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차가운 작성일 11.05.02 15: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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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스럽게..

-한 남자가 근심이 가득찬 표정으로 횡단보도 앞에 서있다.

-한 손에 들고있는 커피 4잔이 담겨있는 캐리어..

-그것을 바라본채, 생각한다.

' 아... 이제 뭐하지.. '

 

내 나이 28살. 만으로 26살이다.
나이를 만으로 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 어리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이러고 있는 이유..
쪽팔린다.. 그냥 남자로써..
직장 상사의 갈굼과 나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더욱이 내 자신이 참지 못했던 것은 직장 상사가 여자라는 점에서
치욕감을 견딜 수 없다. 
처음 입사해서 직장 상사가 여자라는 점에서 신경은 쓰였지만,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난 직장을 갖은 것에 대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계속 한자리를 파다보면 30살 이후에 대리를 달면..
조금이나마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쩌면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허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나에게 관심을 갖던 몇 몇 사람들은
나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른다.
나는 어디가서도 유머있고, 어디를 가도 꿀리지 않는 외모를 가졌지만
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더 화가난다..
멱살잡고 벽으로 끌고가서 나한테 왜그러냐고 묻고 싶지만..
생각에서만 머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모두들 끼리끼리 모여서 점심을 먹으러 나가지만,
나는 공원벤치에 앉아서 우유와 빵을 먹는게 대부분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도 누구하나 밥먹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발..
결국 입사 후 4개월... 난 마지막을 선택했다.
상사년의 커피 심부름을 받고, 커피를 산 후,
다시 회사로 가려했지만, 그 재수없는 년 얼굴 보기가 싫었다.
여태껏 잘 참았지만.. 누구에게도 한계가 있듯이 오늘이 나의 한계인듯 하다..
그래서 지금 공원으로 향한다.
회사에서 멀지는 않지만, 누구하나 이 곳을 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난 이 곳이 좋다..

-이 남자의 심정을 모르는 날씨..

-화창하고 좋다.

-벤치에 앉은 남자.. 커피를 자신의 옆에 두고 담배를 핀다.

개 데리고 산책하는 여자도 보이고,
한가하게 나무그늘 아래에서 책보는 남성도 보이고,
공원 화장실 청소하는 아줌마도.. 허나 표정은 영 안좋다..
누군가 바닥에 침을 마구 뱉어놨다던지, 변기에 볼 일 보고 물을 안내렸다던지..
아님 막혔다던지.. 왠지 알거 같다..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대체 여기있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한가하게 책보는 남자는 직업이 뭘까..
글쓰는 사람인가.. 왠지 저 사람 방에 가면 호래비 냄세가 진동할 것 같다.
개 데리고 산책하는 여자는 직업이 뭘까..
이 시간에 개 데리고 산책시키는거 보면.. 밤일 나가나..?
참.. 별걸 다 궁금해 하네..
직업없는 사람들은 어디서 뭐할까?
집에서 컴퓨터하고 있던가 이제 자고 일어나서 밥먹겠지..
내가 그랬었으니까..

나도 모르게 수염이 자라고, 머리에는 개기름이 흐르고..
배게에는 냄세가 심하고.. 피부에 각질 생기고.. 밤마다 소주마시고..
어쩔땐 돈이 없어서 십원짜리 오십원짜리 털어서 담배를 사고..
진짜 옷만 잘입고, 통조림 캔 하나 준비해서 사람들 많은 곳에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동전 줄 거 같다.
오히려 그게 더 편한가?
갈구는 사람도 없고.. 그냥 멍하게 앉아있는게 더 힘든가?
막막하다.. 그냥.. 포차가서 한잔하고 싶은데 아주머니는 지금 주무시겠지
지금 집에 들어가면 왠지 하루, 하루를 택배 기다리는 날로 보내야 될 거 같다..
친구새끼한테 전화하고 싶지만.. 뭔가 내 이야기를 하기에는 쪽팔린다.

지금 내 머리속은 ' 어떻게하지? ' 와 ' 술 ' 그리고 ' '꼴보기 싫은 상사년' 이다.
지금 이대로 회사에 돌아가면, 다시 스트레스 받으며 남은 하루를 마무리 할 것이고,
이대로 집으로 간다면 가족들의 눈치가 보일 것이고,
피시방가서 다른 일자리 구하러 가더라도 정장입고 일자리 찾는걸
알바생한테 보여주는게 쪽팔리고..

그냥 멍하니 걷고 싶은데 덥다.. 셔츠입고 땀흘리는 것도 싫고..
셔츠 목 닿는 부분이 시컴해지는 건 더더욱 싫다..


진동이 느껴진다. 익숙하면서 뜨끔해지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게 만드는 이 진동..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통화종료 버튼을 연속으로 누르게 만드는..
나도 모르게 지금 그러고 있다.
습관에서 묻어나오는 건가.. 밖이라서 눈치 볼 사람도 없는데..
웃음이 나온다. 그냥 비웃음.. 이 웃음을 보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그랬다.
' 재수없다 ' ' 느끼하다 ' ' 차인표같다.. '
근데 익숙해졌다. 이미.. 누가 뭐라고 해도 이렇게 웃어왔던 나이기에
바꿀 생각도 없고.. 한번 거울보면서 다르게 웃어봤지만,
내가 못참겠더라.. 재수없어서..
또 다시 진동이 느껴진다. 아 *발..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본다.

역시나 회사번호다. 분명히 전화받으면 ' 빨리 들어오세요 ' 하고
끊겠지.. 재수없는 년..

뭔가 이상하다.. 앞 일이 보인다..
익숙해 진건가, 원래 그런건가..
벌써 이렇게 있는 동안 20분이 흘렀다..

 

" 여보세요 "

" 꿀리지않는 사람씨, 어디세요? 대리님이 찾으시는데.. "

" 아.. "


' ... '


' 음... '

 


' 필름처럼 사삭 지나간다. '

 

 


' 대리년의 표정과 사무실 사람들의 모습들.. 그리고 지금 전화하는
  쌀쌀맞은 동기년의 표정까지.. 맨날 네이트온에서 수다나 떠는 년.. '

' 근데 갑자기 울컥한다.. 눈물이 나올거 같다..
  좀.. 조금이라도 친철하게 말해주면 안되냐.. '

 

 

" 꿀리지 않는 사람씨!? "

" 네. 커피사는 곳에 사람들이 많아서 좀 늦었네요.
  지금 사서 가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

" 네 "

' 뚝 '


*.. 오늘 한번 더 참아보자..
참은 다음, 집에 가기전에 포차에 들러서 닭발에 소주한 잔 마시면서 풀자..

 

-남자는 벤치에서 일어나 상사에게 줄 커피 뚜껑을 연다.

-그리곤 침을 뱉는다.

' 잘마셔라 '


-남자는 익숙한 회사 건물로 향하였고,

-자연스럽게 엘레베이터를 탔고,

-자연스럽게 층수를 눌렀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서를 향했고,

-자연스럽게 상사한테 향했다.

-그리곤 웃으며 커피를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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