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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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윤석열 좋은 인재들
위원장: 안철수●위원단 : 이양수, 권성동, 이태규, 유상범, 윤창현, 윤희숙, 박진, 조태용, 강석훈, 김현숙, 김소영, 김성한, 김용현, 이도훈, 김창경, 김경환, 안상훈, 나승일, 이석준●당선인비서실장: 장제원●당선인 대변인: 김은혜●행정실장: 서일준●보좌역(정무보좌·정부출범준비지원)●총괄보좌역: 이철규(재선 국회의원 / 선대본부 전략기획부총장)●특별보좌역: 박수영(초선 국회의원 / 부산선대위 기획전략본부장), 이도훈(前 제일기획브랜드익스피리언스솔루션본부장) ■ 팀장 ○ 정무1팀장(정무기획): 정희용(초선 국회의원 / 선대본부 종합상황실 부실장) ○ 정무2팀장(정무지원): 이상휘(선대본부 후보비서실 기획실장) ○ 수행팀장: 이용(비례 국회의원 / 선대본부 수행실장 당 사무총장 ㅅ한기호 ㅋ ㅇㅣ분이 군대24개월 주장한 사람 ㅋ 사람 적재적소에 두면 되겠네요 ㅅ화려하다
다크테일작성일 2022-03-13추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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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이철규 의문사 사건 -1
1989년 5월 10일 광주직할시 북구 청옥동 제 4수원지 상류에서 조선대학교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당시 25세, 전자공학과 4학년)가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입니다.이철규 씨는 ? 이철규씨는 1964년 전남 장성군 삼서면 대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주 금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80년에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습니다.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생운동에 헌신합니다. 1982년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NL)을 하다 제적당합니다.86년 5월 광주지법으로부터 국가보안법 7조3항(이적단체 구성) 위반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면서 가석방됩니다.이씨는 88년 3학년으로 복학합니다. 당시 조선대는 박철웅 총장을 상대로 한 학원 민주화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이씨는 전횡을 일삼던 조선대 재단을 몰아내는 데 앞장섭니다.사건 발생이씨는 5월3일 오후, 광주시 산수동 5거리 ‘길목카페’에서 후배인 이아무개씨(여?호남대졸업)를 만나 밤 10시30분쯤 헤어졌다고 합니다.이어 “광주호 부근에서 후배 생일파티가 있다”며 영업용 택시를 탑니다.이씨가 탄 택시는 청암교 입구 3거리에서 경찰에게 검문을 받습니다.택시기사 이아무개씨는 나중에 “청암교 입구 3거리에서 50대로 보이는 사복차림의 요원 3명이 차를, 세우고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하자 이 청년은 ‘주민등록증이 없다’며 주소와 이름을 댄 뒤 경찰을 따라 근처 임시검문소로 가다 감시 소홀을 틈타 옆 산쪽으로 달아났으며 이 청년을 뒤쫓아 갔던 3명중 2명이 3~4분쯤 뒤에 돌아와 ‘그냥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이씨는 이날 밤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습니다.후배 박아무개씨(여?24)는 “약속장소인 광주호 부근 호반산장에서 밤 11시10분쯤까지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아 그냥 돌아온 뒤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시신 발견일주일 뒤인 5월10일 오전 11시30분쯤, 이철규씨는 광주 북구 화암동 제4수원지 상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수원지 관리인 최아무개씨(52)가 저수지 순찰도중 발견해 경찰에 신고합니다.숨진 이씨는 감색 와이셔츠에 쥐색바지 차림으로 구두를 신은 채 물 위에 떠 있었습니다.시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얼굴이 심하게 변색되고 왼쪽 눈이 튀어나왔고, 가슴과 배 등에 피멍이 들어 있었습니다.또 손목에는 묶여 있던 자국이, 다리에는 무언가에 찔리고 긁힌 상처들이 있었다. 일반적인 익사체와는 확연하게 달랐습니다.입고 있던 옷도 찢겨진 상태였습니다. 주머니에는 현금 3천원과 주민등록증, 도장이 들어 있었습니다.시신을 처음 검안한 북구 보건소장은 이씨가 5일 전쯤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당장 타살 의혹이 제기됩니다.이씨의 선후배와 조선대생 등은 “이씨가 경찰에 체포된 뒤 고문당한 뒤 살해됐다”며 진실규명을 촉구합니다.검찰은 김각영 광주지검 형사1부장을 반장으로 하는 특별 전담반을 편성, 사인 규명 등을 위한 수사에 착수합니다.검찰은 3일 밤 시체발견 현장부근 임시검문소에서 근무한 광주 북부경찰서 김자술 경위와 김남태 경장, 박재환, 고재풍, 박윤호 순경 등 경찰관 5명과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수원지의 청원경찰 이행민(46), 홍성하(31)씨 등 7명을 조사합니다.이를 통해 숨진 이씨가 검문 당시 안경을 끼고 사파리점퍼를 입고 있었으며 이름을 '이중기'로 댔다가 나중에 '이명규'로 바꿔 말했다고 했으며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를 대 무선전화를 통해 지령실에 신원을 조회하려했을 때 북쪽인 청옥동 파출소쪽으로 뛰어 달아나 경찰관 3명이 쫓아가 1명은 망을 보고 2명은 산을 뒤졌으나 허탕쳤다고 밝힙니다.검찰은 이씨의 시신을 전남대부속병원 영안실로 옮기고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부검을 실시힙니다.영안실 주변에는 조선대생 300여명이 밤새 지키며 출입자를 통제합니다.시신 발견 20일 후, 검찰은 이씨의 사인을 '실족에 의한 익사'라고 발표합니다.산길로 도주하다가, 산길을 타고 다시 내려와 도로를 건너 반대편 수원지로 향해 60cm개구멍을 용케 찾아 수원지 안으로 이동. 다리쪽으로 150m를 이동하다 발을 헛딛여 물에 빠졌다는게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또 경찰이 말한 도주경로라면 검문받은 장소로 다시 이철규씨가 되돌아가는꼴이 되는데 도망자 입장에서 경찰이 있었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는게 이상하다는 것입니다.그런식으로 도주하다가 제4수원지의 절벽을 건너던 중 발이 미끄러져 익사했다는 것입니다. 시신의 상태가 참혹해 보였던 것은 오랫동안 물속에 빠져있어 부패가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다음 글에서 계속 됩니다.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195512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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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ㅡㅡ 쌔빠지게 썼는데.. 계속 업로딩중이라 날렸네요
장황하게 설명했는데...짧게 얘기하겠습니다.
유일한작가의 어느날갑자기라는 책의 한 에피소드를 올립니다 유일한 작가님이 지금은 작가생활을 안하시고 일안삶을 사신다기에..저는 엄청니게 몰입해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던 책이라...짱공인들에게도 뵈드리고 싶네요
유일한님ㅣ과 가까운 분이시라던가 펜이시라 불편하신분께선 댓글이나 쪽지 주시면 빛삭 하겠습니다. 용량이 좀되서 나눠 올리겠습니다..
1953년 7월 23일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춰지자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수천 개의 군부대가
자리잡게 되었다.
거기에 살던 민간인은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강제로.
- 철규와의 대화 중에서
가도가도 창 밖으로는 산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벌써 5시간이 지났
지만 아직 철규가 있는 부대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반 정도는 더 가야 했다. 녀석의 부대는
인제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도 한참 더 들
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기분인지 새벽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던 지영이 잠잠하
다 싶어 돌아보았더니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지영으로부터 철규에게 면회 가자는 제의를
받은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철규가 지영에게
는 틈틈이 편지도 보내고 한 모양이었다.
철규가 지영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는 가
급적 둘 사이에 끼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형, 철규는 전방에 배치되어 있어. 부모님
에게도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아서 면회 오는 사
람도 없는 모먕이야. 거기다가 얼마 전에는 일
주일 영창 갔다왔다는 거야. 형은 철규가 무슨
일로 영창 갔다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전방이라면 지영 혼자서 면회 가는 것도 무
리겠다 싶기도 하고, 입대한지 넉 달밖에 안
된 놈이 무슨 사고를 쳐서 영창까지 갔다왔는
지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지영의 면회길에 다
라나선 것이었다.
버스로 한참을 달리자 군부대가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국방색 천지
였다. 점점 산악지대로 들어가니,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단풍과 낙엽이 벌써 아름답게 피어나
고 있었다.
버스에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면회객으로 보이는 두 가족하고, 이곳 주
민으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아주머니 둘이 타
고 있을 뿐이었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고 있으니 문득, 술자
리에서 식인(食人)을 했던 지난날들을 들려 주
며 울먹이던 철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동안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단풍 참 예쁘죠? 오빠.”
언제 잠에서 깨어났는지 지영이 내 생각을
끊었다.
“오빠, 배고프지? 김밥 먹을래?”
“난 됐어. 철규 줘야지. 면회 오면서 아무것
도 .”
“됐어, 오빠!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그만
해.”
지영이 금세 토라졌는지 샐쭉해서 창 밖으
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한 마디 더 할까 하다
가 그만두었다.
난 아침 여섯시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지
영을 만났을 때, 지영이 멘 배낭부터 살폈다.
배낭은 예상대로 불룩했고, 저 정도면 철규와
철규가 군대에서 사귄 동기생들과 함께 나눠 먹
을 음식은 충분하겠다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판단은 금세 깨어지고 말
았다. 지영은 출발하면서부터 김밥이니, 계란
이니 하는 음식을 권해서 나는 출출하던 터라
아무 의심없이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런데 한참 먹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지영에게 철규 줄 음식은 따로 있겠지, 하고
물어 보았다. 지영은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며
군대에서 음식이 잘 나온다고 해서 준비를 안
해 왔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배낭에 든 음식
은 오고가며 먹으려고 준비해 온 거라고.
지영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여자라지만 군대에서 뺑뺑이
돌고 있는 남자들의 심리를 너무도 모른다 싶
었다.
나는‘동작 그만!’을 외친 뒤 먹던 음식을 다
시 챙겨 배낭에 넣게 했다. 우리야 배 고프면
얼마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면 되지만 철
규는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지영은 나의 핀잔에 수긍하는 척했지만 그
래도 포기하지 않고 틈만 나면 배낭 속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렸다.
“근데 일한 오빠, 이 근처에 부대가 왜 그렇
게 많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군인이니
까 이상해요.”
“전방이니까 그렇지, 뭐.”
군대 얘기가 나오니까 나의 특이했던 군대
생활이 생각났다. 혼자 피식거리니까 지영이
나의 군대 생활에 대해 물었다.
“오빠는 어디 있었어요? 아, 맞다. 오빠 방
위죠?”
“그래 나, 유디티다.”
“오빠가 무슨 유디티야, 방위지?”
“마, 유디티(UDT)가 우리 동네 특공대의 약
자 아니냐.”
“흥! 도시락 폭탄을 들고 다니는 특공대?”
“야, 너 방위라고 너무 우습게 보지 마. 방위
도 힘든 데가 있어. 훈련소에서 자살하는 사람
도 있고.”
“진짜 자살해요? 거짓말 같은데. 설마 그 까
짓 한 달을 못 참아서 훈련 도중에 자살을 할
까? 그것도 남자가.”
“너 군대를 우습게 아는 구나. 하긴 방위가
정규군에 비하면 편하긴 하지.”
“오빠, 그런데 정말로 군대에서 죽기도 해
요?”
“그럼! 남들 다 갔다온다고 군대를 우습게
보면 안 돼. 사실 군대란 곳이 그렇게 녹녹한
데가 아냐.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목숨을
잃지. 통계에 의하면 80년도부터 95년 6월까
지 군대에서 사망한 젊은이의 수가 8,950여
명이래. 이 속에는 물론 자살한 사람의 수도
포함되어 있어. 실로 어마어마한 수야. 거의
일개 사단 병력이지.”
“군대가 정말 무섭긴 무서운 데구나.”
“그럼!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
에는 아주 무시무시했지. 사실 우리가 평화시
니까 심각하게 못 느끼는 거지만 군대 가는 것
은 목숨 걸고 가는 것과 같아. 그럴 리는 없겠
지만 만일 전쟁이라도 나 봐? 그러니 앞으로
군대가는 사람 있으면 잘해 줘. 특히 현역 입
대하는 애들.”
“알았어, 이제부터 방위 들어가는 애들 술
사 줄 돈 모았다가 현역 가는 애들 사 줘야지.”
“야, 내가 방위가 편하다고 한 건 현역병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너, 방위
훈련소에서도 실재로 자살한 사람이 있어, 알
어? 물론 그 사람은 훈련 때문에 자살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 왜 죽었는데? 귀신이 홀렸나?”
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영은
무서움을 많이 타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좋
아했다.
“그런 건 아니고.”
나는 군대 훈련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지
영에게 들려 주었다.
나는 5X사단에서 훈련받았지. 군대 들어가
기 전에 그 사단에서 자살한 선배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긴 들었었어. 나보다는 고등학교 3
년 선배인데 훈련소에서 자살했다고 하더라고 .
그래서 난 애인이 변심해서 자살을 했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지. 하여튼 훈련소 생활
은 꽤 힘들더라고.
내가 훈련소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은 것은
이주쯤 지나서였어. 훈련소에 입소할 때 들고
간 가방이라든가 옷가지들은 빈 내무반을 하
나 정해서 그곳에 보관하게 되어 있거든.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제일 구석에 있는 내
무반을 비워 놓고 쓰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 있
는 내무반을 비워 놓고 짐을 보관한 거야. 난
그래서 짐을 분실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거려
니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불침번을 서는 아이들이 그 빈 내무반에서
사람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거야. 조교나
교관이 알면 군기 빠졌다고 뭐라고 할까봐 훈
련병끼리만 속닥속닥거린 거지.
난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그냥 무시해 버렸
어. 그러다 내가 불침번을 서게 되었는데 정말
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슬피 우는 소
린데 분명,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건 아니더라
고. 혼자서 그 소리를 들었다면 대단히 무서웠
을 텐데 워낙 많은 아이들이 있다 보니까 그렇
게 무섭지는 않더라.
내가 그 울음소리의 정체에 대해 들은 것은
퇴소하기 바로 전날이었어. 내무반장이 우리
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더라고.
자살 사건이 터진 것은 내무반장이 신병이
었던 이 년 전이었대. 훈련병들이 새로 들어왔
는데 내무반장은 그 당시 서열이 가장 낮아 훈
련병 지휘는 못 하고 고참들이 하는 것만 구경
하고 있었대.
사건은 사격장에서 일어났대. 그 전날 눈이
많이 와서 사격장을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
다는 거야. 조교들은 사격장에서 주의사항을
다시 한 번 인식시킨 뒤 실탄 아홉 발씩을 훈
련병에게 먼저 분배해 주었대. 영점 사격용으
로.
영점사격이란 총의 조준을 정확히 하기 위
해서 하는 예비사격을 말하지. 그런데 2중대 3
내무반에 김석주라는 훈련병이 있었대.
