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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2ch] 천체관측
내가 초등학생이던 80년대 무렵 이야기다.친구 A, B와 함께 천체관측을 하게 되었다.B가 생일선물로 천체 망원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A네 집은 주택가였고, B네 집은 약간 떨어진 외곽에 있었지만, 집 뜰에서는 영 마뜩치가 않았다. 결국 B네 집 근처 신사에서 천체관측을 하기로 했다.여름방학 중이었기에, B네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10시 가까이 게임을 하다가 슬슬 출발하기로 하고벌레 쫓는 스프레이랑 이거저거 챙겨서 신사로 향했다. 경내에 들어서자 벌레 우는 소리만 약간 들릴 뿐 조용했다.천체 망원경을 설치하고, 회중전등을 끄자 주변은 깜깜해졌다. 처음에는 별자리 이름도 알아보기도 하고시끌벅적하게 놀았지만, 점점 질리기 시작했다. 저배율의 천체 망원경으로 올려다봐야 거의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니.. 슬슬 돌아갈까 싶어 회중전등을 찾았지만,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관리를 맡았던 A가 [어디 있지?] 라며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그러자 어디에선가 [쾅.. 쾅..]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A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필사적으로 주변을 찾는 사이, 나와 B는 그 소리가 신경 쓰여 소리가 들려오는 신사 구석으로 향했다. 우리는 신사 앞 기둥문을 나와, 왼편 광장에서 천체관측을 하고 있었다. 소리는 오른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소리가 나는 쪽에서는 불빛이 보였다.멀리서 봐도 무엇인지 눈에 들어왔다. 소복을 입은 사람이었다.나는 축시의 참배가 뭔지 알고 있었기에 초조해졌다.B는 잘 몰랐던지, [저거 뭐야?] 라고 물어왔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겨우 참아가며, 위험한 것 같다고 돌아가자고 B에게 말하려던 순간 뒤에서 A가 [야! 회중전등 찾았다!] 라고 소리치며 회중전등 불빛을 빙빙 돌리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동시에 [쾅.. 쾅..] 하는 소리가 멈췄다. 들켰다..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도망치자!]내가 소리치자, A와 B는 당황한 듯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내가 죽어라 달리는 걸 보고 당황했는지, A는 울면서 나를 따라왔다. 그러나 B는 [천체망원경!] 이라고 말하고는 광장 쪽으로 가버렸다. 기둥문을 지나고 계단을 내려와주차장까지 도망친 우리는 B를 기다렸다.그렇게 1분 정도 기다렸지만, B는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A에게 물었지만, 애시당초 A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나를 따라온 것 뿐이라 별 의견이 없었다. 돌아가서 B의 부모님에게 말해야 할지,우리 부모님한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계단 위에서 불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B가 천체망원경을 든 채, 울면서 내려오고 있었다.그 뒤에는 손에 촛불을 든 소복 입은 여자가 있었다.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B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흐느껴 우는 B에게서 대답은 없었다.A가 회중전등으로 비쳐보니, B는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미안해..] 라며 사과했다.여자도 엉엉 울고 있었다. 5분 정도 지나, 다들 침착해지고 나서 여자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축시의 참배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들켜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신 우리를 죽이려는 거라 지레짐작했지만,정작 여자는 "아, 실패했구나.."하고 체념하는 정도였단다. 하지만 그 후 큰 소리가 나서 놀라 광장으로 가보니, B가 굴러 넘어져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엉엉 우는 B를 보니 자기 탓인것 같아, 책임을 느낀 나머지 여자도 통곡했단다. 다행히 B는 여기저기 까진 것 뿐, 큰 상처는 없는 것 같았다.상처를 물로 씻어내자, B는 눈물 하나 없이 말짱했다. 그 후 여자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줘서, 약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시내에 사는 OL로,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그 상사를 저주할 마음으로 축시의 참배를 했던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고, 자판기 불빛 아래로 본 얼굴은 오히려 미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소복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냥 평범한 흰 옷이었다.그 후, [혹시 B의 상처가 덧나기라도 하면 연락하렴.]이라며 전화번호를 받았다. [밤 8시 이후나 일요일에만 받을 수 있지만 말이야.]나는 다친 B 대신 천체망원경을 들고 B네 집으로 향했고,B네 부모님에게는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B는 까진 상처도 다 나았다.나는 여자에게 연락을 해주기로 했다. 예쁜 사람이었으니, 한번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아마 나말고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내가 받았다는 이유에서나한테 굳이 전화를 떠넘긴 것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라고 몇 번씩 사과했다. 나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라고 말했다.그러자 여자는 정말 기쁜 듯 이렇게 말했다. [맞아맞아, 그 때 그 저주, 효과가 있었지 뭐니?]나는 차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수 없었다.결국,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 여자와는 연락한 적이 없다. 출처: VK's Epitaph
금산스님작성일
2018-09-05추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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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삼국지 시리즈[3-4편] : 손권 (자작)
<조조편>1부 - /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5555&page=12부 - /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6045&page=13부 - /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6246&page=14부 - /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6425&page=1 <유비편>1부 - /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6749&page=12부 - /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7262&page=13부 - /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7734&page=1 <손견편>/chalkadak/view?db=160&no=358318&page=1 <손책편>/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8599&page=1 <손권편>1부 -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160&search_field=&search_value=&no=358865&page=1 2부 시작합니다. <손권, 초상화> <손권 - 후반기> 적벽에서 패한 조조는 213년이 되어서야 손권이 있는 유수구로 쳐들어 갑니다.(유수구에는 여몽이 건설한 유수오가 이미 대기중. 유수오는 방어 요새로서 여몽이 유수구가 전략적 요충지라는 것을 파악하고 방어 요새를 건설함. 여몽의 뛰어난 식견을 보여준 사례중 하나) 이 전투에서 조조는 동오군의 정연함을 보고 감탄하고 물러갔는데 이 때, 조조와 손권의 개돼지 일화가 생깁니다.-조조편 참고-조조는 장강 북쪽의 군과 현이 탈취당할 것을 두려워해 백성들을 강제 이주시키려 했는데 백성들이 이 소식에 놀라되려 장강을 넘어 손권에게 무려 10만호가 대거 이주해 버립니다. (대략 4~50만명)이 사건으로 인해 합비 남쪽으로는 환성 하나밖에 남지 않고 사람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손권은 여몽의 권고로 이 환성을 치게 되는데 감녕과 여몽의 활약으로 눈깜빡할 새에 점령해 버리고 구원하러 왔던장료도 이를 보고 그냥 철수, 북쪽 경계선을 합비 이남까지 끌어올립니다.이 해에 유비가 촉을 점령하자 손권은 제갈근을 보내 형주 지방을 돌려달라고 합니다.이에 유비는 "량주(서량)를 취한 뒤 돌려주겠다" 며 거절합니다. 손권은 이 말을 듣고 핑계일 뿐이라며장사, 계양, 영릉에 관리를 일부러 파견하지만 관리들이 관우에게 줘터지고 돌아오자 군대를 보내 장사와 계양을 강제로 점령합니다.당연히 유비는 딥빡.. 직접 5만군을 이끌고 형주로 출정, 관우를 익양으로 보내 대치하게 합니다. (익양대치)그러나 이 와중에 여몽은 계략을 써 영릉마저 접수하고 후위대로 영릉을 점거한 채 관우와 노숙이 대치하고 있는 익양으로 향합니다. 결국은 일촉즉발의 대치 끝에 서로간의 합의로 강하, 장사, 계양을 손권이 갖고 무릉, 영릉, 남군은 유비가 갖는걸로하고 서로 군을 철수시키며 분쟁을 종결시킵니다. (종결된 줄 알았으나..) 215년, 손권은 군을 이끌고 두번째로 합비에 출진합니다. (1차는 적벽 이후 쳐들어갔으나 유복과 장제의 덫에 걸려 아무것도 못하고 후퇴)이 전투에서 그 유명한 "료 라이, 료 라이" 라는 말이 탄생하며 적장 장료에게 큰 명성을 남겨준 채 역사에 남을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후퇴하고 마니.. 이 전투에서 진무는 전사하고 서성은 크게 상처를 입고 능통은 아끼던 근위대를 모두 잃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물리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게다가 물리적 그 이상으로 정신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어 향후 10년이 넘도록 합비를 넘보지 못했고 손권은 이 전투를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800 vs 10만의 전투.. 10만은 약간 과장일 수 있으나 장료군이 천명도 안되었다는건 사실임. 10만의 군이 800기를 막지 못해 일점 돌파를 당하고 장료는 손권의 대장기 근처까지 도달했을 정도.. 손권은 혼비백산해 도망갔다는게 팩트임. 합비성을 지키던 병력은 1만도 안되던 7천에 불과) 216년, 유수구를 조조가 또다시 쳐들어옵니다. 역시 유수오를 여몽의 활약에 힘입어 잘지켜내었고 결국 조조는 물러나며 손권과 화의를 맺습니다. 217년, 손권을 제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던 동오의 대도독 노숙이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후임으로 여몽을 임명합니다. (훗날, 손권의 평에 의하면 노숙은 제왕의 기업을 세우게 하고 적벽에서 주유와 함께 적을 물리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평함. -형주 빌려준게 유일한 단점이었다고 한건 안비밀..-) 219년, 드디어 관우는 북진을 시작해 방덕과 우금을 격파하고 번성을 포위하기에 이릅니다. 이 때 무려 3만여명의 병사를 포로로 잡아서 강릉으로 압송했는데 이들의 병량을 대기 위해 영릉군 상관의 병량을 맘대로 털어버립니다.(상관은 유비와 손권의 완충지대. 이곳의 군량을 손권의 허락없이 가져간것)손권은 내심 관우를 무척 두려워 했지만 이것을 명분으로 기회 삼아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관우를 정벌하는데 힘을 보태겠다 하고는 여몽을 선봉으로 삼아 군대를 보냅니다. 관우는 곳곳에 관측소를 세워 여몽의 침입을 대비했는데 이를 알아챈 여몽이 군사들에게 평복을 입혀 속인 뒤 관측소부터 차례대로 제압하자 관우는 후방이 침입당했다는 것 조차 모른채 그저 공격에 열중할 뿐이었습니다.여몽이 공격하자마자 사인과 미방은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않은 채 항복을 했고 이에 관우의 후방은 완전히 여몽에게 제압당해 북쪽에서 고립되게 됩니다. 뒤이어 손권마저 본대를 이끌고 오자 관우는 서쪽의 맥성으로 도망갔다가 위병계를 써서 다시 달아나는데뒤따르는 병사는 고작 10여기.. 결국 관우는 반장의 부하 마충에게 붙잡혀 손권에게 참수당하고 맙니다.형주를 성공적으로 공략한 여몽은 얼마 안있어 시름시름 앓다가 겨우 4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주유, 노숙, 여몽 연속으로 요절)손권은 이를 매우 비통해합니다.(손권의 평에 의하면 싸움은 주유 다음으로 가장 잘했다고 평. 그가 앓아 누웠을 때 밥을 제대로 못먹자 손권은 그가 밥먹는거만 봐도 기뻐할 정도로 격하게 아꼈음. 여몽은 후임으로 주연을 지목했으나 육손이 뒤를 이음) 220년, 조조마저 죽자 손권은 이 기회를 틈타 형주를 압박하고 조비는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 양양과 번성을불태워 버린채 조인을 완성까지 불러들입니다. 이에 손권은 군대를 보내 비어있는 지역 일부를 점령합니다.221년, 유비가 황제 자리에 오르자 손권은 위나라 조비에게 칭신해 오왕에 봉해집니다.(제위에 오르고 싶었으나 별자리 점괘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함..)그리고 드디어 유비는 관우의 복수와 형주의 수복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오를 침공합니다. (이릉대전)놀란 손권은 먼저 유비에게 손을 내밀지만 유비는 단호히 거절, 이에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삼아 5만군을 보내 유비를 격퇴하게 합니다. 육손은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어 동오 내부에서 그를 대도독으로 삼는 것에 대한 반발이 상당했는데형주에서의 전과를 보며 손권은 믿음을 가졌고 육손은 그 믿음에 화답해 군을 이끌고 유비를 대파, 촉한 차세대 장수들의 씨를 말려버립니다. -유비편 참고- 222년, 촉을 격퇴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병사가 많이 상해있었는데 조비가 세 방향으로 군을 나누어 대규모로 쳐들어옵니다.(유수, 동구, 남군) 유비는 여전히 백제성에 머물러 있었고 이 때를 노려 후방을 치면 굉장히 위험했기에 서신을 보내 다시 화친을 청합니다. 이 화친 요청을 유비가 받아들이자 안심하고 조비와 해가 바뀌도록 계속 싸우다가 결국 223년 3월 조인이 후퇴하게 됩니다. 조비의 침략까지 막아내자 4월에 손권은 제위에 오르도록 신하들에게 권유를 받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 달에 유비가 사망하자 조문을 보냈고 이에 대한 답례로 촉한에서 사자로 등지가 와서 손권을 설득,결국 오와 위는 단교를 하고 다시 촉과 연수를 맺어 위에 대항합니다.224년, 조비는 위와 단교하고 촉과 다시 동맹을 맺은 오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나 서성의 위성계에 걸려 아무것도 못하고 3개월만에 철수, 이 위성(가짜 성)을 보고 조비는 감탄하며 "저곳은 인물이 있으므로 도모할 수가 없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225년, 승상 손소가 죽자 대신들은 장소를 승상에 추천했으나 (손권이 개인적으로 장소를 싫어했으므로) 고옹을 승상으로 임명합니다.