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16);
-
-
-
-
-
-
-
-
-
-
-
-
[정치·경제·사회] 페스카마호 사건과 문재인..(펌)
11명 살해범 변호 문재인 "따뜻하게 품어줘야”
1996년 한국인, 인도네시아인, 같은 조선족까지 계획 세워 살해한 사건범인들 ‘무기징역’ 받고 수감 중…주범은 2007년 말 노무현의사면으로 ‘감형’
최종편집 2012.04.10 18:28:40
문재인 민통당 사상을 후보에 대한 각종 ‘악재’들이 뒤늦게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발생한 수원 토막살인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15년 전 조선족들이 저지른 ‘선상반란 사건’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당시 범인의 변호를 문재인 후보가 했기 때문이다.
페스카마 15호 선상반란 사건
1996년 6월 7일 부산 남항에서 온두라스 국적 294톤급 원양어선 ‘페스카마 15호(이하 페스카마호)’가 남태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배에는 선장 최기택 씨, 갑판장 강인호 씨, 기관사 박종승 씨, 조기장(기관실 책임자) 김창열 씨, 조리장 서장주 씨, 기관장 김신일 씨, 기관사 이인석 씨 등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10명이 타고 있었다.
당시 한국인 선원은 조리장과 기관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30대 초중반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다. 90년대는 한국 어선에 탈 선원이 크게 부족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태울 때였다. 선장 최 씨에게는 첫 출항이어서 의욕이 넘쳤다고 한다.
페스카마호는 한국을 출발한 지 1주일 만에 티니안 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조선족 선원 7명을 태웠다. 이등항해사 전재천 씨와 박군남, 최금호, 최일규, 이춘승, 백충범, 최만봉 씨 등이 그들이다.
이 배에 조선족이 타게 된 건 인도네시아 인들을 선원으로 채용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다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은 위험한 참치잡이 조업을 할 때나 항해 중에도 상당히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페스카마호는 남태평양에서 본격적인 조업을 하기 전에 마지막 휴식을 취한 뒤 7월 16일 출항했다. 목적지인 미국령 피닉스섬 인근에 다다른 페스카마호는 6월 27일 첫 조업을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됐다. 조선족 선원들은 배를 타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족 선원들이 일을 서투르게 하자 선장 최 씨가 조선족 선원들을 불러 모으고, 그 중 이춘승 씨를 쇠파이프로 구타하려 했다. 이 씨는 최 씨가 휘두른 쇠파이프를 피하다 어깨에 한 대를 맞자 그대로 선장의 뺨을 친 뒤 갑판에 있던 참치 처리용 칼을 들고 대치했다.
이에 한국인 선원과 조선족 선원들은 서로 칼과 몽둥이, 도끼 등을 든 상태로 대치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족 선원들은 조업을 거부한 채 “육지에 내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주범으로 알려진 전재천 씨가 양 측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맡았고, 조선족 선원들은 폭행과 폭언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선장 최 씨가 사과하고 조선족 선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대치 상황은 끝났다.
하지만 한국인 선원들의 폭언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생존자 이인석 씨도 “선원들의 생리, 작업 특성상 폭언은 있었지만, 폭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대치로 감정의 골이 생긴 한국인 선원과 조선족 선원 간의 갈등은 아물지 않았다. 90년대 소형 원양어선의 특성상 강도 높은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조선족 선원들은 불만이 컸다고 한다. 이에 조선족 선원들은 매일 1~2명 씩 ‘몸이 아프다’며 조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월급을 받는 조선족 선원, 인도네시아인 선원과 달리 한국인 선원들은 어획량에 따라 돈을 받기에 양측의 갈등은 점점 더 심해졌다고 한다.
결국 조선족 선원들 중 5명이 “배에서 내리겠다”고 요구했다. 한국인 선원들은 7월 30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들 모두 배에서 내릴 것을 명령했다.