아주 평범한 훈련병이어서 눈에 띄지 않던
사람이래. 그 사람이 끼어 있는 조가 사격을
하게 되어서 실탄을 나누어 주는데 공교롭게
우리 내무반장이 그 사람에게 실탄을 나누어
주었다는 거야.
내무반장 말로는 그 김석주라는 훈련병 눈
빛이 싸늘하게 빛나는 것을 느꼈는데, 순간적
으로 추위 탓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대. 그런
데 일은 벌어진 거야.
김석주란 훈련병이 사격장에 올라가 실탄을
조준하자마자 총을 자기 턱에 갔다 대고 쏴 버
린 거야. ‘펑‘하는 소리와 함께 쓰고 있던 철
모와 피가 십여 미터 높이로 튀어올랐대.
김석주는 물론 현장에서 즉사했지. 조교들
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벌어진 거야. 모두들
입을 쩍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담력이 센 한 조교가 아직도 부르르 떨고 있는
시체에 다가가더라는 거야.
그 조교는 침착하게 흘러나오는 뇌수를 형
체도 알아볼 수 없는 머리에 집어넣더라는 거
야. 그리곤 응급차에 실어 보냈대. 그 당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제대로 움직
일 수도 없었대.
특히 김석주 옆 사선에 누워 있다가 피와 뇌
수를 흠뻑 뒤집어썼던 한 훈련병은 한동안 정
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거야. 생각해봐. 옆에
있던 사람의 머리가 갑자기 날아가고 사방이
피바다로 뒤바뀐 상황을.
조교들은 자살 이유를 밝히기 위해 그 죽은
김석주의 소지품을 조사해 보았대. 수첩이 발
견되었는데 거기에는 딴 얘기는 일절없이, 날
짜마다‘오늘부터 D-DAY 며칠’이런 식의 글
이 적혀 있더래.
그가 기다렸던 디데이는 바로 사격 연습을
하는 날이었던 거야. 그가 자살을 한 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대. ‘드디어 내일이다. 실수
없기를……’
그가 치밀하게 자살을 준비했다는 얘기지.
자살 이유를 조사해 보았더니 부모가 이혼을
하는 등 입대 전부터 괴로운 일이 많았다는 거
야. 그 사람이 바로 내가 군대가기 전에 소문으
로 들었던 자살했다는 고등학교 선배더라고.
여하튼 군대에서는 누가 죽는 불상사가 생
기면 그가 자던 침상하고 그의 물건이 있던 관
물대를 태워 버리는 관습이 있거든. 그래서 김
석주가 쓰던 침상하고 관물대도 역시 태워졌어.
그런데 그뒤로 훈련소에서 괴기스런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대. 내무반마다 온도계가 있
는데, 이유 없이 김석주가 있었던 내무반이 다
른 내무반보다 3, 4도 낮다는 거야. 실제로 그
내무반에 들어가면 싸늘한 기분이 든대.
그러던 어느날 밤에 무슨 전기 공사로 훈련
소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된 적이 있었대. 그런
데 그걸 모르고 있던 한 병사가 자판기에서 커
피를 빼 먹었대. 분명히 정전이었는데.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실제로 김석주의 유령
을 보았다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야. 제
일 처음 본 사람은 그 김석주를 담당했던 내무
반장이었대.
어느 날 밤 그 사람하고 우리 내무반장이 훈
련소 건물 끝에서 반대편 사무실까지 라면 상
자를 날랐대. 훈련병들이 다 퇴소한 빈 건물이
라, 당직 사무실만 빼 놓고 나머지 불은 모조
리 꺼 놓은 상태였대.
둘이서 라면상지를 지고 복도를 걷고 있었
대. 우리 내무반장이 앞장 서서 걷고 있는데,
그 문제의 내무반을 지날 때 갑자기 뒤에서
‘악!’하는 소리와 함께 따라오던 그 내무반장
이 푹 고꾸라지더라는 거야. 깜짝 놀라 다가가
봤더니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는데 기절했더래.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나와 간신히
그 사람을 정신 차리게 했대. 그리고 나서 무
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겁에 질린 채로 그가
이렇게 말하더래.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2중대 3내무반
에서‘쓰윽’하고 죽은 김석주가 내 앞에 나타
나더니 경례를 했어요. 정말이에요! 난 똑똑히
봤어요. 그 머리에서 흐르던 피까지.”
그때부터 불안감과 공포가 훈련소에서 소리
없이 퍼지기 시작했대. 병사들은 밤이 되면,
그 앞으로 죽어도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는 거
야.
우리 내무반장도 직접 귀신을 목격했대. 자
기 전에 세수하기 위해 세면장에서 세수를 하
고 있는데 거울을 무심코 보니 복도에 누가 서
있는 것이 언뜻 보이더래. 그래서 돌아서서 자
세히 보니까 그 김석주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
며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라는 거야.
너무 놀라 뒤돌아보니 그 귀신은 천천히 저
쪽으로 걸어가더래. 뭐에 홀린 것처럼 따라갔는
데, 한참 걷다 보니 사라지고 없더라는 거야.
날이 지날수록 귀신을 목격하는 사병이 늘
어만 가자 장교들은 골치를 썩었대. 사기는 저
하될 대로 저하되어 있지만 상부에 귀신이 있
다고 보고할 수는 없는 처지고 말야.
별 다른 대책이 없어 쉬쉬하고 있는데 사단
장이 직접 이상한 현상을 목겼했대. 뭐냐 하면
밤 3시쯤 사단장이 부관을 깨워서 기습적으로
순찰을 해서 근무 상태를 파악해 보겠다고 나
섰대.
사단장이 부관과 함께 훈련소 앞을 지나가
고 있는데 파란불이 왔다갔다 하더래는 거야.
처음에는 사병들이 밤에 몰래 TV를 겨 놓고
비디오를 보는 줄 알고 노발대발했대.
그래서 부관 보고 어느 내무반인가 알아보
고 오랬다는 거야. 그래서 부관이 가까이 가
보니 그 내문반은 폐쇄된 지 두 달도 넘은 김
석주가 있던 내무반이었대. 그때는 훈련병들
이 없던 시기라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건물이었던 거야.
그런데 파란불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
으니 사단장도 시껍하지 않았겠어. 결국 사단
장은 부관의 보고를 통해서 김석주가 자살했
다는 것을 알았지.
결국 부대 차원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대.
굿을 한 무당의 말로는 원혼은 쉽게 죽은 자리
를 못 떠나고 맴도는데, 석 달 정도 지나면 괜
찮을 거라는 거야.
그런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 무당의 말처
럼 석 달이 지나니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더라
는 거야. 부대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고.하
지만 그 내무반을 다시 쓰기에는 너무 꺼림칙
해 짐을 놓는 창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죽은 영혼이 떠났다가 다시 들르는 건지, 그
뒤로도 김석주의 죽음을 모르는 훈련병들이
가끔씩 그 내무반에서 들려 오는 사람의 울음
소리를 듣곤 한다는 거야. 나도 듣긴 들었지만
날이 훤히 밝으니까 내가 환청을 일으킨 게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무섭지? 내무반장은‘김석주 사건’을 처음
에는 집단 착각 현상이라고 생각했대.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김석주의 죽음이 다른 사
람들의 눈에 헛것을 보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다가 무당의 굿으로 공포에 질린 사
람들이 심리적 위안을 찾았다고 볼 수도 있다
는 거야. 하지만 김석주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훈련병들이 울음소리를 듣는 것을 보고는 생
각을 바꿨대. 혼령은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실
재할지도 모르다고.”
지영이는 내가 이야기하는 도중 무서운지
나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얘기가 끝나자 재미
있게 듣고는 왜 그런 무서운 얘기를 했냐고 도
리어 불평을 해 댔다.
드디어 철규가 있는 부대 앞 마을에 버스가
도착했다. 그곳이 마침 버스 종점이기도 해서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이 모두 다 내렸다. 우
리도 사람들에 섞여 마을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받은 마을의 첫인상은 황
량함이었다. 부대가 진주하고 있는 다른 부대
들이 그렇듯이 큰 차이 없었다.
초라한 입간판을 달고 있는 여관과 다방, 허
름한 음식점, 그리고 면회객과 외박 군인들을
상대하는 싸구려 술집들.
거리가 이렇게 황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
쩌면 자기의 목숨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야
만 하는 병사들의 좌절감이 거리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마을에서 맡아야만 하는 절망의
내음이 너무도 싫었다. 면회소로 걸어가다 보
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라 해 봤자 군인 가족들이 대
부분일 테지만, 그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 이
방인들을 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강한 경계와 공포의 눈길로 우리를 살펴보
는 것이었다. 놀고 있던 아이들을엄마들은 얼
른 집으로 들이고, 우리들을 경계의 눈으로 쳐
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을 지나는 군인들 역시 완전 무
장을 하고 있었는데 철모 아래로 긴장의 빛이
흐르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며칠 전에 전쟁이라도 치렀던 마을 같
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면회소에 들어간 우리는 본부중대 박철규
이병의 면회를 신청했다. 특별한 훈련이 없는
한 주말은 언제든지 면회가 가능한 게 대한민
국 군대이기에 철규를 만나게 될 것 믿어 의심
하지 않았다.
같이 온 면회객들도 차례대로 면회를 신청
했다. 면회 신청을 받은 병사는 그 즉석에서
전화를 걸지 않고, 뒤로 들어가서 걸었다. 여
러 번 면회를 다녔지만 이런 식으로 면회를 받
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병사들을 유심
히 살펴 보았다. 병사들이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긴장
감으로 예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기소에
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뒤로 돌아갔던 병
사가 되돌아왔다.
“이철규 이병만 면회가 가능합니다. 권오은
상병과 김영경 일병을 면회 오신 분들은 돌아
가 주시기 바랍니다.”
초병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린 부산에서 왔는데 와 면회가 안 된다는
겨?”
“일요일인데 왜 면회가 안 되죠? 혹시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지금은 특수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면회가 안 됩니다.”
“안 되면 다 안 되는 거지, 누구는 되고 누구
는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훈련에 참가한 사람은 면회가 안 되고 훈련
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면회가 가능한 거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아는 행정병이라카던데 뭔 훈련에 참
석했단 말인겨? 그라지 마시고 잠깜만 불러
주이소. 얼굴만 보고 가겠십니더.”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가족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사는 아무리 떼를 써도 면회
는 절대로 안 되니 포기하고 돌아가라며 아예
부대 밖으로 쫓아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철규를 볼 수 있다니 하여튼 다행이었다. 한참
앉아 있으니 군복을 입은 철규가 들어왔다.
철규는 우리를 향해 절도 있게 거수 경례를 붙
였다. 사개 월 전보다 훨씬 듬직하게 보였다.
그는 면회소 사병에게 신고를 하고 나서 우
리는 밖으로 데리고 나섰다. 초소를 나서는데
철규를 바라보는 사병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
다. 철규를 동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지옥으
로 들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철규는 지영의 면회에 매우 흥분해 있었다.
지영은 철규의 그런 모습에 부담을 느끼는 눈
치였다.
우리는 허름한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지
영이 배낭을 열고 김밥과 찐 계란, 사과, 보온
병에 타 온 커피 등을 꺼냈다.
나는 치킨과 맥주를 시켰다. 처음 한동안은
초년병은 다 그렇듯이 철규가 군대 생활을 장
황하게 늘어놓았다.
철규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 보니 철규
가 무척 흥분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처음에는 지영이 면회 와서 그러려니 했는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았다.
마을에 와서 받은 첫인상이 떠올랐다. 나는
철규가 뭔가를 감추고 위해서 군대 이야기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 철규의 말을 가로막았다.
“철규야, 혹시 부대에 무슨 일 있는 것 아
니니? 마을 분위기도 이상하고, 면회도 잘 안
되는 걸 보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말야.”
“이상하긴요.낯선 곳에 와서 형이 그렇게 생
각하는 거예요.”
“그런 건가? 웬지 말이지 아까 초병이 널 보
던 눈빛이 자꾸 떠올라.”
“정 상병님이요? 정 상병님이 왜요?”
“글쎄, 뭐랄까? 아무튼 분명 뭔가 숨기고 있
는 눈치였어. 철규야, 너 우릴 속이려 들지 말
고 솔직하게 얘기해 봐. 뭔가 있지?”
철규는 내 눈동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
개를 술잔으로 떨구었다. 글라스를 힘주어 잡
더니 단숨에 입안에 털어넣었다.
“이거 또 이상한 얘기를 해야겠네.”
“뭔데 그래? 다 이야기해 봐.”
지영이 철규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형, 그친구분연락돼요? 심령학하신다는분.”
“윤석이? 응, 가끔씩 연락이 와. 그런데
왜?”
“나중에 제 얘기 점 꼭 전해 주세요. 사실 요
즘 우리 부대에 기괴한 일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저 영창까지 갔다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남들 못하는 면회도 할 수 있게 된 거
고요.”
지영은 철규의 억양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
기를 느꼈는지 나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나
역시 철규가 윤석의 이야기를 들먹거리는 걸
보니 이상한 얘기를 하려나 보다고 짐작했다.
“제가 이 부대에 배치받은 지는 이 개월밖에
안 됐어요. 새까면 졸병이죠.”
철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섬칫한 이
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제가 이 부대에 온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 시작되었어요. 지금도 신병이지만
그때는 화장실이 어디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바로 윗고참을 따라다니며 하
나씩 배워 나갔지요. 우리 부대는 비무장지대
와 접해 있는 최전방부대라 군기가 꽤 세요. 저
도 한동안은 적응을못해꽤힘들어했어요.
밤에는 불침번이다 동초다 5분대기조다 해
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던
한 달 전이었요.
저는 그날 밤 오분대기조였어요. 지영인 오
분대기조가 뭔지 모르지? 오분대기조란 유사
시 즉각 전투 태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밤에도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조를 말해.
말 그대로 오 분 안에 출동할 수 있도록 말야.
아마 그때가 새벽 두 시쯤 되었을 거예요.
윗 고참들은 총을 껴안고 요령 있게 졸고 있었
고, 저는 잠을 쫓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따다다다’하는 총소리가 고요한 부대를 뒤흔
들어 놨어요. 저흰 정말 전쟁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죠.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더군요. 뒤이어 온
부대에 긴급 사이렌이 울렸고, 우리는 즉각 출
동을 했어요. 총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총소리가 난 곳은 바로 부대 뒤 탄약고였어
요. 대부분의 부대가 그렇듯이 우리 부대도 산
을 등지고 위치한 부대예요. 탄약고는 바로 그
뒷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죠.
우리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많은 군인들이
그 주변에 쫘악 깔려 있었어요. 전부 무장은
하고 있었지만 적이 보이지 않으니 숨어 있을
도리밖에 없었어요.
상관들은 상관들끼리 졸따구는 졸따구끼리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데 연대장이 도착했어
요. 연대장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참모장이
지휘를 했어요. 우린 명령에 따라서 곧바로 부
대를 이동했어요.