이 해 겨울에 지난 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위문제 조비는 다시 한번 광릉으로 쳐들어가나 역시나 또다시 패배, 한 겨울에 강이 얼어붙어 수군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돌아옵니다. 226년, 위문제 조비가 사망하자 손권은 군을 일으켜 강하를 치고 석양을 포위하지만 얻지 못하고 철수합니다. 이 때, 팽기란 자가 무리 수만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227년이 되어서야 겨우 토벌이 됩니다.이 해에는 손권에게 칭신하고 매 년 예물을 바치던 손권 빠돌이 교주자사 사섭이 사망하고 뒤를 이은 사휘가 동오의 처사에 불만을 품어 반란을 획책, 결국 여대에게 토벌되어 집안은 사광을 제외하고 모두 멸족하고 맙니다.227년,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던 팽기가 잡혀서 호송되고 오의 구신 한당이 사망하는데 자식 농사를 잘못지었는지 한당의 아들 한종이 아버지의 시체를 끌고 위나라에 투항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228년, 석정에서 대규모로 위군과 맞붙어 위군을 아예 관광보냅니다. (석정전투) 이 때 위군을 이끈 것은 위의 대장군 조휴였는데 이 패배로 인해 부끄러워 결국 악성종기로 인해 사망하게 되니 오군은 꽤 굵직한 전투에서 여러번 크게 승리를 거둬 삼국 시대의 유명 인물들을 골로 보내는데 도가 튼 인물들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유비, 관우, 조휴..) 229년, 드디어 손권은 오의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는 장소에게 하는 말, "만약 장공의 계책같이 했다면, 지금쯤 이미 밥이나 빌어먹고 있을 것이오."<정사 삼국지 장소전 주석 강표전> (뒤끝 작렬...적벽 대전 당시 항복론을 펼쳤던 장소에게 섭섭함을 표출한 것이긴 한데 그게 무려 20년이 지난 시점-_-)이에 장소는 엎드려 땀을 뻘뻘 흘렸다고 하는데..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장소는 관직을 사임한 채 집에 칩거합니다.막상 오의 최고 대신 장소가 저렇게 나오자 손권은 그래도 노신을 그렇게 대우할 수 없었는지 장소에게 미안하다며 결국 다시 조정으로 데리고 옵니다. 230년, 그 유명한 손권의 인간사냥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희대의 사건으로 손권은 두고두고 까이게 되었으니 그 일화를 살펴보면.. (손권은 까일거리가 참 많음..)손권은 평소에도 동오에 이민족들이 많고 한족이 적어 인구가 부족하자 이민족들을 데려와 융화시키는 정책을 자주 펼칩니다.그리고 이 해에도 현재의 대만까지 가서 인간을 붙잡아오는 임무를 제갈직과 위온에게 내리는데 그들은 임무에 성공해 1만여명을 데리고 오긴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 섬의 원주민들로 대륙과의 기후나 풍토가 완전히 달라 1만명 중 8~9천명이 병으로죽어버리는 의도치 않은 학살을 하게 되었으니.. 뻘짓도 이런 뻘짓이 없다고 현재까지도 대차게 까이는 사건을 벌입니다. 손권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위에게 자꾸 막혀 치기 어려워지자 요동의 공손연과 고구려와 연계해 움직이려고 하나,전예에게 막히고 나중에는 공손연과 고구려 둘다에게 통수를 맞게되자 매우 분노합니다.(이렇게 농락당해서 더더욱 그의 노망이 가속화 되었는지...) 234년 5월, 제갈량이 군사를 이끌고 위를 침략하자 이 때를 기회로 위 명제 (조예)가 자신에게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합비로 출진해 포위합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을 막으러 가고 조예는 직접 군을 이끌고 손권을 치러 가자 또다시 눈물을 머금고 후퇴... 이후로 꾸준히 이민족 토벌, 반역 진압, 여일 처벌, 인간 사냥 등을 하며 내부 안정에 온 힘을 다하는데 .. 사실 강동은 여전히 미개발 지역도 많고 이민족들도 많았으므로 손권은 외부로 힘을 쏟기 보다는 강동을 개간하는데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이전까지 미개척지였던 강동의 개발은 사실 손권의 공이 가장 컸음) 그러다가 정말 중요한 사건이 242년에 벌어지는데 바로 이 해에 촉망받던 태자 손등이 사망하고 만 것입니다.여러 일화를 봤을 때 성군이 될 자질이 충분했던 손등이었는데 어이없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삼남 손화를 태자로 삼게 됩니다. (차남 손려는 더 일찍 사망함)그리고 사남 손패를 같은 궁에 살게 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는데, 이는 원소나 유표처럼 후계자와 후계자가 아닌 자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아 생긴 문제로 그 다툼이 막장으로 치달아 결국 오나라를 멸망까지 하게 만든 원흉이 되고 맙니다.이 사건은 사변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엄청난 피바람을 오나라에 몰고 왔는데 이 사건에 연루되어 직접적으로 처형, 혹은 간접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한 자들 목록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손화파육손, 고담, 고승, 고제 (이상 오의 사성-대호족- 고옹의 일족), 주거, 오찬, 장휴(장소의 차남), 진정, 진상, 장순 등손패파손패, 보즐, 전종, 제갈작(제갈각의 아들), 양축, 오안, 손기 등 <이궁의 변 주역, 손노반, 코에이 일러스트> 한 마디로 이궁의 변은 오의 대들보, 오를 지탱하던 대호족과 명망있는 대신들이 전부 휩쓸려 나간 엄청난 대참사였습니다.스토리 자체는 막장 드라마 뺨칠 정도라 자세히 적진 않겠지만 중요한 건 손권이 후계자 문제를 확실히 하지 않았단 점,신하들이 두 패로 갈려 싸우도록 내비뒀다는 점, 막장 행보를 보인 손패파의 손을 들어 후계자를 쉽게 갈아치웠다는 점 등에 의해서 현재까지도 이 사건 하나만으로 주구장창 대차게 까이고 있단 점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이궁의 변을 한마디로..> (흔히들 손권의 노망으로 표현하지만 노망이라기보단 본인의 억눌려 왔던 욕망 등을 한 번에 삐뚤어진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아닌가 싶음. 대호족들의 연합체, 장소와의 관계 등에 항상 억눌려 있다가 이 기회에 모조리 쓸어버렸을 지도.. 승상 고옹이 243년 사망하는데 좀 더 살았다면 어땠을지 또 모르겠음. 육손도 어쩌지 못했는데 고옹이라고 별 수 있었겠냐만은..) 이 사건은 무려 10여년간 일어난 사건으로 (242년~252년) 손권은 폐태자 손화를 남양왕으로 임명하여 장사성에 유폐시키며 이 사건들을 마무리 짓고 그해 4월에 71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삼국지 정사의 저자 진수는 평하길, "손권은 몸을 굽혀 치욕을 참으면서 재능 있는 자를 임용하고 지혜로운 자를 존중했고, 구천(句踐)과 같은 비범한 재능이 있었으니, 영웅 중에서 걸출한 인물이었다" 고 평했습니다. 실제로도 인물보는 눈만큼은 유비 못지 않게 굉장히 뛰어났고 그가 등용한 인물들만 봐도 면면이 화려하니 그의 재능은 거의 대부분 여기에 몰빵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였습니다. # 손권은 특히 술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한 번 마시면 꽐라가 될 때까지 자주 마셨다고 하는데 술버릇도 개차반이어서 심지어는 오의 대신 우번을 죽일뻔한 일도 있었기에 "내가 취했을 때는 누구를 죽이라고 해도 죽이면 안된다" 라고 말할 정도 였다고... # 군재는 뭐 다들 아시다시피...스스로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이겼던 전투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다만 쉽게 지지 않았단 점은 어느 정도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만 알아보겠습니다. # 학문을 굉장히 좋아해 여몽에게 학문을 권하며 그 유명한 "괄목상대" 라는 사자성어가 탄생합니다. 그 일화를 잠깐 소개하자면, 손권이 여몽과 장흠에게 이제 앞으로 큰 임무를 맡게 될것이니 평소보다 공부를 많이 해서 견식을 넓혀야 한다고 말하자 평소 여몽은 '독서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나는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서 이기면 되는 것이지 공부는 무슨 공부인가?' 라고 생각했기에 "부대의 일로 바빠서 공부할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손권은 아래와 같이 답합니다. "제가 여러분들보고 경전을 공부해서 박사(博士)가 되라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경전을 읽어서 옛 사람들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았으면 해서 이러는 것이오. 경은 일이 많을 거라 말씀하셨는데, 저랑 비교해서 저만큼 바쁘겠소? 저는 어렸을 때 [시경], [서경], [예기], [춘추좌씨전], [국어] 등등 이것저것 다 읽어, 읽지 못한 것은 [주역] 정도 입니다. (손책이 돌아가시고 제가) 일을 떠맡은 이후에도, 삼사(三史), 사람들의 [諸家] 병서(諸家兵書)를 정독해, 스스로 도는 많이 안다고 자부합니다. 경들은 의지도 성질도 명랑이기 때문에, (학문을 하는데 적합한 성격이라서) 배우기만 하면 꼭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째서 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우선 먼저 [손자], [6도], [춘추좌씨전], [국어] 및 삼사를 읽으십시오. 공자께서도 말씀하셨는데, "하루 종일 안 먹고, 잠도 안자고 생각해도 다 무익한데, 오로지 배우는 것은 달랐다."고 하셨습니다. 한나라의 광무제도 군대를 이끌고 다니면서도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조맹덕(조조)도 늙도록 책읽기를 좋아한다는데, 그대들은 왜 자기 개발에 힘쓰지 않는다는 말이오?" 이후 여몽은 열심히 공부해 여몽 주위에는 아무도 학문으로 여몽을 이길 수 없게 되었고 어느 날, 주유의 후임으로 오게 된 노숙이 찾아와 대화를 해보자 여몽의 말솜씨가 굉장히 유려하여 노숙조차도 경시할 수 없게 되자 노숙은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여섯 살 적은) 동생이 단지 전략 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학식은 넓고 밝고, 더 이상 오하아몽 (吳下阿蒙)(오나라의 아몽(阿蒙: 멍청한 여몽이라는 그동안의 여몽의 별명)이 아니군요." 이에 여몽이 대답합니다. "학자는 (배우는 사람은) 헤어져 3일이 지나면, 눈을 비빈 후에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사람은 삼일을 만나지 않으면 똑똑히 눈을 크게 뜨고 상대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정사 삼국지 여몽전 주석 강표전> 이렇게 해서 현재까지도 유명한 "괄목상대" 라는 말이 탄생하게 됩니다. # 사실상 강남 지역 개발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었고 이렇게 초석을 다져놓은 덕분에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쳐 당송 시대가 되면서 강남의 경제력은 강북을 압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꾸준한 이민족 유입 정책 (인간사냥), 교화 작업 등을 통해서 호구수도 많이 늘렸기에 정치력 면에서는 굉장히 후한 평가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궁의 변 사건 하나가 그의 판단력을 의심케 만들었으니... 그러나 이 사건을 제외한다면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국가를 훌륭하게 운영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손권편 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읽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다음 편은 외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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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일기장] 두가지 인생 - 60
Channel 1. 로키 서림 덕분에 나는 임꺽정과 뜨문뜨문 말문을 트게 되었고, 한 번 말문을 트게되자 임꺽정은 나에게 꽤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임꺽정을 묘사했던 주우의 말인 ‘못생기고 무뚝뚝하지만.’이라는 진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었다. 각설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는 “그러니까...... 올해가 갑자년이고...... 니가...... 계산을 해블면..... 임자년 쥐띠네잉...... 나넌 임진년 용띠니께..... 그라먼 나가 한참 성이구먼.” 그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라스알하게 사람들이 모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이’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한 편이었고, 그것을 토대로 ‘형’ ‘동생’을 따지는 것으로 인간관계를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둘째로 “그라믄 나가 성인께 인자부텀은 말 편허게 헐게잉.” 형과 동생이라는 상하관계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터브룩에 소재를 두고 있는 ‘라스알게티 지부’가 다른 지부들에 비해 유독 상하관계에 더 신경을 쓰는 면을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관계를 시작할 준비를 마친 것인지, 임꺽정은 그 이후로 눈에 띄게 나에 대해서 편하게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임꺽정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인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 종이에는 라스알하게의 문자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이것이 뭐시냐...... 하루의 시작과 끝을...... 적어놓은 일정표여.”“음..... 스케쥴표라 이거지?”“잉...... 그려. 외지 표현으로 허면...... 그렇게 할...... 수 있것구먼.”“꽤나 자세히 적긴 했는데. 문제가 있다. 난 라스알하게 문자는 몰라.”“음...... 그것이 쪼깐 걸리는구먼. 근디 새로 맹글기는...... 종이가 귀혀서......” 임꺽정은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봉착하자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곤란하기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IATP에서 교육사회학 말고 라스알하게어를 선택할 걸 그랬다. 참...... 별로 쓸 일이 없는 언어라고 생각해서 등한시 했더니...... 이런데서 발목이 잡힐 줄이야. “뭐 그럼..... 그냥 직접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도 몸으로 배우는 쪽이 더 나은 것 같고.”“나가 돌봐야 허는 양이 몇 마린 줄은 아냐? 