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동심의 세계

현화보이스 작성일 11.11.12 23: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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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우린 저 누나를 성폭행 한 게 아니라 저 누나랑 성관계를 했을 뿐이에요!"

"세상 참 말세다, 말세야."

야간 순찰을 마치고 복귀한 경찰들이 가해자 남학생들 머리를 차례차례 때리고 탈의실로 들어간다. 피해자 여학생은 파출소 가장자리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서 얼굴을 묻고 울고만 있다.

"야! 울지만 말고, 네가 이리 와서 설명 좀 해봐! 네가 자꾸 우니까 아저씨가 우리 말을 안 믿잖아! 우리가 널 강제로 성폭행 했어? 말해봐! 너도 좋으니까 가만히 있었던 거 아냐!"

가해자 남학생 중 한 명이 여학생을 보며 소리를 지른다.

"야! 야! 조용히 좀 해! 여기가 너희 집이야!"

나의 굵은 외침은 파출소 안을 다시 고요하게 한다.

"곽순경, 수고해. 우린 그만 퇴근할게."

경찰들이 우르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지나쳐 파출소를 빠져 나간다.

"수고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다시금 조서를 작성하려고 자리에 앉았다.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가해자는 14세 남학생 7명이고 피해자는 15세 여학생 1명. 진술은 이러하다. 피해자 여학생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논 후 달동네 집으로 올라가는데, 가해자 남학생 7명이 달동네를 내려가고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달동네 중간 지점에서 마주치게 되고 피해자 여학생이 술에 취해 제대로 길을 못 걸어서 넘어진다. 그걸 본 가해자 남학생 7명이 우발적으로 충동적으로 여학생을 덮친다. 피해자 여학생을 달동네에서 가장 빛이 안 드는 골목으로 끌고 가서 가해자 남학생 7명이 번갈아가며 여학생을 성폭행 하였다. 마침 현장 골목을 지나가던 동네 아줌마가 성폭행을 목격하고 인근 파출소로 신고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들은 즉시 현장을 덮치고 가해자 남학생 7명을 체포 하였다. 그런데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성폭행을 신고한 동네 아줌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거기, 학생! 보호자 오시라고 했어?"

내가 여학생에게 비수를 꽂는다. 하지만 그 말이 비수인지 몰랐다. 그때까지도...

여학생이 운다. 내가 뭘 어쨌다고 우나? 어안이 벙벙하다. 그 상황을 보고 있던 가해자 6명이 미리 짜기라도 한 거 마냥 동시에 낄낄거린다.

"야! 야! 뭐가 웃겨? 보호자 불러 달라는 게 그렇게 웃기냐?"

"아저씨, 저 누나 소녀 가장인 거 몰라요? 어떻게 경찰이 그런 것도 몰라요. 아저씨, 진짜 경찰 맞아요?"

"...그럼, 내가 진짜 경찰이지 가짜 경찰이겠냐!"

무안한 상황을 회피하려 애꿎은 가해자 머리를 차례차례로 때린다.

"아저씨, 왜 때리는 거예요? 우리가 뭘 어쨌다고!"

"공무방해죄 추가하기 전에 그냥 입 다물고 있어."

 

여학생 거주지는 서울에 위치한 달동네로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고 기초생활수급자로 국가에서 매달 80만원씩 나오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현재 나의 심장을 쿵쾅이는 감정은 뭘까? 연민일까... 동정일까... 보호자가 되고 싶다. 최수정 보호자가 되어 주고 싶다.

 

"근데 말야, 차상현만 빼고 6명의 집 주소가 번화가인데 왜 그 시각에 정반대 쪽 달동네를 내려오고 있었을까?"

"순경 아저씨, 너무 뻔한 거 물으신다. 상현이 집에서 놀다가 내려오는 길에 누나를 만난 거죠."

곽순경이 상현이를 보고 묻는다.

"차상현, 얘 말이 맞아?"