십 분도 안 돼서 총소리가 들려 온 탄약고를
여러 겹으로 물 샐 틈 없이 에워쌌죠. 저는 그
제서야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말로만 듣
던 무장공비가 침투했구나, 하고 생각을 바꿔
먹었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서치라이
트가 탄약고 주변을 대낮처럼 환히 비추기 시
작했어요. 상황을 보고 하라고 무전을 연이어
쳤지만 총소리가 난 탄약고 앞 초소에서는 아
무런 응답이 없었어요.
적이 난사한 총에 맞아 초소의 병사들은 사
망했을 거라는 추측이 오고 갔죠. 잠시 후에
‘미친 개’라는 별명을 가진 대대장이 핸드 마
이크로‘너희는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
하라!’하고 외치기 시작했죠. 여러 번에 걸쳐
외쳤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거
였어요.
숨 막히는 긴장이 흘렀죠. 소대장이 잠깐 대
열에서 빠져 나갔다 오더니 전투 준비를 하라
는 거였어요. 저희 소대는 오분 대기조였기 때
문에 현장에 일찍 도착해서 맨 앞줄에 매복하
고 있었죠. 그 덕분에 우리 소대가 선봉에 서
게 되었어요.
서치라이트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초
소를 향해 우리는 포복을 해서 다가갔죠. 식스
틴의 잠금쇠를 끄르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어서 의식이
아주 명료했죠. 군복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
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철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어요. 우리는
초소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가 공격 명령이 떨
어지기를 기다렸어요. 초소는 기분 나쁠 정도
로 잠잠했어요.
원래는 수루탄을 먼저 투척한 뒤에 초소 안
의 움직임을 살피고 초소로 진입을 해야 하는
건데, 우리 병사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
문에 선제 공격 없이 곧바로 진입을 했어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미친개의 외침만
이 요란한 가운데 초소로 다가갔죠. 언제 적의
총탄이 날아올 줄 모르는 상황이었죠. 입안이
바짝바짝 타더군요. 발소리를 죽이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침투해 들어갔어요. 결국 소리없
이 다가가서 초소 벽에다 등을 기댔어요.
소대장이 손짓을 했죠. 저는 죽기 아니면 까
무리치기로 초소 안으로 한순간에 뛰어들었
죠. 그런데 놀랍게도 초소가 텅 비어 있는 거
예요. 초소 안을 둘러본 소대장이 즉시 무전기
로 상황 보고를 했어요.
이어서 주변 수색 명령이 떨어졌어요. 이번
에는 제법 많은 소대가 참여했죠. 헤드라이트
가 숲 속을 핥아 나가는 가운데 우리는 탄약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요.
우리 분대에게는 탄약고 철책선을 따라서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저는 사방 경
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조심해서 걸음을 옮
겼죠. 부대 고참들에게서 가끔 북한에서 특수
부대 애들이 넘어와 우리쪽 군인들을 죽이고
다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
든요. 그 애들은 가는 철사줄로 쥐도 새도 모
르게 목을 따 버린다는 하더군요.
저는 앞에서 플래쉬를 들고 갔는데 모퉁이
가 나왔어요. 돌아서기가 두려운 거였어요. 저
편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조심해서 돌아
가 보니 숲 속에 사람 같은 것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었어요. 두 명이었어요.
분대장이 즉각 중지 신호를 보냈어요. 엎드
려서 살펴 보았지만 전혀 움직이질 않는 거예
요. 군복을 보니 우리 쪽 사람 같더라고요. 그
래서 용기를 내서 다시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가까이 가 보니 그들은 탄약고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었어요. 완전히 나자빠져 있는 거예
요. 그중 한 명이 총을 꽉 쥐고 있고, 탄피가
널려 있는 걸로 봐서 그가 총을 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우리는 공비에게 당해 죽은 줄 알고, 시체를
살펴 봤어요. 그런데 아무런 상처도 발견할 수
없었죠. 심장에 귀를 대 보니 살아 있더라고
요. 그들은 단지 기절해 있었던 거죠.
수통을 열고 물을 끼얹었더니 정신을 차렸
리더라고요. 그들은 정신을 차리자 마자‘그,
그 여자 그 여자 어, 어디 있어요?’라고 더듬
거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분대장이‘군부대에
뭔 여자가 있겠느냐’면서 자초지종을 물었죠.
“적이 침투했나?”
그러자 그들은 즉시 고개를 저었어요.
“그럼 총은 누가 쏘았나?”
“내, 내가.”
“무엇을 보고 쏘았나?”
“여, 여자.”
“제기랄! 헛것을 본 모양이구만. 아직도 제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니.”
분대장은 즉시 상황 보고를 했고 탄약고 주
변에 깔려 있던 부대원들은 철수를 했죠.
우리 분대는 그 두 사람을 데리고 탄약고에
서 내려왔죠. 두 사실을 조사실에다 데려다 준
뒤에 내무반으로 돌아오니 여명이 터오르더군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어
요. 그런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지도 않
았던가 봐요.
누군가에 입에 의해서인지 그들이 조사받은
내용이 군부대에 쫘악 퍼졌어요. 대충 이런 내
용이었어요.
그들은 평상시대로 보초 근무를 서고 있었
대요. 고참은 초소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자고
있었고, 쫄따구는 열심히 장교가 오나 망을 보
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졸고 있던 고참이 갑자기 오줌을 누
고 오겠다며, 탄약고 뒤로 돌아갔대요. 졸따구
는 금방 올 줄 알고 혼자서 초소를 지키고 있
었죠. 순찰이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연신 사방
을 살피면서.
십 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소변을 보러
간 고참은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처음에는 고
참이‘큰 것’을 보거나 자신을 놀려 주려고 그
러는가 보다고 생각했죠. 기다리면 곧 오겠지,
하고 열심히 근무를 섰지만 고참은 삼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였어요.
이상한 예감이 들었죠. 그래서 총을 들고서
천천히 탄약고 뒤로 돌아갔어요.나무 밑에서
고참이 누워 있는 게 보였죠. 졸병은 고참이
너무 졸려서 그대로 나무 밑에서 자는 거라고
생각하고 깨우려고 다가갔대요.
가까이 가 보니 바지 자락을 열어 놓은 채로
고참이 누워 있는 거였어요. 순간, 소름이 확
끼쳤대요. 생각해 봐요. 아무도 없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잘 아는 사람 하나가 바지자락도
추스리지 못한 채 나자빠져 있다고.
졸병은 총의 안전 장치를 풀르고 천천히 누
워있는 고참에게 다가갔대요. 가까이서 보니
아무런 외상도 없어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
해 몸을 숙였대요. 그 순간, 눈에 파묻인 것처
럼 주변이 새하얘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고개를 들었대요. 그런데 놀랍
게도 눈앞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 있더라는 거예요. 눈에서는 파
란 광채가 내뿜으면서.
귀신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전신으로
느꼈대요. 그는 무의식 중에 뒷걸을질을 쳤대
요. 그런데 귀신이 자기를 향해 다가오더라는
거예요. 그는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졸병의 주장에 의하면 그가 본 하얀
것은 귀신의 몸 안이었다는 거예요. 아주 사방
이 눈이 온 것처럼 환하더래요.
고참은 뭐라고 증언했냐구요? 졸병의 증언
과 비슷했대요. 소변을 보러 탄약고 뒤로 돌아
갔는데 갑자기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대요. 그
는 몸을 한 차례 바르르 떤 뒤에 소변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을 뒤에서 뚫어지기 쳐다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래요.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렸더니 졸병이 묘
사한 그 여자가 서 있더라는 거예요. 자기를
빤히 쳐다보면서.너무 놀라서 움직일 수가 없
더래요. 그런데 갑자기 소리나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자기에게 쓰윽하고 다가왔대요.
파란 눈이 점점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
는 것을 보고 그대로 기절했다는 거예요. 둘의
증언은 거기까지였대요.
두 사람의 진술이 진실이었다고 해도 군대
에서 그런 이야기가 먹히겠어요. 위에서는 자
식들이 노루가 눈앞에서 얼씬거리니까 총을
쐈다가 아무것도 안 맞자 둘이서 입을 맞추고
기절한 척한 거라고 결론을 내렸죠.
우리 부대에는 근무 도중에 총을 쏴도 되지
만 노루나 토끼, 하물며 참새 한 마리라도 쓰
러져 있으면 괜찮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물론
총을 쏘고 나서는 곧바로 보고를 해야지요.
결국 두 사람은 영창 갔죠. 고참은 근무 불
성실로 열흘, 총을 발포한 신참은 무단 발포로
2주간 영창에 갔어요.
부대원들은 거짓말을 엉성하게 해서 영창에
간 거라며 둘 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들이라
고 손가락질 했죠.
그 일은 그 걸로 끝나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
었어요. 아무도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도 정말로 귀신이 나타나면 어떡하나 하고 우
려했던 모양이에요. 그 일 이후로 아무도 그
초소에서 보초를 서려고 하질 않는 거예요.
고참들은 탄약고 초소에서 근무를 서지 않
기 위해 행정병에게 압력을 넣곤 했죠. 말년에
비명 횡사할 일 있느냐면서.
그러다 보니 탄약고 보초는 짬밥이 낮은 신
병들에게 돌아갔아요. 결국 저에게도 보초 순
서가 돌아왔죠.
그날 저와 같이 초소에 올라간 고참은, 사실
고참이라고 불리기엔 그 사람도 신병이었지
만, 막 일병을 단 신 일병이었죠. 그러니까 그
사람도 고참으로서 그런 초소에 올라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신 일병은 귀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기
가 졸병 한 명을 데리고, 초소 근무를 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죠. 우리가 맡은 시
간은 시간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로 제일 사
람들이 싫어하는 시간이었어요.
지난번 사건으로 장교들의 순찰도 강화되었
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때까지는 신참이라는
이유로 보초 근무도 제외되어 있다가 그 날 처
음으로 2인 1조가 되어 야간 보초 근무를 서게
된 거였죠.
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주위 경계를 하고 있
는데, 모처럼 사수가 된 신 일병은 자기도 고
참 행세를 한다면서 초소 뒤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오겠다는 거예요.
나는 가지 말라고 말렸죠. 남들은 무서워서
그쪽으로는 아예 가지도 않으려는데, 왜 일부
러 거기까지 가서 담배를 피우려 하느냐고.
신 일병은 자기는 보초를 설 때 고참들이 자
유스럽게 돌아다니면서 담배를 피는 것이 너
무 부러웠다면서, 고참이 되면 꼭 자기도 해
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다는 거예요.
원래 귀신을 믿는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귀신 같은 건 안 믿으
니 눈에 보일 리도 없다면서, 아무 걱정 말고
근무나 잘 서라는 거였어요. 혹시 순찰 나오면
그쪽으로 돌을 던져 달라고 당부하면서.
저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 사람이 너무나 자
신만만해 하길래 그래도 두었죠. 그는 한껏 거드
름을 피우면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어요.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하고 애써 자위하면
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담배 피우러 간 신 일
병은 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사방은 칠흙같
이 어두운데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가는 소
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 왔죠.
그런데 저쪽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떨리는 손으로 총을 겨눈 다음, 배운 대로 암
구호롤 물어보았어요. 나는 너무도 긴장해 있
어서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그냥 주저 없이 총
으로 갈길 작정이었죠. 그런데 귀에 익은 목소
리가 들려왔어요. 바로 우리 내무반장이었어
요. 그날 일직 사령이었대요.
일직 사령이 뭐냐고? 응 일직 사령이란 군대
에서 밤에 상황을 살피는 당직을 말하지. 원래
는 하사나 상사가 맡아야 하는데, 병장이나 군
대 경험이 많은 고참병들이 하는 것이 묵시적
관례로 되어 있어. 일직 사령 위로 장교들이
맡는 일직 사관이 있지.
내무반장은 그날 장교들의 명령으로 밤에
초소 순시를 나왔다는 거예요. 신 일병은 어디
갔느냐고 묻길래 저쪽으로 소변 보러 갔다고
했더니 무슨 말인지 금세 눈치채고는 화를 버
럭 내는 거였어요.
“훈련소에서 먹은 짬밥도 아직 소화 못 시킨
놈이 감히 어디서.”
내무반장이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면서 뒤로
돌아갔어요. 저는 순간, 돌을 던져 신호를 해
주라는 신 일병의 말을 떠올렸지만 이미 엎지
러진 물이었죠.
신 일병이 엄청나게 깨지겠구나 하고 상상
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나
지 않는 거였어요. 신 일병이 내무반장에게 박
살나고 내무반장이 가고 난 뒤에 신 일병에게
내가 박살나게끔 되어 있는 건데, 이상하게 잠
잠하대요.
내무반장이 달려간 지 10분이 넘었지만 아
무런 기척도 없는 거였어요. 주위가 잠잠하니
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저는 빨리 교대조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았지만, 아직 40분
이나 남아 있더라고요.
그때 내무반장이 사라진 쪽과 반대편에서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나는 떨
리는 목소리로 암구호를 물어보았어요. 이번
에는 그날 일직 사관이었던 1중대장이었어요.
일직 사령이 왔었느냐고 묻길래 저는 그냥
저 뒤에 있다고 말했어요. 중대장은 얼굴이 시
뻘게져서, 빨리 순찰을 돌고서 수시로 상황 보
고를 하라고 했더니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냐
면서, 돌아갔어요.
중대장도 뒤로 사라지자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내무반장이 중대장에게 박살나면
다시 신 일병에게 화풀이를 하겠고, 다시 그
화는 나에게 올 게 뻔했기 때문이죠.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야겠구나, 하고 마음
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또 깜
깜 무소식인 거예요.
아무리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으니 어떡해
요. 할 수 없이 마음을 다잡고, 저도 뒤로 돌아
가 보았어요. 플래쉬를 들고 천천히 모퉁이를
돌았어요. 전신에서 정말 땀방울이 비오듯이
흐르더군요.
누가 뒤에서 불쑥 달려들 것 같은 그런 으스
스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빛줄기
가 보이는 거예요. 플래쉬로 비춰 보니 플래쉬
가 땅에 떨어져 있는 거였어요.
플래쉬로 다시 사방을 비쳐 보았죠. 그런데
느티나무 밑에 세 사람이 벌러덩 드러누워있
는 거였어요. 순간 저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
어요. 소문의 그 귀신보다는 철사로 목을 따간
다는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여겼죠.
천천히 쓰러져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어요.
플래쉬가 불이 켜져 있는 채로 떨어져 있는 걸
로 봐서 기습 공격에 당했구나 하고 판단했죠.
저는 초소로 다시 돌아가 보고부터 할까 망
설이다가 초소까지 돌아갈 엄두가 다시 않아
사방을 경계하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요.
시꺼먼 덤불 속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죠.