양 돌보는 것이 애덜 돌보는 것보담 훨씬 빡셔...... 아덜은 차라리 말이라도 통허지.”“그럼 뭘 어쩌려고?” 임꺽정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주억거리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급허게 갈켜 줄 것은 갈켜 줄라니께...... 일단 우덜 문자를...... 배워 볼 텨?”“배운다고? 당신들 문자를?”“그려, 뭐 혹시 알어? 난중에....... 써먹을 디가 있을지? 글고, 이 문자가 생각보다 배우기가 쉬울겨. 이 문자를 맹근 양반이...... 총명한 넘은 반나절 전에 깨치고, 아무리 우둔한 새끼라도 사흘이면 깨친다고 말 혔으니께......”“그거야 만든 사람입장에선 쉬운 거 아니야? 그리고 언어마다 다양한 문자 체계가 있고, 거기에 적응을 했는데, 무작정 쉽다고 하는 것도......”“복잡헌건 모르겄고, 일단 현실적으로는...... 암튼 배우는 게 날겨. 배우는 짝이 갈키는 짝에 맞추는 것이 더 수월치 않겄냐?”“.......”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물론 제일 좋기로는 배우는 쪽과 가르치는 쪽이 서로의 입장을 배려해가면서 각자의 배경지식에 접근하는 것을 타협한다면 제일이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배우는 쪽이 가르치는 쪽의 배경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아무래도 더 많은 것을 얻어갈 테니까...... 나로선 그 편이 더 이득이 될 것 같긴 했다. “일단 글자 알켜주는 거는 내일 부텀 허구...... 지금은 시간이...... 그려, 양덜 모타서 외양간에다가 집어넣어야혀.”“음..... 시간이 좀 이르지 않나? 해도 아직 지려면 먼 거 같은데?”“산에는 안 살아 봤나 보네잉...... 산은 평지보덤 해가 빨리 져. 긍께 준비를...... 미리미리 혀야 한다니께. 서림이...... 몰어!” 서림은 임꺽정의 명령을 듣자마자 이리저리 내달리더니 산에 방사된 양들을 한 자리로 모았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다. 양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개 한 마리가 모는 대로 고분고분 모이다니 말이다. 뭐..... 개가 양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겁에 질려서라도 그럴법 하긴 하지만, 양들중 어느 누구도 반항의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양들의 수를 미루어보면 기적에 가깝긴 했다. “인자...... 양덜도 모타놨겄다. 외양간에 넣을 것인디...... 근디, 양덜을 무작정 외양간에 집어넣으면 안뒤어...... 쟈덜중에 물을 안묵은 넘덜도 있을거 아녀? 그랴서..... 요러게.” 임꺽정은 돌 위에 던져놓았던 나무작대기를 들었다. 그가 깎아놓은 것인지 아니면 자연의 기묘한 장난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무 작대기는 ‘이곳이 머리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쪽 끝이 둥글게 휘어있었다. “양덜을...... 몰고 물가로 델구 가면 뒤야.”“음...... 그렇군.” 임꺽정이 나무작대기를 짚고 길을 나서자, 양들은 그가 짚은 작대기가 이정표라도 되는 듯, 작대기를 따라 열을 지어 걸어갔다. 그가 시범을 보이려는 듯,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양들은 우르르 떼를 지어 오른쪽으로 갔고, 그가 왼편으로 걸어가면 역시 떼를 지어 왼편으로 따라갔다. 그가 원형으로 돌자 어느새 목초지에는 하얀색을 띈 둥근 원이 그려져 있었다. 임꺽정은 내 얼굴을 보더니 씩 하고 웃어 보인 것은 물론이었고. “......쉽쟈?” 자세히 보니...... 물론 단순히 그의 카리스마만으로 양이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개중에 집중력이 무뎌져 대오를 이탈할 것 같은 양들이 있으면, 서림이 귀신같이 나타나 잠재적인 낙오자를 무리 속으로 우겨넣더군. 그렇다고 임꺽정의 양 몰이 실력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개들까지 통제하는 그의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겠지. 어쨌거나, 임꺽정은 시험운전을 마치고, 양떼를 물가로 데리고 갔다. “양덜은 생긴거랑은 다르게 취향이 민감혀....... 그래서 같은 물가처럼 보여두 지들 입맛에 맞는 구간이 있어야...... 그걸 캐치해 내는 것이 목동의 실력을 판가름 하는 거의 지표여.”“음...... 결론은 니가 잘난 놈이다 이거지?”“눈치는 제법이구만?”“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양떼가 물을 먹는 동안, 서림은 제 딴에 높아보이는 돌 위로 올라가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임꺽정이 개에게 다가가 손짓을 하자, 개는 득달같이 물가로 가서 목을 축였고, 그 자리에는 임꺽정이 대신 서서 주변을 살폈다. “양치기를 헐라믄...... 눈이 좋아야 써. 아무래두 야덜을 노리는 새끼덜이 많으니께.”“맹수가 있다는 건가?”“잉 그라지...... 오날은 운이 좋아가지고 못봤는디. 이리 떼두 있고, 개호주도 있어야.”“개호주?”“범 모르냐? 산주인 말여.”“음...... 당최 무슨 소릴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먼. 아무래도 니들의 언어를 빨리 배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가 말하는 투와 맥락을 보면, 꽤나 위험한 산짐승인 것 같기는 한데...... 언어가 다르니 이렇게 의사소통에 혼란이 오는 모양이다. 이것만 봐도...... 빨리 그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Channel 2. 아이리스 이봉학씨가 말한 ‘스타일 파악법’은 생각보다 어려운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테스트를 받기 전엔 공연히 긴장을 했지만, 테스트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난 다음에는 긴장이 완전히 풀려, 그럭저럭 여유롭게 그것에 임할 수 있었어요. 어떤 테스트였냐고요? “자...... 인자 드셔두 되야.”“잘 먹겠습니다.” 라스알하게의 별미중 하나인 떡을 5분 이상 먹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었지요. 단, 조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5분 동안 떡에게서 시선을 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이봉학씨가 가지고 온 떡은 ‘꿀떡’이라는 것으로, 안에 꿀 또는 설탕물로 고명이 되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암살자’들과 한 달간 살면서, 관리인 아주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것인지라, 그게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미끄러지듯이 흐르는 윤기를 보면, 저도 모르게 군침이 꿀떡꿀떡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저는 끝까지 참아냈습니다. 실은, 그가 하려는 테스트가 어떤 건지 잘 알고 있거든요. 마시멜로 테스트라는게 있습니다. 동기유발과 성취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려는 테스트인데요, 방법은 지금 제가 치렀던 테스트와 동일해요. 다른건...... 소재랄까요? 저는 지금 꿀떡을 앞에 두고 버티고 있지만, 마시멜로 테스트의 피험자들은 마시멜로를 앞에 두고 버텨야 했거든요. 이 테스트를 주창한 이는, 테스트의 결과 대상자를 둘로 나누었다고 해요. 5분을 견딘자, 5분을 견디지 못한 자로요. 그 뒤에 약 30년 정도 추적검사를 했더니, 전자의 경우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한 경우가 더 많다고 하더군요.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유예하는 능력을 가진 이가, 앞으로의 삶에서도 성취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라는게 테스트의 결론이었습니다. 문득 의문이 든다면...... 이 테스트는 사냥의 스타일을 아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거에요. 뭐..... 사냥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냐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테스트를 통해선 ‘피험자의 사냥 스타일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내리기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 테스트를 하려는 걸까요? 어쨌거나, 저는 테스트를 통과했고, 저는 꿀떡을 집어 입안에 집어넣었습니다. “으음...... 맛있는데요?”“일단 샥시는...... 아니, 이젠 통성명이나 하자구유. 지 이름은 아까츰에 야그를 혔구...... 함자가 어찌되유?”“아 소개가 진짜 많이 늦었네요. 전 아이리스에요.”“그류? 그라모, 이제부텀은 아이리스라구 헐게유....... 일단 지가 지켜봉께로 아이리스씨는....... 덫 잽이 쪽이 어울리갔슈.”“덫 잡이요?”“음...... 이짝 말이라 좀 못 알아듣남? 그짝 말로는...... 아마...... 새퍼라고 할 거유.” 그는 새퍼를 운운하며, 창고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덫을 가리켰습니다. 아아, 그가 말한 것이란 바로, 덫을 이용해 사냥을 하는 스타일이라는 모양인가봐요. “사냥꾼헌티는 여러 소양이 필요혀유. 체력은 기본이구, 집중력, 인내력 기타 등등 많쥬. 근디 아이리스씨는 나가 봉께로...... 인내력허구, 집중력이 좋네유. 덫으로 사냥허는 이들헌티는...... 그게 질이쥬.” 이봉학씨는 저를 덫을 전시한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까 그가 가리킨 것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덫들이 있었어요.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빨 덫(이라고 제가 임의로 이름을 지은)도 있고, 철사며 노끈을 된 덫도 있었어요. 아까 이봉학씨가 설명했던 통방도 눈에 띄었구요. “일단 사냥이라는 것은...... 아무래두 산 동물의 목숨을 빼앗는거유. 그러다 보믄...... 아무래도 피를 볼 수 밖에 없을거유. 아무리 간땡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자부하는 넘들도, 피를 처음 보믄..... 열에 아홉 여덟은 헤까닥 할 수 밖에 없어유. 그러니께......”“그러니까?”“일단은, 거부감이 적은 것 부텀...... 조지는 걸루 하쥬. 물괴기 좋아혀유?”“음...... 네 좋아해요.”“마침 봄철잉께로, 미꾸라지랑...... 가물치가 슬슬 제철잉께. 그걸로다가 매운탕 얼큰.....허게 묵어보자구유.” 이봉학씨는 여러 가지 덫 들 중에서 몇 가지를 챙겨 저를 데리고 창고를 나갔습니다. 벌써 해가 남쪽을 지나 서쪽 하늘을 향해 천천이 움직이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고 자신 있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를 따라 한참을 걷고나니, 어느새 개울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요거는 통발이라고 허는거유.”“통발이요?”“잉...... 흔이 머리 나쁜 넘들을 가리켜가지구, 닭대가리니, 붕어대가리니 하잖아유. 우덜은 바로 물고기의 멍청함을 이용혀서 사냥을 할 것이유.”“음...... 그래요?” 이봉학씨는 통발을 펼쳐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접혀있어서 그 면모를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그가 펼치고 나니, 통발은 의외로 꽤 컸습니다. 잘 휘는 나무를 뼈대로 삼고, 그 주위를 마 재질의 그물이 감싸고 있었지요. 그물은 조금 조잡해보였지만, 그래도 물고기가 쉽사리 빠져나가지는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거를 물괴기들이 댕기는 곳에다가 설치해두면 끝이유.”“엥? 너무 쉬운데요?”“물론 설치만 하믄...... 쉽게 잡지는 못허겄쥬. 기왕 설치헐거, 물괴기들이 많이...... 오라구, 홍보를 혀야겄쥬? 그게 바로 요거유.” 그가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꺼낸 것은, 자그마한 옹기 그릇과, 삼베 천 이었습니다. 그가 옹이그릇을 여니, 운터브룩에서 맡았던 익숙한 냄새가 피어올랐어요. 이 구수한 냄새는 바로...... “된장을 쪼깐 퍼서, 이 천에다가 싸면...... 미끼 완성이유.”“아아, 생각보다 간단하네요?”“간단혀서 실망혔슈? 아까 말 혔듯이...... 아무리 똑똑혀도...... 결국은 붕어대가리유. 된장냄새 맡구 기 들어가는 것 까지는 괜찮은디...... 나갈 줄을 모른다니께유.” 이봉학씨는 킬킬 웃으면서, 개울가에 통발을 넣을 곳을 이리저리 뒤졌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는, 물고기가 많이 살 것 같은 맑고 깨끗한 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히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진흙탕에 통발을 던져놓았습니다. “음...... 이런 데에서 물고기가 살 수 있나요?”“우리 삼민 속담 중엔 그런게 있슈. 너무 맑은 물에는 물괴기가...... 살 수가 없다. 생각 혀 봐유. 물이 맑으면..... 시야가 탁 트이갔쥬? 대신에 눈에도 잘 띌거 아니유.”“아아...... 생각해보니 그렇네요.”“그리고 물이 맑은 곳이 눈에 잘 띄기도 하지마는, 그런디는 물괴기가 먹고 살만한 것이 별루 없어유. 그란디는 그냥...... 물 허구 돌밖에 없는거유. 언뜻 보면 암것도 안 살 것 같은 진흙탕에 오히려 더 많은 생명이 깃들여 있는겨.” 그의 말을 들으니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맑고 깨끗한 물에는 생명이 깃들지 않고, 오히려 더럽고 지저분한 걸 끌어안고 있어야. 거기에 생명이 깃들인다라...... 그리고, 라스알하게 인들은 종종 속담이라는 것을 운운하는데, 아마 그 속담이라는 것은 그들의 경험적으로 습득한 지식을 후대에게 물려주는 하나의 수단이 아닐까 싶어요. “어쨌든, 요걸 설치해뒀으니, 낼...... 아칙에 다시 돌아와 보면 될거유. 아마 실헌 넘덜이...... ‘언니 왔어?’허구 반길거유.” Channel 1. 로키 양치기의 일은 양들을 외양간에 집어넣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일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지. 낮 시간 동안 양치기를 도왔던 개들도 잠을 자야 하기에, 밤이 시작되는 지금부터는 양을 지키는 건 오롯이 양치기들의 몫이 되었거든. 양을 노리는 이리나 곰들은....... 애석하게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양을 노린다는 것이 임꺽정의 주장이었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언제 잠을 자는 거냐?”“틈나는 대루 자야지....... 양 한 마리가 아쉬운 입장에 뭐...... 별 수 있갔냐?” 임꺽정은 양들에게 물을 먹이는 사이에 모아둔 장작을 가지고 모닥불을 피웠다. 5월이면 완연한 봄이지만, 밤공기는 쌀쌀했다. 녀석이 왜 ‘활’처럼 가죽옷을 뒤집어쓰고 다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저거라도 뒤집어쓰지 않는다면, 자다가 입이 돌아갈 판이니...... “어허! 춥구마잉.”“그럴땐 오히려 덥다덥다 말해야 상대적으로 추위를 덜 느낀다고 하더군.”“음마? 그런...... 개소리는 어디서 주워들었댜?”“개소리는 무슨...... 어후! 덥다! 더워!” 임꺽정은 텁수룩한 수염을 씰룩거리며 나를 지켜봤다. 그 투가 내게는 ‘언제까지 그런 개소리를 하는지 지켜보자.’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더욱 더 동작을 크게 했던 것 같다. 