상현이가 수정이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예...맞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차상현! 네 집이 사건 현장과 거리가 멀던데, 왜 거기까지 내려왔어? 그 밤에 집에서 논 것도 모자라서 얘들과 또 놀러 가는 건 아닐 거고, 어떻게 된 거야?"

"......"

"상현이가 저희를 배웅해 준 거죠!"

"그러게 멀리까지 배웅을..."

"우리가 워낙 친하거든요!"

"차상현, 얘들 말이 맞아?"

어김없이 상현이가 수정이를 바라보며 떨떠름한 대답을 내뱉는다.

"...예...얘들 말이 다 맞아요..."

 

가해자 남학생 7명 중 6명의 보호자가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우리 아들이 뭘 그리 잘못 했길래, 바쁜 사람 오라 가라야!"

따로 거주지를 묻지 않아도 보호자 6명은 이 동네에 사는 주민이 아니란 걸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 몸에 걸친 옷과 액세서리가 화려했다. 이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찬바람을 가릴 옷가지도 버거운데ㅡ악세사리란 티비 속에서나 볼 법한 거니까.

가해자 남학생 6명의 공통점은 이혼 가정이라는 거다.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는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가 이혼한 가정에서 성장해 왔다는 거다.

"아들 분이 저기 저 여학생을 성폭행 했다는 신고를 받고 파출소로 연행되었습니다."

"우리 착한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성폭행을 했다는 거예요!"

"우리 애가 저 계집애를 성폭행 했다는 증거 있어? 증거 있으면 내놔봐? 내 눈 앞에 내놔 보라고!"

말 하나 했을 뿐인데, 열 대답이 쏟아진다. 시끄러워 죽겠네! 소란한 거 딱 질색인데. 고막이 파열될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증거를 내밀어야 고요가 다시 찾아올 것 같다.

"신고를 받고 저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성폭행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증거 사진을 내미니 예상대로 보호자들이 입을 닫는 듯한데,

"순경 아저씨, 방금 전에도 말 했지만, 우린 저 누나를 성폭행 한 게 아니라구요. 저 누나랑 성관계를 했을 뿐이라구요!"

"그런데 말야,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는데 왜, 굳이, 찬바람이 부는 한 데서 했을까?"

"...그건..."

"그건, 아들과 쟤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이죠! 미성년자가 성인들처럼 모텔에 들락거릴 순 없잖아요! 그래서 추위도 잊은 채..."

웬 일로 내가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한다 싶더니만ㅡ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다.

"우리 아들이 성폭행 아니라잖아요! 쌍방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일 뿐이라고!"

현재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내게 주먹이 날라 올 것만 같다. 하지만, 당연히, 주먹을 뻗치진 않겠지. 나보다 법을 더 잘 아시는 분들이니까.

"성폭행인지 성관계인지는 법원에서 판결해 줄 겁니다."

 

"가해자들이 초범이고 만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에 해당하므로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예측은 했었지만, 법원의 판결은 조금의 희망마저도 짓밟는다.

2003년 통계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성범죄율의 경우 일본의 3배라고 한다. 외국 정부 기관에서도 한국에 대한 여행 정보를 소개할 때 높은 성폭행률을 이야기할 정도이다. 10대 청소년들의 죄의식 결여는 특별히 반사회적이거나 악질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범죄가 아닌 놀이나 오락거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10대 성폭행은 아무 동기 없이 집단적으로 일어나는데, 집단이 되면서 폭력의 수위는 더욱 높아지는데 비해 책임감이나 죄의식은 산산이 조각 나 버리고 오히려 우쭐한 기분을 느끼거나 또래들만의 비밀을 공유했다는 기이한 유대감을 갖는다.

 

딴 때처럼 한 차례 해프닝으로 사건 종결이 되는 듯 싶더니 여전히 곽순경은 최수정 보호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떨치지 못하고 오늘도 야간 순찰을 핑계 삼아 몰래 수정이 일상을 엿본다.

"할머니, 추운데 밖에 왜 나와?"

할머니가 방 문을 열고 부엌을 지나 한 데로 나간다.

"할머니, 맨발로 어딜 가?"

"철규 왔다!"