너무 무서웠지만 일단 앞에 누워 있는 세 사
람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해야겠다고 마음을 굳
게 먹었어요. 사방을 쉴 새 없이 돌아보며 천
천히 접근했죠.
누가 어둠 속에서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
았어요. 저는 결국 쓰러진 그 세 사람 앞에까
지 접근하는데 성공했어요.
우선 그들의 목부터 살폈어요. 목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어요. 오히려 목젖이 미세하게 움
직이더라고요. 저는 그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어요.
얼마 전에 여기서 보초 근무를 섰던 두 사람이
증언한 내용이 떠올랐어요. 이 사람들이 기절
했다면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라면 그 귀신
이 다시 나타났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 순간, 심장이 마비되려는지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어요.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몸을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위에서 뭔가 툭 떨어졌어요..
그 순간, 정말을 머리가 쭈삣 서는 거였어
요. 저는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살폈어요. 놀
랍게도 하얀 소복을 한 여자 귀신이 머리를 늘
어뜨리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였어
요. 파아란 눈으로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한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거였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죠. 저는 귀신을 향해서 냅다
총을 갈겨 댔어요. 탄창이 빌 때까지 쐈어요.
아니 탄창이 비는 것도 몰랐죠.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 걸 어렴풋이 느꼈
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그 귀신이 여전히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띄면
서.저는 총을 버리고 무조건 달렸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무 기억도 안 나
요.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부대 정문을 나
와 있는 거였어요. 탄약고에서 부대 정문까지
는 아무리 빨리 뛰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린
데, 그 거리를 단숨에 뛰어왔던 거예요.
부대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죠. 나중
에 들은 이야기로는 보초병들이 암구호를 외
치는 데도 저는 들은 척도 않고 괴성을 지르며
달렸다는 거예요. 곧바로 보고가 올라갔고, 나
를 발견하더라도 사살하지 말라는 보고가 다
시 떨어졌대요.
제가 정문 쪽으로 달려가자 정문 위병들에
게 나는 저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대요. 내가
정신없이 달려가자 나를 발견한 위병들이‘정
지! 정지!’하고 외쳤대요. 그런데 내가 무시하
고 그냥 달렸나 봐요. 그 위병들은 미처 나를
잡을 틈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웃기는 것은 사건이 정리된 후에 그
위병들은 모두 명령 불복종으로 2주간 영창에
갔어요. 나를 저지 못했기 때문이죠. 만약 나
를 쏴서라도 저지했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포
상 휴가를 받았을 거예요. 그게 군대잖아요.
저는 근무지 이탈에다 부대 탈영을 했지만
서도, 귀신을 보았다는 세 사람의 증언이 일치
해 일주일 영창이라는 예상외로 가벼운 벌을
받았죠.
철규는 자조적인 미소를 띄운 뒤에 담뱃불
을 붙였다.
“안 믿기죠? 아니 일한이 형은 믿을 거야.
지영이가 믿질 못하겠구나. 하지만 지영아, 이
건 내가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데 나는 정말로
귀신을 봤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영은 무서운지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곁에
철규 보기 민망할 할 정도로 바짝 붙어 있었다.
나는 무섭증보다는 일종의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제 다 해결된 거
야?”
“해결되기는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제
가 일주일 영창을 갔다 와 보니 그 초소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병사들이 몇 명 더 있더라고
요. 그래서인지 병사들은 아무도 탄약고 초소
에 보초를 서려 하지 않는 거예요.
장교들은 휴가다, 열외다 해서 온갖 달콤한
유혹으로 병사들을 달랬지만 소용없었어요.
심지어는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을 보낸다고
겁을 줘도 야간 보초만은 서지 않겠다는 거예
요. 차라리 영창을 가고 말겠다는 거죠. 실제
로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에 간 병사도 셋이나
있어요.
부대 사기가 말이 아니죠. 그렇다고 탄약고
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더구나 우리 연대
장은 장군으로 진급하기 바로 직전이어서 이
사건을 잘 처리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어요.
결국 초소 근무를 모두 기피하자 장교들에
게 그 불똥이 튀었어요. 장교들이 직접 초소에
가서 야간 보초를 서라는 거였어요. 것이예요.
하지만 장교들인들 서고 싶겠어요. 마지못해
그 초소로 올라가는 척하다가 다른 곳에서 놀
다 내려오고 했죠.
사령 사관들도 그쪽으로는 순시를 하기 싫
으니 대신 초소로 전화를 해서 근무를 서나 안
서나 확인하곤 했죠. 그런데 사람이 없는데 전
화를 받겠어요? 보초를 선 장교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그들은 전화벨이 울리지 않
았다고 오리발을 내밀곤 했죠. 한마디로 부대
로 개판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보다 못한 한 소대
장이 나섰어요. 엄 중위라고 육사 출신인데 요
즘 찾아보기 힘든 아주 전형적인 군인이에요.
의리 있고, 용감하고, 배짱 두둑하며, 장교는
사병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투철한 장교
의식을 지닌 말 그대로 군인이죠.
집안도 군인 집안인데 할아버지가 우리 부
대 초대 연대장이었대요. 정년 퇴임을 한 뒤로
는 이 근처에서 자리를 잡았대요. 마을의 유지
라고 할 수 있죠.
엄 중위는 출세길이 훤한 특권층 장교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그가 흐트러진 부대 기강을
바로잡겠다며 탄약고 초소 야간 근무를 자청
하고 나선 거였어요. 그는 공수부대 출신 상사
한 명을 데리고 갔어요.
엄 중위는 초소로 올라가기 전에 자신의 내
무을 돌며서 자신이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면
돌아가면서 그 초소에서 근무를 서야 한다고
사병들에게 한바탕 훈시를 했죠.
그리곤 당당하게 초소로 올라갔어요. 우리
는 엄 중위와 상사가 어떻게 될까 몹시 궁금해
했어요. 부대원들은 둘로 갈라져서‘귀신을 만
난다’와‘안 만난다’, 두 편으로 나뉘어서 내
기를 걸기도 했어요.
이윽고 날이 밝았죠.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무척 궁금해하고 있는데 아무도 엄 중위와 상
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아침에 가 보니, 소대장은 초소
안에서 죽어 있고, 상사는 완전히 미쳐 있더라
는 거예요.
어제까지만 해도 귀신 이야기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악령으로 바뀐 거예요. 죽은 소대장의
사인은 쇼크사가 아니라 머리가 180도 돌려진
채 죽어 있더래요. 그러니까 얼굴이 등쪽을 향
하고 있었던 거죠. 같이 있던 공수부대 출신의
상사는 완전히 얼이 나가 있고요.
상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더라는
거예요. 태산을 들 것 같던 그 우람한 사내가.
일부에서는 상사가 엉겹결에 소대장을 죽인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조심스레 나돌았죠. 그
런데 군의관의 말로는 소대장의 머리는 도저
히 사람의 힘으로는 그렇게 돌려 놓을 수 없다
는 거예요. 목뼈는 부러뜨릴 수 있으나 머리
전체를 음료수 뚜껑처럼 돌리는 것은 불가능
하대요.
이 살인 사건은 상부에 보고되었죠. 사단에
서는 곧바로 특검단을 우리 부대로 파견했어
요. 지금 한창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죠.
그러자 연대장은 열이 받을 대로 받았어요.
그래서 사병들에게 탄약고 초소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모든 병사들의 면회, 외출은 물론
휴가도 일절 금지한다고 선포했죠. 하지만 그
대신 지원자에게는 2주간 특별 휴가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모든 훈련에서 열외시
켜 주겠다는 조건을 내 걸었어요.”
나는 순간, 감전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철규 너 설마?”
“그래요, 형 휴가도 빵빵하고, 훈련도 열외
시켜 준대잖아요. 저 같은 신병에게는 둘도 없
는 기회예요. 더구나 처음으로 면회도 왔고.”
“너 우리 때문에 그랬구나? 이럴 줄 알았으
면 안 오는 건데.”
“아녜요, 형! 아주 잘 왔어요. 대한민국 군대
가 귀신 때문에 우왕좌왕하고 있어서는 체신
이 안 서잖아요. 어차피 이 문제는 누군가 나
서서 해결해야 해요.”
“그래도 하필이며 왜 너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엄 중위는 운이 없
었던 거라고 봐요. 언젠가 형이 그랬죠? 귀신
은 본래 물리력이 없다고.”
“마, 그거야 일반적인 얘기고 이번에는 다르
잖아. 실제로 죽은 사람도 나왔잖아?”
“걱정하지 마요. 저는 결코 엄 중위처럼 개
죽음을 당하거나 그러진 않을 테니까.”
철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맥주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곤 시계를 보았다. 어느덧 시간
이 꽤 되어 있었다.
“이제 저 가 봐야겠어요. 보초 설 준비를 해
야 되거든요. 지영이도 일한이 형도 조금도 걱
정하지 마세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귀신은
퇴마록 같은 데나 나오는 거예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 귀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으니까 괜찮
을 거예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 귀신이 나에
게 반했을지도.”
철규가 우릴 안심시키기 위해서 여유 있는
척 농담까지 던졌으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
다. 눈동자 속에는 잔뜩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
었다.
지영이 초소 근무 서는 것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라고, 차라리 영창을 가는 쪽으로 생각해
보라고 권했지만 철규는 이미 결심을 굳힌 모
양이었다. 철규는 부대로 들어가면서 힘껏 손
을 흔들었다.
“지영이도 일한 형도 와 줘서 너무 고마
워요. 얼굴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반드시 살아야겠다는.다음중에 서울에서 만나
요. 휴가 나갈 테니까.”
철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돌아섰
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철규의 뒷모습을 보면
서 간절히 기도했다. 철규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씨바둥작성일 2017-07-10추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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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탄핵반대 새누리 128명 반대의원 명단입니다
서청원( (새누리,경기화성갑)최경환 (새누리,경북경산)김진태 (새누리,강원춘천)김종태 (새누리,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홍문종 (새누리, 경기 의정부을)조원진 (새누리,대구달서병)이장우 (새누리,대전동구)이정현 (새누리,전남순천)정진석 (새누리, 충남공주부여청양)이우현 (새누리, 경기용인갑)윤상현 (새누리,인천남구을)정우택 (새누리, 충북 청주시상당구)정갑윤 (새누리, 울산중구)민경욱 (새누리, 인천연수을)김상훈 (새누리, 대구서구)이완영 (새누리, 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함진규 (새누리, 경기 시흥시갑)백승주 (새누리, 경북 구미시갑)김석기 (새누리, 경북경주시)김무성 (새누리, 부산중구영도구) 유승민 (새누리, 대구 동구을)심재철 (새누리, 경기 안양시동인구을)정병국 (새누리, 경기 여주시양평군)김재경 (새누리, 경남 진주시을)나경원 (새누리, 서울 동작구을)주호영 (새누리, 대구 수성구을)강석호 (새누리,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권성동 (새누리, 강원강릉)김세연 (새누리, 부산 금정구)김학용 (새누리, 경기 안성시)이종구 (새누리, 서울 강남구갑)이학재 (새누리, 인천 서구갑)황영철 (새누리, 강원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박인숙 (새누리, 서울 송파구갑)오신환 (새누리, 서울 관악구을)장제원 (새누리, 부산 사상구)정양석 (새누리, 서울 강북구갑)윤한홍 (새누리, 경남 창원시마산회원구)강길부 (새누리, 울산울주)강석진 (새누리,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강효상 (새누리, 비례대표)경대수 (새누리, 충북 증평군진천군음성군)곽대훈 (새누리, 대구 달서갑)곽상도 (새누리, 대구 중구남구)권석창 (새누리, 충북 제천시단양군)김광림 (새누리, 경북 안동시)김규환 (새누리, 비례대표)김기선 (새누리, 강원원주갑)김도읍 (새누리, 부산북구강서구을)김명연 (새누리, 경기안산시단원구갑)김선동 (새누리, 서울 도봉구을)김성원 (새누리, 경기동두천시연천군)김성찬 (새누리, 경남 창원시진해구)김성태 (새누리, 서울강서구을) 김성태 (새누리, 비례대표) 김순례 (새누리, 비례대표)김승희 (새누리, 비례대표)김영우 (새누리, 경기 포천시가평군)김정재 (새누리, 경북 포항시북구)김정훈 (새누리, 부산 남구갑)김종석 (새누리, 비례대표)김태흠 (새누리, 충남 보령시서천군)김한표 (새누리, 경남 거제시)김현아 (새누리, 비례대표)문진국 (새누리, 비례대표)박대출 (새누리, 경남 진주시갑)박덕흠 (새누리,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박맹우 (새누리, 울산 남구을)박명재 (새누리, 경북 포항시남구울릉군)박성중 (새누리, 서울 서초구을)박완수 (새누리, 경남 창원시의창구)박찬우 (새누리, 충남 천안시갑)배덕광 (새누리, 부산 해운대구을)성일종 (새누리, 충남 서산시태안군)송석준 (새누리, 경기 이천시)신보라 (새누리, 비례대표)송희경 (새누리, 비례대표)신상진 (새누리, 경기 성남시중원구)안상수 (새누리, 인천 중구동구강화군웅진군)엄용수 (새누리, 경남 밀양시의령군함인군창녕군)여상규 (새누리,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염동열 (새누리, 강원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원유철 (새누리, 경기 평택시갑)유기준 (새누리, 부산 서구동구)유민봉 (새누리, 비례대표)유의동 (새누리, 경기 평택시을)유재중 (새누리, 부산 수영구)윤상직 (새누리, 부산 기장군)윤영석 (새누리, 경남 양산시갑)윤재옥 (새누리, 대구 달서구을)윤종필 (새누리, 비례대표)이군현 (새누리, 경남 통영시고성군)이만희 (새누리, 경북 영천시청도군)이명수 (새누리, 충남 아산시갑)이양수 (새누리, 강원 속초시고성군양양군)이은권 (새누리, 대전 중구)이은재 (새누리, 서울 강남구병)이종명 (새누리, 비례대표)이종배 (새누리, 충북 충주시)이주영 (새누리, 경남 창원시마산합포구)이진복 (새누리, 부산 동래구)이채익 (새누리, 울산 남구갑)이철규 (새누리, 강원 동해시삼척시)이철우 (새누리, 경북 김천시)이헌승 (새누리, 부산 부산진구을)이현재 (새누리, 경기 하남시)임이자 (새누리, 비례대표)장석춘 (새누리, 경북 구미시을)전희경 (새누리, 비례대표)정용기 (새누리, 대전 대덕구)정운천 (새누리, 전북 전주시을)정유섭 (새누리, 인천 부평구갑)정종섭 (새누리, 대구 동구갑)정태옥 (새누리, 대구 북구갑)조경태 (새누리, 부산 사하구을)조훈현 (새누리, 비례대표)주광덕 (새누리, 경기 남양주시병)지상욱 (새누리, 서울 중구성동구을)최교일 (새누리, 경북 영주시문경시예천군)최연혜 (새누리, 비례대표)추경호 (새누리, 대구 달성군)한선교 (새누리, 경기 용인시병)홍문표 (새누리, 경기 의정부시을)홍일표 (새누리, 인천 남구갑)홍철호 (새누리, 경기 김포시을)박순자 (새누리, 경기 안산시단원구을)하태경 (새누리, 부산 해운대구갑)이혜훈 (새누리, 서울 서초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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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탄핵반대의원SNS 공개한 표창원에게 항의?하는 장제원 외 새누리 의원들