녀석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녀석의 기대와는 달리, 내가 ‘춥다’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자, 임꺽정은 슬슬 심심해졌는지 길게 하품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 그 뭐냐...... 별 좀 보냐?”“별? 그거야 하늘에 눈만 두면 보이는 거 아닌가?”“아이고 이...... 화상아. 내가 그걸 몰라서 그런 말을 허겄냐? 별자리 말이여. 별자리.”“별자리......? 그건 딱히 연수에서 배우진 않았는데. 그걸 굳이 알아야 될 필요가 있냐?”“.......니 별자리가 뭔지는 아냐?”“아니, 애초에 니 한테서 처음 들었는데?”“그럼, 이제 쑈하는건 그만 두고, 여그 하날 좀...... 봐바라잉.” 임꺽정은 땅바닥에 드러눕고는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음...... 나보고 저 옆에 드러누우라는 건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들이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깊은 산중에 혼자서 양들을 돌보다보면,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그런 이타적인 의도는 아니겠지? 생각이 복잡해져, 나는 도저히 그의 옆에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몸을 훑어보았을 때,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릴 수가 없었거든. 공략할 방법이 전무한 상태에서 위험에 몸을 맡기는 것 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그는 두어번 손을 흔들다가,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나에게 버럭 화를 냈다. “이 새끼가...... 높바람에 별안간 귀가 먹었나. 까이고 싶냐?”“난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존중하는 입장이지만,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범죄라고 생각한다.”“......뭐려? 뭔 생각을 혔는지는 몰겄는디, 별자리 설명해 줄라는 거니께 얼렁 와서 앉으라고.”“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 일단 앉긴 하는데, 45cm 이내로 나한테 접근하는 건 금지다. 그 정도 거리엔 주인이 있어서......”“아 뭐려!” 일단 녀석의 확언을 받아낸 뒤에, 나는 녀석의 옆에 걸터앉았다. 자가 없어서 정확한 거리를 잴 수는 없었지만, 이정도라면 개인적 거리는 어느 정도 확보한 것 같았다. 임꺽정은 내가 자리에 앉자, 모닥불에 짚으로 된 라스알하게 특유의 모자를 엎어두었다. 모자에 열기는 가려졌지만, 그와 더불어 빛도 가려져 불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별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짝으로 해가 뜨니 동쪽이구...... 저짝은 해가 지니 서쪽이갔지? 동쪽을 오른편에, 서쪽을 왼편에 두면 머리가 북쪽이 되야.”“우리가 누운 쪽이군.”“그려, 그짝을...... 보믄말여, 유난히 밝은 별 일곱 개가 보일겨. 국자모양으로 된건디...... 쩌거랑, 쩌거, 글고 쩌거..... 요러게 일곱 개 보이냐?”“음...... 뭐. 한 30보 쯤 양보해서 그렇게 보이는군. 내가 볼 때는 숟가락 같이 생겼지만.”“그걸 북두칠성이라 혀. 우리 삼민덜은...... 저걸 칠성님이라고 허구.”“칠성‘님’......? 뭔가 존중의 뉘앙스가 느껴지는군.”“잉...... 그랄 수 밖에 없지. 칠성님은 죽음을 관장허는 신잉께.”“죽음을 관장하는 신이라......”“어떤...... 뇌빠진 자석이 죽음의 신에게...... 개기겄냐. 그래서 이짝 동니는 ‘칠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가 많어.”“일종의 뇌물이 되겠군.”“뭐 그렇다고 헐...... 수 있겠구먼.” 임꺽정은 내 말이 재미있는지 껄껄 웃더니, 북두칠성을 바탕으로 북극성을 찾아주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북극성은, 다른 별들과 달리 그 위치에 붙박혀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음...... 그럼 저 별을 통해서 방향을 가늠할 수 가 있겠군.”“잉 그라지....... 그려가꼬, 저 별은 이명이 많으. 붙박이별, 길잡이별이라고도 헌다드만.” 북극성을 찾고난 뒤엔, 그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별자리를 이야기해주었다. 그중에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이야기를 해준 건 목동자리였다. “쩌..... 별자리에서 질로 밝은 별을 우덜은 대각성......이라고 불러야. 워뗘? 존나게 밝지야?”“음..... 꽤 밝군. 진짜로 밝아.”“쩌 별 말구, 또 밝은 별이 하나 있는디...... 그건 겨울철에나 뜨는 별이여. 천랑성이라고. 일단 별 이야그는 난중에 허구, 쩌 별에서 쫌만 떨어진 곳에 아까츰에 야그헌...... 큰곰자리가 있쟈?”“음...... 그러게,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데?”“우덜 목동은...... 쩌 별자리를 보믄서, 저런 큰 곰으로부텀 양덜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렇게 밤을 새는거여.”“실제로 곰을 본 적은 있나?”“잉..... 잊어버릴 때쯤이면, 나타나는 게 곰 새끼여. 봄 곰은 겨울철에 자빠져 잠자느라 쫄쫄 굶어가지고 숭악헌디 비실비실허구, 가을 곰은 겨울잠 잘 채비혀느라 존나게 탐욕시러운디 하도 처먹어서 뒤뚱거리제.”“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남자의 허세제. 말은 이리 혀두, 앞발에 스쳐도...... 그대로 삼도천 건너는겨.” 킬킬 웃는 녀석을 보며, 녀석의 삶이 나와 조금이나마 닮은 구석이 있다는 걸 느꼈다. 녀석의 삶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타자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 사이에 녀석의 삶이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녀석은 자신의 소유를 지키는데 목적이 있다면, 나는 타인의 소유를 빼앗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겠지. 주우가 의도를 하고 나를 임꺽정에게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녀석과 대화를 하면서 그런걸 느꼈다....... 그랬다. Channel 2. 아이리스 이봉학씨와 통발을 놓고 오면서, 그는 창고로 가기 전에 잠깐 들를 곳이 있다면서 저를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음..... 사냥꾼이 산에 간다는 건, 뭔가 사냥과 관련된 이유로 가는 것이겠죠? 저는 능숙하게 산을 오르는 이봉학씨의 뒤를 따르면서, 그가 어떤 이유로 가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습니다. “오르기 심들쥬?”“아니 뭐...... 괜찮아요. 선생님이 오르는 길을 따라서 가는거니까, 눈짐작으로 선생님이 잡았던 곳을 그대로 잡거나, 선생님이 발을 디딘 곳을 그대로 디디면 되니까요.”“옴마?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디유? 산 좀 타셨......나봐?”“하하, 제 어머니의 친구분이 산에 사셨거든요. 종종 상담할게 있을 때 마다 찾아뵀는데, 그때 했던 가락이 있었나 봐요.” 이봉학씨의 칭찬을 듣다보니, 제가 처음에 그와 만나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독한 오해를 했었지요. 그때만 하더라도 저는 ‘사냥’이라는 단어와는 알타이르와 베가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와 어울리다보니, 이렇게 칭찬을 들을 정도로 ‘사냥’이라는 것과 가까워 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주우가 아무런 생각 없이 저를 이봉학씨와 만나게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녹림당’의 리더가 그냥 된 것은 아닌 모양이에요. “여그부텀은 동물들이 댕기는 곳이니께...... 가급적이면 나뭇가지를 만지거나 소리를 내는건 조심하셔유...... 즘생들이란 워낙 경계심이...... 강한 넘덜이라 자그마한 인기척이라도 느끼면...... 바로 째버리니께.”“네. 알겠습니다.” 이봉학씨는 그 말을 끝으로,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조심스럽게 산을 올랐습니다. 사람 좋은 말만 해대던 그도, 이 구역에 오고나니 확연히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감았는지 떴는지 모호했던 그의 눈이 이젠 안광을 내며 번뜩였고, 이젠 숨조차도 조심스럽게 들이마시고 내쉬었습니다. 그의 그런 태도변화가 사뭇 진지해보이는 바람에 저 역시도 그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쉬며 그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어요. “아 그리고 하나 더...... 아이리스씨는 내 뒤를 따라 오믄서, 발자국을...... 설설 긁어서 지우도록 혀유. 발자국도...... 동물헌티는 낯선 흔적잉께유.”“......네.”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봉학씨는 저를 배려한다고 발을 느리게 떼었지만, 걸음을 걸으랴, 흔적을 지우랴 일이 보통 많은게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저를 믿는 만큼 일을 맡긴 것이 분명했기에, 저는 불만을 터뜨리거나, 흔적을 지우는걸 게으르게 할 수는 없었어요. 저야 그에게서 배우고 떠나면 그만일지 몰라도, 그는 이곳에 남아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제 작은 실수가 그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일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뭐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제가 모든 흔적을 남김없이 지웠다고 자부할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몇 번 손바닥으로 바닥을 긁어나가다보니,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손에는 진흙이 묻어나고, 돌에 긁혔는지 아스라한 통증이 느껴졌거든요. “자..... 인자 일어서두 되유.”“다 온거에요?”“잉...... 봐봐유.” 우리의 은밀한 걸음은 어느 자그마한 나무 앞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는 가슴속에서부터 앓는 소리를 끓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저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를 살펴보았습니다. 나무에는...... “와...... 이거 봉학씨가 잡은거에요?”“잉. 그런 셈이쥬.” 나무에는 다람쥐가 스네어에 묶인 채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스네어는 올가미라고 생각하면 되요. 그는 자그마한 다람쥐를 유인하기 위해, 다람쥐가 나무에 오르기 쉽도록 각목을 옆에 비스듬하게 세워놓았어요. 그 각목에 스네어를 설치한 것이죠. 스네어는 낚싯줄처럼 얇고 투명한 끈으로 되어있어, 다람쥐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람쥐는 나무 옆에 세워진 각목을 보며 ‘이거면 나무를 쉽게 오를 수 있겠군.’하며 얼씨구나 하고 각목을 오르다 스네어에 걸린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아직 숨통이 안끊어졌네...... 끊어볼려유?”“으윽...... 그건 아직.”“알아유. 지가 말혔잖아유 한 걸음 한 걸음 찬찬이 가보자구..... 게다가 여그는 지 아지트랑도 멀어서, 지금 죽여버리면 도착헐 때 쯤에는 고기를 쓸 수가 없어유.” 그는 스네어를 연결한 줄을 끊어 다람쥐를 확보하고, 남은 실에 자신이 가지고온 여분의 스네어를 연결했습니다. 그 뒤에 다람쥐를 잡을 동력원을 다시 원상복구했지요. 동력원이라고해서 뭔가 거창한 걸 생각할 지도 모르겠는데요. 그건 사실 별것 없었습니다. 실의 끝에 있는 나뭇가지를 휘어서 나무 옹이 속에 집어넣은 게 다였습니다. “올가미의 원리는 간단혀유. 대상이 그걸 톡 건드리면, 바로 쑥.....허구 조일 수 있도록 하는거유. 라스알게티처럼 기계장치가 있다면...... 좋겄지만, 즘생덜 다니는 산에다가 그딴 짓을...... 허면 바로 의심허겄쥬? 그래서 요러게...... 나무를 휘어놓는거유. 다람쥐가 저걸 건들믄, 휘어놨던 나뭇가지가 펴지면서...... 다람쥐를 꼼짝 못허게 묶는거쥬.”“아아...... 생각보다 간단하네요?”“간단헌게 최고쥬.” 이봉학씨와 스네어를 복구한 뒤에, 저희는 왔던 길을 되짚어 산을 내려갔습니다. 물론 그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저희가 왔던 흔적을 지우는 건 잊지 않았지요. 그가 허리춤을 펼 때쯤, 뒤를 돌아보니, 이곳에 사람이 지나갔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지요. 새삼 저라는 사람이 얼마나 꼼꼼한 인물인지 자찬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다람쥐는 어떻게 처리를 하는 건가요?”“뭐 조지는거야 어렵지 않쥬. 목뼈를 꺾으면 바로 골로 가니께유...... 단, 앞서두 말했듯이 일찍 죽여 버리면, 괴기가 상혀유. 원래 동물들이 죽으면 내장부터 부패허니께.......”“아아, 그래서 집에 도착 할 때 쯤 처리를 하는거에요?”“잉..... 그리고 다람쥐는 크기에서두 알겄지만 별루 먹잘건 없슈...... 그래도 휴대성이 좋아서, 보존식으로 가공을 혀유.”“음...... 이를테면 훈제를 한다는 건가요?”“옴마? 훈제도 아요?”“그럼요. 제가 살림을 몇 년을 했는데.” Channel 1. 로키 1624년 5월 18일 산에 틀어박힌 지도 벌써 열흘이 다됐다. 그래도 임꺽정은 생각보다 막 되먹은 녀석은 아니었던지라, 5일에 한 번은 마을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래도 천성이 양치기였던지라, 그 많은 양떼를 놓고 갈 수가 없었는지, 양들을 몰고 왔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 방문이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난 처음에 네가 이 많은 양들을 죄다 데리고 간다고 할 때, 네가 정신 나간 놈인 줄 알았다.”“이잉...... 그래서 느가 맨 첨에 내려갈 띠 나럴 그렇게 쳐다봤구먼?”“내 얼굴이 뭐. 남들은 날 보면 아무런 표정이 없다고 하는데?”“그래두...... 뭐 자세히 뜯어보면 쪼깐...... 달라지는 것이 있던디?” 임꺽정은 허허 웃으며 지팡이로 ‘청석’을 두드렸다. 내가 녀석을 정신나간 놈으로 본 이유는 간단했다. 산에 오르기전에 마을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상식적으로 이 많은 수의 양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거든. 양들에게 있어서 최적의 입지는 풀을 뜯을만한 초지와 그에 인접한 물가가 있는 곳이었다. 많은 양의 물을 요구하는 논농사를 짓는 ‘청산’에 저 많은 양들을 데리고 간다면, 양과 벼가 물을 놓고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 분명했다. 특히 지금과 같이 모내기를 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러할테지. 그런 상황에서 물을 빼앗을게 분명한 양을 데리고 간다면, 그 마을에 거주하는 농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하지만 내 판단은 아주 간단한 사실 하나로 반박이 되었으니, 그건...... “그러면, 너는 네 소유의 양은 한 마리도 없는거냐?”“에이 뭔 소리여......? 나가 양을 친 것이....... 몇 년인디 내 수중에 양 한 마리도 없겄냐?” 양을 관리하는 권리와, 양에 대한 소유권은 명백히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의 역할은, 마을 사람들에게서 양을 받아, 그걸 관리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을 받아가면서 하는 것이겠지. 