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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전국 대학교 입학금,등록금,장학금수혜율,계절학기수강료 현황.jpg
전국 대학교 입학금,등록금,장학금수혜율,계절학기수강료 현황 1. 공학계열 입학금, 등록금 현황입니다 공학계열이란? 공대를 의미하며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전자공학과, 전기공학과, 토목공학과, 산업공학과, 건축공학과를 의미합니다. 순위가 높을수록 입학금과 등록금이 비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전국 공대 중 등록금과 입학금을 포함한 1년 수업료가 가장 저렴한 대학은 지스트와 서울시립대 입니다. 1년 수업료 총액(2개 학기) ▶ 200만원대 대학: 서울시립대, GIST1년 수업료 총액(2개 학기) ▶ 300만원대 대학: 한국전통문화대, 목포해양대, 한국교원대, 금오공대, 한국해양대1년 수업료 총액(2개 학기) ▶ 400만원대 대학: 경남과기대, 안동대, 공주대, 한경대, 한국교통대, 목포대, 경상대, 군산대, 순천대, 제주대, 부경대, 창원대, 전남대, 강원대, 충북대, 전북대, 강릉원주대, 한밭대, 경북대, 부산대, 한국기술교대, 충남대 1년 수업료 총액(2개 학기) ▶ 500만원대 대학: 인천대, 서울과학기술대, 포항공대 ※ 1년 수업료란? 1학기(3월~6월), 2학기(9월~12월) 총 2개 학기를 합친금액을 의미합니다. 출처 베리타스알파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58139 2. 인문사회계열 입학금, 등록금 현황입니다 인문사회계열이란? 문과대학을 의미하며 경영학과, 경제학과, 행정학과, 영문학과,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철학과, 어문계열 학과를 의미합니다. 순위가 높을수록 입학금과 등록금이 비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전국 인문사회 대학 중 등록금과 입학금을 포함한 1년 수업료가 가장 저렴한 대학은 중앙승가대 와 영산선학대 입니다. 1년 수업료 총액(2개 학기) ▶ 100만원대 대학: 중앙승가대1년 수업료 총액(2개 학기) ▶ 200만원대 대학: 영산선학대, 서울시립대, 한국전통문화대, 한국교원대1년 수업료 총액(2개 학기) ▶ 300만원대 대학: 부산교대, 서울교대, 춘천교대, 경인교대, 안동대, 공주대, 제주대, 청주교대, 진주교대, 경상대, 한국해양대 순천대, 한국기술교대, 전북대, 군산대, 충남대, 창원대, 금오공대, 부경대, 전남대, 공주교대, 강원대, 부산대, 경남과기대, 진주교대,목포대, 광주교대, 강릉원주대, 충북대, 경북대 대구교대, 한경대, 한국교통대, 한밭대 1년 수업료 총액(2개 학기) ▶ 400만원대 대학: 인천대, 서울과기대, 서울대 ※ 1년 수업료란? 1학기(3월~6월), 2학기(9월~12월) 총 2개 학기를 합친금액을 의미합니다 출처 베리타스알파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58137 3. 전국 대학 평균 입학금과 장학금 수혜율 ※ 전국 대학 평균 입학금 입니다 ※ 전국 대학 중 등록금에 비해 장학금이 많은 대학 TOP20 입니다 ※ 전국 대학 중 등록금에 비해 장학금이 적은 대학 TOP20 입니다 4. 부담스러운 계절학기 "비싼 수강료"※ 가고자 하는 대학교의 계절학기 비용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아셔야 합니다.최근 취업난으로 학점은 무조건 잘 받아야 한다는 심리로, 재수강 계절학기가 대학생활에서 필수가 되어버린 상황입니다.반드시 계절학기 수강료 1학점당 또는 3학점당 수강료를 학교에 전화 또는 QnA 로 통해 꼭 문의하셔야 합니다.