연탄을 갈고 있던 수정이가 놀래 할머니를 쫒아 나간다.

"놔! 이년아! 철규 왔어!"

수정이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운다.

"할머니, 제발, 이러지마! 할머니가 이럴 때마다 나 미쳐버릴 것 같애!"

곽순경이 먼발치에 숨어 현 상황을 훔쳐보고 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나타난 거다.

누구지?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아! 저 운동화! 가해자 7명 중 유일하게 거주지가 수정이랑 같은 달동네였던 차상현! 그런데 저 녀석이 여기 웬 일로 왔지?

"엄마, 철규 왔어!"

저 녀석이 미쳤나? 지가 철규래! 근데, 철규가 누구야?

"철규야! 어디 갔다 이제 왔어? 밥 안 먹었지? 밥 먹으러 가자."

"회사 갔다 왔지. 엄마, 배고프다! 밥 줘!"

할머니가 밝은 얼굴을 하고 얼른 집으로 들어간다.

"네가 내 아빠야? 이젠 떨지도 않고 거짓말 하네."

"할머니가 좋아하시잖아."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 그래도 성폭행한 놈인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아닌데?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래, 고맙다."

수정이가 집으로 돌아서려는데 상현이가 수정이 손목을 붙잡는다.

"왜, 김치 떨어졌어? 김치 싸줄까?"

상현이가 대답 대신 수정이를 끌어 안는다.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수정이가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상현이가 수정이를 놓지 않는다.

저 녀석을... 확! 저 자식! 지금 수정이를 갖고 노는 거야 뭐야?

"...사랑하니까..."

상현이 말에 수정이 몸부림이 멈추인다.

뭐야! 저 녀석, 완전 선수잖아!

"...내가 네게 이런 말할 자격은 없지만...사랑해...네가 보고 싶은데...보이지 않아...미칠 것 같애..."

영화를 찍어라 찍어! 지만 찍으면 됐지, 지 영화에 수정이는 왜 출연 시키고 날리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차상현은 수정이를 성폭행한 놈들 중 한 명인데... 그런 놈과 수정이가 대화하는 것도 이상한데, 포옹까지 하다니... 도대체 궁금해서 잠이 오질 않는다. 오늘 밤도 이렇게 뒤척이다 날밤을 보낸다.

 

주말 낮부터 수정이 집 앞을 어슬렁거리다 벌꺽 문을 열려고 하나 문이 잠겨 있다.

"아무도 없나? 어디 갔지?"

이리저리 곱씹다 문뜩 차상현이 떠오른다. 나는 허겁지겁 파출소로 달려간다.

"곽순경, 쉬는 날에 웬 일이야?"

"...아니...어제 빠뜨린 게 있어서요..."

나는 서둘러 10대 성폭행 자료를 뒤져서 차상현 집 주소를 찾는다. 집 주소를 찾은 나는 올 때처럼 허겁지겁 뛰어서 차상현 집 앞에 도착한다.

수정이랑 상현이랑 한 데에서 고무대야를 내놓고 이불 빨래를 하고 있다.

"꾹꾹 좀 밟아!"

"나 땀 나는 거 안 보여?"

"보여! 그럼, 이거 하지 말까?"

"......"

"우리 집 이불 빨래도 아닌데."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그냥 가면 어떡해..."

고무대야 안에서 이불 빨래를 밟고 있던 상현이가 맨발로 후다닥 수정이를 붙잡는다.

"놔! 나 갈 거야!"

"할머니 데리고 가라고."

상현이 장난 썩힌 말에 수정이가 삐친 듯 상현이를 때린다.

"아파! 아프단 말야!"

"아파라고 때린 거야!"

상현이가 맨발 채로 도망친다. 수정이가 쫓아서 뛴다.

"아!"

달아나던 상현이가 갑자기 다리를 절룩인다.

"...괜찮아? 어디 다쳤어?"

다리를 저는 상현이를 보고 놀란 수정이가 묻는다.

"봐봐, 피 났어?"

상현이가 수정이에게 발바닥을 들어 보여준다.

"......"