관리를 잘 해서 양이 건강하게 자라준다면 돈을 받겠지만, 잘못 관리해 자칫 양이 죽거나 다치게 된다면 그는 양을 관리하고도 오히려 양 값을 물어주어야 하는 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와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나왔던 것이겠지. 그에게 있어서, 나를 만나는 그 순간은 문자 그대로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럼 양들을 주인에게 돌려주면 오늘 일은 끝나는 건가?”“음...... 오늘은 아녀. 점번에는 그랐는디, 이번에는 주인헌티 돌려주기 전에 한나 해야 할 일이 있어야.”“아 그래? 뭘 하는건데?”“간단은 헌디...... 빡신 일이여.” 저번과 달리, 그는 마을을 관통하는 물가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임꺽정은 서림을 시켜 양들을 정렬한 뒤에, 한 마리 한 마리 살펴보며 양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양을 분류하는 모습을 보며, 무슨 기준으로 양을 분류하는지 추측을 해보았다. 음...... 그렇군, 양털을 기준으로 분류를 하는 모양이다. 편의상 두 개로 나뉘어진 양떼를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어본다면, A그룹의 양은 털들이 보기 싫을 정도로 자라있었다. 반대로 B그룹의 양들은 털의 길이가 준수한 편이었지. 그는 나에게 B그룹의 양들을 맡겼다. 나는 양들을 보며 임꺽정에게 받은 양들 앞에서 지팡이를 두 번 두드렸고, 그 구령에 따라 B그룹의 양떼들이 내 뒤를 따라 물가로 갔다. 양들에게 물을 먹이며, 나는 임꺽정이 하는 일들을 지켜보았다. 그는 봇짐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가방에서 솜씨 없는 대장장이가 대충 만든 것 같은 커다란 가위를 꺼내들었다. 그리곤 서림에게 양들을 정렬시키고 나서, 한 마리 한 마리 양들을 데리고 나와 직접 털을 깎았다. 겁 많은 양이라면 임꺽정의 손에 들린 그 무식하게 큰 가위를 보며 겁에 질릴 법도 하지만, 그의 손이 워낙 우악스러웠던지라,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그대로 우뚝 서서 임꺽정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깎은 털들은 어떻게 하는 건가? 네가 가지는 건가?”“반은 맞고...... 반은 아녀. 반은 내가 챙기고, 반은...... 주인 몫으로 냉겨 놓는겨.”“그럼 덜 깎는건가?”“아따...... 왜 이리 사람이 무식한 거여. 반만 짜르는건...... 어느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냐?”“거 사람이 궁금해서 물어보면 곱게 답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부아가 치밀어 그의 말에 퉁을 놓자, 녀석은 그게 즐거웠는지 껄껄 웃어 제꼈다. 이거 참...... 토라 이후로 이렇게 캐릭터를 좆같이 잡은 녀석은 처음 본다. 토라년은 ‘이게 다 오빠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는 명분으로 내게 온갖 간섭질을 하며 나를 괴롭히더니, 임꺽정놈은 ‘넌 왜 이리 무식하냐.’라며 나를 괴롭힌다. 물론 차이는 있다. 내가 반박을 할 때면, 토라년은 되지도 않을 정색질을 한다면, 임꺽정놈은 껄껄 웃어 재낀다. 어느 쪽이든...... 내 기분이 더러워진다는 데에선 일맥상통하긴 한다만...... “이것이 다...... 노하우여. 양털을 깎으면, 반은 내 봇짐에 채워넣구, 반은 요러게....... 쟁여놓고 양 모가지에...... 걸어놓으면 되는거여.”“애초에 그렇게 말을 하면 됐잖아. 너는 왜 내가 말을 할 때 마다 사설을 붙이냐.”“그편이 더 재미있지 않냐? 쪼크여 쪼크.”“조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더 말해봐야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 나는 임꺽정에게는 신경을 끄고 물을 먹고 있는 양들을 살피기로 했다. 지켜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얌전한 놈들이다. 내가 임꺽정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 같으니까, 죄다 내 눈치를 본다고 물을 삼키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양들 중 가장 어린놈의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었고, 녀석은 내가 괜찮다고 하는 의사표현을 알아들었는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가장 약하고 어린놈이 안심하고 물을 마시니, 나머지 놈들도 그걸 따라했다.그 모습을 보노라니 가정불화에 대한 자기 고백성 에세이에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들이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은 자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싸우는 부모 앞에 끼어들어 ‘자기가 잘못했다고..... 앞으로 잘 할 테니 싸움을 멈춰 달라.’라고 호소를 한다고 한다. 물론, 자녀의 양육문제로 싸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그런다고 하니...... 참으로 미성숙한 일이지? 교육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아이의 행동의 기저에는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라는 자기중심성이 깔려있다고 한다던데...... 상식적으로 이해는 잘 되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이라면 대부분 이기적인 행동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아이의 호소에는 이기적이라고 할 만한 구석이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지.어쨌거나, 양들의 이런 무력하고 순진무구한 행동양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런 행태를 보다보면 심박수가 느려지면서, 마음에 걸렸던 부하가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 참 신기한 일이지? 그냥 동물의 어리석은 모습을 볼 뿐인데 왜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것일까? Channel 2. 아이리스 1624년 5월 18일 이른 아침...... 새의 지저귐과 더불어 느릿느릿 기지개를 켜는 숲속에서..... 저는 덤불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이유로 그런데에 숨기고 있냐고요? 이거...... 설명을 더 해서 제 몰골까지 묘사를 한다면, 궁금증은 더욱 심해질 것 같네요. 제 얼굴에는 검은색, 녹색, 갈색의 도료로 살색한점 없이 덮여있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름모를 야생초로 온몸을 뒤덮은 채였거든요. 저는 이봉학씨가 시키는 대로,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숨을 내뱉는 대신, 한번에 들이마시고 내 쉴 것을 두 번, 세 번에 걸쳐 나누어 쉬었습니다. “......”“......” 덤불 너머에는 작은 초지가 있었고, 그 위로 토끼들이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건 아니에요. 태생부터 겁이 많은 이 동물들은 풀을 먹든 물을 마시든 뭘 하든 모두가 하나 되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순번을 정해 경계를 섰어요. 이 역시도 이봉학씨가 말하는 대로였어요. 경계를 서는 토끼는 가슴을 쭉 펴고 곧추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참으로 지혜로운 것이,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보는 것이 아니라, A라는 장소를 찬찬이 살핀뒤에, B라는 장소를 정해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어요. 그렇다고 바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A와 B의 교집합이 되는 장소를 설정하고, 그것을 서서히 늘려가면서 순찰을 하는 거에요. 이렇게 방비가 삼엄한데 어떻게 할거냐고요? 저는 토끼들이 풀을 뜯는 초지 너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었지요. 그곳의 있는 구멍이 우리가 파악한 토끼굴의 입구가 있지요. 저는 큰 줄기에서 시선을 옮겨, 가지를 향해 눈을 돌렸습니다. 그곳엔 이봉학씨가 손을 흔들고 있었지요. 저는 그의 손을 향해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는 차원에서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지요. 그가 저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였습니다. 신호에요. 저는 그의 신호에 따라, 꽁꽁 싼 거즈를 풀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리의 똥이 들어있었어요. 저는 그들이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손부채로 부쳤습니다. 이봉학씨의 말대로라면 단 세 번, 세 번이며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 토끼의 후각은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민감하다더니...... 세 번째 손부채를 부칠 것도 없이, 경계를 서는 토끼가 앞발로 바닥을 긁었습니다. 그 행동에 토끼들은 풀을 뜯는 것을 멈추고, 서서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토끼들의 시선이 이러저리 떠돌다가 제가 숨어있는 덤불 근처로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가지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손가락은 이제 2개가 되었습니다. 역시 두 번째 신호에요. 저는 신호를 따라 손에 쥐고 있던 줄을 천천이 당겼습니다. 줄들은 토끼굴의 반대편에 있는 장치를 흔들었어요. 물론 도르레에 솜을 감았기 때문에 줄 자체에는 소리가 나진 않았어요. 저에게는 장치에서 나는 소리도 들리진 않았지만, 청각이 민감한 토끼들에게는 꽤나 큰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이젠 모든 토끼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어요. 여기까진 이봉학씨가 알려준 시나리오 대로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가지를 쳐다봤습니다. 이봉학씨는 손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젠 마지막이에요. 하지만 저는 아까완 달리, 바로 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너무 부끄러웠거든요. 이 몰골을 가지고...... 그걸 해야 한다는 게...... 비록 말 못하는 동물이고, 그 미적감각이 인간의 것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제가 망설이는 사이에, 그의 손은 더욱 빠르게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하아.....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뭐. 저는 결국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어.....어흐으응......”“!!!!” 자리에 벌떡 일어나, 토끼들을 향해 손을 들며 저는 호랑이가 내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어흥이라니, 스물 네 살 먹은 처녀한테 어흥이라는 말을 하도록 만들다니...... 저는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는 한편으로...... 제 얼굴에 도료를 빈틈없이 칠해서 다행이라는 게 새삼 느껴졌어요. 아마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따면..... 토끼들은 걷잡을 수 없이 빨개진 제 모습을 여과 없이 봤을 거란 말이에요. 어쨌거나, 작전은 성공을 해서, 토끼들은 갑자기 나타난 제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풀밭에서 진동한동 내달리기 시작했어요. 저는 어정쩡한 자세로 이봉학씨를 쳐다봤지만...... 이봉학씨의 시선은 제게 닿지 않았어요. 그의 온 신경은 그의 손에 달린 줄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캑!!!” 무연중에 누군가가 목을 잡아채서 나는 캑캑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그의 손에 들린 줄이 이리저리 뇌까려졌습니다. 덤불속에서 그 너머가 보이진 않았지만, 가지위의 이봉학씨의 얼굴은 똑똑히 잘 보였습니다. 그의 얼굴은 아까의 긴장감이 모두 날아 가버린...... 문자 그대로 ‘통쾌한’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되얐슈!”“됐어요?” 저는 그가 있는 나무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그의 말대로 토끼 한 마리가 줄에 발이 묶여 오도카니 서 있었지요. “잘 혔슈! 옴마 인자는....... 덫 놓는 거는 도가 텄네유.”“고맙습니다.”“고맙긴유...... 알겄지만, 지야 본대루만 야그 허잖아유.” 그는 흐뭇한 얼굴로 토끼의 뒷목을 잡고, 제게 토끼를 건네주었어요. 이봉학씨가 알려준 대로, 저는 토끼의 귀를 잡아챘습니다. 토끼는 귀를 잡히자 그대로 딱 굳어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요. 토끼는 제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떨었지요. 아마 열흘 전의 저라면...... 토끼의 귀여운 모습에 얼이 빠져 ‘죽이는건 하지말자.’라고 이야기를 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열흘 전이고...... 지금의 저는 제 팔에 느껴지는 무게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성취감이 느껴졌습니다. “이제 이 토끼를 어쩔 셈이에요? 손질하는건 이미 배웠잖아요.”“뭐..... 직접 혀보라구 하고 싶은 것두 있긴 헌디..... 아이리스씨 손 맵시 보믄 굳이 혀 보라고 헐 것도 없어 보이구...... 쪼깐 욕심나는디, 그거나 한 번 혀볼려유?”“어떤거요?”“돈 놓고 돈 묵는거랑 비슷하쥬...... 미끼 놓구 더 큰 거 잡는 거요.”
갑과을작성일
2018-02-1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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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일기장] 두가지 인생 - 47
