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작가

레미제라 작성일 14.12.29 11: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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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베르사유는 찬란한 전통에 세련된 현대성을 가미하기 위해 2008년부터 세계적인 현대 미술 작가들을 초대하고 있다.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자비에 베이영 등이 그간 전시를 열었는데, 올해는 한국 작가 이우환이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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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 태양왕 루이 14세는 유럽 최고의 건축가, 유사 이래 최고의 조경 설계가인 앙드레 르 노트르(1613~1700)를 동원하여 대표적인 프랑스식 건축과 정원을 세웠다. 루이 14세는 이 완벽한 궁전에 흠이 될까 봐 화장실도 만들지 않았다. 그 결과, 당시 베르사유 정원의 구석구석에서는 오물 냄새가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이 냄새는 생각의 완벽함과 실제 삶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잘 대변했다. 그 후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이성의 절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하고, 미셀 푸코는 ‘인간은 죽었다’고 공포했다. 그리고, 이우환은 ‘이우환 베르사유’(2014. 6. 17~11. 2) 전시를 통해 어떻게 개념의 완벽함을 극복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베르사유는 찬란한 전통에 세련된 현대성을 가미하기 위해, 2008년부터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와 같은 세계적인 현대 미술 작가들을 초대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 작가 이우환이 초대되었다. 그는 1968년부터 일어난 일본 ‘모노파’의 중심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파리 주드폼 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본 시립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고, 베네치아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 등 주요 국제전에 참여해왔다. ‘이우환 베르사유’전에는 총 10점의 거대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1점은 프랑스식 클래식한 스타일의 궁전 내부에, 9점은 르 노트르가 설계한 완벽한 정원에 설치되었다.

필자는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의 집필을 위해 작가와 2008년부터 인터뷰를 해왔다. 이 글에서 베르사유 전시 관련 인터뷰는 2014년 상반기에 그의 파리 아틀리에에서 이뤄졌으며, 그 외는 위의 저서에서 인용 및 발췌했다

17세기 예술가 르 노트르와 끊임없는 대화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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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항-대화 X산업 사회의 상징인 철판과 자연의 상징인 돌로 구성된 작품. 작품의 배경으로 베르사유궁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작품과 베르사유궁 사이에는 수를 놓듯 정밀하게 짜놓은 화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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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항-별들의 그림자 세월을 따라 산화된 느낌을 주는 철판이 담장을 이루고 있고 그 안에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 눈부시게 하얀 작은 돌들이 바닥을 이루고 있고, 그 위에 일곱 개의 커다란 돌이 북두칠성처럼 내려앉아 있다.

 

“내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짜낸 것 같아요. 아마 이렇게 큰 전시는 앞으로 없지 싶어요.” ‘이우환 베르사유’ 전시 오프닝을 마치고 한숨을 돌린 작가의 말이다. 베르사유가 얼마나 전시하기 힘든 곳인지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베르사유는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 어쩌면 이우환은 르 노트르와 2인전을 하는 심정으로 전시를 준비했을 수도 있다. 더욱이 이우환은 이 거대한 실외 전시장의 일부분만을 사용하여 조각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정원의 입구부터 정원 끝에 있는 1650m 길이의 거대한 대운하까지 포함시켜 작품을 했다. 예를 들어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라는 작품은 정원의 입구에 있는 작품이 수평적으로는 정원 끝에 있는 대운하와 교류하도록 했으며, 수직적으로는 베르사유 궁전과 하늘에 새로운 울림을 주었다. 아치가 탄력성에 의해 수평으로 되는 것을 막으려는 듯이 아치의 양끝에는 거대한 돌이 하나씩 놓여 있다. 아치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본래 색일 뿐인데도 건물을 배경으로 보면 건물의 색조와 비슷해 보이고, 하물며 날씨에 따라 하늘의 색깔과도 닮아간다. 가장 놀라운 것은 아치 아래에 놓인 철판이 저 멀리 가물가물 보이는 대운하와 색깔뿐만 아니라 형태까지 교묘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Q : 선생님의 전시가 시작된 지 며칠도 안 되었는데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가 벌써 베르사유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이 아치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아치를 생각하게 되었나요

작년에 전람회가 결정된 후여러 번 베르사유 정원을 거닐다가 문득 내가 어렸을 때 본 무지개가 떠올랐어요. 그 무지개로 인해 새롭게 하늘을 발견하는 것처럼,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를 통해 베르사유의 공간이 다르게 발견되기를 바란 거예요. 르 노트르가 만든 정원은 완벽해요. 이 완벽함을 넘어서서 완벽함을 극복하려는 것이 내 생각이었습니다


Q : 선생님의 철학적인 깊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몇몇 프랑스 매체는 이번 베르사유 전시가 ‘철학에의 초대’가 아닌지를 묻고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어요. 그저 감성적으로 느끼면 되는 거예요. 하물며 내 이름을 모르더라도 작품들을 보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아요. 작품을 위해 철학적으로, 사상적으로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작가들의 몫이에요. 작가들은 내가 늘 [개자원화보](1675, 중국 청나라의 미술 교과서)를 인용하여 말하듯이 많이 읽고, 다니고, 봐야 해요.