이때 선장 최 씨가 조선족 선원들을 불러 하선을 위한 ‘징계 명령서’에 지장을 찍게 했는데, 그 내용은 ‘선상 반란 및 조업거부 등으로 하선한다. 사모아 항까지 가서 하선하는데 드는 비용은 조선족 선원들이 부담한다’고 돼 있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본 조선족 선원들은 그렇지 않아도 한국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엄청난 거액을 지불한 상황인데 돈을 벌기는커녕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자 “다시 일을 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배는 이미 사모아 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조선족 선원을 대신할 선원들도 사모아 항에 대기 중이었다.
이에 조선족 선원들은 한국인 선원들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수원토막살인사건’ 같은 잔혹 연쇄살인
조선족 선원들은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빚더미에 앉게 됐다며 신세한탄을 하다 모든 책임이 한국인 선원들 탓이라는 데로 모아졌다고 한다. 이들은 배가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기관사 이인석 씨를 제외한 모든 선원을 살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어 조선족 선원들은 각자 숨겨놓았거나 갑판에 있던 흉기를 꺼내 들었다. 전 씨는 한국인 선원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 한 명씩 조타실로 불러 살해했다. 첫 대상은 선장 최 씨였다. 조타실에 대기하고 있던 3명의 조선족 선원들은 최 씨의 배, 목 뒤, 무릎 등을 번갈아가며 찔렀다. 조선족 선원들은 숨진 최 씨의 시신을 바다로 던졌다.
조선족 선원들은 이런 식으로 갑판장, 기관사, 항해사, 조기장 등 한국인 선원 6명을 살해했다. 그 중 기관사는 산 채로 상어들이 득시글거리는 태평양에 던져졌고, 떨어지면서 배에 매달린 조기장도 흉기로 손 등을 쳐서 바다에 빠뜨렸다.
이들은 살해 장면을 목격한 인도네시아인 선원을 살인에 가담시키기도 했다. 당시 19살이었던 실습생 최동호 씨의 경우 몸이 아파 누워 있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흉기로 인도네시아인 선원들을 협박해 최동호 씨를 산 채로 바다에 던졌다.
다음날 ‘선상반란’을 일으킨 조선족 선원들은 인도네시아 선원 3명과 같은 조선족 선원으로 조업에 참여하기로 한 최만봉 씨를 유인해 참치보관용 냉동창고에 가둔다. 하지만 급속냉동기가 가동되지 않아 이들은 살아 있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가둔 4명의 선원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이들 모두를 산 채로 바다에 내던졌다.
이렇게 11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선상반란’에 성공했다고 판단한 조선족 선원들은 처음에는 한국으로 밀항하려다 남태평양 인근에서 배를 팔고, 일본으로 밀항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6명이 탈 뗏목까지 만들었다. 이인석 씨와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조선족 선원들이 뗏목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결국 자신들도 그들 손에 죽을 것임을 짐작했다고 한다.
20여일 뒤 이인석 씨는 같은 편에 선 인도네시아인 선원들과 함께 조선족 선원들을 유인, 참치 창고에 가두는 데 성공한다. 다음 날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이들을 발견, ‘페스카마호 선상반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다
문재인 “운명처럼 변호를 맡았다”
한국 해경에 넘겨진 조선족 선원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우리 사회는 무려 11명이나 살해하고 시신까지 바다에 버린 조선족 선원들에 대해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부산지법은 1996년 12월 24일 1심 판결에서 6명의 조선족 선원들에 대해 해상강도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모두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조선족 선원들 측에서 항소, 항고를 계속해 사건 판결은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은 주범인 전 씨에게 사형을, 나머지 5명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이들을 변호한 사람은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이자 민변 부산?경남 대표였던 문재인 변호사와 조선족 중국인 권덕원 변호사였다.
