예 공식적으로 이혼하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한다.

본처 안토니아와 그 가족은 개무시하고는 클레오파트라 품에 안겨 희희낙락.

(하여간 보빨러 새퀴들이 악의 근원이다)

 

본처 안토니아가 전형적인 현모양처라는 점은 더더욱 악재로 작용한다.

저렇게 참한 여자를 버리고, 삼류 외국의 요부에게 놀아다나니!!!


아마 나폴레옹이 한 말로 기억한다.

"행운은 적이 가져다 주는 것. 적이 실수할 때는 절대 방해하지 마라."

옥타비아누스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자기 일에만 전념.

결국 이 끈질김 덕에 그는 반군세력을 완전히 진압하고 로마 서부를 제패하였다.

누나에게는 그런 놈팽이 버리고 자기 인생을 찾으라 화내긴 했지만,

공개적으로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쯤되자 상황은 바뀌어 버렸다.

옥타비아누스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명확한 성과를 거두고

그 명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고.

안토니우스는 찌질한 보빨러, 매국노 정도로 점점 추락하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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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컸다 꼬맹이.

병약미소년 이미지는 여전하다.





깜놀한 안토니우스는 무리수를 둔다

카이사르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파르티아 원정에 나선 거다.

허나 그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하락세의 장군.

꼴사납게 털리고는 이집트로 돌아와서는 클레오파트라 품에 파묻혀 지낸다.


현모양처 안토니아는 제 재산을 털어 병력과 돈을 모아서는 찾아가지만,

알맹이만 빼앗긴 채 문전박대......

안토니우스는 이 물자를 받아다가 그냥 힘없는 동네에서 한바탕 분탕질을 치고는,

수도 로마가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선식을 치루며 자신은 여기에 묻히리라 공언하고 말았다.




이 꼬락서니를 보고 드디어 로마인들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동시에 참고 참아온 옥타비아누스 또한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생전에 카이사르는 그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는데.

자신이 못하면, 할 줄아는 부하를 다루면 된다 라는 교훈.(우수한 부하는 천하통일의 포석!)

(예전에 작성한 초한지에서 적나라하게 나온다. 유방은 산골짝 건달이었으나 부하들을 기막히게 다루어 승리하였슴)


군사적으로는 아그리파경제적으로는 마세나 (좌청룡 우백호)

라는 걸출한 인재를 손에 넣은 옥타비아누스는

마침내 승부를 벌이러 출발하였다.

결전은 두 세력권의 경계인 로마와 그리스 사이, 이오니아 해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아무리 정신줄을 놓았어도 안토니우스는 뼛속까지 무인.

휘하에는 여전히 충성스런 장군들이 남아 있었다.

장군들은 안토니우스의 주특기대로 육상전을 벌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지만.....

문제는 안토니우스의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가 대단한여자라고하지만..정치적으로만 대단한듯.)

작전회의에 아내랍시고 참석한 클레오파트라의 주장에 의해 해전이 결정된다.

옥타비아누스 측에는 카이사르가 휘하의 하사관이었던 백인대장들이 워낙 많은지라....이게 육상전에서 좀 위험요소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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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nti per la battaglia!!"

 

맨 오른쪽의 병사가 백인대장. (또는 백부장. centurio.)

약 50에서 100여명의 병사를 통솔하는 하사관이었다.

상급장교나 군단장 등의 명을 받아 실전에서 앞장서는 백전노장들.


카이사르는 병사들 뿐만이 아니라 이 백인대장들에게서 절대적인 믿음을 받고 있었다.

그 믿음은 후계자 옥타비아누스에게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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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는 오른쪽 아래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한다. (이집트 해군)

에페소스에 상륙하여 육상군을 남겨두고는 악티움으로 향함.




안토니우스 측의 함선은 훨씬 크고 병력도 많이 태우고 있었지만,

옥타비아누스 측의 사령관인 아그리파는 그따위 것에는 흥미도 없다.

카이사르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아그리파는 대장군이 될 재목.

그는 해전에서 크기 따위는 중요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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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고대 해전은 화포 같은 발사무기가 없는 이상, 상대 배의 옆구리를 들이받고 백병전을 벌이는 게 정석.

따라서 작고 민첩한 옥타비아누스 측의 배는 도리어 이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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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함선 옆구리를 들이받아 피해를 입힌 뒤, 위 짤과 같은 사다리를 내려 적함으로 건다.