1. 박근혜 탄핵 반대 (2016년 11월 30일, 오후 3시 30분 현재, 총 16명)서청원 (새누리, 경기화성갑) 최경환 (새누리, 경북경산)김진태 (새누리, 강원춘천)김종태 (새누리,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홍문종 (새누리, 경기 의정부을)조원진 (새누리, 대구달서병)이장우 (새누리, 대전동구)이정현 (새누리, 전남순천)정진석 (새누리, 충남공주부여청양)이우현 (새누리, 경기용인갑)윤상현 (새누리, 인천남구을)정우택 (새누리, 충북상당)정갑윤 (새누리, 울산중구)민경욱 (새누리, 인천연수을)김상훈 (새누리, 대구서구)이완영 (새누리, 경북고령성주군칠)2. 박근혜 탄핵 눈치보기/주저 (총 112명)강길부 (새누리, 울산울주)강석진 (새누리, 경남산천함양합천)강석호 (새누리,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강효상 (새누리, 비례대표)경대수 (새누리, 충북 증평군진천군음성군)곽대훈 (새누리, 대구 달서갑)곽상도 (새누리, 대구 중구남구)권석창 (새누리, 충북 제천시단양군)권성동 (새누리, 강원강릉)김광림 (새누리, 경북 안동시)김규환 (새누리, 비례대표)김기선 (새누리, 강원원주갑)김도읍 (새누리, 부산북구강서구을)김명연 (새누리, 경기안산시단원구갑)김무성 (새누리, 부산중구영도구) 김석기 (새누리, 경북경주시)김선동 (새누리, 서울 도봉구을)김성원 (새누리, 경기동두천시연천군)김성찬 (새누리, 경남 창원시진해구)김성태 (새누리, 서울강서구을) 김성태 (새누리, 비례대표) 김세연 (새누리, 부산 금정구)김순례 (새누리, 비례대표)김승희 (새누리, 비례대표)김영우 (새누리, 경기 포천시가평군)김재경 (새누리, 경남 진주시을)김정재 (새누리, 경북 포항시북구)김정훈 (새누리, 부산 남구갑)김종석 (새누리, 비례대표)김태흠 (새누리, 충남 보령시서천군)김학용 (새누리, 경기 안성시)김한표 (새누리, 경남 거제시)김현아 (새누리, 비례대표)나경원 (새누리, 서울 동작구을)문진국 (새누리, 비례대표)박대출 (새누리, 경남 진주시갑)박덕흠 (새누리,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박맹우 (새누리, 울산 남구을)박명재 (새누리, 경북 포항시남구울릉군)박성중 (새누리, 서울 서초구을)박순자 (새누리, 경기 안산시단원구을)박완수 (새누리, 경남 창원시의창구)박인숙 (새누리, 서울 송파구갑)박찬우 (새누리, 충남 천안시갑)배덕광 (새누리, 부산 해운대구을)백승주 (새누리, 경북 구미시갑)성일종 (새누리, 충남 서산시태안군)송석준 (새누리, 경기 이천시)송희경 (새누리, 비례대표)신상진 (새누리, 경기 성남시중원구)심재철 (새누리, 경기 안양시동인구을)안상수 (새누리, 인천 중구동구강화군웅진군)엄용수 (새누리, 경남 밀양시의령군함인군창녕군)여상규 (새누리,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염동열 (새누리, 강원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오신환 (새누리, 서울 관악구을)원유철 (새누리, 경기 평택시갑)유기준 (새누리, 부산 서구동구)유민봉 (새누리, 비례대표)유승민 (새누리, 대구 동구을)유의동 (새누리, 경기 평택시을)유재중 (새누리, 부산 수영구)윤상직 (새누리, 부산 기장군)윤영석 (새누리, 경남 양산시갑)윤재옥 (새누리, 대구 달서구을)윤종필 (새누리, 비례대표)윤한홍 (새누리, 경남 창원시마산회원구)이군현 (새누리, 경남 통영시고성군)이만희 (새누리, 경북 영천시청도군)이명수 (새누리, 충남 아산시갑)이양수 (새누리, 강원 속초시고성군양양군)이완영 (새누리, 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이은권 (새누리, 대전 중구)이은재 (새누리, 서울 강남구병)이종구 (새누리, 서울 강남구갑)이종명 (새누리, 비례대표)이종배 (새누리, 충북 충주시)이주영 (새누리, 경남 창원시마산합포구)이진복 (새누리, 부산 동래구)이채익 (새누리, 울산 남구갑)이철규 (새누리, 강원 동해시삼척시)이철우 (새누리, 경북 김천시)이학재 (새누리, 인천 서구갑)이현승 (새누리, 부산 부산진구을)이현재 (새누리, 경기 하남시)이혜훈 (새누리, 서울 서초구갑)임이자 (새누리, 비례대표)장석춘 (새누리, 경북 구미시을)장제원 (새누리, 부산 사상구)전희경 (새누리, 비례대표)정병국 (새누리, 경기 여주시양평군)정양석 (새누리, 서울 강북구갑)정용기 (새누리, 대전 대덕구)정운천 (새누리, 전북 전주시을)정유섭 (새누리, 인천 부평구갑)정종섭 (새누리, 대구 동구갑)정태옥 (새누리, 대구 북구갑)조경태 (새누리, 부산 사하구을)조훈현 (새누리, 비례대표)주광덕 (새누리, 경기 남양주시병)주호영 (새누리, 대구 수성구을)지상욱 (새누리, 서울 중구성동구을)최교일 (새누리, 경북 영주시문경시예천군)최연혜 (새누리, 비례대표)추경호 (새누리, 대구 달성군)하태경 (새누리, 부산 해운대구갑)한선교 (새누리, 경기 용인시병)함진규 (새누리, 경기 시흥시갑)홍문표 (새누리, 충남 홍성예산)홍일표 (새누리, 인천 남구갑)홍철호 (새누리, 경기 김포시을)황영철 (새누리, 강원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3. 박근혜 탄핵 찬성 (총 172명)더불어민주당(121명)국민의당(38명)정의당 (6명)무소속 7명(새누리 탈당 무소속, 김용태 포함)
무한주유작성일 2016-12-01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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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현시각 탄핵 찬성 및 반대 현황 from 표창원.
https://www.facebook.com/cwpyo/posts/1427366903970711표창원님이 게시물을 공유했습니다.방금 · 표창원 받는 사람 박근혜 탄핵19분 전 · 1.박근혜 탄핵 반대 (2016.11.30 현재 총 16명) 서청원 (새누리, 경기화성갑) 최경환 (새누리,경북경산)김진태 (새누리,강원춘천)김종태 (새누리,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홍문종 (새누리, 경기 의정부을)조원진 (새누리,대구달서병)이장우 (새누리,대전동구)이정현 (새누리,전남순천)정진석 (새누리, 충남공주부여청양)이우현 (새누리, 경기용인갑)윤상현 (새누리,인천남구을)정우택 (새누리, 충북상당)정갑윤 (새누리, 울산중구)민경욱 (새누리, 인천연수을)김상훈 (새누리, 대구서구)이완영 (새누리, 경북고령성주군칠) 2. 박근혜 탄핵 눈치보기/주저 (총 112명)강길부 (새누리, 울산울주)강석진 (새누리, 경남산천함양합천)강석호 (새누리,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강효상 (새누리, 비례대표)경대수 (새누리, 충북 증평군진천군음성군)곽대훈 (새누리, 대구 달서갑)곽상도 (새누리, 대구 중구남구)권석창 (새누리, 충북 제천시단양군)권성동 (새누리, 강원강릉)김광림 (새누리, 경북 안동시)김규환 (새누리, 비례대표)김기선 (새누리, 강원원주갑)김도읍 (새누리, 부산북구강서구을)김명연 (새누리, 경기안산시단원구갑)김무성 (새누리, 부산중구영도구) 김석기 (새누리, 경북경주시)김선동 (새누리, 서울 도봉구을)김성원 (새누리, 경기동두천시연천군)김성찬 (새누리, 경남 창원시진해구)김성태 (새누리, 서울강서구을) 김성태 (새누리, 비례대표) 김세연 (새누리, 부산 금정구)김순례 (새누리, 비례대표)김승희 (새누리, 비례대표)김영우 (새누리, 경기 포천시가평군)김재경 (새누리, 경남 진주시을)김정재 (새누리, 경북 포항시북구)김정훈 (새누리, 부산 남구갑)김종석 (새누리, 비례대표)김태흠 (새누리, 충남 보령시서천군)김학용 (새누리, 경기 안성시)김한표 (새누리, 경남 거제시)김현아 (새누리, 비례대표)나경원 (새누리, 서울 동작구을)문진국 (새누리, 비례대표)박대출 (새누리, 경남 진주시갑)박덕흠 (새누리,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박맹우 (새누리, 울산 남구을)박명재 (새누리, 경북 포항시남구울릉군)박성중 (새누리, 서울 서초구을)박순자 (새누리, 경기 안산시단원구을)박완수 (새누리, 경남 창원시의창구)박인숙 (새누리, 서울 송파구갑)박찬우 (새누리, 충남 천안시갑)배덕광 (새누리, 부산 해운대구을)백승주 (새누리, 경북 구미시갑)성일종 (새누리, 충남 서산시태안군)송석준 (새누리, 경기 이천시)송희경 (새누리, 비례대표)신상진 (새누리, 경기 성남시중원구)심재철 (새누리, 경기 안양시동인구을)안상수 (새누리, 인천 중구동구강화군웅진군)엄용수 (새누리, 경남 밀양시의령군함인군창녕군)여상규 (새누리,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염동열 (새누리, 강원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오신환 (새누리, 서울 관악구을)원유철 (새누리, 경기 평택시갑)유기준 (새누리, 부산 서구동구)유민봉 (새누리, 비례대표)유승민 (새누리, 대구 동구을)유의동 (새누리, 경기 평택시을)유재중 (새누리, 부산 수영구)윤상직 (새누리, 부산 기장군)윤영석 (새누리, 경남 양산시갑)윤재옥 (새누리, 대구 달서구을)윤종필 (새누리, 비례대표)윤한홍 (새누리, 경남 창원시마산회원구)이군현 (새누리, 경남 통영시고성군)이만희 (새누리, 경북 영천시청도군)이명수 (새누리, 충남 아산시갑)이양수 (새누리, 강원 속초시고성군양양군)이완영 (새누리, 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이은권 (새누리, 대전 중구)이은재 (새누리, 서울 강남구병)이종구 (새누리, 서울 강남구갑)이종명 (새누리, 비례대표)이종배 (새누리, 충북 충주시)이주영 (새누리, 경남 창원시마산합포구)이진복 (새누리, 부산 동래구)이채익 (새누리, 울산 남구갑)이철규 (새누리, 강원 동해시삼척시)이철우 (새누리, 경북 김천시)이학재 (새누리, 인천 서구갑)이현승 (새누리, 부산 부산진구을)이현재 (새누리, 경기 하남시)이혜훈 (새누리, 서울 서초구갑)임이자 (새누리, 비례대표)장석춘 (새누리, 경북 구미시을)장제원 (새누리, 부산 사상구)전희경 (새누리, 비례대표)정병국 (새누리, 경기 여주시양평군)정양석 (새누리, 서울 강북구갑)정용기 (새누리, 대전 대덕구)정운천 (새누리, 전북 전주시을)정유섭 (새누리, 인천 부평구갑)정종섭 (새누리, 대구 동구갑)정태옥 (새누리, 대구 북구갑)조경태 (새누리, 부산 사하구을)조훈현 (새누리, 비례대표)주광덕 (새누리, 경기 남양주시병)주호영 (새누리, 대구 수성구을)지상욱 (새누리, 서울 중구성동구을)최교일 (새누리, 경북 영주시문경시예천군)최연혜 (새누리, 비례대표)추경호 (새누리, 대구 달성군)하태경 (새누리, 부산 해운대구갑)한선교 (새누리, 경기 용인시병)함진규 (새누리, 경기 시흥시갑)홍문표 (새누리, 경기 의정부시을)홍일표 (새누리, 인천 남구갑)홍철호 (새누리, 경기 김포시을)황영철 (새누리, 강원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3.박근혜 탄핵 찬성 (총 172명)더불어민주당(121명)국민의당(38명)정의당 (6명)무소속 (김용태-새누리 탈당 무소속, 서울양천구을) 포함 7명 ※ 의결 정족수 : 재적(300명) 의원의 3분2(200명) 이상※실시간 업데이트가 진행 중입니다.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입장 확인 후 수정합니다.의원실 연락처와 프로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이 상황에서조차 눈치를 보고 있네요. 역시 똥누리는 공범이라는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책임을 통감한다던 킹무성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일까지 협상종결짓고 9일날 탄핵진행하기로 하되 무기명 투표를 기명투표로 해야하나... 진짜 못믿을인간들 투성이네요... 박지원(국민의당)님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정의로운 새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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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대한민국 민주화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4,5,6월은 참으로 고단한 역사를 품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6.25전쟁,4.3제주도사건,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 87년6월 민주화운동 그속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다 혹은 절망스런 사회현실에 좌절해서.. 혹은 누군가에 끌려가서죽음에 이른 이들이 이렇게나 많네요..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5월 6월입니다..철없는 친구들이 웃으며 민주화 민주화..하는걸 지켜보며 개탄스럽기도 하고요..------------------------------------------------------------------------------------------------1. 1950년대 이승만 정권과 4?19민중혁명19597. 31 조봉암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 당함.19604. 11 김주열 시신 발견. 4.19혁명 촉발 2. 1960년대 군사독재 정권기 자본주의의 성장과 전태일 분신196112. 21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사형 당함19697. 10 통혁당 관련 김종태 사형집행11. 4 소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권재혁 사형 당함11. 4 통혁당 사건으로 이문규 사형 당함11. 28 통혁당 사건으로 윤상수 사형 당함19706. 9 4.19 민주화운동 등 사회 운동에 헌신한 이상배 옥고를 치루고 고문후유증으로 운명 11. 13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근로조건개선 요구 분신자살, 이후 학생들의 민주화투쟁 확대 3. 1970년대 유신체제와 민중운동의 발전19714. 27 3선 개헌에 반대활동하며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 선거운동 중 양상석 의문사 당함 5. 17 한영섬유 노동자 김진수, 구사대에게 피습 폭행당하여 치료 중 5월 17일 운명6. 25 김창수, 5월 25일 부정선거관련 조사받으러 연행되어 상경하던 중 김제역 부근에서 죽음을 당함.7. 15 통혁당 사건으로 김질락 사형 당함10. 18. 이강복,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복역중 병으로 대전교도소에서 운명19737. 6. 강무갑, 한글학회에서 활동 투옥. 사회대중당 후보 출마, 1차 인혁당 및 김배영사건으로 투옥. 고문 후유증으로 오랜 투병 중 운명10. 19 서울대 법대 교수 최종길, 중앙정보부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중 간첩 자백 강요를 거부하다 고문치사 당함19744. 4 감옥에서 행해진 사상전향공작 과정에서 최석기 무차별 폭행으로 운명.7. 20 사상전향공작 고문에 항의 전향 강요말라는 혈서를 남기고 박융서 운명19754. 9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등 8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뒤 불과 20시간만에 사형집행(민청학련 9명은 무기징역)4. 11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 양심선언 후 할복자살8. 17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장준하 선생, 등산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10. 15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서대문구치소에서 복역하던 장석구 선생 옥사 19764. 1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식중 강제급식으로 손윤규 운명11. 14 심오석, 경북대생 유신반대 투쟁 중 기관원에 의해 임의동행된 후 행방불명됨11. 현승효, 경북대생 유신반대 투쟁 중 강제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771. 19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해직 된 조민기 동아투위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19787. 8 청주신학대생 정법영, 노동자들과 투쟁 중 중앙정보부의 극심한 감시와 탄압을 받던 중 죽음을 당함 19796. 14.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던 노동자 이경심, 헌신적 활동 속에 병이 악화되어 운명.8. 11 YH무역노동자 신민당 점거농성중 노동자 강제 해산과정에서 김경숙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맞서다 운명 4. 광주민중항쟁과 신군부 정권의 등장19802. 29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 후 해고 동아투위 활동중 안종필 간암으로 운명5. 30 서강대생 김의기, 광주의 참상을 알리려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투신자결 6. 9 노동자 김종태, 노동 3권 보장과 광주학살 관련 전단을 배포하고 분신 자결 7. 11 사회안전법 보호감호 폐지 요구하며 단식중이던 김용성 강제급식 과정에서 죽임 당함7.11 사회안전법 보호감호 폐지 요구하며 단식중이던 변형만 강제급식 과정에서 죽임 당함7. 