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겹의 인연이란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 물안개, 류시화 -
왠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런 저마다의 애잔하고 누추한 기억의 서랍 하나쯤은
누구나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법이다
막상 열어보면 으레 하찮고 대수록잖은
잡동사니들만 잔뜩 들어있는 것이지만
그 서랍의 주인에겐 하나같이
소중하고 애틋한 세월의 흔적들이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서랍속 먼지 낀 시간의 흔적들과
꿈, 사랑, 추억의 잡동사니들까지를 함께 소중해하고
또 이해해주는 일이 아닐까
추억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고
그러므로 그걸 지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모든 인간은 누구나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 아름다운 기억의 서랍, 임철우 -
문을 열자 더운 기운이 훅 끼쳤다
나는 밖에서 "참 따뜻하네요"했고, 동시에
여자는 안에서 "상괘한 공기가 들어오네요"했다
사랑은 늘 그랬다
완전히 다른말이면서도 같은 동행
만나야 할 이유도
헤어져야 할 이유도
늘 함께하는 동시였다
내가 너를 향하고 있는 내내
- 사랑은, 오철수 -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이외수 -
너를 보내고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찻잔은 아직도 따스했으나 슬픔과 절망의 입자는
내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어리석었던 삶의 편린들이여, 언제나 나는 뒤늦게 사랑을 느꼈고
언제나 나는 보내고 나서 후회했다
그대가 걸어갔던 길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는데
툭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눈물이었다. 한 줄기 눈물이었다
가슴은 차가운데 눈물은 왜 이리 뜨거운가
찻잔은 식은지 이미 오래였지만 내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 슬픔, 내 그리움은 이제부터 데워지리라
그대는 가고, 나는 갈 수 없는 그 길을
나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할까, 안개가 피어올랐다
기어이 그대를 따라가고야 말 내 슬픈 영혼의 입자들이
- 너를 보내고, 이정하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 풀입에도 상처가 있다, 정호승 -
비벼봅니다
비벼봅니다
존슨을 비벼봅니다
귀듀를 비벼봅니다
- 야동왕김♡탁 -
사소한게 바로 생활이고 그걸 모은게 인생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여 인생의 물줄기를 이루게 된다고
사소하게 생각한 잘못들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마침내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거야
- 배려, 한상복 -
관계는 외로움 앞에서 만큼은 항상 냉정했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면 관계는 시작되지 않았으며
둘이어도 외롭다면 관계는 끝이 났다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우리의 외로움을 나누어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찰칵찰칵 잊지마 힘든 오늘은 멋진 추억이 될거야, 송창민 -
사람은 삶의 준말이다
사람의 분자와 분모를 약분하면 삶이 된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며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 부터 온다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오고
재미있고 즐거운 날들은 조금 슬프게 지나간다
- 호텔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