로마는 이 사다리를 까마귀 라는 뜻의 '코르부스' 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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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악티움 해전의 모습.

붉은 것이 옥타비아누스의 로마 해군.

보라색이 안토니우스의 이집트 해군이다.


안토니우스 측은 그리스 땅을 등지고 싸우는 형태.

육지로 밀어붙인다면 얉은 수심 때문에 배들은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진다.

자연적인 포위망이 되어주는 것.


안토니우스 측은 이 계략에 보기좋게 걸려 버렸다.

게다가 생전 처음 백병전을 눈앞에서 본 클레오파트라는 멘탈붕괴;;

ㅈㄴ 눈에 잘 띄는 화려한 함선에 탄 주제에 앞장서서 달아나기 시작한다.

이걸로 모든 게 끝나 버렸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하였고,

에페소스에 남겨진 그의 육상부대들은 옥타비아누스가 다가오자 일제히 항복;;


애물단지 클레오파트라는 끝까지 진상을 피운다.

무슨 생각인지 자신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안토니우스에게 보낸 것.

삶에 희망을 잃은 안토니우스는 경호하는 부하에게 칼을 주며 자기 목을 치라 하지만,

충성스러운 부하는 도리어 제 목을 찔러 죽었다.ㅜㅜ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안토니우스는 직접 자기를 찌르지만,

단박에 죽지는 못하고 이를 알게 된 클레오파트라 품속에서 사망;;

(희대의 보빨러. 이렇게 죽다)



클레오파트라에게도 최후가 다가온다.

조상의 영묘에 틀어박힌 클레오파트라는,

밖에까지 진군해온 옥타비아누스에게 마지막 협상을 걸어본다.

왕가의 보물들을 넘겨줄 테니 옥타비아누스의 의붓형제.....

카이사르의 아들인 카이사리온에게 이집트의 왕위를 넘겨 줄 수는 없겠느냐고.


허나 옥타비아누스는 냉철한 정치가.

일을 끝마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위험분자인 카이사리온과 클레오파트라의 자식은 이미 모조리 죽여없앤 뒤였슴.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는 독사가 자신을 물게 하여 자살하였고,

옥타비아누스는 마지막 소원은 들어주어 안토니우스 묘 옆에 안장해 주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

외부의 적은 사라졌고, 내부의 경쟁자도 전부 죽었다.

카이사르의 대개혁에 걸림돌이 되었던 골수 공화주의자들 또한,

10여년간의 전란 도중 거의 죽거나 힘을 잃었지.

반면 옥타비아누스는 그의 재능을 활짝 꽃피웠고,

군사의 아그리파, 경제의 마세나 등등 젊은 인재들의 보좌를 받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16세 애송이를 알아보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뜻하지 않게 일찍 이어받은 애송이는 기대에 멋지게 부응하였다.

나폴레옹이나 풍신수길 같이 수많은 자수성가 인물들이 1대로 끝난 데 비하여,

이 두 부자는 예술적인 바톤터치를 보여주며 로마 제국을 다시금 강력하게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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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은 그에게 존엄한 자라는 뜻의 호칭인 "아우구스투스" 를 바쳤고

동시에 원로원의 제1인자 라는 의미의 "프린켑스" 라는 지위를 부여하였으며,

개선장군이라는 뜻의 "임페라토르" 호칭은 군 통수권의 의미로서 그의 손에 쥐어졌다.


이로서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꿈꾸었던 사회 대개혁을 완수하였고,

기원전 27년. 로마의 초대 황제로서 등극하였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에 죽었지만,

진정한 의미로는 17년이 지난 이날에서야 비로소 죽은 것이다.

(왕정은 왕이위대하면 최고의 정치제도이지만..왕이 찌질하면 돌이킬수없을정도로 나라가망하는 양날의검같은)





EX 1. 아우구스투스는 8월인 August 의 어원이 된다. 참고로 7월 July 는 카이사르의 가문이름인 Julius에서 유래함

EX 2. 프린켑스는 원수 로 번역된다. 동양의 황제와는 달리 초,중반의 로마황제는 거대한 특권을 가진 일반시민에 가깝다.

EX 3. 임페라토르는 영어단어로 황제인 Emperor의 어원이 되었다.

EX 4. 카이사르 (Caesar)는 독일어로 황제인 카이져, 러시아어의 차르의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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