"속았지롱?"

상현이가 수정이를 놀리고는 도망친다.

"너 잡히면 죽어!"

쫓고 쫓기고 빙빙 둘이 잘도 돈다. 상현이 집 문이 열리고 할머니랑 은영이가 한 데로 나온다.

쟤는 또 누구야? 쟤가 차상현 여동생인가?

차상현 역시 소년 가장으로 여동생이랑 둘이 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80만원을 받고 생계를 유지한다.

"오빠, 언니! 할머니 어지럽게 왜 돌고 그래?"

은영이 말에 상현이가 뜀박질을 멈춘다. 수정이가 멈춘 상현이 몸에 부딪혀 넘어진다.

"야!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

 

달동네에 어둠이 내려... 수정이 집엔 수정이랑 은영이랑ㅡ상현이 집엔 상현이랑 할머니랑 자려고 방바닥에 몸을 누인다.

"엄마, 잠이 안 와?"

할머니가 상현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엄마가 자고 깨어나면 철규가 없어질 것만 같애."

할머니 대답을 듣고서 상현이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내가 왜 엄마를 떠나? 엄마, 울지마..."

상현이가 소매 끝으로 할머니의 눈물을 닦는다.

 

"수정아, 아빠 왔다! 문 열어!"

철규가 만취해서는 집 문을 쾅쾅 두드린다. 수정이가 현관문을 열고는 재빨리 달아난다. 스르르르 문이 열리고 철규가 집 안으로 들어와 비틀비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화장실로 들어선다. 화장실에 숨어있던 수정이가 철규의 침입으로 경악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수정이 여기에 있었네!"

철규가 수정이를 보고 귀여운 듯 머리를 쓰다듬곤 병기 뚜껑과 바지 지퍼를 열어 포물선을 그리며 유자즙을 배출한다. 수정이가 철규의 유자즙을 보곤 질근 눈을 감는다. 철규가 옆에 수정이가 있단 것도 잊은 채 대롱대롱 붙은 유자즙 한 방울까지 마저 털고는 화장실을 나간다. 게슴츠레 눈을 뜬 수정이가 살짝 열려있는 문 틈 새로 밖을 내다본다. 신발도 벗지 않고 철규가 방 안으로 들어선다. 방 안엔 이틀 전 철규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아내가 그때 그 상처 그대로 움츠리고 있다.

"종일 집에 있으면서 뭐 했어, 이년아?"

말을 듣고 아내가 철규를 째려본다.

"왜, 찔려? 돈 많은 놈 자지엔 불알이 세 개 달렸든?"

철규가 말을 뱉고서 아내의 옷을 강제로 벗긴다. 아내는 나무토막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눈물만을 흘린다. 철규가 아내의 유방을 핥다 말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성큼성큼 싱크대로 걸어간다.

"나 같은 놈은 살 가치도 없어!"

철규가 식칼을 손에 쥐고 아내를 연거푸 찌른다. 비명 지를 틈도 없이, 아내가 죽었다. 아내의 피가 비명이 되어 방바닥에 꽃을 피운다. 철규가 꽃이 된 아내가 부러운 듯 식칼로 자신의 심장을 찌른다.

수정이가 아빠 엄마 목소리가 안 들려 잔다는 생각에 화장실을 나왔는데, 방 안에는 온통 꽃이 만발해 있다. 방 안을 가득 메운 꽃을 본 수정이가 멈춘 그대로 실신한다.

간밤을 노인정에서 보낸 할머니가 아침 일찍 달동네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게 무슨 냄새야? 무슨 냄새가 이렇게 지독해!"

할머니가 집에 가까워질수록 그 기분 나쁜 냄새는 더욱 짙어 진다.

"이거 우리 집에서 나는 냄새 같은데? 어라, 문이 열려 있네."

너무 지독한 냄새에 할머니가 코를 막고 문을 연다. 수정이가 땅바닥에 엎어져 있다. 놀란 마음에 수정이를 흔들어 깨우는데, 할머니 시야에 꽃이 들어온다.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만발한 꽃을 보고는 그대로 실신한다.

