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최악의 학살 사건.JPG

엽기게시판 작성일 21.10.10 20:04:49 수정일 21.10.11 23:27:13
댓글 22조회 14,355추천 28
28d6814f309ea289f847c69cf91194c6_427662.gif
7db2dcec6c0ea005f2b12bb377431bd8_846198.png

 

 

9988361af1716f564f656d101236903a_187045.png

 

 

ce0e33329753a25ba5e704b83ea51d02_239377.png

 

 

3fcda428cc8db546e3edcc066fdf5756_912707.png

 

 

62dbf7b51acf4a87d0390a40a5db558e_295872.png

 

 

 

9bad313e6709a3f6d6f5ccd36e6c1578_548451.png

 

 

 

f48a46fc8ae93a7bcce731f0571da3af_250932.png

 

 

장평전투 후 진나라의 백기(白起)가 조나라 병사 40만의 포로를 생매장한 사건

 

 

전투는 끝났다. 그러나 결말은 아직 나지 않았다. 

한꺼번에 40만이라는 엄청난 포로를 받게 된 진나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많은 포로를 먹일 군량이 진나라에는 없었다. 

 

 

결국 백기(白起)는 끔찍한 선택을 했다. 

 

백기(白起)는 조나라 군사들이 조를 나누어 구덩이를 파게 한 후, 그곳에 군사들을 묻어버렸으며, 

전투 후에 취한 조나라 군사들의 수급을 모아 영루(營壘)에 쌓게 하였다. 

백기는 이 산을 두로산(頭顱山)이라 부르고, 이 산 꼭대기에 지은 누각을 백기대(白起臺)라 불렀다.

 

 

 

훗날 한 시인이 이 참담한 장면을 다음의 시로 지었다 전한다.

 

“ 高臺八尺盡頭顱

何止區區萬骨枯

矢石無情緣鬪勝

可憐降卒有何辜

 

팔 척 백기대 모두가 두골이니,

장수가 공 이루려면 일만의 뼈가 뒹군다는 것은 옛말이라네,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니 화살과 돌에는 사정이 없다하나,

항복한 군사에게는 무슨 죄가 있을까"

 

 

이러한 행동으로 얻게 된 효과는 상당했다.

 당시 다른 5국에 경고하는 의미(진나라에 대항하는 자는 죽음 뿐이다)도 있었으며, 조나라에게는 항전의 의욕을 완전히 꺾어버린 것이었다

. 게다가 농사를 지을 남자들이 거의 남지 않게 된 조나라는 이후 완전히 몰락해 버리고 말았다. 

 

다시는 예전의 힘을 회복하지 못한 조나라는 결국 약 30년 후인 기원전 228년 멸망하고 말았다.

 

 

 

엽기게시판의 최근 게시물

만화·웹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