Channel 0. Prelude 1624년 1월 31일 아침의 아케르날,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문자 그대로 처녀림이 우거진 곳이지만, 밤사이에 무르짐 산맥을 타고 내려온 짙은 백무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파고들어왔다. 평소에도 우거진 덤불 탓에 한 걸음도 제대로 옮기기 힘든 오지였건만, 나무사이를 감도는 백무탓에 그곳은 그야말로 하얗고 푸르른 자연의 방벽처럼 되어버렸다. 그런 자연의 방벽을 누군가가 헤집듯이 돌파하고 있었다. 엄청난 두께의 녹음과 백무는 필연적으로 그곳을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할 법도 한데, 이 여행자의 걸음에서는 두려움은커녕 망설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정글나이프 한자루 없이 덤불 사이를 요리조리 넘나들었고, 그가 걸었던 자취에는 풀 한포기 눕지 않았다. 그 누구도 여행자의 걸음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안개와 녹음조차 막지 못했던 그의 발걸음은 거대한 암벽 앞에서 비로소 가로막힐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가로막은 자연의 방파제 앞에서 자신이 기어오를만한 곳이 있는지 오목조목 살펴보았지만, 방벽은 바늘하나 들어갈 틈 없이 매끈해 보였다. 비록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 암벽은 사실 수많은 서로 다른 돌들이 맞물려서 형성된...... 즉 인공물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이 방벽앞에서 파훼법을 찾는 데 실패를 했고, 여행자는 곤란함을 느꼈는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한참동안 자신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든 뒤에야 그는 도리가 없음을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가 없네.” 그는 포오하고 한숨을 쉬고는 자신이 걸쳤던 옷을 주섬주섬 벗어놓았다. 그리고 안개에 가려진 장벽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에 몸에 힘을 주었다. 근육이 긴장한 탓인지 그의 어께가 부풀어 올랐다. 그는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붉으죽죽해질 때 까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우지직 소리를 내면서 그의 등이 천천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갈라진 틈으로 피가 나오다가......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사람의 몸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그것...... 그것은 흡사 박쥐의 날개와 같았다. 그는 팔을 높이 치켜들었고, 그와 동시에 날개가 활짝 펴졌다. 그 날개는 그의 팔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듯싶었다. 그는 시험 삼아 날개를 몇 번 펄럭거린 뒤에, 하늘로 본격적으로 날아올랐다. 방벽 너머로 착지한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방벽 너머에는 거대한 크기의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여행자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어께에 돋아난 날개를 꺾어서 떼어내 버렸다. 날개가 떼어진 순간에는 그의 어께에서는 대량의 피가 솟구쳤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었다. 그는 날개를 버려두고서 구덩이의 한 가운데로 천천이 걸어갔다. 구덩이의 한 가운데에는 돌멩이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그는 돌이 무슨 알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손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의 손이 돌멩이에 닿자, 두 개의 돌 중 왼쪽에 있던 돌에서 빠득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갈라진 금 사이에서는 쭈글쭈글한 작은 손이 확하고 튀어나왔다. 여행자는 돌을 조심스럽게 들어 품었다. 아이를 받아든 뒤에, 남자는 남은 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마 그의 용무는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이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엔 조금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남은 돌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설마 게임 시작부터 반칙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여행자는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중무장을 한 사람 여럿이 그를 보며 경계 태세를 하고 있었다. 여행자는 나머지 돌에서 손을 거두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가 뒷걸음질을 치는 만큼 중무장 인원중 몇이 앞으로 걸어 나왔고, 그들은 돌을 집어 견고해 보이는 상자에 그것을 담았다. 상자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다크스타의 사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야기만 들어왔지, 이렇게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군요. 반갑습니다.”“당신이 그 알파르드의 사도인 모양이군요. ‘반갑습니다.’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글쎄요, 경쟁자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나눌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진 않아서요.” 돌아온 말은 차가웠지만, 중무장 인원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막상 말로 들으려니 조금 섭섭하려고 하는데요? 말이야 경쟁을 한다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이지 않습니까?”“방법론적인 것에선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렇긴 하군요.” 리더는 여행자에게 손을 내밀었고, 여행자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의 손을 맞잡았다.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가 모시고 있는 분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우리 정정당당한 경쟁을 하도록 합시다.”“정정당당이라...... 알파르드가 입에 담을 소린 아니겠지만, 그렇게 합시다.” Channel 1. 로키 1624년 4월 19일 라스알게티에서 도망쳐 나와 프로하기온으로 온 지도 벌써 3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3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는, 찬 바람이 온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의 손길에 잠들어있던 만물이 깨어나, 겨우내 품고 있던 생명의 응어리들이 뿜어지듯이 껍질을 깨고 펼쳐지는 시기가 왔다는 걸 의미했다. 그건 말라붙은 사막의 도시인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모래언덕 사이로 드문드문 돋아있는 알로에들이 제 꽃망울들을 팝콘처럼 펑펑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 생명의 탄생속에서, 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작업은 아무래도 비숙련 노동자다보니, 그렇게 고급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틀에 흙과 물을 섞어서 걸쭉해 질 때 까지 개면 되는 것이다. 라스알게티에서는 시멘트라는 것을 건축에 사용했는데, 이곳 프로하기온은 그런건 쓰지 않는다. 워낙 고온 건조한 곳이다 보니, 진흙을 물에 개어 걸쭉하게 만들면 그게 시멘트 대용이다. 기후도 기후지만, 이곳에는 석회암 광산이 없는것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뭐 요즘같은 17세기에야 철도가 온 대륙을 구석구석 훑어지나가기에 원료산지가 없다는건 한낱 변명에 지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천 여 년 가까운 시간을 시멘트 없이 잘 만들어왔으니, 이제와서 시멘트라는 새로운 건축자재가 들어와 봐야 굳이 설 자리도 없을 터다. 한참동안 비지땀을 흘려가며 저어댄 결과, 흙과 물이 만나 걸쭉해졌다. 나는 막대기를 담갔다가 한 소끔을 집어올렸다. 엿가락처럼 쭉쭉 늘어나다가 뚝뚝 끊어지는 것이, 이만하면 될 듯 싶었다. “흙구리 다 쳤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돌공들 여섯 일곱명 가까이가 흙구리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거푸집조 둘, 운반조 둘, 건조조 셋으로 구성되었다. 거푸집조가 흙구리에 거푸집을 푹 담근 뒤에, 잉여 흙구리를 긁어내면, 운반조가 그걸 건조조에게 가져다 주었다. 건조조는 거푸집에서 흙구리를 떼어낸 뒤에, 솜씨 좋게 모래를 뿌리고 발라댔다. 그들이 이 건축현장의 재료인 벽돌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꽤나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담배를 두 세 개비를 피우는 동안 내가 만들어낸 흙구리를 문자 그대로 바닥을 내버릴 정도로 작업속도가 빨랐다. “이거 참, 쌔가 빠지게 만들어놨더니, 담배 두 개비 필 시간만 주는거에요?”“얼른 해야 얼른 끝내지.”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거푸집을 내 발치에 던져놓고는 그대로 야자수 그늘 아래로 기어 들어가버렸다. 그들에게 있어 ‘얼른 끝낸다.’는 말에 생략된 주어에는 내자리가 없었다. 더 얄미운 것은...... 저렇게 후다닥 해치우고 한숨 잘 자고나면 나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래서 공부에 자신이 없으면 기술이라도 배우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위장신분으로 하는 거라지만....... 솔직히 부러워 보이는 건 사실이다. 나는 좀 더 많은 휴식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틀에 더 많은 물과 흙을 가져다 부었다. 사실, 비숙련공의 작업이라지만, 이것도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무작정 동시에 부어서 섞어버리면 점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을 수가 있어, 이 기술을 터득하기 전에는 꽤나 많이 깨졌었다. 그 노하우라함은....... 일단 흙을 산처럼 쌓아놓은 뒤에, 그곳에 조금 구멍을 파고, 그 구멍에 물을 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웅덩이로 흙을 삽으로 퍼서 집어넣는 것이지. 조금 시간은 걸리지만, 점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문제는 이 기술이란게, 흙을 물웅덩이로 생각 없이 넣다보면 물이 넘쳐버리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러면 매우 골치 아파진다. 흙을 붓는 것과 동시에,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것, 겉보기 보단 엄청난 세심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어이, 산냐신! 점심먹자 어서 오라구!”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알로에에서 눈을 떼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텁수룩한 수염 때문에 ‘수염고래’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작업반장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제법 많은 수의 인부들이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까고 있었다. 나는 캐비닛에서 도시락을 꺼내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수염고래와 그 친구들은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도시락을 우물우물 먹고 있었다. “여기 앉아.”“네 감사합니다.” 나는 수염고래가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열었다. 도시락 통 안에는 베이컨 다섯줄이 열을 맞춰 돌돌 말려있었고, 그 옆에는 계란 옷을 입은 빵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빵 위에는...... “이야, 역시 신혼이라 그런지 뜨겁구먼 그래.”“하하......하.” 케첩으로 그린 것 같은 큼지막한 붉은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작업반장은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지위 때문인지 특히 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께를 탕탕 두드리기까지 했다. 하...... 정말 이런 순간만큼은 그의 텁수룩한 수염을 잡아 뜯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제수씨는 우리를 날마다 놀래 키는구먼. 대체 비결이 어떻게 되는 거야?”“.......”“아우님 이젠 그만 좀 빼고 비결 좀 알려주시게, 내가 그걸 몰라서 공갈빵으로 한 달을 연명하고 있다니까. 이러다가 ‘더스트 앤 데저트’에 굶어죽었다는 부고 기사로 남을지도 모르겠어.” 이 짓궂은 아재들은 낄낄거리면서 내 허리를 탕탕 두드렸다. 개중에는 탁자를 잡고 허리를 흔드는 동작까지 보여준다. 남초 집단의 질펀함이란....... 가끔 답답이가 내가 일하는 곳으로 구경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내가 뜯어 말리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난 이곳에 적응해야만 한다. 그건 내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지. 지금은 ‘우리’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그곳의 가르침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내게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팁을 주었는걸. 나는 ‘지금’, ‘이 장소’, ‘이 상황’에 맞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여자야 뭐...... 남자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키야!! 명언이다. 명언이야! 이래서 젊은 게 최고라니까!” 프로하기온에선 프로하기온의 법을 따르라는 것이지 뭐. 나는 최대한 음험하고 질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을 했고, 그 언어적인 의사소통과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의 결합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내 어께를 두드렸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 짓거리도 계속 반복하다보니 어떻게 처신해야 넉살좋다며 넘어가는지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지금으로선, 꽤나 성공적으로 이 질펀한 아재들판에 잘 어우러 든 것 같다. 나는 아재들 사이에서 답답이가 싸 준 도시락을 훌훌 비웠다. 모래바람 탓에 조금 까끌거리는 것 말고는 맛이 좋아서 먹는데 문제는 없었다. 정말 도피의 파트너로서는 최고였다. 도시락을 비우는 중에, 수염고래의 친구들 중 하나가 내 옆에 앉아 말을 붙였다. “어이, 젊은이 오늘 야근 한다고 하면 할 거냐?”“야근이요? 오늘부터 한대요?”“아까 본사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 들어보니까, 작업을 빨리 마쳐야한다고 오늘부터 야근할 직원을 모집한다고 하던데.”“지금대로만 해도 공기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그게.......” 그는 턱으로 작업장 너머를 가리켰다. “페어 게이트 쪽 있지? 