(보통 계절학기에 3학점 또는 6학점, 전공과목 1과목 또는 전공과목 2과목을 방학기간 재수강 합니다)사립대는 3학점 기준 평균 26~30만원 국립대는 3학점 기준 평균 7~10만원 출처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76125 ※ 대학의 비싼 등록금과 비싼 계절학기는 대학생들에게 큰 부담이고 사회에 진출하기 전부터 사회초년생들에게 빚을 양산합니다 출처 뉴시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1207_0000169729전국 4년제 대학교 목록 입니다가가야대 · 가천대 · 가톨릭대 · 감리교신학대 · 강남대 · 강릉원주대 · 강원대· 건국대(글로컬캠퍼스) · 건양대 · 경기대 · 경남대 · 경남과학기술대 · 경동대 · 경북대 · 경상대 · 경성대 · 경운대 · 경인교육대 · 경일대 · 경주대 · 경찰대학 · 경희대 · 계명대 · 고려대 (세종캠퍼스) · 고신대 · 공군사관학교 · 공주대 · 공주교육대 · 관동대 · 광신대 · 광운대 · 광주대 · 광주가톨릭대 · 광주과학기술원 · 광주교육대 · 광주여자대 · 국군간호사관학교 · 국민대 · 군산대 · 극동대 · 금강대 · 금오공과대 · 김천대 · 꽃동네대 나나사렛대 · 남부대 · 남서울대다단국대 · 대구대 · 대구가톨릭대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 대구교육대 · 대구예술대 · 대구외국어대 · 대구한의대 · 대신대 · 대전대 · 대전가톨릭대 · 대전신학대 ·대진대 · 덕성여자대 · 동국대 · 동덕여자대 · 동명대 · 동서대 · 동신대 · 동아대 · 동양대 · 동의대 ? 동서울대라루터대마명지대 · 목원대 · 목포대 · 목포가톨릭대 · 목포해양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바배재대 · 백석대 · 부경대 · 부산대 · 부산가톨릭대 · 부산교육대 · 부산외국어대 · 부산장신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사삼육대 · 상명대 · 상지대 · 서강대 · 서경대 · 서남대 · 서울대 · 서울과학기술대 · 서울교육대 · 서울기독대 · 서울시립대 · 서울신학대 · 서울여자대 · 서울장신대 · 서울한영대 · 서원대 · 선문대 · 성결대 · 성공회대 · 성균관대 · 성신여자대 · 세명대 · 세종대 · 세한대 · 송원대 · 수원대 · 수원가톨릭대 · 숙명여자대 · 순천대 · 순천향대 · 숭실대 · 신경대 · 신라대 · 신한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아아세아연합신학대 · 아주대 · 안동대 · 안양대 · 연세대 (원주캠퍼스) · 영남대 · 영남신학대 · 영산대 · 영산선학대 · 예수대 · 예원예술대 · 용인대 · 우석대 · 우송대 · 울산대 · 울산과학기술원 · 원광대 · 위덕대 · 유원대 · 육군사관학교 · 을지대 · 이화여자대 · 인제대 · 인천대 · 인천가톨릭대 · 인하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자장로회신학대학교 · 전남대 · 전북대 · 전주대 · 전주교육대학교 · 제주대 · 제주국제대학교 · 조선대 · 중부대 · 중앙대 · 중앙승가대 · 중원대 · 진주교육대학교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차차의과학대 · 창신대 · 창원대 · 청운대 · 청주교육대 · 청주대 · 초당대 · 총신대 · 추계예술대 · 춘천교육대 · 충남대 · 충북대 · 침례신학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카칼빈대 · 케이씨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파평택대 · 포항공과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하한경대 · 한국과학기술원 · 한국교원대 · 한국교통대 · 한국국제대 · 한국기술교육대 · 한국방송통신대 · 한국산업기술대 · 한국성서대 · 한국예술종합학교 · 한국외국어대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 한국체육대 · 한국항공대 · 한국해양대 · 한남대 · 한동대 · 한라대 · 한려대 · 한림대 · 한밭대 · 한서대 · 한성대 · 한세대 · 한신대 · 한양대 (ERICA캠퍼스) · 한일장신대 · 한중대 · 해군사관학교 · 협성대 · 호남대 · 호남신학대 · 호서대 · 호원대 · 홍익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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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일본 풍습 나라야마 부시코가 한국 풍습 고려장으로 둔갑하게 된 사연
부모 버리는 일본 풍습
고려장은 늙은 부모를 산에다 버렸던 고려의 풍속이라고 한다.?