Q : ‘관계항-별들의 그림자’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좀 상반되던데요. 철 담장 안의 돌들 중에 돌 두 개의 그림자는 서로 키스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에로틱한 느낌 때문인지, 바로 이 작품 옆에서 한 젊은 커플이 포옹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담장 밖에 머물러있던 한 신사는, 담장 안에 있는 젊은 커플이 거룩한 성소를 범한 것처럼 속상해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데, 이분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젊은 커플을 담장 밖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선생님 작품에 대한 이처럼 상반된 해석이 제 눈앞에서 행위로 표출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술 작품은 양면성, 삼면성, 다면성이 있는 것이 흥미롭고, 단면적인 답을 가진 작품을 볼 때는 오히려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오해의 여지가 있더라도 좀 더 멀리, 좀 더 깊이, 좀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기를 가진 작품이 중요하다고 봐요. 이미 심은록씨와 여러 차례 인터뷰하면서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베토벤은 우주적인 다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합창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1824) 같은 경우에는 유럽연합의 공식국가이자, 인종차별국인 로디지아의 국가(현재는 짐바브웨)의 멜로디로도 사용되었어요. 나치의 주요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주 연주되던 곡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나치에 대한 저항의 상징 이었어요(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환희의 송가’가 불려졌다). 현재, 합창 교향곡은 전 세계 다양한 입장의 국가들이 송년 음악회에서 가장 많이 연주하는 곡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의 곡이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는 거예요. 베토벤이 살아 있으면 나치나 어떤 나라에서 자기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기분 나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놀라운 거예요.


Q : 양의적인 작품이네요. 양쪽 극 사이를 오가며 무수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요

진리라는 것이 그런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과거에는 양쪽 극을 대립시켜놓고 한쪽 극에서 진리를 찾았다면, 현재의 진리들은 이 양극의 중간에 쭉 널려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 작품의 존재 이유, 위대성을 이야기하려면 역시 답이 아니라 답과 의문 가운데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봅니다.

“작품의 원천은 내 조그마한 인문학적 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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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항-무덤, 앙드레 르 노트르를 경애하며 예술의 신 아폴론이 님프에 둘러싸여 목욕을 하는 동굴 앞에 네모반듯한 구멍이 파여 있고, 그 안의 철판으로 된 바닥 위에 거대한 돌이 앉아 있다. 마치 죽은 자의 외출을 막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데, 작가 이우환이 베르사유 정원을 설계한 르 노트르를 경애하며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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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 철 무지개는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곱 색깔 무지개보다 더 다양하게 색을 바꿔나간다. 그 아래에는 철 무지개와 똑같은 재질과 크기의 철판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베르사유 정원 입구에 세워진 이 작품은 정원의 끝에 있는 인공 대운하까지 연결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Q : 선생님은 1년의 절반 이상을 유럽에 계시고, 또 유럽에서도 이리저리 다니며 처음에는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일본 가서 조금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저 사람은 한국 사람이다” 하고 따돌림을 받고, 한국에 발을 들여놓으면 “일본 냄새 피우는 자”라고 하고, 유럽에 와서 무명일 때는 괜찮았는데, 이름이 나기 시작하니까 이번에는 “저 사람은 아시아 사람이다 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있는 작가로 취급을 안 했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같은 느낌인가요

노마드와 같은 삶이 40여 년이 되었어요. 무섭고, 부끄러운 일, 우스운 일, 별의별 일을 다 당하다 보니까 용기가 생겼는지, 완전히 엉망이 되었는지,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 내가 끼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내가 설 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지 내가 설 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Q : 옛날의 예술과 현재의 예술은 그 역할이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커다란 뜻이 없으면 ‘뜻도 없는 예술을 왜 하느냐’고 했습니다. 오늘날은 예술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더라도 느낌과 생각을 준다든가, 뭔가 공기를 전환시키거나 통과 지역적인 역할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경로의 사람들이나 여러 영역과의 대화 혹은 관계를 제시하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예술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Q : 그래서 예술가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복잡해졌습니다

현대 예술가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해야 하고, 동물들과 사물들까지 대화는 아니지만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예술가들은 늘 의문만 있고 답에 대해 거부 반응을 느끼는, 그래서 종교가는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때로는 조그마한 희열도 있지만 그것에 빠져 있어도 안 되거든요. 그래서 예술가나 철학자는 항상 불안합니다.


Q :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선생님께 조언을 구한다면요

나는 조금 전에도 언급했던 [개자원화보]의 서문 구절을 인용하곤 해요. “만권을 독파하고, 가슴에 만감을 품고, 만리의 길을 간 다음 그림을 그려라.” 즉 많이 읽고, 많이 느끼고, 바깥에도 많이 나가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문학 책을 참 많이 읽었어요. 오늘날까지 나를 버티게 해준 70%는 내 조그마한 인문학적 소양이고, 지금 예술을 하는 데 엄청난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Q : 선생님도 그 지침들을 늘 실천하시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파리에 올 때마다 중요한 전시는 모두 관람하시는데, 이번에는 다른 전시는 못 보셨을 것 같네요

퐁피두센터에서 ‘마르시알 레이스’,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루치오 폰타나’, 팔레 드 도쿄에서 ‘히로시 스기모토’, 그랑 팔레에서 ‘빌 비올라’… 카멜 므뉘르 갤러리스트가 초대해서 다니엘 뷔렌이 처음으로 무대 장치를 한 발레도 보고 왔어요.


