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경기도 용인의 한 비닐 하우스. 쌈채소의 일종인 청겨자잎과 적겨자잎 등을 재배하는 이 농장에선 정체 불명의 약품을 뿌리고 있었다. 비닐 하우스 주인인 A씨(33)는 “중국에서 들여온 농약이어서 ‘중국약’ 혹은 ‘영양제’라고 부르는 약품”이라며 “이 약을 뿌리면 경매에서 2배 이상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1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그는 “겨자 적겨자 케일 같은 쌈채소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 약을 쓴다”면서 “우리가 농사를 짓긴 하지만 약을 친 채소는 안 먹는다”고 말했다.
하얀 가루 형태인 ‘중국약’은 포장도 없는 상태에서 300g당 1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을 통해 몰래 들여온 것으로 보이는 이 약품은,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고발에산다’ 취재진은 수도권의 쌈채소 농가를 뒤진 끝에 문제의 약품을 입수할 수 있었다. 정확한 성분을 알기 위해 농촌진흥청에 분석을 의뢰했다. 농진청은 문제의 약품이 파클로부트라졸(Paclobutrazol)이 상당량 포함돼 있다고 분석했다.
파클로부트라졸은 생장조정제의 일종으로 식물의 성장을 느리게 해 더 단단하고 싱싱해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농진청 신진섭 농약연구관은 “파클로부트라졸은 저독성 농약이어서 인체에 큰 위해는 없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식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 사용 자체가 불법”이라고 말했다. 농진청 안인 농업자원과장은 “불법 농약이 뿌려진 채소는 시중에 유통될 수 없다”며 “농협과 식의약청, 농산물품질관리원 등 3중으로 검사를 하기 때문에 안 걸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농진청의 장담과 달리, 파클로부트라졸에 오염된 쌈채소는 시중에서 쉽게 발견할수 있었다. ‘고발에 산다’ 취재진이 시중의 농산물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쌈채소의 잔류농약검사를 전문 기관에 의뢰한 결과, 파클로부트라졸이 다량 검출됐다.
파클로부트라졸은 미등록된 농약이어서 잔류허용기준치가 아예 없다. 다만 수입 농산물에 대비해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정한 최저기준치는 0.05ppm였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시중의 청겨잎과 적겨자잎에서 각각 1. 07ppm과 3.07ppm의 파클로부트라졸이 검출됐다고 통보했다. 최저기준치의 60배가 넘는 양이었다. 농민들은 “식물의 성장이 더딘 겨울철이라 적게 뿌리고 있다”며 “봄 여름에는 더 많은 양을 뿌린다”고 말했다. 파클로부트라졸이 미등록된 농약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미등록 농약에 오염된 쌈채소는 2중3중의 검역망을 쉽게 피해 나갔다. ‘중국약’을 뿌리는 농가에선 “우리도 농약검출 걸리면 60만원의 벌금을 낸다”며 “하지만 약을 쳐서 받을 수 있는 돈이 더 많으니까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길러진 쌈채소는 대형 농산물시장에 모인다. 서울 가락시장 같은 대형 유통단지에선 경매에 앞서 자체 검사를 실시하지만 경매 도중에 들어오는 농산물에 대해선 농약 잔류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한 농민은 “농약을 많이 뿌려 불안한 농민들은 경매에 늦게 들어오든지, 이름을 적지 않고 경매에 내놓는다”며 “어떤 동네에서 오는 차들은 항상 늦게 들어온다”고 말했다.
경매에서 낙찰된 쌈채소는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고 팔려나간다. 이렇게 팔린 쌈채소는 일반 시장이나 마트는 물론이고, 쌈밥집 갈비집 등 식당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한국작물보호협회 박운환 이사는 “비록 인체에 큰 위해가 없더라도 미등록 농약 사용은 불법”이라며 “파클로부트라졸이 해외에서 인증 받아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후와 재배방법에 따라 안전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