孝를 으뜸으로 여긴 우리민족이라지만 예나 지금이나 '영 아니올시다'의 부모자식지간이 많았을 것이라는 점은 간과하기 어렵다.?
과연 늙은 부모를 산에다 버리는 짓이이 법령으로 공식 입법이 되었을까?
고려시대 까지 병사자를 유기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노인을 버렸다는 기록은 없다.?
더군다나 고려대에는 불효죄를 반역죄와 더불어 매우 엄하게 처벌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려사』에는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있는데 아들과 손자가 호적과 재산을 달리하고 공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징역 2년에 처한다”
고 하였다.?
또한 국왕이 효행이 있는 사람과 80살 이상 된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고 선물을 주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이렇게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늙은 부모를 내다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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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조작했다는 설과 불교경전인 『雜寶藏經)』의 棄老國緣조의 설화와
중국 『효자전(孝子傳)』의 원곡(原穀)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이 고려장으로 와전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일본의 나가노현에는 노.부모 유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오바스테山의 전설이 그것이다.
옛날 옛적 신슈(信州:나가노현)에 있는 어떤 번국은 조정의 명을 받들어 많은 군사들을 에미시로 보내야 했다.?
이 전쟁이 오래갈 것임을 직감한 번주는 무사들의 식량을 비축하기로 결정한 후 즉시 영지 곳곳에 포고령을 내려 이렇게 알렸다.?
“오늘부터 60세가 넘은 노인이 집에 거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노인을 산속에 버려야 한다”
이후 모든 촌락에서는 비극적인 이별 장면이 연이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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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강건너 사효에(左兵衛)네가 울면서 노.모를 업고 산으로 들어갔고, 오늘은 이웃동네 우효에(右兵衛)네가 늙은 아비의
손을 끌고 고개를 푹 떨 군 채 산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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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노인들을 버린 그 산을 오바스테산이라고 불렀다.
가쿠타로란 사내에게는 늙은 노.모가 있었고 곧이어 자신의 노.모를 오바스테산에 버려야 할 차례가 왔다.
그의 가족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고, 모두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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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노.모가 계단처럼 된 논밭을 오랜기간 오르내리느라 등이 일찌감치 굽어있었지만, 그런 노.모의 행동이 굼뜨다고 싫어하는
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노.모는 가족들에게 포근함을 안겨주는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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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타로의 노.모를 오바스테산에 버리는 날, 그 날 며느리는 새벽일찍 일어나 주먹밥을 만들고 물통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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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쿠타로는 노.모를 업고 오바스테山을 오르기 시작했다.(등에 업힌 노.모는 줄곧 나뭇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꺾어놓았다.)
산 위로 올라온 가쿠타로는 샘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노.모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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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할 수 있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가쿠타로를 보며 노.모는 아무일 없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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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타로야 고생이 많았구나. 날이 저물기 전에 어서 돌아가거라.?오는 동안 내가 나뭇가지들을
꺾어 표시해놓았으니, 그 표시를 따라가면 산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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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의 이 말을 들은 가쿠타로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지엄한 번주의 명령이라지만 자신을 낳아준 노.모를 산 속에 버릴 수 없었다. 가쿠타로는 노.모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왔다.
집으로 돌아온 모자를 본 며느리는 아무 말 없이 집 뒷켠에 구덩이를 팠고 그 안에 노.모를 숨기며 봉양했다.
하지만 이 일은 곧 발각되었고, 이 사실을 안 마을 촌장은 마을에 해가 올까 두려워 관청에 이 사실을 고발했다.
번주는 가쿠타로를 불렀고, 이미 죽음을 가고한 가쿠타로는 사실대로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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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어미를 버릴 수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네 어미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뭐냐?
좋다. 내 너에게 문제를 낼테니, 만일 너와 네 어미가 문제를 푼다면 너희들의 목숨을 살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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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주가 낸 문제는 이러했다.?‘재를 꼬아 밧줄을 만들어라’
가쿠타로는 머리를 쥐어짰으나,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와 노.모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노.모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간단하지. 밧줄을 태우면 될게 아니냐”?