문재인 변호사는 2011년 11월 15일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족 동포들은 조국에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데 우리는 이들에 대해 은연중에 멸시나 깔보는 심리가 있다. ‘페스카마15호’ 사건 가해자들도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 인터뷰에서 “법정에서 사형이 확정됐지만 우리나라가 10년 넘게 사형집행을 안 해 실질적으로 사형 폐지국이고 전 씨가 2008년 특별감형으로 무기징역을 살게 돼 결과적으로 변론이 결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인터뷰를 통해 “페스카마15호 사건은 수사기관의 발표처럼 조선족 선원들이 치밀하게 모의한 것이 아니고 우발적 부분이 있었다. 이때 조선족 선원들이 어로 경험이 없어 일이 서툴렀고 당시 일반화돼 있던 선상 폭력은 ‘평등주의’가 강한 중국 사회주의 문화와 달라 멸시와 모욕으로 받아들이면서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변론했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에도 조선족 선원들을 돕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는 “죄는 무겁지만 사정이 딱하고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나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부산의 인권단체들이 나섰다. 영치금도 조금씩 넣어주고 중국에 있는 가족을 초청해 교도소에서 만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조선족 중국인들 “한국의 부당한 처우 때문”이라며 최근까지 감형 요구
그렇다면 당시 중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수원 토막살인사건’을 버지니아텍에서 총기난사를 한 ‘조승희 사건’에 비유하는 사람들처럼 ‘반성’했을까. 실은 정반대였다.
당시 조선족 사회는 조선족 선원들이 제대로 된 변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높았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가 범인들의 변호를 맡은 것도 한국에서 활동하던 조선족 사회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부산?경남 대표를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후에도 조선족들에 대해 ‘동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족 사회는 최근까지도 수감된 조선족 선원의 감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우리 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부산지역의 ‘인권단체’들까지 나서면서 15년이 지난 지금에는 ‘살인범’들도 살해당한 피해자와 함께 ‘잘못된 어로문화 때문에 희생된 피해자’라는 식으로 왜곡된 상태다.
조선족 중국인들의 ‘요구’는 갈수록 심해졌다. 특히 문재인 변호사와 ‘코드’가 일치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대놓고 “한국인과 평등하게 대우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故노 대통령은 2003년 11월 29일 서울 구로구 조선족 교회를 방문, 한국 국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던 조선족들을 만나 20여 분 동안 면담을 갖고 ‘격려문’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 노무현 정권은 조선족 중국인들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2007년부터는 ‘동포 방문취업제’를 실시해 조선족 중국인들이 한국에 마음 놓고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했다.
‘페스카마호’ 살인범들에게도 ‘은사’가 있었다. 2007년 12월 31일 정권 말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전재천 씨는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다.
“‘페스카마15호’ 사건 가해자들도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문재인 변호사의 말은 '측은지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 가족들과 일반 시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다.
노마74작성일 2012-09-24추천 8
-
[영화리뷰] 아메리칸 파이 유니온
아메리칸 파이 19급 동창회입니다.
아메란 파이 1, 2, 웨딩 에 이어서 4번째 작품입니다.
아메리칸 파이가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사랑받을 수 있던 이유가
5명 남자배우들의 튀는 개성과,
다양한 에피소드, 화장실 유머등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웃으며 볼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아메리칸 웨딩의 경우에는
짐과 스태플러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을 들러리식으로 만들었기에,
상강히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이번 작품은 이전 1, 2편의 감동을 다시 재현하는 영화라 생각듭니다.
하지만...
역시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아쉬운점이 많았습니다.
배우들은 모두다 가정이 있는 나이 든 남자이기에,,
예전처럼 젊음이나 열정, 청춘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특히 스태플러의 파티는 언제나 신기로움과 재미가 가득했지만...
일반 평범한 파티로 바뀌어버리고...
풋풋하고 섹쉬한 여자배우들은 몸매나 얼굴 다 확 가버렸습니다.
그래도 1, 2편들의 모든 배우들이 한자리에 다시 모였기에...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아마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는 여기까지가 끝일듯 하네요..
이번 편에서 기억 남는 장면은
스태플러가 핀치의 어머니와 자는 장면입니다.