 

"언니! 언니는 우리 오빠 어떻게 생각해? ...사랑해?"

"사랑이라ㅡ"

수정이가 은영이 물음에 미소 짓는다.

"그 미손 우리 오빨 사랑한단 뜻이야?"

"은영아, 너 사랑이 뭔 줄 알아?"

"언니! 나 10살이야, 사랑 따윈 나도 알아!"

"그럼, 은영이 보기엔 언니가 오빠를 사랑하는 것 같애?"

"아니!"

"아니란 거 은영이도 잘 알면서 왜 언니한테 물어?"

"언니는 아닌데, 우리 오빤 언니를 되게 사랑하거든!"

"...오빠가 언니를 사랑한다는 걸 은영이가 어떻게 알아?"

 

수정이가 다니는 중학교에 상현이가 입학하게 되고,

"너무 잘 됐다!"

드디어 개학날이 되었다.

"수정아, 학교 가자! 수정아, 학교 가자!"

상현이가 수정이 집 앞에서 고래고래 외친다.

"등교 첫날부터 왜 이래?"

수정이가 문을 열고 나와서 찡그린 얼굴로 상현이를 째려본다.

"...내가 뭘..."

수정이 기에 눌린 듯 상현이가 대답을 얼버무린다.

"네 소리에 동네 사람들 다 깨겠다! 할머니 아침밥 차려드리고 나오려 했는데, 너 때문에 할머니 깨셨잖아! 그리고 너, 왜 반말해?"

"...그건...예전부터...그랬으니까..."

"그럼, 이제부터 바꿔! 내가 선배니까."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상현이가 대답 하곤 돌아서선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너 어디가?"

"등교해야 줘, 선배님. 선배님은 등교 안 하세요?"

상현이가 내리막길을 혼자 가며 뒤돌아본다. 수정이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너 삐쳤어?"

"제가 삐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선배님?"

수정이가 내려가는 상현이를 붙잡으려고 바삐 걷다 발이 꼬여 쿠웅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야!"

순간, 상현이 수정에게 날아간다.

"괜찮아? 어디 아픈 덴 없어?"

왠지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수정이를 설레게 한다.

"괜찮아?"

"...어! 뭐라고?"

"괜찮냐구?"

"...어...괜찮아..."

수정이가 교복을 털며 일어난다.

"괜찮다니 다행이야."

다시 상현이가 내리막길을 혼자 내려간다.

"상현아, 같이 가."

수정이가 상현이 옆으로 가서 상현이 손을 잡는다. 수줍은 듯 상현이 얼굴에 붉은 단풍이 든다.

"내가 주는 등교 첫날 선물이야."

 

"첫날 수업 잘 들어?"

상현이가 수정이와 교문 앞에서 헤어지고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간다. 등교 첫날이라서 그런 걸까?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다.

"첫날 수업 어땠어? 새로운 친구는 많이 사궜어?"

그럭저럭 시간만 때우고 수정이랑 하교를 한다.

첫날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그 그다음날도 상현이 말문은 좀체 열려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소년 가장이란 족쇄 때문인가?

"야! 너 어디서 왔냐?"

여느 때처럼 혼자서 급식소를 가는데 웬 여섯 무리가 상현이를 부른다.

"...나!"

"그래, 너. 여기 너 말고 또 있어?"

상현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여섯 무리에게 다가간다.

"왜, 할 말 있어?"

"아까 물었을 텐데, 너 어디 사냐고."

"내가 왜 그걸 대답해야 하지?"

"너랑 같이 등하교하는 여자애하고 친해? 교복을 봐서는 우리랑 같은 하교 같은데, 걔 어디 살아?"

"드디어 본론을 드러내네."

"넌 묻는 말에 답이나 해?"

"싫다고 말했을 텐데, 더 볼 일 없으면 나 갈게."

"너 여기 그냥 가면 후회한다!"