번주는 밧줄 모양의 재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서 두 번째 문제가 제시되었다.?
‘소라로 실을 꿰어라’?
카쿠타로가 집으로 돌아와 노.모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노.모는 웃으며 말했다.?
“개미 허리에 실을 묶어 소라 안으로 들여보내라.
그 다음에 소라 안으로 연기를 불어 넣으면 될게 아니냐”?
그러나 번주는 여전히 흡족해 하지 않았고, 다시 세 번째 문제를 냈다.?
‘6척 길이의 방망이가 있는데, 어디가 머리쪽이고 어디가 꼬리쪽인가?’?
노.모는 역시 그 해답을 알고 있었다.?
“방망이를 물에 띄워 가라앉는 쪽이 머리이지”?
가쿠타로는 이번에야말로 번주가 크게 탄복하리라 여겼지만, 뜻밖에 번주는 또 다른 문제를 냈다.?
‘종이로 불을 싸보아라’?
종이로 어떻게 불을 싼단 말인가? 번주가 우리 모자를 죽이려하는 구나 하며 낙담한 가쿠타로에게 노.모가 이렇게 말했다.?
“등롱 안에 불을 켜면 될게 아니냐”?
이윽고 번주는 등롱(燈籠:대오리나 쇠로 살을 만들고 겉에 종이나 헝겊을 씌워 안에 촛불을 넣어서 불을 켜는 등)을 보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가쿠타로, 내 이제야 깨달았네 자네 어머니는 노인의 지혜라는 것을 가지고 계시네.
그것은 인생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비로서 가질 수 있는 것이지.
난 여태껏 노인들을 밥벌레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내 앞서 내린 포고령을 거두어들이도록 하겠네”?
이리하여 가쿠타로와 그의 노.모 뿐만 아니라 온 번국의 남녀노소 모두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것이 오바스테스산의 전설이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고려장 전설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그런데 이런 오사스테의 전설은 나가노현 치쿠마시의 오바스테산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고루 퍼져있다고 한다.
어쩌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자신들의 지역에 전해지는 오바스테산의 전설을 우리나라로 들여와
우리민족이 옛날에는 노인을 버리는 풍속이 있었다고 날조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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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미야, 『전설일본』, 일빛, 2010?※ 姨(おば:할머니)捨(すて: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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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은 일제강점기 일본 우익들의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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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葬은 늙은 부모를 산속 구덩이나 바위굴 속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례를 지냈다는 고려시대의 풍습이라고
전해지는데,? 고려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장례 풍습이라고 일.반인들이 믿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시대부터라고 생각한다.
삼국시대 이후로 조선시대까지의 여러 문헌 어디에도 노인을 산 채로 내다 버리는 고려장에 관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대 1919년 평양고보 교사를 지낸 적이 있는 일본인 미와 다마끼三輪環의 이란 책에
‘不孝息子(불효자식)’이란 제목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이것이 문헌에 있는 최초의 고려장 이야기이다.
또 1924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에서 발간한 동화집 에 우리나라의 전설이나 민담을 모아 놓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어머니를 버린 남자’ 가 바로 고려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동화집은 편찬 동기와 의도가 식민통치와 결부되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장례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주로 화장을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절에서 스님의 인도 아래 화장하여 유골을 절에 모셔두었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항아리나 작은 돌관에 담아 땅에 묻기도 하고, 산이나 강에 뿌리기도 하였다.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하기도 했는데, 특히 왕들은 매장을 주로 하였다.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구덩이를 파고 묻거나 풀 등으로 덮어주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고려시대 법률에는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있는데 그 자손이 호적와 재산을 달리하여 공양을 하지 않거나,
부모나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슬퍼하지 않고 잡된 놀이를 하는 자는 법으로 엄격히 처벌하는 등 효孝를 매우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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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고려장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장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의 이야기는이라는 설화에,
- 70살이 된 늙은 아버지를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함께 갔던 손자가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지고 온다며 그 지게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지성으로 봉양했다.
?그 이후로 이런 풍습이 없어졌다.