Q : 그 바쁜 와중에도 중요한 전시는 거의 다 보신 것 같습니다. 프랑스 요리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프랑스 요리는 데카르트의 자손답게 ‘셰프의 요리’입니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가지고, 맛이나 프레젠테이션 등 모든 면에서 셰프를 느끼게 하는 요리이어야 합니다. 가령 조엘 로뷔숑의 요리를 보는 순간 ‘아! 이 요리는 조엘 로뷔숑이구나’ 하고 떠올려야 합니다. 요리가 조엘 로뷔숑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고, 먹을 때도 로뷔숑을 먹어야 하고, 로뷔숑을 100% 음미해야 합니다. 물론 고객의 주문을 세프가 어떻게 이뤄냈는가 하는 해석과 판단은 있어야 하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셰프를 먹어 삼켜야 하는 겁니다. 마치, 근대의 화가가 완벽한 콘셉트로 그림을 그리면 화가가 그린 의미를 그대로 몽땅 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Q : 직접 요리도 하십니까

옛날에는 꽤 관심도 있고 요리도 했는데 지금은 안 해요. 아내가 “이 사람은 입으로 요리를 한다”며 싫어하고, 또 나도 바빠지다 보니까 시간도 없어요. 한동안은 내가 셰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요리는 마치 조각과 같거든요. 시장에서 서로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재료들을 사다가 요리조리 하모니를 맞춰서 요리를 하듯이, 자연에 있는 무수한 돌 중의 하나와 철공장의 무수한 철판 가운데 하나를 가져다가 이리저리 맞춰보며 작품을 해요. 요리나 조각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가 결국 하나의 작품이 되는 거죠. 그런데 사실 이것들은 이미 어떤 관계에 있었던 것을 다른 양상으로 짜 맞춘 것이라는 슬픈 자각도 듭니다.


Q : 요리와 조각의 관계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프랑스 요리는 그 완벽함이 르 노트르에 의해 루이 14세의 의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실현된 베르사유 정원과도 비슷하고요.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프랑스 대중 매체의 보도에서 이번 전시가 베르사유 정원을 새롭게 해석했다며 감사해하는 뉘앙스를 느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시와 달리 서로 조화되는, 즉 작품도 살고 정원도 살렸다는 평판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정원과 대화할 수 있는 작품을 생각했어요.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가져다 설치한 것이 아니라 르 노트르와의 끊임없는 대화 가운데 설치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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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아, 그런 차이가 있었군요. 2008년 제프 쿤스가 베르사유에 전시한 대부분의 작품은 이미 제가 알고 있던 작품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전시였습니다. 작년에 페노네가 보여준 작품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 역시 다른 곳에서 이미 전시되었던 것이고요

그래서 한 미술 전문가가 내게 “당신 때문에 다음번에 전시할 작가들이 곤란하게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공장에서 만들어놓은 오브제를 그대로 갖다 놓기가 어려워졌다는 의미예요(웃음).

베르사유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 중에 ‘관계항-사방(四方)의 메신저’가 있다. 이 조각은 네 개의 돌과 네 개의 철판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돌은 멀리서 철 양탄자를 타고 세상을 돌다가 우연히 정원의 네거리에서 마주친 듯 그렇게 모여 있다. 돌과 철판으로 구성된 네 커플은 각각 동쪽에서, 서쪽에서, 남쪽에서, 북쪽에서 온 것 같다. 그들은 아시아로부터, 아메리카로부터, 아프리카로부터, 북극으로부터 오면서 겪은 기나긴 모험을 말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파리의 한 미술관에서 이우환의 조각이 전시되었을 때였다. 한 젊은 프랑스 비평가는 자연석과 철판으로 구성된 조각을 가리키며 “왜 돌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떠들게 두는지” 항의하듯이 작가에게 물었다. 당시만 해도 서구에서는 한갓 오브제일 뿐인 돌과 철판이 오브제 이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상당히 기분 나빠하며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은 “외부(돌과 철판, 이를 둘러싼 자연)가 관람객들에게 말을 걸어 오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작가의 당시 조각도 오늘의 베르사유 조각도 자연의 상징인 돌과 산업 사회의 상징인 철판 혹은 철봉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평범한 돌을 자연으로부터 가져다 놓았고, 공장으로부터 평범한 철판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그는 멀리서 온 돌과 철판이 새로운 장소에서 낯설지 않도록 다독거리고 달랜다. 돌과 철판이 베르사유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때 작가의 오랜 다독거림이 끝나고, 돌과 철판은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넨다.

현대미술가이우환사물에 존재감을 부여하고 사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일본의 획기적 미술 운동 모노파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하고,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후 도쿄 다마미술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 등 주요 국제전에 참여했고, 파리 주드폼 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본 시립미술관, 서울 삼성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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