스티프마이티라고 불러주세요.
넌 스티프마이티야..
오~오~ ㅎㅇ ㅎㅇ ㅎㅇ
YES YES 그래 그거야
아줌마 아들 정말 찌질이에요.
ㅅㅂ 걔 얘긴 그만해
갸악~~~
-
[자유·수다] 24절기
24節氣
※ 24節氣 中 마지막 節候이며 一年 中 가장 추운 때.. 時期 : 小寒 15日후부터, 立春前까지의 節氣
24節氣의 由來와 時期
인간이 월력(月曆)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계절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농경사회에서는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농사를 짓기위해 씨를 뿌리고추수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음력의 24절기도 이런 바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24절기는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에각각 여섯개 씩 자리잡고 있으며, 각각의 절기는 앞뒤 절기와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며 1년을 이룹니다.24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근거한 것으로춘분점(春分點,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부터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15˚ 간격으로 나누어 24점을 정하였을 때, 태양이 각 점을 지나는 시기를 말합니다.정확히 말하면 천구상에서 태양의 위치와 황도가 0˚ 일 때 춘분, 15˚ 일 때 청명, ....., 300˚ 일 때 대한으로 정한 것입니다.(24 × 15 = 360)
<봄의 節氣>01. 입춘(立春)_02월 04일 또는 05일 : 계절의 시작 봄에 들어섰습니다.02. 우수(雨水)_02월 18일 또는 19일 : 내리던 눈은 그치고 비가 옵니다.03. 경칩(驚蟄)_03월 05일 또는 06일 : 벌레들이 깨어나네요.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땅밖으로 나왔습니다.04. 춘분(春分)_03월 20일 또는 21일 : 둘로 나눈 봄의 한 가운데. 밤과 낮의 길이가 같습니다.05. 청명(淸明)_04월 04일 또는 05일 : 따듯하면서도 맑은 그야말로 화사한 봄이네요.06. 곡우(穀雨)_04월 20일 또는 21일 :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 맞으며 새싹이 움틉니다.<여름의 節氣>07. 입하(立夏)_05월 05일 또는 06일 : 더위의 시작 여름입니다.08. 소만(小滿)_05월 21일 또는 22일 : 식물의 푸르름이 조금씩 대지를 덮습니다.09. 망종(茫種)_06월 05일 또는 06일 : 씨(종자)를 뿌려 한해의 농사를 시작합니다.10. 하지(夏至)_06월 21일 또는 22일 : 여름의 한 가운데. 낮의 길이가 가장 깁니다.11. 소서(小署)_07월 07일 또는 08일 : 작은 더위.12. 대서(大署)_07월 22일 또는 23일 : 큰 더위.<가을의 節氣>13. 입추(立秋)_08월 07일 또는 08일 : 사색의 계절 가을입니다.14. 처서(處署)_08월 23일 또는 24일 : 더위는 한 풀 꺽였습니다.15. 백로(白露)_09월 07일 또는 08일 : 일교차가 커지면서 이슬이 맺혔네요.16. 추분(秋分)_09월 23일 또는 24일 : 가을의 가운데.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 졌습니다.17. 한로(寒露)_10월 08일 또는 09일 : 이슬도 차가워졌습니다.18. 상강(霜降)_10월 23일 또는 24일 : 서리까지 내립니다.<겨울의 절기>19. 입동(立冬)_11월 07일 또는 08일 : 추운 겨울에 접어 들었습니다.20. 소설(小雪)_11월 22일 또는 23일 : 많은 양은 아니지만 눈이 내렸습니다.21. 대설(大雪)_12월 07일 또는 08일 : 눈다운 큰 눈이 내렸습니다.22. 동지(冬至)_12월 21일 또는 22일 : 겨울의 절정. 추운 겨울밤이 왜 이리 긴지요.23. 소한(小寒)_01월 05일 또는 06일 : 작은 추위24. 대한(大寒)_01월 20일 또는 21일 : 큰 추위
24절기 소개 태양의 황도상의 위치에 따라 특징지은 계절적 구분
24節氣 外 節日 4大名節 (설, 寒食, 端午, 秋夕) - 三伏 (初伏, 中伏, 末伏)