라고 불리는 설화는,
- 한 관리가 늙은 어머니를 풍습대로 산에 버리려 했는데,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가는 길을 잃을까봐 가지를 꺾어 표시를 했고,
관리는 차마 어머니를 버리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리고 어느 날 중국의 사신이 노새 두 마리를 가져와 어미와 새끼를 알아 맞히라고 하여 모두 풀지 못했는데,
관리의 어머니가 노새를 굶긴 뒤에 다시 여물을 주어 먼저 먹는 것이 새끼라고 알려 주었다.
그 뒤로는 늙은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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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의 노래 중에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고려장에 대한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쓴
시인 김형영의 시집 [다른 하늘이 열릴 때]에 실린 이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다.
에 나오는 '나이 70살 때 산에다 버린다'는 내용이 설화 과 일치하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우리나라의 이야기로 꾸며 우리 민족을 비하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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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박은봉 /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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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파헤쳐 고려청자 도굴하려고…일제 ‘고려장’ 날조 “서프라이즈”
http://news.donga.com/Enter/TV/3/0901/20110904/400553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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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부모버리기 풍습을 영화화한 '나라야마 부시코'
http://blog.daum.net/dbsrmsrudal/15093547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ozorba&logNo=201398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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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주간지 '유령 고령자' 문제 부모 버리는 풍습에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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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2010.09.03]정성진 기자?sjchung@chosun.com
일본의 한 주간지가 최근 발생하고 있는 '유령 고령자'문제를 영화?'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에 비유해 기사화했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나이 많은 노인을 산에 버린다는 전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런 시각은 우리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접근이다.?국내 학자들은 "일본인들이 강점기에 '한국에는 나이 든 부모를 버리는 고려장이라는 관습이 있다'며?없는 문화를 있는 것처럼 날조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8월26일자 슈칸신쵸(週刊新潮)는 '100세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증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부제는 '행방불명이 드러낸 세계 최고 장수 국가 일본의 실태'였다.
잡지는 일본?도쿄에서 살고 있는 111세의 최고령 남성이 알고 보니 30년 전에 죽은 것으로 밝혀진 사건 등을 전하면서,?"나라야마 부시코에서는 죽는 나이가 70세지만 현재 없어진 노인들의 나이는 100세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7월 28일 111세이며 도쿄에 살고 있던 것으로 기록돼 있던 노인이 실제로는 30여년 전에 사망했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이 유령 고령자 사건의 시초다.
이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수십년 된 시체가 발견된 경우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50년간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말하자면, 행방불명인데 행정 서류상으로만 살아 있던 것.
슈칸신쵸는 이런 행방불명자가 8월 14일 현재 242명에 달한다고 했다.
기사에 거론된 나라야마 부시코는 1983년 만들어진 영화다.
부모를 부양하지 않고 버리는 '우바스테야마(?n捨山)'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식량이 부족해 70세가 되면 나라야마라는 산에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있는 산골마을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를 듣고 "우리 고려장 풍습과 비슷하네"라는 생각을 했다면, 국내 사학계의 얘기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고려장 풍습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아직도 많이 사실(史實)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학계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
부경대?사학과 강인욱 교수는 "한국에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는 내용은 문헌 근거가 희박하다"며?"현재 학계 다수설은 고려장은 실재하지 않았던 풍습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명시적인 기록이 19세기 말 이후에 일본인이 쓰거나?다른 외국인이 쓴 글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당시 성행하던 일본인에 의한 도굴을 쉽게 하기 위한 여론전(戰)이었다는 설도 있다.
(?펀주 : 저 무덤은 고려시대에 부모를 버린 불효자의 무덤이니 도굴해도 된다는 식으로?도굴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날조였다는 뜻.)
