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하루 감옥체험에 함께한 배우 박광정. 45년 세계최장기수 김선명과 양심수 석방을 위한 캠페인 “하루감옥체험”은 비전향장기수들이 모두 석방된 99년까지 변호사, 영화배우, 교수, 의사, 종교인, 방송인, 시인, 만화가 등 100여명이 참여하여 갇힘의 시위를 벌였었고 그는 그 공간 속에 있었다.
2002년 자신의 연출작인 <진술>을 영화로 만들겠다던 그. 우연처럼 연극을, 숙명처럼 영화를 받아들였다던 그가 자신의 연출작이었던 1인칭 연극<진술>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하여 연극연출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을 꾀하던 그를 만났다. 나중에 그는 이때를 회상하며 <씨네21>에서 <진술>을 만든다고 인터뷰 사진 찍을 때는 결의에 차서 열심히 만들려는 표정이었었다고 했다.
그때 그는 첫 주연인 이 영화를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지만, 분노나 현실 때문에 실행치 못하는 행동을 풀어내는 영화”라고 설명했었다. 실제 촬영현장에서 그의 연기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그는 도장 모양의 모형물을 옮기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도장가게 앞에서 가게열쇠를 찾으며 쭈쭈바를 빨고 있는 피곤하고 찌질해 보이는 그의 모습 속에서 스티브 부세미가 오버랩된다. 스티브 부세미가 그를 닮은 걸까 그가 스티브 부세미를 닮은 걸까?
화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저 ‘*’이란 말을 도장에 새겨 넣는 극소심남을 연기했던 그가 첫 주연작으로 국제어메이징탤런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2005년 7월, 두 번째로 영화감독을 준비한다는 그를 만났다. 사실 지난번 인터뷰에서 <진술>로 감독 준비 중이란 인터뷰를 한 후 영화가 미루어지는 등 순탄하지만은 않았기에 극구 인터뷰를 사양하는 그를 억지로 끌어낸 인터뷰였었다.
그날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끝낸 후. 저녁식사를 하던 중 계속 영화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음을 아쉬워하는 그에게 나는 어쭙잖게도 요번에는 틀림 없을 거라는 말을 건넸었다. <씨네21>에서 가끔 하는 기획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영화를 준비중인 감독들 묶음 인터뷰이다.
항상 취재를 하다 보면 그들 중 반은 어떤 이유에서건 영화화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걸 알면서도 그때 나는 그의 영화는 꼭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건넨 것이다. 그만큼 그가 만든 영화가 궁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7년 4월 인터뷰를 위해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그러고 보니 연극과 영화와 tv를 넘나들며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그였지만 인터뷰는 항상 대학로에 있고자 했던 그의 의지대로 대학로 거리의 어디선가에서 이루어졌었다.)그와 약속한 카페에 도착해서 미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무수히 붙였다 떨어지는 포스터들에 의해 테이프 자국들로 가득한 벽면이 보인다. 오케이 바로 이곳... 이 벽면처럼 그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 있을까 싶다.
긴 인터뷰를 끝내고 그는 준비중인 연극 <죽도록 죽도록>을 연습하기 위해 극단 파크의 사무실 겸 연습실로 향한다고 했다. 갑자기 연출가로서의 그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같이 간 취재기자도 마음이 통했는지 잠시만 연습모습을 볼 수 있을지를 묻자 그가 흔쾌히 극단 파크의 사무실 겸 연습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내가 정작 박광정이란 한 사람한테 반한 때는 이때였다. 비좁은 공간에서 배우들과 호흡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가 사는 이유를 보았다.
꼬불꼬불한 대학로의 뒷길을 걸어가면서 도착한 그의 지하 연습실에는 단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그의 등장만으로도 지하공간이 가득 차옴이 느껴진다. 인터뷰 때문에 미처 하지 못한 식사를 떡볶이와 김밥으로 대신하며 시작한 그날의 연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를 더해갔다.
조영진, 정해균, 임영식 등 배우들의 또박또박 떨어지는 대사들이 에너지의 파고를 줄였다 높였다 한다. 고작 빗자루를 들었다 놨다 들썩이고, 트레이닝 같은 옷만 걸치고 왔다 갔다 할 뿐인데... 땀 냄새 살 냄새가 풀풀 난다.
배우들의 연기가 널뛰기를 할 때 “미안하지만 그 부분에선 말이야”로 시작하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어느 큰 목소리보다도 더 강한 카리스마가 전해진다. ‘배우 스스로 가장 즐겁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그의 연출자로서의 모습에 나는 한껏 취해 버렸었다. 준비된 무대처럼 조명이 있는 것도 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의해 나는 이미 나만을 위한 한편의 연극을 보고 나온 셈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짧고 굵게가 아닌 길고 가늘게’를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카메라의 앞에서가 아닌 카메라의 뒤에서 연극 연출 할 때처럼 카리스마를 뿜어 냈을 그의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씨네21>인터뷰 당시 그가 말했던 영화들의 스놉시스를 다시 읽으며 그가 만들었을 영화들을 상상해 본다. 처음부터 계속 준비 중이던 <진술>의 시놉시스이다.
주인공인 '나'는 40대의 국립대학 철학교수다. 10여 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18살의 소녀와 결혼했던 그는 신혼여행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그곳을 찾는다. 여관에서 자고 있던 그는 형사들에 의해 다짜고짜 경찰서로 끌려간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는 손위 처남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이미 8년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정신과 의사인 처남을 살해한 뒤 여행지로 도피했다는 경찰의 주장에 그는 격분한다. 그는 차분히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하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는 특히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는 말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극구 설명한다. 그리고 나이 어린 아내가 유학생활 동안 얼마나 심한 고생을 했는지, 타지에서의 빈곤한 생활 중에도 부인과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사랑을 나눴는지를 얘기한다.
하지만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전 부인이 이혼해주지 않아 제자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 것이고, 아내의 죽음을 부정하는 정신병 환자일 뿐이다. 점차 현실과 환상은 뒤섞이고, 그가 체온으로까지 간직하고 있는 애절한 사랑은 그의 머릿속 상상인지, '현실적 현실'인지 갈수록 애매모호해진다. 그의 '진술'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이 도대체 무엇이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어디인가.
두번쨰로 준비 중이던 영화 <가마다 행진곡>의 시놉시스이다. 어느 단역배우의 순정에 관한 영화다.
일본 현대연극의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인 쓰카 고헤이의 작품을 영화화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단역배우 야스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스타 긴시로를 따라다니며 ‘가방모찌’를 자처한다.
긴시로는 소문난 바람둥이다. 시대극 <신선조>를 찍던 중에 배우 고나츠를 임신시키고 이 사건이 황색언론 기자들의 후각을 자극한다. 긴시로는 스캔들이 가져올 치명타가 두려운 나머지 모든 책임을 야스에게 떠넘기려 한다.
야스는 감히 고나츠 같은 스타 배우를 넘겨볼 처지도 못 되고, 고나츠 또한 이런 무책임한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야스는 고나츠와 결혼하고 태어날 아이도 자기 자식으로 거두어들이겠다고 약속한다.
야스는 돈을 벌기 위해 스턴트맨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한다. <신선조>의 계단 추락 장면이 대역을 찾지 못해 촬영이 늦춰지자 야스는 긴시로 대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에 나선다. 고나츠는 야스의 진심을 뒤늦게 발견하고 긴시로를 포기한다.
1982년 일본영화아카데미 8개 부문, <키네마준보>상 7개 부문을 휩쓴 후카사쿠 긴지의 후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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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지나가다 보여서 퍼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감초같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안타깝네여...좋은곳으로 가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