입동에서 대한까지 봄부터 가을까지가 일하는 계절이라면겨울은 쉬면서 다음해를 준비하는 계절로입동·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 등의 절기가 있습니다.19. 김장철 - 입동상강과 소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8일경 입니다.겨울 동안의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입동을 기준해서 합니다.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해야 제 맛이 난다고 합니다.입동이 지난지가 오래되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20. 겨울의 시작 - 소설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22일이나 23일경 입니다.이 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이 든다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는 다른 말로 불리기도 합니다.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갑습니다.이 날은 손돌(孫乭)이 죽던 날이라 하고 그날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해서외출을 삼가했으며 특히 뱃길을 조심했습니다.21. 눈이 많이 내리는 절기 - 대설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음력 11월, 양력 12월 7, 8일경 입니다.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꼭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이 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속설이 전해오기도 합니다.22. 작은 설 - 冬至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한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다음날로부터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합니다.고대인들은 이 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23. 1年 中 가장 추운 날 - 小寒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2월, 양력 1월 5일경입니다.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있으나, 우리 나라는 소한 때가 가장 춥습니다.'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 다가도 한다'는 속담이 나온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4. 24節氣의 마지막 - 大寒
24절기의 마지막 절후로 양력 1월 20일경을 말합니다.대한은 음력 섣달로 매듭을 짓는 절후입니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중국의 지형에 근거한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경이므로중국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
[밀리터리] 우리 해병대에 도입이 필요한 신형 낙하산
***우리 해병대에 도입이 필요한 신형 낙하산 우리 해병대의 낙하산도 신형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낙하산 제조회사 AS(Airborne Systems)의 몇가지 제품을 소개합니다. 낙하산 제조회사, AS(Airborne Systems)의 제품은 현재 미군과 일본 자위대에서 활용하고 있으며 유럽의 몇몇 국가의 군에도 도입되고 있습니다. AS는 전문 낙하산 제조회사로 이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AS(Airborne Systems) 홈페이지 자료중 인원용 신형 낙하산 몇몇을 소개합니다. 자세한 자료는 AS 홈페이지에 방문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AS(Airborne Systems) 홈페이지 : http://www.airborne-sys.com/참고1: 낙하산의 구조 참고2: 강하의 종류 -강하 목적에 따른 분류1. 