거기 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솔솔 나왔잖아. 본사에서 했던 사업안이 통과된 모양이더라고. 그쪽에 재개발이 확정됐다고 하더라.”“아아...... 일이 그렇게 됐군요.”“그래, 여기 쪽 말고 마지막 뉴타운 후보지였잖아. 이젠 본사에서 거기까지 먹게 된거야. 그러니 이쪽일은 빨리 장 마감하고 그쪽으로 뛰어들어야지 않겠어?”“하......참.” 그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돈이 돈을 낳는다. 뭐, 그들이 움직여주느라 흘리는 돈을 우리가 받아먹긴 하지만, 진짜 알맹이는 그들의 몫인 것이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밥알을 입속으로 집어넣는 동안, 본사 쪽 직원이 서류철을 들고 나타났다. “오늘 야근할 사람 있나? 다 알겠지만 수당은 시급의 1.8배라고.” 그의 말에 모두들 도시락을 내던지고 본사 직원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사료를 향해 덮어놓고 달려드는 물고기와 같이 느껴져서,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1624년 4월 19일 이곳 프로하기온에 온지도 벌써 세 달 가까이 됐습니다. 젊은 남녀 둘이서 누구하나 아는 이 없는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생활비가 부족해서라고요? 아뇨. 생활비는 로키군이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도 해결하는데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다만 라스알게티와 달리, 여러 출신들이 뒤엉켜 사는 곳이 아니라 이웃들이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세대를 걸쳐 살아가는 좁은 동네이다 보니 소문이 생각보다 빨리 퍼지는 것이 문제였지요. ‘벽에 귀가 달렸고, 바닥에는 눈이 달린’ 이 고장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별다른 직업 없이 빈둥대다 보면 호사가들의 눈에 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지요. 그리하여 저희 둘은 사람들의 눈에 어색하지 않을 직업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저를 부르는 학생들의 소리에 저는 마당에서 기르고 있던 알로에에서 눈을 떼고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양장본의 책을 들고서 저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아 그래! 학교는 잘 다녀왔니?”“네! 오늘은 뭐 먹어요?” 로키군은 몸을 쓰는 것이 더 편하다며 토목사로 들어갔고, 저는 제 대학 때 전공을 살려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로키군은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했어요. 안전가옥에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은 조금 경계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외부인이 저희 집에 내왕을 해서 소위 ‘보는 눈’이 많아진다면, 만에 하나 요원들이 들이닥쳐도 그 눈들 때문에라도 함부로 행동하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역설을 했고, 로키군도 그 말에는 반박을 할 수가 없었는지 결국 아이들을 받는 것에 동의를 했었습니다. “오늘은, 파티마네 어머님이 가져다 주셨던 얌을 쪄먹으려구 준비했지.”“얌이요?” 주흐르는 제 말에 불만스러운 듯 볼을 잔뜩 부풀렸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에요. 하하...... 그동안 이곳 음식에 익숙하질 않아서 평소에 해먹던 음식을 해주었더니 애들의 반응이 퍽 좋았거든요. 그래도 애들이 평소에 먹는 걸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나름 열심히 배웠는데....... 아무래도 라스알게티식 음식이 이 아이들에겐 별식으로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일단 선생님도 이곳에 오랫동안 있으려면 이곳 음식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해봤거든. 너네들이 먹어보고 평가해주면 안될까?”“음......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일단 맛을 봐볼게요.”“야 너 진짜. 선생님한테 그런식으로 할래? 죄송해요 선생님.” 슐라이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흐르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 아이는 제게 고개를 숙이며 주흐르의 말에 대해 대신 사과를 했습니다. 하하, 오빠노릇을 한다손 치더라도 정말 의젓한 아이에요. 슐라이만과 주흐르는 남매입니다. 두 아이는 이곳에서 유력한 가문으로 꼽히는 알미스네드 가문 출신이에요. 제가 갑자기 왜 남의 집안 족보를 들먹이냐고요? 이곳의 문화적인 특질 상 가문을 빼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거든요. 길게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알미스네드 가문은 이곳의 토호 부족 중에서 저희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가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아니야. 일단 다 익는데 좀 걸리니까. 일단 공부부터 할까? 얌은 쉬는 시간에 먹도록 하자.”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부방으로 갔습니다. 주흐르는 자신의 자리로 종종걸음으로 가서 양피지 책을 펴고 앉았습니다. 슐라이만은 하나 건넛자리로 가서 앉았지요. 그 둘 사이에 제가 앉는 것입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어디까지 공부했니?”“황도와 12궁에 대해서 배웠어요.”“그래? 그럼 황도가 뭐니?”“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있다고 치면,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길이지요.”“그렇지...... 맞아, ‘가상의’...... 길이야.” 슐라이만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저는 조심스럽게 동의를 했습니다. 하하...... 참 무섭다고 생각한 것이, 슐라이만에게 조심스럽게 대답함으로써,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입된 ‘규범’과 ‘가치’가 한 사람에게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생생한 현장의 주인공이 된 셈이 되어버렸거든요. 프로하기온이라는 타지에서 살다보니, 저는 어느 순간 제 고향 라스알게티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람이 숲속에서는 그 숲을 볼 수 없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러더라고요. 말이 길어질 거 같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살아왔고, 뜨겁게 사랑했던 그 도시는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파쇼적인 곳이었어요. 라스알게티에서 저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명제가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아버님께서 7일 만에 세계를 창조했고, 이 세계를 위해 첫날 만들어둔 빛을 셋으로 구분해 해와 달과 별로 만들었다는 것은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선 하루에 세끼를 먹어야 한다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것처럼 알았었죠. 사실 슐라이만이 말한 말 속에 숨어있는 근원적인 명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라는 사상에 대해서 아예 문외한이었던 건 아니에요. 대학교 시절 독서동아리를 중심으로 금지된 사상을 담은 찌라시들이 배포되었었거든요. 저도 나름 지적인 호기심에 찌라시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을 읽어보았었죠. 그리곤 세 장을 넘기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던 것 같아요. ‘세상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뭐 이런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가 다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내용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지만, 사실 그 찌라시는 실제로도 매우 위험한 물건이기도 했어요. 찌라시속에 언급되었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상은 ‘배교자 조르다노’가 주장한 내용이기도 했어요. 그는, 지금으로부터 24년전, 그와 같은 사상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한 걸로 알려져 있었거든요. 그런 곳에서 살다가, 뜻하지 않게 정착하게 된 이 모래사막의 도시에는, 정말 다양한 사상들이 공존하고 있었어요. ‘값싼 금속을 특정한 공정을 통해 금으로 바꿀 수 있다.’라는 연금술부터 시작해서, 가끔 왕도를 덮쳐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흑사병’의 치료법, 마지막으로 아까 언급했던 ‘배교자 조르다노’의 사상까지 말이에요. 왕도였으면 종교재판에 회부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곳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처음에는 몇 번이나 성호를 그었어야만 했어요. 하지만 다양한 사상들이 서로 대립하거나 반목하지 않고 ‘주장과 논거’라는 칼과 방패로만 맞서는 모습을 보다보니, 아까 말했듯이 제가 얼마나 하나의 사상만을 강요하는 곳에 살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천동설도, 그리고 지동설도 하나의 사상으로서 존재해요. 그걸 주장하는 이들은 언성을 높일지언정 멱살은 잡지 않고, 한바탕 토론이 끝나면 ‘밥이나 한끼 먹으러 갈까?’라고 말하며 태연이 식당으로 함께 들어가곤 하죠. 그것은 이 도시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던 도시를 조망하게 되다보니, 이젠 제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찌라시를 버리던 그 때로 기억을 돌려보면, 쓰레기통에 버릴 때 남들의 시선을 살피던 한 겁쟁이가 있었죠. 그마저도 혹시나 누가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무엇인지 확인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 찢기 힘든 종이를 어거지로 박박 찢어버렸죠. 저는 ‘태양이 지구주위를 돈다.’라는 생각 뿐 만 아니라, ‘진리가 아닌 것은 사악한 것이다.’라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에요. 그것이 저로 하여금 끝없는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씁쓸한 자화상을 그리는 것을 멈추고 슐라이만, 주흐르와 함께 교재를 살펴보았습니다. 교재에는 ‘계절에 따른 별자리’라는 제목 아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대표적인 별자리들의 삽화들이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봄이니, 봄철 별자리부터 볼까?”“선생님, 그거 말고, 여름철부터 하면 안 되요? 견우성이랑 직녀성 때문이 요즘 핫하단 말이에요.”“견우성이랑 직녀성? 그게 왜?” 제 질문에 주흐르와 슐라이만은 대답을 하는 대신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아아, 그러고보니 그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3달전, 그러니까 제가 로키군과 함께 이 고장으로 오던 날 하늘에서 엄청난 사건이 있었지요. 독수리자리의 견우성과 거문고자리의 직녀성이 거대한 충돌을 일으켰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이 온 대지를 덮더니, 엄청난 굉음과 충격이 이 땅을 뒤흔들었지요. 그날 우리는 열차안의 짐이 모조리 땅에 떨어지는 혼란속에서 정신을 잃고 서로를 부여잡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덕분에 요원들에게 붙잡히지 않고 탈출할 수 있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저희는 프로하기온으로 오는 내내 그 여파가 이곳 대지에 남긴 흔적을 지켜보면서 와야했습니다. 나무가 꺾이고, 바위가 짓이겨지고 박살난 참상...... 부실하게 지어진 몇몇 건물은 그대로 무너져내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해요. 이곳 프로하기온은 라스알게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지라 그다지 큰 피해는 없었지만, 완전히 그 영향에서 자유로운건 아니에요. 이곳에도 그 사건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건 바로...... 서쪽하늘에서 도도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거대한 빛의 구체입니다. 빛의 구체는 서쪽하늘에서 엄청난 빛을 발하고 있어요. 마치 하나의 새로운 태양이 생겨난 걸로 오해할 정도였지요. 이것이 태양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면, 이 기괴한 구체는 해가 뜨고 지고, 달이 그 빈자리를 대신할 동안, 서쪽하늘에서 그대로 붙박여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덕분에 우리는 밤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극지방에서나 가끔 경험한다는 하얀 밤, 백야를 우리는 석 달 가까이 경험하고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안대가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렸지요. “견우성이 누구인가를 놓고는 두가지 설이 있어.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라고도 하고, 염소자리의 다비흐라고도 하지. 근데 이 근방에 워낙 많은 별들이 있어서, 손가락을 어느 쪽에 두냐에 따라 이게 견우성이 되기도 하고, 저게 견우성이 되기도 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지. 그래서 요즘은 견우 성단이라고도 한단다.”“직녀성은요?”“직녀성은 좀 간단하지, 얘는 거문고자리에서 제일 밝은 별이야. 여름철의 별자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북쪽하늘에 있어서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이란다.”“근데 쟤들이 무슨 이유로 부딪친 거에요?”“글쎄.......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이 움직이는 것에 대한 건 내 전공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견우와 직녀가 드디어 하늘의 왕에게 용서를 받은 게 아닐까 싶어.”“하늘의 왕이요?” 새로운 것에 대한 아이들의 탐구심이란...... 이교도적인 설화에 대한 건 그다지 이야기 하고 싶진 않지만, 저를 보는 저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마냥 모르는 척 입 다물고 있는건 견디기 힘든 어려움일 것 같습니다. 이거 참...... 찌라시를 찢을 때 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는데요?
