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돼지 발톱? 뽑은 썰

풀브릿지 작성일 21.01.07 15:36:24 수정일 21.01.07 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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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짱공에서 간간히 흔적 남기고 있는 대머리 유저입니다.

 

형님들이 보시기엔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충격적인 경험이어서 

 

글 재주는 없지만 적어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식보다 경험이 먼저다.

 

라는 모토로 무슨일이든 다 해보자 하면서 지내왔습니다.

 

군대 전역하고 나서부터  

 

스키장(강원랜드)-횟집-술집-카페-야구장알바-마트(홈플러스)-학원강사-국회의원사무소-음식점 점장-술집 동업(개폭망)

 

지금은 전자회사 연구소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충 이렇게 일하고 중간중간 짜투리 알바같은 것도 해봤네요.

 

제가 일했던 것중에 제일 힘들었던 일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대학교 4학년 졸업 시즌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상 휴학이 길어서 29살에 다시 복학했고, 30살에 졸업논문 쓰게 됐습니다.

 

3학년 때는 중간중간 일하면서 학비나 생활비를 벌긴 했지만, 4학년 졸업논문을 쓰게 되니 고정시간에 알바를 하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해낸게 인력 사무소에서 하루 일당 받아서 생활 해 보자였습니다.

 

같은 지역 사는 대학 동생이랑 들어가서 한 1~2주 일했더니 사장님이 저만 어느 공장에 갈 수 있겠냐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그 소장이 말한 공장이 그 인력소 선배 두분이서도 안간다고 뺀찌 놓은걸 저한테 갈 수 있냐고 물어본거였죠.

 

인력소 가보신 분이거나, 일하고 계신분이면 아시겠지만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순서타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와 동생같이 젊은 학생이 일 걸러가면서 받으면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게 되잖아요.

 

전 선배들 눈치도 보이고 사정도 급해서 당연히 인력소장한테 콜을 외쳤고

 

봉고차에 타라해서 탔더니 한 시간동안 시골마을로 들어간 후 으스스한 공장에 내려줬습니다.

 

내려서 방역복 같은걸로 환복하라고 해서 갈아입고 문을 들어갔는데

 

디아블로1 도살자가 내지르는 소리 같은 게 들리더군요.

 

긴장하는 마음으로 더 안쪽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돼지 도살하는 도축장이었고, 수십마리의 돼지들의 피로 바닥이 가득차 있는걸 보았습니다.

 

피비린내가 이런 냄새라는걸 처음으로 느꼈고, 그 알수 없는 역한 냄새 때문에 숨 쉴때마다 역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때 지금 여기서 택시타고 집에 갈까하는 생각을 수십번 했습니다.

 

하지만 일당을 저버리지 못하고,  15만원의 노예가 되기로 마음 먹고 일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배치 받는 곳은 돼지 발톱? 발굽? 빼는 파트였는데

 

제가 기억하는 도살 순서사

 

1. 컨베이어 벨트 같은걸로 돼지 등장

2. 헤드셋 같은게 돼지 귀쪽으로 내려와 전기 충격

3. 기절한 돼지를 어떤 사람이 멱을 땀..(피가 철철 흐르는 걸 2m 거리 간격으로 봤습니다...)

4. 돼지 뒷발을 기계로 잡은 후 돼지 들어올림

5. 불구덩이를 지나가게 해 돼지 털 태움

6. 내장 제거(여기는 공정이 잘 보이지 않아 확실하진 않습니다.)

7. 1차 입수

8. 약품처리?

9. 2차 입수

 

이 과정을 지나고 거꾸로 매달린 돼지가 오면

 

제가 돼지 앞발을 잡고 장도리 같은 걸로 돼지 발톱같은 걸 빼 내는게 제 업무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업무 일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쉽게 빠지지 않는 발톱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 갔고

 

낑낑 대느라 일이 밀리면 제 앞에 거꾸로 걸려있는 돼지들이 계속 쌓이기 때문에 작업 피로도는 점점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건 정신적인 내상이었는데..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피 비린내+돼지 털 태운냄새+돼지고기 익힌냄새+약품냄새

 

거기다가 발톱 씨게 빼다가 튀는 돼지 피들이 눈이나 입술 이런데 들어가니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가는게 느껴지더라구요.

 

어찌어찌 버티면서 발톱 빼고 있는데 벨소리가 들리더니 밥 먹으러 사람들이 우루루 나갑니다.

 

저도 같이 따라가서 식판에다가 배식 받고 한 술 뜨려고 보니 보이는 돼지고기들..

 

도저히 못 먹겠더라구요..

 

밥을 버릴까 말까 고민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하얀 방역복에 빨간 피가 튀어있는데도 즐겁게 대화하면서 식사하고 계시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참 느낀게 많은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이 분들에겐 삶과 생활의 장소이다. 내가 역겹다고 생각하니 힘든거다. 열심히 일 하시는 모습을 본받자'

 

이렇게 생각하고 밥 한술을 뜨려고 했는데.... 역시 먹지는 못하여 다 버리고 나오긴 했습니다.

 

오후 작업 시작했고,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고  

 

오전 때 보다는 작업이 손에 익긴 했지만, 역시 멘탈을 추스르는데 힘이 들긴 했습니다.

 

작업중에 감독 하시는? 분이 오시더니

 

"학생이야? 학생이 기특하네~

힘들어도 여기서 깨끗하게 작업해야 학생이 족발 깨끗하게 먹을 수 있는거야~"

 

라고 얘기하시더군요.

 

이 얘기를 듣고 속으로 앞으로 다시는 족발은 못 먹겠구나~ 라는 생각 하면서 오후 작업까지 마쳤습니다.

 

6시 넘어서 인력소에서 보낸 봉고차를 타고 다시 복귀 하고

 

10%로 땐 135,000원 받고 집에가면서 엄마한테 전화했습니다.

 

너무 서럽고 힘들었다고, 다시는 돼지고기 안먹을 거라고, 엄마 아빠 힘들게 일하는데 투정 부려서 미안했다고 얘기했습니다.

 

30살에 이런 얘기하는게 창피하긴 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드니 엄마에게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평소에 그런 말 잘 하지 않는 애가 그런 말을 하니 엄마도 적잖히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집에와서 몸 빡빡 씻고, 다시는 돼지고기는 먹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울면서 잠들었습니다.

 

다음 날 인력소장이 거기 또 보내려기에 절대 안간다고 얘기하니 다른 공사현장 보내주더라구요.

 

몸은 힘들긴 해도 멘탈적으로는 괜찮기에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공사현장에서 노가다 마친 후 같이 일했던 형들이랑 삼겹살에 소주 한잔 먹었습니다.

 

역시 삼겹살은 맛있었습니다.

 

 

오래 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축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모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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