자격강하 : 공수기본 교육 중 마지막 자격 테스트를 위해 실행하는 강하. 해병대 공수기본 교육은 크게 지상훈련(지면착지훈련, 단상착지훈련, 모형탑훈련, 송풍훈련, 산개검사, 기능고장시 즉각조치능력, 항공기 기종별 기체내 동작 강하 절차 등 )과 자격강하로 구분된다. 지상훈련을 마치고 4번의 자격강하에 합격하여야 패용증과 휘장을 지급받고 공수기본훈련 차수가 부여된다. 낙하산이라는 수단으로 공중침투를 하는 대원들은 공수기본교육을 필해야 하며, 공수기본교육 후 각 제대별 공수훈련을 받게 된다. 2. 정기강하 : 분기별 정기적으로 강하능력을 유지 향상하기 위해 실시하는 강하.3. 전술강하 : 실제 전술훈련 중 강하. 강하 이후, 전술 기동까지 실시. (무장강하 필)-강하 지역 DZ(DZ: Drop Zone)에 따른 분류4. 지상강하 :DZ가 지상에 설정5. 해상강하 :DZ가 해상에 설정. 해상강하시 복장은 잠수복(슈트복.Suit)과 핀(오리발) 등참고: 잠수복은 습식잠수복(Wetsuit)과 건식잠수복(Drysuit)으로 구분-강하 고도에 따른 분류6. 밀리터리 전술강하 (Military Parashute Jump ) : 저고도에서 실행되는 일반적인 전술강하.7. 고공강하 : 낙하산에 의한 공중침투의 한 방법으로서 2, 5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 자유낙하하여 강하자 자신이 낙하산을 개방하거나 기 계적 장비에 의하여 낙하산을 개방하는 특수 기술로서 요망지역 침투를 목표로 함. (일반 밀리터리 전술강하보다 높은 고도에서 강하. 특별한 장비, 기술이 필요함) 고공강하의 종류 (HALO, HAHO)1) HALO (High Altitude Low Opening) :고고도 이탈 저고도 개방. 높은 고도에서 항공기 기체 이탈 후, 저고도까지 어느 정도 자유낙하를 하다가 낙하산을 산개시키는 방법고공강하/침투의 방법으로서 3000~7600 m 고도에서 강하자가 비행기에서 이탈한 후 550~760 m 고도에서 낙하산을 개방하게 되어 있다. 때에 따라서 약간의 활공으로 코스 비행도 가능하다. 2) HAHO (High Altitude High Opening) : 고고도 이탈 고고도 개방높은 고도에서 항공기 기체 이탈 후, 높은 고도에서 낙하산을 산개시키는 방법. 원거리 이동에 용이함. 고공강하/침투 방식중 전문적이고 어려운 방법이다. 전형적인 HAHO 전개에서 강하자들은 대략 9000 m 상공에 떠 있는 항공기에서 뛰어 내려 8000 m까지 프리폴(자유낙하)한 후 낙하산을 개방한다. 그후부터는 강하조장(리더)의 유도를 따라 정해진 코스로 30~50km를 활공한다. (1) Hi Glide 낙하산 Hi Glide 낙하산은 고공강하중 HAHO 전용 낙하산으로 전술 낙하산(art parachute) 기능에 패러글라더(paraglider)의 장점을 접목하였습니다. 현재 미해병대에 채택되어 HAHO에 활용중입니다. (2) Intruder 낙하산 미군에서 고공강하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낙하산입니다. Intruder 낙하산은 HALO, HAHO 모두에 사용됩니다. (3) MC-6 낙하산공정부대용 최신형 낙하산 MC-6 낙하산을 사용하고 있는 일본 육상자위대 공정단 (4) SF-10A 와 SF-10NSF-10A 와 SF-10N는 MC-6에 기동성을 강화한 특수전 부대용 최신형 낙하산입니다. SF-10A와 SF-10N 낙하산 (외형은 동일)(5) 기타 고공강하용 부수장비중, 산소공급 시스템 PHAOSPHAOS (Parachutist High Altitude Oxygen System)- OXCON (OXYGEN CONSOLE) : 산소 공급(분배)용 콘솔
펌>>유용원의 군사세계
-
[요리·음식] 중국 호남요리
물고기와 곡식의 고향, 새콤달콤 매운 맛이 특징중남부에 위치한 호남성은 온화한 기온에 사계절이 분명하며 일조량과 강수량이 적당하다. 호남 서, 남부는 산이 많아 산에서 나는 음식들이 풍부하며 호남 북부는 동정호 평원이 있어 “물고기와 곡식의 고향”이라 불리우고 있다.호남은 예로부터 풍수가 좋고 인재가 많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물자가 풍부하기로 유명하다.전국시기와 서한시기를 거쳐 명청시기에 호남요리는 비약적 발전을 가져와 신중국 설립 후에는 호남요리 전문 식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호남요리는 간단히 “湘菜”(샹차이)라 부르며 원료선택이 다양하여 맛은 물론 요리 종류가 다양하다. 