"내가 뭘 후회할지 궁금한데... 그럼, 그때 또 봐. 내가 후회할 때ㅡ"

상현이 여섯 무리 곁을 떠나자 여섯 무리 중 한 명이 음료 캔을 마저 마시고 찌그러뜨린다.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고 우르르 교실을 나오는 학생 중에 수정이가 보인다. 그런데 수정이가 뜬금없이 화장실로 간다. 약속대로라면 상현이를 만나러 교문 앞으로 가야 하는데, 수정이가 배를 붙잡고 급히 화장실로 달려간다. 아마도 점심 때 매점에서 사먹은 팥빵이 상한 모양이다. 재래식 변기에 앉은 뒤에야 찡그린 수정이 얼굴이 펴진다. 변기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수정이가 상현이를 만나러 간다.

"많이 기다렸어?"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현에게 수정이가 달려간다.

"......"

"화났어?"

"......"

"화났나구, 미안해. 수업 마치고 쉬가 마려워서 늦었어."

"여자애가 쉬가 마려워서가 뭐냐?"

"그럼, 뭐라고 해? 화장실 다녀온 걸 화장실 다녀왔다고 하지."

"...아니다! 그냥 집에나 가자."

수정이와 상현이가 티격태격하며 달동네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야! 차상현!"

상현이가 소리를 좇으니 한 달 전 여섯 무리이다.

"어! 오랜만이야!"

"오랜만은 무슨ㅡ"

"나한테 볼 일 있어?"

"볼 일, 있지!"

"너희 같이 잘난 놈들이 나 같은 못난 놈에게 볼 일이 뭐가 있을까, 궁금한데?"

"지가 못난 놈인 건 아네."

"알고 말고, 내겐 돈한테 자식을 위탁한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삶을 위해 이혼까지 한 부모 조차 없으니까."

"듣다보니까 말이 좀 이상하다?"

"아니, 별 신경 쓰지마. 너희가 부럽다는 거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며칠 전에 최수정이 교문 앞에 늦게 도착한 적이 있지? 뭐라고 했더라. 쉬가 마려워서 늦었다고 했던가."

순간, 상현이 머릿속에 혼란이 들어앉았다.

"...무슨 말이야...그런 적 없는데..."

"그래! 그럼, 온라인에 올리지 뭐."

그 말이 모른 척 돌아서려는 상현이 발목을 붙잡는다.

"수정아, 우리 후식 먹자."

"나 돈 없는데?"

"내가 살게."

베프 혜선이가 수정이를 밀어붙여 매점으로 데려간다.

"아저씨, 팥빵 두 개 주세요."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자 수정이가 기다렸다는 듯 배를 붙잡고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재래식 변기에 앉는다. 변기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거울 속 수정이를 단장하고 상현이를 만나러 간다.

밤이 오고 상현이가 수정이 집 앞을 서성인다.

"할머니, 많이 배고팠지? 밥 먹자."

수정이가 할머니를 챙겨주는 마음을 상현이가 듣고서 주르륵 눈물을 떨군다.

"...수정아...미안해..."

상현이 눈물이 땅에 닿이는 소리가 들린 걸까? 수정이가 벌꺽 문을 연다. 그새 상현이는 보이지 않고 땅에 새겨진 눈물만이 상현이의 시름을 대변한다. 문을 닫고 들어가는 수정이를 상현이가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수정아, 날 봐서 소개팅 좀 해주라. 새로 사귄 친구들이 너 좀 소개시켜 달라고 날리야."

"싫다니까."

"내가 무릎이라도 꿇을까? 제발, 부탁이다."

"...그럼, 이번만이다?"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고 상현이가 일러준 대로 수정이가 과일 쥬스 가게로 간다. 이미 가게 안에는 여섯 무리가 한 테이블을 점령하고서 계략을 꾸민다. 또 무슨 계략을 꾸미는 걸까? 여섯 무리 중 한 명이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간다. 대체 한 명은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최수정 왔다!"

나머지 다섯 무리 중 한 명이 얼른 자리를 옮겨 앉는다.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수정이가 그 놈이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는다.

"누나, 말 놔요."

"그래도 처음인데..."