26 임기윤 목사, 민주화운동을 하다 보안사에 연행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811. 2 서울대 학생운동 참여 군입대 이틀만에 이진래 목멘상태로 의문사 당함5. 27 서울대생 김태훈,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친 뒤 투신 자결6. 20 전정배,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후 보호감호생 집단난동 사건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9. 1 부산대생 최종철, 부마항쟁에 참가하여 쿠데타 구속된 뒤 후유증으로 사망 11. 22 이재문, 남민전 사건으로 검거된 후 옥중에서 광주학살에 항의단식,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19824. 20 서울대생 노진수, 학생운동을 하던 중 연행된 후 행방불명됨7. 23 연세대생 정성희, 강제징집 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함 8. 22 진아교통 노동자 문영수 경찰 폭행에 항의 하다 구타로 운명 10. 8 신향식 선생,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사형집행 10. 12 광주항쟁과 관련 구속 기소된 박관현 전 전남대학생회장, 옥중에서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운명 19835. 3 성균관대생 이윤성, 강제징집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6. 18 고려대생 김두황,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7. 2 한양대생 한영현,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8. 14 동국대생 최온순,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11. 16 서울대생 황정하, 도서관 6층 난간에서 시위 중 추락하여 사망 12. 11 서울대생 한희철, 군입대 후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12. 15 시민단체 활동 중 간첩혐의로 조사 받은 정은복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 후 행방불명19844. 2 부산 수산대생 허원근, 군복무 중 3발의 총상을 입고 의문의 죽음을 당함 10. 14 박영두, 삼청교육대에서 청송교도소로 이입된 후 고문과 구타를 당해 사망11. 2 연세대생 임용준, 학생운동을 하던 중 군에 입대하였으나 의문의 죽음을 당함11. 30 민경교통 택시운전사 박종만, 노조탄압에 항의 분신자살19851. 16 전남대생 기혁, 독재정권의 교육정책 반대투쟁 중 운명8. 15 건설노동자 홍기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라는 전단을 살포한 후 분신 자결 9. 12. 성대 학생운동 후 인천지역 노동현장 활동하던 정상윤, 해고자들과 수련회 도중 운명9. 17 경원대생 송광영, “학원안정법 반대와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분신(10. 21 사망)10. 11 서울대생 우종원, 민추위 사건으로 대공과의 수배를 받아오다 경부선 철로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해 발견 19863. 10 아산군 영농후계자 회장 오한섭, 무책임한 영농정책에 분개 음독(3.13 사망) 3. 16. 장이기, 예비군훈련 중 군사독재정권과 광주학살에 대해 발언 후 고문당해 사망3. 17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동3권 보장하라 며 경찰과 구사대에 맞서 분신 자결4. 28 서울대생 김세진, 전방부대 입소거부 시위 도중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5월 5일 운명 4. 28 서울대생 이재호, 전방부대 입소거부 시위 도중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5월 26일 운명4. 30 삼환택시 노동자 변형진, 회사측의 부당해고에 항의 분신, 5월 1일 운명5. 7 전재권 선생, 소위 인혁당재건위 사건 복역 후유증으로 운명 5. 20 서울대생 이동수, 문익환 목사의 강연회 도중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등을 외치며 분신자살5. 21 서울대생 박혜정, 조국의 현실에 분노하며 한강에 투신 자결5. 26 노동자 김상원, 경찰의 불심검문에 항의하다 폭행으로 식물인간이 된 뒤 사망 6. 5 이경환, 청량리 맘모스 호텔 옥상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투신 자결6. 11 노동자 신호수, 서울 서부서 대공과에 연행, 6월 19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 6. 18 서울대생 김성수, 기관원에 유인되어 실종, 6월 20일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죽음을 당한 채 발견됨6. 26 강상철, 목포사회운동청년연합 활동 “민주화운동 탄압중지와 5.18진상규명, 직선제 개헌 단행을 촉구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분신11. 5 경성대생 진성일, “건대 농성사건 해명, 독재 타도, 미제 축출” 요구 분신 자결 19871. 3 이순덕, 충청지역의 교육민주화 활동에 앞장서다 운명1. 14 서울대생 박종철,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던 중 고문으로 운명(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2. 6. 김문심, 4월 혁명 시 초대 교원노조위원장 지냄. 민주화운동 중 운명 2. 20 서울대생 김용권, 군입대 후 프락치 행위를 강요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2. 20. 서울교대생 박선영, 비민주적 학사운영과 매판세력의 지배를 받는 조국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 3. 1 노철승, 수도방위사에 근무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3 부산대생 이승삼,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6 호남대 자퇴 후 노동현장활동하던 표정두, 슐츠 방한을 앞두고 ‘내각제 개헌반대, 장기집권음모분쇄, 광주사태 책임지라’외치며 미대사관 앞에서 분신, 3월 8일 운명3. 19 부산대생 박필호, 육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27 부산대생 장재완, 방위병 근무 중 중요문건이 보안대에 넘겨지자 조직보위 위해 자결 5. 11 박상구, 군의 비리와 비인간적인 행태에 불만을 갖고 있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5. 17 노동자 황보영국,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분신, 5월 25일 운명.6. 8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정경식, 노조활동을 하던 중 실종됨. 88년 3월 2일 창원 볼모산에서 시신으로 발견6. 9 이한열, 6·10총궐기를 위한 결의대회 중 직격최루탄에 피습. 7월 5일 운명 6. 15 전남대생 이이동, 군에서 학생시위 옹호발언을 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 6. 18 태광고무 노동자 이태춘, 대회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 추락 사고.6월24일 운명6. 25 외국어대 학생 이재용, 경찰의 학내침탈 소식을 듣고 피하다 사고로 운명7. 12 채광석, 시인으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 활동 중 사고로 운명 8. 1 인천기노련 소속 노동자 김현욱, 이대용, 박용선, 유인식,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8. 22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평화시위 중 직격 최루탄에 맞아 운명9. 2 조흥택시 노동자 이석구, 노조 활동을 하다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9월19일 운명.9. 8 서울대생 최우혁, 사회과학서적을 읽다 보안대 적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10. 16 고려화학 노동조합 사무장 김수배,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 자결 11. 3 노동자 김성애, “산재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며 산재중앙병원에서 투신 자결 11. 26 박태조, 광주항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81년 특별사면으로 출소 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12. 4 정연관, 대통령선거 군부재자 투표에서 야당을 찍었다고 부대에서 구타 당해 운명 12. 5 노동자 박응수, “후보단일화하라”고 절규하며 대전역 앞에서 분신 자결 12. 10 목포대생 박태영, “거국중립내각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 자결 12. 16 심재환,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등 학생운동. 인천 삼화실업에서 노조결성 등 노동운동을 하던 중 자신의 자취방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19881. 6 우성택시 노동자 이대건, 단체협약 위반에 항의하여 분신, 1월 8일 운명3. 1 인천 경기교통 노동조합위원장 김장수, 부당해고 반대 요구하며 분신, 3월 9일 운명 3. 10 대원전기 노동자 오범근, 파업농성에 대한 구사대 폭력 등에 항의하며 사장실에서 음독자살3. 25 농민운동가 김길호, 87년 부정선거 규탄투쟁 중 경찰에게 집단구타 당해 후유증으로 운명 3. 25 고려대생 유병진, 87년 대선 당시 공정선거 감시단 활동 중 화재에 의한 후유증으로 운명 4. 10 한신대생 곽현정, 86년 건국대 애학투련 항쟁 으로 구속된 뒤 자결 4. 25 고려피혁 노조위원장 최윤범,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분신, 4월 30일 운명5. 5 유진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옥고 후유증으로 운명5. 9 신영일, 전남민청련 창설과 5·3인천투쟁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하다 운명5. 13 고정희, 민애청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다 연행. 정신병원에 강제수용된 뒤 투신 자살5. 15 서울대생 조성만, 명동성당에서 “양심수 즉각석방” 등 구호를 외치며 할복 투신자살5. 18 단국대생 최덕수, “광주를 잊지말자”며 분신, 5월 26일 운명5. 24 순천 현대교통 택시노동자 장용훈, 부당해고와 노조탄압에 항의하여 분신, 5월 30일 사망5. 26 서울대생 안치웅, 대우어패럴 농성 사건으로 1년 복역, 출소 후 학교 마치고 외출하였으나 행방불명됨6. 4 숭실대생 박래전,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분신, 6월 6일 운명 6. 9 광무택시 노동자 문용섭, 회사비리를 밝히려다 구사대의 폭행에 의해 죽음을 당함 6. 20 성균관대생 우인수, 군입대 후 의문의 사고를 당함. 6월 24일 운명 6. 23 한신대생 박인순, 대학원 원우회 회장으로 학생운동 활동 중 기숙사에서 죽음으로발견됨6. 29 강원 태백탄광 노동자 성완희, 동료의 복직을 요구하며 분신, 7월 8일 운명7. 2 협성계공 노동자 문송면, 15세 어린 나이로 수은중독 되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운명 7. 15 세창물산 노조 사무장 송철순, 파업 중 추락, 7월 17일 운명8. 1 박종근, 방위 근무 중 상관의 보약상납 요구 거부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8. 14 정성규, 청주민청 간부로 활동 중 운명 9. 12 현대엔진 노동자 이상남, 구사대 봉고차에 깔려 중상, 89년 5월 16일 운명 10. 10 부산대생 양영진, 군입대한 뒤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투신 자결 11. 6 대원여객 노동자 이문철, 부당 해고에 항의하여 분신 자결 11. 14 금성사 노동자 배중손, 노조 민주화와 임금 인상 투쟁에 앞장서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892. 4 함석헌 선생, 평생을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운명2. 18 철거민 정상율, 돈암동 세입자 대책위 활동하다 가옥주의 칼에 찔려 운명3. 31 경희대생으로 야학활동 등 참여, 모임 후 귀가 중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 운명 4. 3 덕진양행 노조위원장 김윤기, 국민대를 다니다 노동운동에 투신, 공장 이전 항의 파업중 분신 자결4. 7 서울교대생 남태현,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교대인이여 깨어나라”며 분신, 4월 8일 운명 4. 9 노동자 최완용, 인천 흥업사 근무 중 산재를 당하고 치료를 거부당한 뒤 분신 자결5. 3 국가보안법으로 수배중이던 조선대생 이철규, 불심검문 받고 도주 후 행방불명, 5월 10일 의문사 당한 채 발견.5. 4 노동자 김종수, 무노동 무임금 철폐, 민주노조 사수 외치며 분신 자결5. 24 노동운동가 조정식, 반제동맹사건으로 복역 후 영전기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 5. 29 대우조선 노동자 박진석,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 6월 4일 운명 5. 29 대우조선 노동자 이상모, 박진석 동지 분신 후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며 분신 자결 7. 3 기아자동차 노조 대의원 이종대, 해고반대 투쟁과정에서 분신, 7월 17일 운명 8. 2 남성흥진 노동자 최성조, 파업 중 구사대 폭력으로 실신, 8월 5일 운명 8. 15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이내창, 안기부 기관원에 의해 거문도로 유인된 후 거문도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함9. 2 노동자 김병구, 제13대 대선과 총선 부정을 폭로하며 자결 9. 4 경동산업 노동자 강현중·김종하, 회사의 부당징계 조치에 항의 분신(강현중 9. 9 운명, 김종하 9. 15 운명)10. 16 노점상 이재식, 노태우정권의 무자비한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여 분신, 12월 11일 운명 10. 29 인천 협신사 노동자 이재호, 노동조합 재건 활동을 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11. 30 임태남, 광주항쟁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특별사면으로 출소 후 대광교통에서 노조활동을 하던 중 죽음을 당함.19902. 19 배주영, 봉화여고 선생님으로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3. 28 동우전문대 총학생회장 김용갑, 학원자주화 투쟁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4. 4 노동운동가 강민호, 한신대를 다니다 노동운동에 투신 활동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5. 3 통일중공업 노동자 이영일, 경찰과 회사측의 지속적인 탄압에 항의 분신 자결5. 17 철거민 이원기, 철거투쟁 중 “무책임한 철거를 막아달라”며 목매 자결5. 18 대유공전생 신장호, 전대협 출범식 참가 중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다 사망 5. 24 박성은, 군대 내 비인간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문건 작성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 6. 4 한일고생 정성묵, 교육방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 6. 5 경화여고생 김수경,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징계반대 활동을 하다 투신 자결 6. 6 복학생협의회 활동을 통해 학생운동에 헌신하던 김학수 집회 참여 후 후유증으로 운명7. 14 경북 청도 노동자 최태욱,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여 분신 자결 7. 14 전두환 물러가라 외침 정신이상으로 몰려 김진홍 의병제대. 사찰 관리 중 의문사8. 7 노동운동가 최 동, “미제와 적들의 탄압을 고발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 8. 30 금강공업 노조부위원장 박성호, 후생복지부장 원태조, 공권력 투입에 반대하며 분신, 박성호 9월 11일 사망, 원태조 9월 18일 사망 9. 12 오원석, 교육민주화활동에 헌신하다 운명 9. 8 충주고생 심광보, “전교조여, 참교육의 함성을!” 등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 9. 15 서원대생 김기훈, 총학생회 등 헌신적 활동으로 몸을 돌보지 못하다 병악화로 사망11. 8 한양대생 최응현, 민주화투쟁에 제대로 복무하지 못함을 자책하여 투신 자결 12. 