반면, 일본에서 유령 고령자의 문제를 나라야마 부시코에 비유한다는 것은?"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이 실제로는 일본인에게 내려오는 문화임"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3/20100903013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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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지방도시에 거주하시는 짱공형님들 도와주세요!! [2탄]
짤은 제가 혼자만 아껴보던것인데 조공으로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셜커머스사업준비하고있는 짱공 10년차(해..햇수로) 딜라이프입니다. 제가 준비하는 사업이 지역기반정보가 많아서 지역정보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소셜커머스 쿠폰을 지역별로 분류를 해서 사용자한테 보여줘야하는데 지적도같은것으로 구나 동은 나눌수있는데 해당 지역 안에 인기지역이라고 할까요? 그 지역 사람들만 알고 찾아가는 어떤 특정 지역이 있잖아요? 그 지역에서만 약속잡을때 공통적으로 쓰는 지역명~ " 야 이따 저녁에 어디어디에서 보자!" 이런 그 지역 사람은 말만하면 다아는 그런 번화가 말이죠! 예를 들면 저는 전주 출신이라 인기지역을 정하는건 쉽습니다. 전주시내 (통칭 객사라고 하죠, 경원동이나 중앙동 근처), 전북대주변, 한옥마을 등 크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있겠죠? 많은 짱공 형님분들의 도움으로 어느정도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한번 봐주시고 해당 지역에 사시는 형님들이 수정할것이나 추가할 사항 있으면 꼭 댓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경기도가평군 - 정보없음고양시 - 정보없음부천 - 정보없음성남 - 모란, 야탑, 서현, 정자수원시 - 수원역, 인계동, 영통, 아주대 정도?안산시 - 고잔동?안양시 - 안양일번가, 범계/호계 지방도시인천 - 구월동, 부평, 주안, 송도대구 - 동성로, 시지광장, 경북대, 성서계명대부산 - 광안리, 남포동, 해운대, 서면, 덕천동, 하단, 부산대, 경성/부경대울산 - 삼산동대전 - 둔산동, 탄방동, 은행동, 대흥동, 충남대광주 - 상무지구, 전남대, 충장로, 광천터미널전주 - 객사, 전북대, 한옥마을태안 - 정보없음춘천 - 정보없음평창 - 정보없음제주 - 시청, 서귀포, 신제주, 제원, 용담해안도로, 애월해안도로 처음 사업시작하는 병아리 사회초년생에게 조언의 말씀을 좀 주시길 바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딜라이프작성일 2013-06-30추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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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부산대 총학생회장 석방요구 38개대학 총학생회장 성명서
부산대 총학생회장 석방요구 38개대학 총학생회장 성명서 [한대련님 편집]
반값등록금 요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주최한 것이 그리도 밉더냐!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 규탄한다!
한대련 이원기의장을 조속히 석방하라!
7월 15일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 대련) 의장 이원기(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이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당했다. 경찰은 등록금넷에서 주최한 2학기 등록금투쟁 계획발표 기자회견 도중 폭력을 행사하며 기자회견장에 난입, 이원기의장을 표적, 강제연행하였고 항의하는 참가자들에게 최루액을 분사하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아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
이원기 의장이 백주대낮에 폭력적으로 연행된 것은 이명박 정권의 명백한 정치보복이다.
이원기 의장에 대한 연행은 대선공약인 반값등록금 이행을 요구하며 계속해서 정권을 압박한 것에 대한 보복이며, 또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학교본부의 행사불허와 봉쇄를 뚫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를 개최한 것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성격이 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끝나자 마자 이명박 정권은 다시금 정치보복의 기지개를 펼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는가. 바로 이명박 정권에 의한 정치보복때문이 아니었는가. 500만 추모객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명박 정권은 아직도 모르겠는가.
이명박 정권은 공안통치를 중단하라!
7월 들어서 이원기 의장을 포함해서 대학생 6명이 경찰에 의해 강제로 연행당했다.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건국대생 3명은 경찰의 소환절차도 없이 긴급체포되어 홍제동 대공분실로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학생들이 80년대 대학생 선배들이 당했던 일을 그대로 다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7,80년대 공안통치의 부활시켜 정권의 위기를 타개해보려 시도하고 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과거 독재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을 납치해 고문하고 투옥시키고 최루탄을 쏘았지만 결국 국민의 힘에 굴복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에게 이제 그만 어리석을 짓을 멈추고 민심에 순응할 것을 경고한다. 또한 이원기 의장의 조속한 석방을 다시 한번 요구하는 바이다.