"누나가 말 놔야 나도 편해요."

그 시간에 가게를 나간 녀석이 약국으로, 상현이는 여섯 무리가 일러준 대로 달동네에서 가장 빛이 안 드는 골목으로 간다.

"수면제 주세요."

"어디다 쓰게?"

"...엄마가 수면제 떨어졌다고 해서요."

“그래, 여기.”

수면제를 산 녀석이 서둘러 과일 쥬스 가게로 돌아간다.

"그 놈들이 왜 이런 곳에서 동영상을 넘겨준다고 했을까?"

이래저래 의심스런 부분은 있지만, 상현이는 달동네에서 가장 빛이 안 드는 골목에 도착해서 여섯 무리를 기다린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수정이가 화장실로 간 사이 한 놈이 무리로 복귀한다.

"가루로 된 거 사왔지?"

"두 말하면 입 찢어지게 당연한 걸 왜 묻냐?"

여섯 무리가 낄낄대며 수면제 가루를 수정이 쥬스에 넣는다. 화장실에서 수정이가 나오고, 다섯 무리가 아무 일 없는 듯 유유히 가게를 빠져나간다.

수정이가 마시던 과일 쥬스를 아무 의심 없이 빨대로 마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든다. 그리고 소개팅남은 계산을 하고 수정이를 업어 유유히 가게를 빠져나간다.

"내가 여기까지 업었으니까 다음은 네가 업어?"

"짜식, 엄살은... 여자가 뭐가 무겁다고."

"야! 네가 업어봐. 그런 말이 나오는지."

"그래, 넘겨라. 맘 변하기 전에."

"휴ㅡ, 이제 좀 살겠다."

"뭐야! 이년 왜 이리 무거워."

여섯 무리가 수정이를 교대로 업고서 달동네를 올라간다.

"차상현이 약속 지켜줬으니까 우리도 약속 지켜줘야지. 여기, 동영상."

상현이는 씨디를 받고 곧장 동네 피씨방으로 간다.

"얘들아, 나와! 차상현 갔어."

숨어있던 다섯 무리와 업힌 수정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섯 무리는 그나마 평지에 두툼한 옷을 깔고 잠든 수정이를 눕히고 살금살금 교복을 벗긴다.

그 시간에 상현이가 피씨방에 들어가 받은 씨디를 넣는다.

"뭐야, 이거!"

씨디 안에는 문서 파일만 있다. 문서 파일을 여니 '차상현 속았지' 라고 써 있다. 상현이가 허겁지겁 달려 나간다. 달동네에서 가장 빛이 안 드는 골목으로ㅡ상현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여섯 무리의 쾌락이 들리어 오고 여섯 무리의 춤사위를 본 상현은 그만 망부석이 되고야 만다.

상현이가 정신을 차렷을 땐 파출소였다. 양팔엔 수갑이 채워진 채ㅡ

 

가해자와 피해자가 귀가 조치를 받고 다들 제각각 집으로 돌아간다.

"수정아, 나 좀 때려줄래?"

"......"

상현이가 수정이 손목을 잡고서 자신의 얼굴을 마구 때린다.

"...왜 이래?"

"나 좀 때려달라니까!"

수정이가 애써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린다.

"...왜 그랬어...왜 그랬어..."

상현이가 수정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 둘을 은영이가 바라본다.

 

상현이가 수정이 집 앞을 서성인다.

"할머니, 많이 배고팠지? 밥 먹자."

수정이가 할머니를 챙겨주는 마음을 상현이가 듣고서 주르륵 눈물을 떨군다.

"...수정아...미안해..."

수정이가 벌꺽 문을 연다. 그새 상현이가 보이지 않는다. 문을 닫고 들어가는 수정이를 상현이가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그런 둘을 은영이가 바라본다.

 

상현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여섯 무리의 쾌락이 들리어 오고 여섯 무리의 춤사위를 본 상현은 그만 망부석이 되고야 만다.

그걸 먼발치에서 본 은영이가 슈퍼 앞 공중전화로 달려간다.

"여보세요, 거기 파출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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