6 김병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출소 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 12. 12 전태일 평전 의 저자인 인권운동가 조영래, 민변 창립 등 활발한 운동을 하다 운명 12. 17 자민투활동. 옥중 처우개선을 위해 단식. 출소 후 사회운동 중 박인기 운명19911. 5 원진레이온 노동자 김봉환, 아황산가스에 산재치료 받지 못하고 사망2. 3 한국외국어대생 남현진, 군대에서 통일과 외세 문제에 대해 얘기한 뒤 죽음을 당함 2. 20 서울대생 송종호,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2. 22 김공림, 서울대 재학 후 노동운동. 성동지역 동부노동상담소 활동 중 위암으로 운명3. 9 신용길, 구덕교 교사로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4. 26 명지대생 강경대, 백골단에게 쇠파이프로 집단 구타를 당해 운명4. 27 김영환, 한겨레 사회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중 자취방에서 변사체로 발견 4. 28 분단희생자 김광길. 교도소 생활 중 얻은 간암으로 함평군 산골에서 운명 4. 29 전남대생 박승희, “노태우정권 타도하고 미국놈들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분신, 5월19일 운명5. 1 안동대생 김영균, “노태우정권 타도, 공안통치 분쇄”를 외치며 분신, 5월2일 운명 5. 3 경원대생 천세용,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운명5. 4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구속 수감 중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 치료 중 5월 6일 의문사 당함 5. 8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사망5. 10 성남피혁 노동자 윤용하, 노태우정권 타도, 노동해방을 외치며 분신(5.12 사망)5. 18 이정순, 연세대 정문앞 철교에서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분신 자결5. 22 정상순, 전남대 병원 영안실에서 “노태우 물러가라” 며 분신, 5월 29일 운명 5. 25 성균관대생 김귀정, 경찰의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에 짓밟혀 살해당함 6. 1 보성고생 김철수,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 자결 6. 8 인천 삼미기공 노동자 이진희,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에 항의하여 분신, 6월 15일 운명6. 15 인천 공성교통 노동자 석광수, 차량시위 도중 지도부 연행에 항의 분신, 6월 24일 운명 6. 27 노동운동가 유재관,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에서 활동 중 경찰의 침탈소식을 듣고 피하다 운명 8. 3 신구전문대 총학생회 간부 고재욱, 수련회 중 익사로 운명8. 3 류정하, 신구전문대 총학생회 간부로 수련회 중 익사로 운명 8. 18 대구대생 손석용, 입대 후 민족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에 고민하다 분신, 8월 19일 운명8. 22 합동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김처칠, 언론에 호소 하며 파업 중 한강에 투신 운명 11. 7 양용찬, 서귀포 나라사랑청년회 회원으로 제주도개발특별법 저지 요구하며 분신 자결11. 21 30년 복역 고문과 감옥생활로 인한 병으로 최인정 운명12. 6 대봉 노동자 권미경, 미싱공으로 근무하던 중 노동통제 강화에 항의 투신 자결12. 10 창원대생 탁은주, 참교육연구회 회장 역임 등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가하다 행방불명된 후 의문사 당한 채 발견19921. 18 통일운동가 24년 옥고 치른 후 출소 지병 악화로 박판수 운명1. 21 현대자동차 노동자 서영호, 노동조합 활동 중 경찰 침투대비 저지선 순찰을 하다 사고당한 후 93. 7. 1.사망 2. 15 원진레이온 노동자 강희수, 산재 치료를 거부당한 뒤 운명3. 11 노동운동가 박복실, 전북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사망3. 21 최성묵, 부산민주화운동의 지주로서 헌신적 활동을 하다 지병으로 운명4. 12 숭실대생 이상렬, 야간강좌 부총학생회장으로 과로로 운명 4. 24 국민대생 정도준, 부대 야외 훈련기간 중 부대내부에서 의문사 함.4. 28 숭실대생 박현민, 총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하다 등록금 투쟁 중 과로로 운명5. 30 김기옥, 인천 영진운수노조 활동 총파업으로 구속, 해고. 복직 후 활동 중 폭행으로 운명 8. 29 한신대생 박태순, 부천에서 노동운동, 기무사의 추적을 받던 중 구로역 인근에서 행방불명된 후 시흥 전철역 부근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9. 11 오원진, 충남지역 청년운동을 선도하다 운명 10. 10 윤재영, 충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한 뒤 노동운동, 청년운동에 헌신하다 병으로 운명11. 2 전남대생 문승필, 학생운동을 하던 중 경찰의 협박 전화를 받아오다 철로변에서 의문사한채 발견.11. 3 철거민 김선호, 부산 장리동 철거반대 투쟁 중 용역깡패의 집단폭행으로 운명. 11. 4 임희진, 전교조 분회결성 주도로 해직된 뒤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12. 13 최성근, 전교조 대의원 사립지회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12. 22 이광웅,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된 이후에도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2. 김영삼 정권19931. 14 권두영,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안기부에 연행되어 구속, 수감 재판을 받던 중 구치소에서 목매 자살1. 20 황인철, 인권변호사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해오다 운명1. 25 삼미특수강 노동자 정운갑, 노조집행부 활동 중 운명 2. 20 인천 남일금속 노동자 채희돈, 노동조합 활동 중 과로로 운명3. 12 지학순, 천주교원주교구 신부님으로 독재에 항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4. 14 정영상, 교사로 해직된 후 안동지역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다 운명 5. 13 정영부, 89년 해직당한 이후 참교육 실현을 위해 활동하다 운명 5. 19 한양합판 해고노동자 조경천, 복직투쟁을 전개하다 운명 5. 21 원진레이온 노동자 고정자, 산재판정 받았으나 치료받지 못해 자결 6. 26 박미경,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후 교육민주화를 위해 애쓰다 운명8. 8 노동운동가 김주리, 이화여대 졸업 후 노동현장에서 헌신하다 화재로 운명 8. 15 성순희, 전교조 교사가족회 등에서 활동하다 수배생활 과정에서 운명 9. 8 광주교대생 이경동, “주한미군 철수와 김영삼정권 반대” 등을 요구하며 분신, 9월 9일 운명 9. 9 노동운동가 임혜란, 인천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운명 9. 11 농민운동가 김영자, 자주·자립적 농업의 건설과 진정한 농민해방을 염원하다 운명 9. 26 전교조 결성 참여 후 해직되어 활동하던 길옥화, 전교조 탈퇴를 전제로 한 복직에 항의 자결10. 26 노동운동가 최웅, 경동산업 해고노동자로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 11. 10 광주교대생 한상용, 교대교육 정상화를 위한 투쟁 중 분신 자결 12. 27 과학기술원 유전공학연구소 노조위원장 박성호, 노조 활동 중 교통사고로 운명 19941. 18 문익환 목사, 평생을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1. 24 김성윤, 상호운수노동조합 활동 중 “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 작성 후 자결1. 26 이오순, 송광영 동지의 어머니로 이땅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1. 27 전북산업대생 이창환, 농활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2. 1 농민운동가 김순복·손구용, 농민대회에 참여 도중 사고로 운명 2. 13 김남주, 남민전 사건으로 석방된 뒤 투병중 운명 2. 19 노동운동가 김상옥,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운명 3. 11 성호여객 노동자 최성묵, 회사측의 부당 노동행위에 항거 분신 자결 4. 17 한국통신 노동자 김낙성, 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운명 5. 2 숭실대생 신건수,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8. 12 청년운동가 이범영,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하다 운명9. 18 통일중공업 노동자 임종호, 구속된 이후 독방생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운명 19952. 24 분단 희생자, 윤기남 29년 복역 후 출소하여 통일을 염원하다 운명3. 8 노점상 최정환, 중증장애인으로 정권의 반민중적 빈민정책에 항의 분신, 3월 21일 운명 3. 17 경기대생 오원택, 사학비리 학교당국에 대항하다 군 입대 후 운명 5. 12 현대자동차 노동자 양봉수, “나는 3만 조합원을 사랑합니다”라고 절규하며 분신, 6월 13일 운명 6. 3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 수세거부투쟁 등 기독농민회 활동 중 운명 6. 21 대우조선 노동자 박삼훈,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승리하자”며 분신 자결 7. 3 이민호, 서울인쇄노조 쟁의부장 등 노동운동을 하던 중 삼영화학 청주공장에서 사고로 운명8. 16 박현채, 민중경제학자로 군사독재의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운명 9. 4 철도 노동자 서전근, 철도민주화 투쟁 중 오지로 전출에 항의 분신 자결 9. 30 동래여전 졸업후 부산지역 전문대 운동의 일꾼으로 헌신하던, 육지희 지병으로 운명11. 25 노점상 이덕인, 장애인으로 노점 단속 중단 골리앗 농성 중 실종된 후 11월 28일 아암도 앞바다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 12. 14 경원대생 장현구, 파행적 학원운영 중지 요구하며 분신 자결 12. 15 대우정밀 병역특례해고노동자 조수원, 병특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민주당사 농성 중 자결 19961. 13 한일병원 노조 위원장 김시자, 부당징계 철회와 어용노조 퇴진 요구 분신 자결2. 5 철거민 신연숙, 수지2 택지개발사업지구 철거 과정에서 철거깡패들의 골리앗에 자행된 방화로 운명 3. 23 한국통신 제주고산전화국 노조지부장 김왕찬, 노조민주화에 앞장서다 운명 3. 29 연세대생 노수석, 경찰의 토끼몰이식 시위진압으로 살해됨 4. 6 경원대생 진철원, 학원 자주화투쟁 과정에서 분신 자결 4. 7 성신여대생 권희정, 학원 자주화 단식투쟁 후유증으로 운명 4. 16 성균관대생 황혜인, “김영삼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자결4. 18 문한영 통일운동에 힘쓰다 운명4. 19 여수수산대생 오영권, “김영삼 타도, 미제축출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고 자결 5. 2 노동운동가 유구영,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살다 운명 5. 6 대구공전생 박동학, 학생자치권 보장을 요구하던 중 학생과 사무실에서 분신, 5월 8일 운명 6. 6 연세대생 정인택 대통령 선거 공명선거 감시단 활동 후 귀가중 의문사6. 18 한국통신 노동자 오용철, 개봉전화국에서 민주노조 활동으로 구속되었다 석방된 뒤 운명 9. 9 영남대생 김하영, 96년 7차 범민족대회 참가 중 지병으로 운명9. 18 경원대생 이상희 집회 중 경찰 연행 후 정신질환을 앓다 자결10. 3 노동운동가 김말룡,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초지일관 싸우다 운명11. 10 박문곤, 노동법 개정투쟁과 전교조 합법화 노동자 대회 참석 후 불의의 사고로 운명 12. 26 ‘녹슬은 해방구’작가 권운상, 유신철폐, 미스유니버스대회장 폭파음모사건 구속 등 민주화운동 참여 후 병으로 운명19972. 10 용인대생 한상근, 학교당국의 일방적인 학사운영에 항의하며 분신, 2월 13일 운명 2. 2 그림으로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폭로 한 강덕경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2. 15 철거민 민병일, 구갈 철거민 대책위원회 활동 중 경찰의 집단폭행으로 운명 2. 25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영광군농민회 활동하던 지용진, 모임 후 귀가 중 교통사고로 운명3. 18 22년 수감 생활 후 병 악화로 권양섭 운명3. 20 조선대생 류재을, 시위 도중 경찰의 강경진압에 의해 운명 4. 2 통일운동가 옥고 휴유증으로 고생하다 패혈증으로 진태윤 운명5. 31 국민캡 노동자 홍장길,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회사 분할매각에 항거 음독 7. 25 철거민 박순덕, 서울 전농3동 철탑망루 농성에서 철거깡패들의 방화에 의해 운명 9. 16 광주대생 김준배,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수배 중 보안수사대의 프락치 활동을 통한 과잉 검거 과정에서 운명 9. 21 군산대생 이형관, 전국대학생기자연합에서 대학언론운동을 하다 과로로 운명 12. 16 위안부 피해 처음 고발했던 김학순, 공개증언으로 문제해결운동에 참여 지병으로 운명 3. 김대중 정권19981. 7 대전지역 학생운동, 민주청년회 활동 중 강연석 교통사고로 운명1. 21 범민족대회 참가 중 백혈병 증세 발견 투병생활 하던 최신애 운명 2. 13 대우조선 노동자 최대림,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 반대”를 요구하며 분신 자결 2. 24 노동운동가 최명아, 민주노총 조직1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과로로 운명5. 9 신길수, 동아엔지니어링 노조위원장 공익노련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운명6. 13 범민련 부의장 등 평생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하던 주명순 운명7. 19 구로지역에서 미조직 노동자 조직 현장활동하던 양순녀, 철원 통일수련회 도중 사고로 운명8. 4 사월혁명에 경북학생운동 대표로 참여했던 정만진 사월 혁명회 활동 중 운명 12. 7 경희대 학생운동 참여 학림사건으로 내사 고문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던 이길상 투신12. 28 조현식, 경기도 광주지역 건설일용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사무실에서 화재 발생으로 운명19991. 30 정성범, 민주노총 충남서부지역 조사통계부장으로 활동 중 운명3. 14 계훈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고문 등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3. 31 김윤수, 대림자동차 노조활동 중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출소 후 해고복직 투쟁 중 운명5. 17 배동복, 영창악기 풍물패 ‘어울림’ 창단, 불의의 사고로 운명5. 28 4월혁명에 서울지역 대학생연맹 활동을 통해 참여했던 심재택 사월혁명회 활동 중 운명6. 22 이상관, 창원 대우중공업 입사 근무중 산재당함,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강제 퇴원 조치후 자결7. 10 윤창녕, 1급 장애인이라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전역 지하상가에서 어려운 노점생활을 하다가 구청의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분신7. 23 장애인 인권 및 생존권 증진을 위한 활동 중 박흥수 지병으로 운명8. 24 최경철, 현대자동차 조직부장으로 임단투 승리를 위한 노조신문 차량배포 중 사고로 운명8. 25 스타TX의 박용순 동지 “사납금제 및 업무상 사고처리비 노동자 부담 철폐”를 외치며 분신 사망 8. 27 김종배, 공공연맹 정책국장·대외협력국장·교육국장 역임, 불의의 사고로 운명12. 11 해방 후 청진교원대학 지리학 교수를 역임한 최남규, 57년 구속되어 29년 투옥 후 통일을 염원하다 운명12. 14 군포 대우중공업노조 위원장 및 경기 지역 진보운동에 참여 하던 임동국, 위암으로 운명20001. 26 범민련 부의장 김양무 선생님, 직장암으로 투병 중 운명 2. 29 노동자 정치세력화 및 안산지역에서 활동하던 김명한 운명6. 20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수감이 되풀이하던 김현순, 고문과 오랜 옥고 후유증으로 운명8. 