2009년 7월 16일
서울대련 의장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박해선
북부대련 의장 덕성여대 총학생회장 문소영
고려대 총학생회장 정태호
성신여대 총학생회장 이은
건국대 총학생회장 하인준
서강대 총학생회장 서유미
서울산업대 총학생회장 차지현
동국대 총학생회장 신동욱
성공회대 총학생회장 박명희
숭실대 총학생회장 배유진
항공대 총학생회장 김상하
홍익대 총학생회장 한아름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추성호
세종대 총학생회장 이시행
국민대 총학생회장 김동환
동덕여대 총학생회장 최현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장 방성혁
경기대련 의장 중앙대(안성) 총학생회장 곽호진
경희대(국제) 총학생회장 주현탁
루터대 총학생회장 이태호
수원여자대학 총학생회장 허은비
한양대(안산) 총학생회장 황정욱
한신대 총학생회장 한별
광전대련 의장 전남대 총학생회장 오주성
광주교대 총학생회장 노현송
광주여대 총학생회장 임고은
조선대 총학생회장 박희재
조선이공대 총학생회장 고만석
목포해양대 총학생회장 최대한
대경대련 의장 영남대 총학생회장 김일환
경북대 총학생회장 성동현
부산대 부총학생회장 안득균
부경대 총학생회장 이원숙
동의대 총학생회장 이철모
부산교대 부총학생회장 박은정
울산대 총학생회장 이석태
고려대(세종) 총학생회장 임현묵
공주교대 총학생회장 유종범
<총 38개 대학 총학생회장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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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연으로 노통도, 국민도 더 편해졌으면"
[인터뷰] '다시 바람이 분다' 부산 공연 마친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
09.07.12 12:49 ㅣ최종 업데이트 09.07.12 15:14
윤성효 (cjnews)
노무현, 다시 바람이 분다, 이원기, 부산대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자리 10일 오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가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학교에서 1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마련된 노란의자에 밀짚모자가 얹혀 있다.
ⓒ 사진제공 민중의소리 김철수
다시 바람이 분다
▲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이 밀짚모자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 사진제공 민중의소리 김철수
다시 바람이 분다
"수고했습니다. 악수 한 번 해요."
부산대 총학생회 이원기(25·통계학 4년·한국대학생연합 의장) 회장은 지난 10일 밤 11시경 부산대 넉넉한터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정준하(개그맨·배우)를 닮아서가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공연인 '다시 바람이 분다'를 '성공적'으로 마쳐 관객들이 감사의 인사를 한 것이다.
그는 공연 도중 무대에 올라 인사할 때는 1만 명의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인사를 받느라 분주했다. 이날 맨 앞 자리 한 가운데 있던 의자는 비워져 있었고, 거기에는 밀짚모자가 놓여 있었다. 그 밀짚모자가 놓인 곳은 귀향한 뒤 밀짚모자를 즐겨 쓰며 농사를 지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리였다.
▲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놓여있던 밀짚모자를 쓰고 시민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이윤기
이날 추모공연 사회를 본 오한숙희씨는 이원기 회장을 무대로 불러내 그 모자를 써 보도록 했다. 이원기 회장은 "이 순간을 위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면서 "이번 공연으로 노 전 대통령께서 가시는 길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지고 우리 마음도 더 편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부산대·동의대·부경대·부산교대 총학생회가 부산대에서 추모공연을 열려고 하자 부산대는 '계절학기 수업 지장'과 '청소 문제', '정치적 중립'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부산대는 8일 아침부터 교직원을 정문에 배치시켜 놓고 공연 관련 물품의 진입을 막았다. 또 학교측은 대형버스 등을 이용해 학교로 통하는 4개의 모든 문을 차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8일 무대 설치에 필요한 시설물들이 들어갔고, 9일에는 음향시설이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비가 내렸지만, 차량 동원이 차단돼 학생들은 리어카에 물품을 싣고 옮기기도 했다. 부산대 정문 앞에선 8일과 9일 저녁 촛불문화제가 열리기도 했고, 부산대 민주화교수협의회(회장 이민환)는 대학 본부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추모공연 성사를 위해 힘을 모았다. 한 인사는 "부산대가 불허해 논란이 커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날 저녁 추모 공연은 3시간30분 가량 진행됐다. 열정적인 신해철의 공연에 이어 출연진 모두가 무대에 올라 '사랑으로'를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공연 뒤 관객과 자원봉사자들은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공연을 마친 뒤 이원기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8시간 무대시설 지키느라 밤샘도 불사
▲ 10일 저녁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넉넉한 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에서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이 노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부채와 노란색 손수건을 묶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 유성호
다시 바람이 분다
- 우여곡절이 많았다. 콘서트를 잘 마친 소감은?
