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길을 걷는게 후회됩니다

솔리테어 작성일 14.11.26 16: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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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어제 오늘 일인 이 경우네요.


애초 제 댓글은, 조선사...그 중에서도 고종 임금이 차지하는 부분인 대한제국사에 있어서 한국인들이 불필요한 자학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오지랖에서 조선인들이 서양에 가자마자 조선과 조선인들이 미개하다는 걸 깨닫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로


  • 솔리테어 14.11.25 20:14
    사실 고종이 얼리어답터라 이런저런 신문물의 맛뵈기는 한양에서도 가능했답니다. 생산성이 떨어져서 소규모였을 뿐이지...그래서 일찌감치 외국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대한제국이 일방적으로 미개하다는 자학적인 것보다는 선진국이 탄탄한 국가 재산을 바탕으로 국민 대부분에게 시민사회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문명의 편의를 널리 베풀 수 있다는 평등 사상과 건전한 독립 국가로에 대한 부러움과 그에 대한 돌입의 필연성 같은 것들을 느꼈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이미 갑오개혁 이전 시대에 일본에 가서 신문물을 보고 크게 놀라 설레발 쳤던 김옥균이 청나라로부터 독립하고 조선을 개혁하겠다는 사상을 가지고 일본도 협력해주겠다는 허울 좋은 수작에 걸려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이 돈 적게 들여서 조선 꿀꺽해보려다 일이 안될거 같으니까 통수쳐서 김옥균을 버려서 삼일천하로 끝나게 만들었고 훗카이도에 김옥균을 연금시켰다가 나중에는 청나라에 암암리로 팔아먹고 암살당하게 만들어, 민족주의적인 사상 없이 그냥 외세의 힘을 빌어 문명 개화시키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당시의 대한제국 시대 지식인들은 너무도 잘 알게 되었거든요.



이런 댓글을 달았죠.


근데 이 댓글을 보고 제가 '조선의 지식인들이 개화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라고 말했다질 않나, '모든 개화(특히 근대화에서의 그것)에 민족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지 않나로 독해력 떨어지는 애가 하나 매달리더군요. 그리고 심지어는 대한제국이 근현대사에서 자주적으로 아무 것도 한게 없다는 식민사관까지...


도중에는 명성황후 민씨 이야기도 나왔는데, 명성황후 욕할거 같으면 사실 명성황후가 조선의 국력 약화에 가져온 몇가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들 가지고 비판은 해도 되는데, 그래도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삼각 줄다리기 외교로 일본이 일찌감치 조선을 식민지로 병탄하는 것을 막는 데에 외교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라는 잘 알려진 얘기라든가, 대한제국의 지식인들과 대중들에게 민족주의가 중요했다는 얘기라든가 이런 것들을 그냥 다 헛소리로 치부한다든가 제가 명성황후 후빨을 한다면서 명성황후 욕먹는 인물인데 왜 옹호하느냐, 설문조사해서 명성황후 싫어하는 사람 많으면 니가 잘못된거다, 이런 수준 낮은 이야기를 듣게 되네요.


간단한 한문장짜리 글이나 단어도, 읽기가 싫은건지 봐도 이해가 안되는건지 '논문 열람 사이트 권한이 없으면 PDF로 복사해서 줄까?'라는 말을 '나는 논문 열람 사이트 권한이 없다 ㅜㅜ'로 받아들이질 않나, '식민사관' 위험한 거라고 지적했더니 자기를 왜 '민족사관'이라고 부르냐고 항의하질 않나...


뭐 같은 말 수십번 설명해줘도 소용이 없고, 제가 아는 책 몇권 골라서 읽어보라고 권유해줬더니, 사진을 찍어 보내랍니다. 사진 찍어보내줬지요. 추천해준 것들 중에서 호머 헐버트 박사가 지은 '대한제국 멸망사'는 단권짜리 책도 아니고 여러 시리즈 출판물의 양장본인거라 제 평생 소유해본 적 없는 책이고 해서 일부러 제가 있는 학교 도서관 보존 서고에서 찾아다가, 식민사관을 떨칠 수 있는 부분들의 페이지까지도 한장 한장 찍어서 보라고 보내줬습니다. 개중에는 제가 있는 연구실 책이나, 또 제가 차지하는 또 다른 책상...지도교수님 연구실에 있는 책도 있어서 몇몇개만 보내줬죠. 근데 반응이 대단히 재밌습디다.


봐라, 역시 대여한 책이지 않느냐, 대여한 책 가지고 유세떨거 같으면 나도 상대성 이론 공짜로 빌려와서 사진 찍어 보내주마. 이런 반응이랍니다. 


사실 읽을 생각도 않고 사진 찍어 보내달라는 데에서부터 어이가 없긴 했는데, 뭐 그래도 읽는 척이라도 하든가 아니면 제가 찍어보내준 페이지라도 보라고 굳이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이런 태도죠. 그래서 다시 말했습니다. 내가 읽지도 않은 책을 가지고 댁의 그 질문에 답변이 되는 책을 골라주고 내 주장을 보완해주는 책들을 선정했겠느냐, 읽어나봐라. 그리고 읽어본 다음에 나를 테스트 해봐라, 내가 읽고 이해하고 있는가 아닌가. 


그래도 앵무새 같은 대답입디다. 대여한 책 사진 찍어서 보내는 건 누구라도 한다고. 제 평생 못 가져볼 양장본,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보고 좋은 책이라고 기억해서 권유하는걸 그냥 읽어볼 생각도 없이 사기꾼으로 모는거죠. 왜 그러는지는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닙니다만...


갈수록 인문학의 존재의의에 대해 스스로의 신념이 없어져가네요. 인문학적 지식이나 선의는 적어도 한국 세상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가 봅니다. 슬프네요. 사실 이 일 말고도 사람의 말이나 인문학적 도전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가로 충분히 고생 중인 상황이라...


제가 좋아해서 택한 인문학이지만, 가끔 저 스스로나 학문 그 자체에 대해 화가 납니다. 그냥 인문학적 이론의 실패조차 아니고, 한 사람 붙잡고 이미 잘 알려진 인문학적 상식 알려줘도 이 정도의 반응만이 되돌아온다면, 제가 뭣 때문에 학문을 하고 또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회의가 들 지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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