호남요리는 상강유역(湘江流域), 동정호(洞庭湖) 및 상서산(湘西山) 지대에서 유래되었으며 長沙, 衡陽, 湘潭 지역의 요리가 대표적이다. 요리법으로는 주로 약한 불에 끓이기, 푹 삶기, 찌기, 볶기, 훈제 등이 이용되며 불의 조절을 통해 요리의 맛을 창출하는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호남요리 중 약한 불에 끓여 만든 요리는 맛이 골고루 잘 스며들었으며 탕이 맑고 시원하다. 찐 음식은 색깔이 아름답고 연하며 향기롭다. 훈제, 오향소스를 사용한 요리는 느끼하지 않고 짜면서 연해 그냥 썰어서 먹거나 볶아서 먹을 수 있다. 볶음류는 연하며 맵고 신선한 맛이다. 상강유역(湘江流域), 동정호(洞庭湖) 및 상서산(湘西山) 세 지방은 각기 다른 요리법과 원료를 사용하여 각기 특색이 있지만 상호교류를 통하여 오늘의 “湘菜”(샹차이)를 형성하였다. 호남요리의 주요특징은 칼 사용법이 색다르고 모양과 맛이 모두 훌륭하다는 점이다. 또한 음식이 전반적으로 시큼하고 매운 편이며, 요리마다 독특한 기법이 사용된다. “고추를 먹지 않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 않고 호남요리를 먹지 않으면 입맛이 없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호남요리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고 늘 찾게 되는 요리로 공인받고 있으며 그 향기와 독특한 맛으로 국내외 잘 알려져 있다.一掌前坤(이장치엔쿤)
낙타발바닥을 재료로 해서 만든 요리로서 부드럽고 쫄깃하면서 향기롭다. 특히, 신장의 기능을 강화시켜주고 기를 보충하여 혈압을 안정시키는 작용이 있다. 椒魚頭(지아오위토우)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요리로서 이 요리가 없는 식당은 정통호남요리식당이라 말할 수 없다. 이 요리는 신선한 물고기와 호남 장사의 특유한 고추를 사용하여 짜고 매우며 향기롭다. 花無黃蛋(화우황단)
역사가 오래된 호남의 유명 요리로서 모양이 독특하며 화려하다. 완전한 계란 같아 보이지만 노른자위가 없으며 부드럽고 향기로우며 영양이 풍부하다.常德水魚鉢(창더슈위뻐)
“水魚”는 호남 동정호의 자라 산지인 한수에서 산출된 자라를 말한다. 이 요리는 맛이 다백하고 부드러우며 탕이 시원하다. 또한 영양이 풍부하고 기를 보충하는 보양 작용이 있다.鉢子空心菜(뽀어즈콩싱차이)
무공해 채소와 특수한 조미료를 사용하는 이 요리는 향기롭고 신선하면서 연한 맛을 가지고 있다. 비장과 위에 특히 좋으며 여름철에 식욕을 돋구는 좋은 반찬이다.毛氏紅燒肉(마오스홍샤오로우)
모택동주석은 고향 요리 중 紅燒肉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이 요리명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요리의 특징은 색깔이 붉고 윤기가 나며 느끼하지 않고 향기롭다. 북경의 정통 호남요리점
湘臨天下(상림천하)는 호남요리 전문점이다. 북경에 자리잡은 호남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곳으로 “京城湘菜第一家”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湘臨天下(상림천하)는 호남요리의 소박하고 향토색 짙은 맛으로 손님들을 끌고 있는데,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던 비법과 현대요리법을 융합하여 창조한 특별요리는 호남인 뿐만 아니라 아니라 북경 사람들에게서도 환영을 받고 있다.요리점의 실내 인테리어는 호남의 정취를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담아냈으며, 동시에 천여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다. 량마치아오에 위치한 湘臨天下大酒樓는 여인가와 고란따샤(高藍大廈)를 지나 아이쟈(愛家)가구상점 맞으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湘臨天下는 총 면적이 5,000평, VIP룸이 30개로 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주소_ 北京市朝陽區亮馬橋路27號(북경시 조양구 양마교루27호● 문의전화_ 86-010-6432·3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