"처음에 학교가 불허해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황들이 계속 되었다. 모두 고맙게 생각한다."
- 서울에서의 추모공연도 연세대에서 열려고 하다가 무산되었다. 부산대 공연이 원활하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나?
"부산대 공연은 공연기획단에서 결정했다. 공연 이야기를 듣고 성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총학생회도 좋다고 했던 것이다."
- 처음 부산대 본부가 불허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처음부터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번 공연은 학생회 차원에서, 학생 자치권으로 하는 행사다. 학교가 허락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어차피 학교가 나서서 무대 설치를 해주거나 도와 줄 것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질 것이라 봤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공연이라는 생각을 더 갖게 되었다."
- 학교가 처음에 공연을 불허해 논란이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이 알려졌다고 보는 측면도 있던데.
"그런 면은 있다. 하지만 다음에는 이런 마찰이 없었으면 한다."
- 교직원과 학생들이 몸싸움도 벌이기도 했는데, 다친 사람은 없는지.
"다친 사람은 없다. 다음에는 이런 불상사가 없기를 바란다."
- 대학본부에 항의방문을 한 것으로 아는데.
"방학이라 많은 학생들은 가지 않고, 총학생회 간부 등 30여 명이 본관에 항의방문을 갔다. 학생처장님을 만나 학생 대표 자격으로 왔다고 했더니, 학생처장님께서는 '30명이 어떻게 학생 대표가 되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대통령이 외국정상과 회담하러 갈 때 전 국민을 데리고 가느냐'며 '학생회가 학생 대표 아니냐'고 말했다. 학생처장님의 그같은 발언은 학생을 무시한 것이라 본다."
-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8일 오후에 넉넉한터로 들어온 무대 시설을 지키는 게 가장 힘들었다. 혹시 침탈이 있을지 몰라 밤을 새워가며 지켰다. 48시간 지킨 것이다. 몸도 피곤하고 잠도 잘 수 없었다."
"교수님들 성명이 큰 힘... 학교측과는 잘 풀어 나갈 것"
▲ 8일 오전 부산대 교직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과 관련한 물품 진입을 정문에 앉아서 막자,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왼쪽)을 비롯한 학생들이 교직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추모공연을 열게 해 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 윤성효
노무현
▲ 10일 오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가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학교에서 1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 사진제공 민중의소리 김철수
다시 바람이 분다
- 8일 오전 교직원들이 정문을 막자 학생들이 20여 분간 무릎을 꿇은 채 공연을 열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는데, 처음부터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처음부터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본부 측이 너무 극단적으로 대처하는 게 싫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치적인 집회가 아니고, 학생 자치권 확보 차원이라는 걸 호소하고 싶었다. 총장님의 지시에 의해, 교직원들이 업무를 보지 않고 정문에 나와 있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 달라는 호소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 9일 민주화교수협의회에서 성명서를 냈던데.
"그 소식은 서울에 있을 때 들었다. 하루 전날 정문에서 열린 기자회견 때 이민환 회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나와 주셨는데, 대학본부가 불허한 공연을 교수들이 지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교수님들의 어려운 결정이 큰 힘이 되었다. '부산대는 민주화 성지'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열기는 했지만, 대학 본부와 학생회, 교수 사이에 그래도 상처가 남아 있는데.
"이후에 잘 풀어나갔으면 한다. 다시는 이런 마찰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학본부와 총학생회가 최근에는 만나지 못했는데, 조만간 만나서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서로 감정이 남아 있는데, 열린 마음으로 풀어나갈 것이다."
- 추모공연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기획팀에서 모금했는데, 크게 모자라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참여정부 시절에 통과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철폐하고자 했던 국가보안법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 분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일했던 분이라 본다. 이명박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을 더 추모하는 것 같다."
출처 : "추모공연으로 노통도, 국민도 더 편해졌으면" - 오마이뉴스
가자서작성일 2009-07-16추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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