갑과을작성일
2017-07-1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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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After IOI 우주소녀 부터 프리스틴 까지
걸 그룹 I.O.I는 지난 1월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Mnet [프로듀스 101]을 시작으로 각자의 캐릭터와 서사를 만들며 전대미문이라 해도 좋을 반응을 얻은 이들은 이제 각자의 회사로 돌아갔다. 그들 중에는 꿈꾸던 걸 그룹의 이름으로 다시 데뷔한 이들도, 솔로 활동을 하며 미래를 기약하는 이들도 있다. 누구보다 주목받는 신인으로 다시 돌아간 이들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현재 밝혀진 근황과 11명의 소속사 취재를 취합해 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정리했다. 걸 그룹으로 데뷔한 경우 소속된 팀에서의 역할과 팀의 현재를 함께 다뤘다. 유연정 - 우주소녀우주소녀에서 유연정: 우주소녀는 ‘우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별자리가 다른 12명의 멤버들로 데뷔했다. 당시 멤버 공개도 우주소녀의 이니셜 WJSN(WONDER, JOY, SWEET, NATURAL)을 따서 유닛별로 멤버를 3명씩 묶어 공개하기도 했다. 유연정이 ‘비밀이야’ 활동부터 합류하자 뮤직비디오에서 12명의 멤버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유연정이 혜성처럼 황도 13궁, 땅꾼자리의 주인으로 떨어진 이유다. 팀의 세계관에 변화를 일으키며 등장한 만큼 유연정은 팀 내에서 주목받는 위치에 있었고, 유연정은 ‘비밀이야’의 첫 소절부터 등장해 후렴구까지 맡으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 발표한 ‘너에게 닿기를’에서도 곡의 시작과 함께 얼굴을 비치는 등 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I.O.I에서 생긴 인지도가 팀에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하고, 팀 역시 유연정을 활용해 팀을 더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우주소녀와 유연정의 현재: 우주소녀는 ’비밀이야’ 뮤직비디오에서 땅꾼자리의 주인을 기다리는 소녀들의 모습과 여러 소품들을 활용해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너에게 닿기를’에서는 인터넷 속에 존재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만큼 그들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불어넣고, 그 근간에는 서브컬처의 요소가 다양하게 깔려 있다. 그러나 뮤직비디오에서 그리는 “비밀이 많은 어떤 소녀”는 무대에서는 거의 사라진다.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오직 “사랑만 받고 싶은 소녀”(‘너에게 닿기를’)만 남는다. [WOULD YOU LIKE?], [THE SECRET], [From. 우주소녀] 등 세 장의 앨범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곡은 남성에게 사랑을 간절히 구하는 소녀의 이야기고, 무대에서는 교복이나 오르골 위를 돌고 있는 발레리나 인형 같은 의상을 입기도 한다. 소속사가 내세우는 콘셉트에 기반을 둔 뮤직비디오의 비주얼 콘셉트와 노래, 퍼포먼스가 각자 따로 논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부분. 무대 위에서 13명이 어지럽게 보여주는 율동에 가까운 동작을 보면 우주소녀의 “사랑만 받고 싶은 소녀”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물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통해 청량한 보컬을 들려준 유연정에게는 교복을 입은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잘 어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멤버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무엇을 찾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김세정, 강미나 - 구구단구구단에서 김세정과 강미나: 구구단의 데뷔곡 ’Wonderland’는 I.O.I 활동 중 김세정과 강미나가 구구단으로 활동한다는 소식으로 인해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두 멤버의 소속사가 I.O.I 활동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함께 일어났고, ‘Wonderland’의 실망스러운 완성도는 논란을 팀에 대한 성원으로 바꾸기에 부족했다. 최근 발표한 ‘나 같은 애’는 지난 앨범의 반응을 참고하며 보완하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첫 앨범에서 내세운 ‘극단’이라는 콘셉트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대신 나르시즘에 빠진 여성 캐릭터를 콘셉트로 내세웠다. 또한 ‘Wonderland’에서 리더이자 ‘1단’을 맡은 멤버는 하나가 부각됐다면, ‘나 같은 애’에서는 강미나가 시작부터 부각되고, 이후 김세정과 역시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김나영이 중심에 자리잡는다. 보다 어린 소녀의 느낌을 내세울 때는 겉도는 것 같았던 김나영의 성숙한 분위기는 ‘나 같은 애’에서는 잘 어울린다. 소속사가 [프로듀스 101]의 멤버들이 가진 역량과 인지도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제 알게 됐다고 할 수 있을 듯. 구구단과 김세정, 강미나의 현재: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극단을 콘셉트로 인어공주 이야기를 내세운 ‘Wonderland’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던 상태에서 나르시스트로 변신한 ‘나 같은 애’로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콘셉트가 지나치게 극과 극으로 변하면서 아직 팀의 색깔이 확고해지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 특히 ‘Wonderland’가 디즈니 동화 같은 분위기로 마법소녀물에 등장할 법한 캐릭터 ’뀨‘를 마스코트로 삼는 등 저연령층을 타깃으로 한 반면, ‘나 같은 애’는 타깃 자체를 변경하며 극단의 관객이 누구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또한 구구단에서 가장 알려진 김세정은 tvN [집밥 백선생 2], JTBC [한끼줍쇼], SBS [백종원의 3대 천왕] 등에 출연하면서 중년 남성 MC와 만담을 주고받을 만큼 속 싶고 털털한 캐릭터가 부각됐다. 또한 JTBC [말하는대로]에서는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소녀가장 같은 이미지까지 보여줬다. 이런 김세정의 모습은 그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하는 반면, 구구단이 이번에 내세운 나르시스트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탑스타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나 같은 애’와 여전히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신인 걸 그룹 구구단의 차이가 큰 것도 문제. ‘Wonderland’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소속사의 영점 조준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채연 - 다이아다이아에서 정채연: 걸 그룹 다이아에서 정채연은 한마디로 ‘하드캐리’ 중이다. 정채연이 I.O.I에서 돌아온 뒤 발표한 다이아의 ‘그 길에서’가 정채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소속사가 짜는 모든 활동 계획이 정채연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채연이 예능과 드라마 등에 쉴 새 없이 출연할 뿐만 아니라, 다이아의 캘린더는 정채연 외의 멤버들이 네이버 V앱을 통해 전체 버전과 정채연 개인 버전을 따로 낸다고 발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팀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인기 있는 멤버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I.O.I에서 정채연은 다양한 캐릭터의 멤버들 사이에서 클로즈업될 때 청순한 표정이 눈에 들어오는 멤버였다. 그만큼 자신의 장점이 분명하고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는 팀에서 그가 활약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오직 정채연만 내세우는 프로모션은 오히려 대중이 정채연의 장점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다이아와 정채연의 현재: ‘그 길에서’는 여자친구의 곡을 작곡한 이기용배가 참여해 교복을 입은 소녀의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고, ‘Mr. Potter’는 동화 같은 세트와 벨트를 이용하고 엉덩이를 부각하는 춤을 췄다. 두 곡을 발표하는 사이 여자친구, 레드벨벳, 카라 등 성공한 걸 그룹들의 여러 콘셉트와 분위기를 참고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성공 사례를 연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중구난방이라는 점. 곡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아이템들이 이전 앨범과 상관없이 들어가고, 3.1절에는 ‘건곤감리 송’을 발표하거나 정채연과 홍진영이 ‘그대는 꽃, 달, 술’ 녹음을 같이 하며 트로트 자매라는 이름을 붙이는 등 프로모션의 방향도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방향이라는 것이 있는지, 혹시 하나만 걸리기를 바라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 그사이 정채연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뷰티와 먹방 예능 고정 출연도 했으며, 많은 화보를 찍는 등 소처럼 일하고 있지만 이런 활동이 다이아의 이미지에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 현재로서는 정채연의 ‘예쁨’만 남았다. 임나영, 주결경 - 프리스틴프리스틴에서 임나영과 주결경: 프리스틴은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던 플레디스 연습생 7명에 출연하지 않았던 3명이 더해져 10인조로 데뷔했다. 3명 중 성연은 JTBC [걸스피릿]에 고정 출연했고, 당시 I.O.I에서 활동 중이던 임나영과 주결경을 제외한 멤버들은 [걸스피릿]에서 ‘We’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특히 임나영과 주결경을 제외한 멤버들이 [프로듀스 101] 이후 매주 소규모 공연을 하며 한 팀으로서의 색깔을 만들어나간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 임나영과 주결경이 I.O.I의 멤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는 사이 나머지 멤버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만들어나갔다고 할 수 있다. ‘Wee Woo’ 뮤직비디오가 임나영과 주결경에 의존하지 않고 멤버들이 각자 다른 캐릭터로 고르게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공연과 V앱 라이브 등을 통해 팬덤을 얻은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Wee Woo’ 뮤직비디오에서 키가 크고 성숙한 분위기의 임나영의 이미지는 비슷한 키의 로아와 유하로, 도도한 표정의 주결경의 이미지는 보다 발랄한 소녀의 이미지를 더한 박시연과 보다 센 캐릭터의 레나로 확장되는 등 두 멤버의 장점을 팀 이미지에 적절히 녹이기도 했다. I.O.I를 통해 얻은 인지도를 팀의 색깔에 녹였다고 할 수 있을 듯. 프리스틴과 임나영, 주결경의 현재: 프리스틴이 데뷔에서 내세운 콘셉트 키워드는 ‘Power & Pretty’고, 안무의 시작은 머리를 세게 돌리는 동작으로 시작한다. 최근 나온 많은 걸그룹들과 확연히 다른 색깔을 내세운 티저 영상은 화제를 모았고, 영상 속에서 한 가운데 선 임나영의 존재 역시 시선을 모았다. ‘좋아해’ 부분에서 발차기와 비슷한 동작을 하는 등 안무 전반에 발을 사용하는 동작이 많아 활달한 느낌을 주는 반면, 후렴구에서 팔을 움직이며 가슴을 내미는 춤과 다리를 꺾으며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안무 등 수줍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같은 소속사의 보이그룹 세븐틴의 ‘아낀다’를 커버하며 1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데뷔 전부터 보다 활달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팬들에게 납득시키며 나름의 독특한 영역을 보여줬지만, 데뷔무대에서는 최근 걸그룹 시장의 요구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타이틀 곡 ‘Wee Woo’ 발표 직후에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는 등 관심도도 컸던 반면 호불호도 크게 갈린다. 활달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전반부와 보다 귀여운 모습을 강조하는 후반부가 거칠게 전개 되면서 흐름이 끊긴다는 반응과 그런 부분들 때문에 중독성이 있다는 반응이 공존하는 중. 관심은 충분히 모은 상황에서 팀의 색깔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가 숙제처럼 보인다. [아이즈] 와 사전협의 없이 본 콘텐츠(기사, 이미지)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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