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자유가 더 많은가? 호주가 더 많은가?
처음 호주에 온 외국인들은 호주가 자유롭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나라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자유와 이 자유는 틀리다. 호주의 자유는 엄밀히 따져보면, 환경에서 오는 풍요와 여유 그리고 서로의 무관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 자유라고 한다면 자유는 세상 어디선가 얼굴을 맞대고 궁시렁 거릴 것이다.
자유의 반대말은 구속이나 제재이다. 호주의 자유 속에는 온갖 구속이 꼬물거리고 있다. 군집생활, 사회생활에서 자유와 구속은 서로 평형을 이뤄야 한다. 구속이 자유를 잠재워버리면 DPRK (북한)이란 사회가 되고, 자유가 구속을 잠재워버리면 무질서가 나타난다. 한국인들은 자유의 실체를 이해못하는 민족인 것 같다. 한국에는 어떤 것이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자유인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유의 물결이 덮쳤다. 자유는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싫어 혼자 자유를 찾기 위해 무인도에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구속이다.
자유는 안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면 나의 자유를 일부 내놓아야 될지도 모른다. 호주는 자기 집 뒷마당 콘크리트도 자기 마음대로 못친다. 크기나 깊이 등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시멘으로 마당에 만들려면 시청 직원이 직접 개인의 집에 실사를 나온다 ㅋㅋ) 내 땅에서 금이 가던 말던 내 자유인데 그걸 구속한다. 지붕도 구속하고 물받이도 구속한다. 안전에 관한 법이다. 집 뒷마당에 뭔가를 묻기 위해 땅을 깊게 팔 수도 없다. (혹시 지나칠지도 모를 지하 수도관 가스관 때문임. 걍 파다가 걸리면 훅간다) 또한 자기가 심었다 하더라도 큰 나무를 국가의 허락 없이 벨 수도 없다. 환경 때문이다. 이층을 올리는 것도 수영장을 짓는 것도 변경을 하는 것도 하나하나 모두가 허락을 받아야 한다. 내 것, 네 것이 모두가 그렇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이 나라를 이룬다.
한국은 어떠한가? 규제는 찾아볼 수 없다. 크고 작은 간판들은 지나가는 행인 머리 위로 아슬하게 매달려 건물을 둘러싸고 곡예를 한다. 전깃줄은 아무렇게나 공중에 널부러져있고 지탱하는 철제는 녹이 슬어있으며, 길가 대로변에는 각종 이동식 간판이 앞다투어 나와 길을 막는다. 그 사이로 절대 위생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불법 노점상 리어카가 가스통을 놓고 장사를 한다. 한쪽엔 차가 주차되어 자전거와 행인들은 이리저리 피해다닌다. 그 사이에서 호객꾼들이 명함과 팜플렛을 돌려 거리는 쓰레기장을 방불케한다. 국가가 판을 깔아놓고, 싸움이나 사고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막으면 어떨까? 한국인들은 이것을 막으면 구속이라고 한다. 상인들과 한국인들은 촛불을 들고 자유를 달라고 광화문을 메울 것이다. 그들은 말로는 영미권 선진국가처럼 되길 원하지만 그들의 정부를 불신하고 독재로 매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제자리걸음이다.
호주는 네온싸인을 찾아볼 수 없다. 경제가 활성화 되는데도 불구하고 광고의 자유를 막고 있다. 안전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자가 한 눈을 팔게 되어 시야가 흐트러지고, 비바람에 누전과 육중한 무게의 네온싸인이 추락할 위험이 있어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이 그 휘양찬란한 불빛들을 억지로 보지 않아야 할 권리나 시각의 자유도 있다.
한국인들은 자유를 아무때나 막 갖다 붙인다. 언론은 언론의 자유 ,알 권리를 핑계로 현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경쟁하듯 보도한다. 불필요한 모를 권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치인은 노란 리본을 안 달았다는 둥, 유명 코미디언이 골프를 쳤다는 둥, 누가 몇 명을 데리고 문상을 왔다는 둥, 누구는 아직 안왔다는 둥, 눈물을 흘렸다는 둥, 대통령이 가식이라는 둥.... 신문이나 방송 기자들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알 권리에 집착하다보니 죽은 시신의 모습이나 얼굴도 공개하게 된다. 언론의 자유가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를 제한하고자 한국 정부가 나서면 한국인들은 언론 탄압, 독재정부 회귀라고 외친다.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규제는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자유를 위한 보호막이다. 그것은 안전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한국이 교통사고 1, 2위를 다툰다고 한국인들은 걱정이다. 차가 많아서? 인구가 많아서? 도로가 좁아서? 이제와서 그런 것을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인프라를 뜯어 고치는건 부수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다. 이곳 호주나 영국 등 이른바 선진국의 벌금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다. 한방에 서민들은 휘청거린다. 면허가 정지되고 구속이 된다. 높은 놈 낮은 놈이 없다. 액수가 상황에 따라 끝도 없이 올라간다. 이것을 안낼 수도 없다. 해외로 나가던, 무슨 일을 하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런 규제와 엄청난 벌금들이 상가나 주택, 차량, 행사, 사업에 수도 없이 많다. 그래도 사고가 난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이런 선진국의 시스템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가 문제다. 한국인들은 처음부터 이런것들에 습관화 되어있지 않다. 한국인들은 안전도 부르짖지만 자유는 더 부르짖는다. 그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안전을 위해 세금을 높이고, 벌금을 높이고, 규제를 강화하면 그들은 탄압이라고 데모와 촛불을 들고 일어나고 벌금 거부가 생기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 운운하며 바리게이트를 치고 난리를 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믿는 자유다. 그들에게는 안전과는 상반되는 밥줄이 있고, 파벌이 있고, 권력이 있다.
안전도 없이 너무 멀리와 있는 한국. 하나부터 열까지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이 와중에 이렇게 크고 엄청난 사건 사고를 뚝딱하고 끝내버려야 하는 분위기, 그렇게 당하고서도 아직도 남아있는 불신의 근성. 그들은 윗물이 썩을대로 썩었다고 말하지만 아랫물은 아랫물대로 썩었다.
한국 대통령의 능력과 머리는 이런 민족을 데리고 파국에 치닫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 셈이다.
이것저것 정신없게 만들고 붙이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를 잡고 늘어지다 전체를 이뤄내야 할지 모른다. (번역 병맛으로 한듯 원문보고싶다 왜 이 문장이 나왔는지 모르겠음) 정부가 만든 피라미드 같은 뼈대에 국민들이 신뢰하여 계속 살을 붙이는 선진국. 한국인들에게는 고차원의 머리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