12 재능교육교사노조 활동 하던 유희수, 적극참여 중 수련회에서 익사사고로 운명 8. 26 사회보험노조의 최진욱 동지 공안탄압분쇄를 위한 민주노총 집회 참석 중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운명 20012. 23 이옥순, 70년대 원풍모방 노동운동 통일을 여는 여성모임 ‘금강초롱’ 전국연합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다 폐암으로 운명3. 해방전후 지역 청년동맹 활동, 25년 복역 후 대전지역 진보운동에 참여하던 안상운 중풍으로 운명4. 23 전농 경남도연맹 정책실장 등 농민운동으로 헌신한 김성원 운명5. 16 한승훈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517일 투쟁 참여 후 과로로 운명5. 18 안산지역 노동자 김순조. 노동자통일운동 참여, 창흥정밀노조 사무장으로 임단협을 준비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7. 19 예덕실고 음악교사 전교조 활동으로 구속 파면 복직, 활동중 남광균 암으로 운명9. 5 전국건설운송노조 사무처장 안동근, 레미콘노동자 상경투쟁 조직 등 과로로 인한 병으로 투병하다 운명9. 12 경성대 재학 후 노동현장 활동 하던 강희완, 화물연맹 부두노동자들의 민주 노조의 틀을 잡기위해 노력하다 운명11. 14 이동현, 공무원노동조합 건설과 노동3권 쟁취를 위한 활동중 과로누적 등의 원인으로 운명20021. 18 여주지역에서 민중정치 활동하던 김남준, 민예총 여주지부 사무국장, 이천노동상담소 활동 중 운명3. 3 서울장애인연맹 정태수, ‘제1기 장애인청년학교’ 수료식 도중 과로로 운명3. 8 이천전기 노동자 유순조 세차례 옥고 치루고 IMF시 정리해고 반대투쟁 등 노동운동 중 대장암으로 운명3. 21 금강회 사건으로 제적 공주지역 사회운동 중 최연진 위암으로 운명3. 26 최옥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등 활동 중 심장마비로 운명4. 2 대우중공업노동자 김기욱, 인천지역 노동문화운동에 전념하던 중 간암으로 운명5. 21 부천시협 의장 한경석,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백혈병으로 운명7. 8 참교육 실현을 위해 활동하던 김종삼, 전교조 부산지역 활동 중 운명8. 3 민청학련사건 구속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강구철 간암으로 운명8. 23 박봉규, 노점상연합 활동중 노점생존권탄압에 항의하며 구청장실에서 분신, 9월6일 운명8. 25 문재룡, 범민련서울시연합 부의장 등 평생을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폐암으로 운명11. 22 인천지역택시노동자 천덕명, 택시제도개선 파업 참여로, 사측의 집중탄압을 받던 중 월급제 사수와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분신 운명 4. 노무현 정권20031. 9 배달호, 두산중공업의 부당해고와 징계에 맞서 투쟁하며 노조탄압에 대한 울분이 담긴 유서를 남긴 채 분신 운명1. 25 임영덕, 진해시 공무원 직장협의회 초대지부장으로 취임해 02년 11월 연가투쟁을 벌이다 건강악화로 운명1. 28 이성경, 87년 섬유노동운동 시작, 전국노운협 사무국장 등 활동하다 대장암 투병중 운명2. 11 고문피해자 강남근, 삼선개헌 반대투쟁과 야당 지지등으로 간첩으로 몰려 고문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운명2. 22 경기서부건설노조 및 안산지역 문예운동 참여한 권오복 교통사고로 운명4. 12 최전권, 전북도청에서 5.18 진상규명.군사독재 반대를 외치며 할복자살 기도 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운명 4. 13 강희철, 전국연합 정치위원장 등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을 위해 헌신하다 뇌출혈로 운명4. 19 이성도,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 등 헌신적 활동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4. 28 화물연대 노동자 박상준, 파업투쟁 중 “화물연대투쟁 반드시 승리하라”는 말을 남기고 음독자살5. 7 최복남, 화물연대 부산지부 김해지회장 역임, 파업투쟁 중 선전전을 벌이다 교통사고로 운명5. 15 김정훈, 97년 한총련 기획국장 활동 전국연합 정보통신부장, ‘사람들넷’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다 투병 중 운명6. 4 공무원노조 서울지역 김병진, 공직사회 개혁과 공무원 노동3권 쟁취를 위해 불철주야 투쟁하다 지병으로 운명8. 4 국민에게 기여하는 올바른 국민연금 관리가 되기를 바라며 송석찬 자결 8. 26 02. 8. 16일 노사교섭 결렬 후 파업기간중 회사의 구사대에 의해 두개골 함몰되었던 세원테크 노동자 이현중 운명 9. 2 카톨릭 신부로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김승훈 신부 운명9. 8 카톨릭학생회 활동을 거쳐 부산지하철 노조 현장활동 한던 최종만 운명 9. 10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자주농업을 사수를 주장하며 농민 이경해 자결10. 17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 크레인 고공 농성 129일째, 한진중공업 파업 88일째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정부와 사측의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밧줄에 목을 매 자결10. 23 세원테크 노조위원장 이해남, 고 이현중 열사 투쟁 관련하여 업무방해, 명예훼손,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배 투쟁중 분신, 11월 17일 운명10. 26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동조합 광주본부장 이용석,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철폐”를 외치며 분신, 10월 31일 운명10. 27 30년 복역 출소 후 통일운동에 헌신하다 장광명 운명10. 29 공무원노조 전남지역 활동한던 최주홍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공무원노조활동에 헌신적 하다 간암으로 운명.10. 30 한진중공업 노동자 곽재규, 김주익 열사 투쟁 중 도크에 투신 자살11. 20 미군 장갑차여중생고신효순심미선살인사건범대위 상황부실장 제종철, 의정부일반노조 활동 중 의정부 철로에서 열차사고로 운명12. 7 전방입소반대 등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던 성기득, 교육현장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자결20041. 4 권종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초대의장 활동, 전국연합 통일연대 고문 및 지도위원으로 활동, 암으로 투병하다 운명2. 13 의료보험노조 서울본부 사무국장 등 역임하였던 박동진 수배생활 중 암진단, 병원치료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운명2. 14 민교협 공동의장 민중중심의 사회이론정립에 전념하던 김진균, 후진양성과 진보 사회단체 활동 중 직장암으로 운명2. 14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하청노동자 처우개선 및 근로조건 개선 투쟁 중 “비정규직차별철폐” 을 외치며 분신2. 21 전북지역 농촌운동 투신한 김윤 전국여성농민회 활동 중 심장병으로 운명 4. 1 정순덕, 50년 9월 23년간 옥고를 치루고 1985년 8월 출소. 2차 송환을 애타게 기다리시다 심장마비로 운명5. 26 민주버스노조 장흥교통 노동자 정상국, 임금체불과 장흥교통 비리 진상규명 촉구투쟁 관련 징계에 항의 자결5. 28 전국여성노조 및 부산지역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이경희 운명6. 8 강지연, 민중병원에서 노동운동 시작하여, 구로지역에서 문화 및 통일운동을 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8. 3 이영기, 대구지역 청년운동, 민중연대 활동을 통해 통일운동과 현안투쟁에 앞장서 던 중 간암으로 운명9. 3 마산 창원지역운동 및 여성운동에 헌신하던 이경숙 운명 11. 15 종교인 조용술 목사, 오랜기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12. 21 4월 혁명 당시 경북대학생으로 참가 했던 이재형. 사월혁명회 활동 중 운명12. 27 코리아타코마 김춘봉, 희망퇴직당한 후 촉탁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비정규직 철폐 유서를 남기고 목맴12. 30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 박상윤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던 중 자결20051. 7 김남식, 해방 후 진보진영에서 자주적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 현대사와 통일 관련 연구활동을 통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저서를 남김2. 10 정종태, 한양대 구학련 활동 99년 재능교육에 입사 쟁의부장을 맡아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운동에 앞장서다 위암으로 운명3. 5 신창균, 3.1운동 참가 등 독립운동. 48년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 이후 진보당사건으로 투옥. 평생을 반독재와 통일운동의 길을 걷던 중 운명4. 1 류낙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 선고 19년간 옥고를 치루고 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재검거. 99년 광복절에 가석방된 후 건강악화로 운명 4. 29. 엄성준 숭실대 학생운동 참여 농민운동에 투신 진천군농민회 활동 중 농활학생들과 답사중 교통사고로 운명6. 14. 한국노총충주지부장 김태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헌신하던 중 레미콘노조 파업 지원투쟁에 참여 경찰 공권력에 의한 사고로 운명9. 3.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 류기혁, 비정규직노조 활동 중 사측의 탄압에 항의 목메 자결9. 10. 화물연대부산지부 조합원 김동윤, 화물운송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운명9. 21 김병권, 1921년 대구에서 태어나 30대 후반부터 50여년 동안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11. 11. 농민 정용품 농민의 날 무책임한 살농정책과 정치권의 무책임한 농정을 규탄하며 자결 함.11. 17. 경북성주농민회 문화부장 오추옥, 쌀개방을 반대하며 음독 자결 함.11. 24. 전용철 11월 15일 여의도 '쌀 비준협상 무효 농민대회' 과정에서 경찰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함. 12. 18. 홍덕표 11월 15일 여의도 '쌀 비준협상 무효 농민대회' 과정에서 경찰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함.12. 3선개헌 반대로 고문 당한 이기택, 후유증을 안고 전민상련과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활동 중 운명20062. 9.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위원장 역임한 조문익, 비정규직 조직활동 헌신. 지역공동체 활동을 준비하다 교통사고로 운명 5. 11 시인 박영근, 인천 5.3 운동 참여, 작가회의 및 민예총 활동 중 병으로 운명 7. 19.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활동 농성중 주민칠, 투신한 여성을 태화강에 뛰어들어 구한 뒤 급한 물살에 휘말려 운명.8. 1. 포항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 하중근, 파업투쟁 집회 중 경찰 폭력에 의해 운명.8. 19. 청구성심병원 위원장 이정미 만삭의 몸으로 노동법 개악투쟁 참여, 병원노동자들의 투쟁에 항상 함께 하던 중 위암으로 운명.8. 31. 부산민청활동 한청 지도위원과 6.15 남측위원회부산본부 집행위원장 역임한 박장홍, 민중연대 정책연구원 준비기획단 활동 중 과로로 운명9. 1 남문수, 현대자동차노조 대의원 활동. 사측의 부당 노무관리에 항의 자결 9. 6. 영천군 농민 이주영, 경북대 졸업후 농민운동에 헌신 영천군농민회 사무국장 등 역임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 11. 30 전교조 인천 교사신문, 중등남부지회 활동하던 김형선, 교통사고로 운명20071. 23 인천지역 택시노조 파업에 앞장서 참여 했던 전응재,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항거 2. 20 시인 조영관, 노동문학 활동 중 간암으로 운명 3. 26 김미영, 전국여성노조 인천지부 부위원장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 활동 모임 중 운명4. 15 허세욱, 택시노동자로 온몸으로 아는만큼 실천하다 한미 FTA 협상에 반대하며 분신 운명 5. 12 강제전향 공작을 받고, 가석방 출옥 후 울산지역운동 활동하던 김재헌, 운명 6. 22 김주연, 양산지역 농민회 활동. FTA 총궐기 대회 차량선전전 진행 중 운명 7. 22 반공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루고 통일운동에 헌신하던 최상원, 범민련 활동 중 건강 악화로 운명 9. 9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민족문학 작가로 활동하던 표문태 운명 10. 11 고양시에서 노점상을 하던 이근재, 폭력적인 노점 단속에 항의 민중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자결 10. 23 진주 신일교통 버스 노동자 정태봉, 체불임금, 자주관리기업 쟁취투쟁과정 중 자결 10. 27 전기원 노조 노동자 정해진, 파업과정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분신 11. 16 권중희, 김구선생 암살배후 진상규명 활동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운동에 전념하다 운명 12. 10 청주산업선교회 목사 정진동, 청주지역 노동운동 및 민중운동에 참여하다 운명. 5. 이명박정권20086. 9 전주지역 공공 일반노조 조합원 이병렬,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와 공공부문 사유화저지를 요구하며 분신 7. 26 미주지역 청년회 및 통일운동 참여 하던 정유미, 전민특위 사무총장 활동중 위암으로 운명 10. 4 공무원노조 초대위원장 차봉천, 공무원 노동자의 단결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 해고와 투옥 당함 암으로 운명11. 28 박윤정, 외국어대 학생운동 및 한총련 활동 후 노동운동에 투신 민주노총 상근활동중 병으로 운명12. 1 곽태영, 4월혁명에 참여 박정희기념 반대 및 민족정기 정립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20091. 15 4월혁명에 참여했던 도강호, 범민련 등 평생 통일운동을 하다 운명1. 20 용산4지역세입자대책위 이상림,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용산4지역세입자대책위 활동하던 양회성,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수원 신동지역세입자대책위 조직부장 한대성,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수지 심봉지역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성수,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순화동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윤용헌,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4. 10 기아자동차노동자 정형기, 현장조직활동 및 노동자통일운동에 참여하다 자결4. 30 대한통운 노동자 박종태 학생운동 후 노동운동 참여, 화물노동자 권리증진을 요구하며 자결 6. 6 목사 강희남, 평생을 민주주의 발전과 통일운동에 바치다 이명박을 내치자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아직도 진행형이라는게 우울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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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이 미.친 권력의 개 견찰들은 몽둥이가 약, 정의봉!
이 미.친 권력의개 견찰들은
몽둥이가 약, 정의봉!
촛불1년 체포2900 여명 부상3300 여명 역사상 최다기록--;;
(물론 여러번 체포부상 중복되는 투철한 광복투사분도 일부포함)
"완전히 인권후진국으로 퇴보"인권위원 중 한명인 오창익 위원은 “경찰이 12살짜리 초등학생부터 82세 노인까지 체포하는 것을 보며 한계를 느꼈다.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아래 두장의 사진은 위 백골단에 유일하게 맞짱을 뜨던...
전설의 오월대, 그리고 녹두대....
아무튼 녹두대/오월대가 입만 살은 조직이 아닌 실천과 행동의 조직으로 떠오르는데는 한 가지 핵심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평가하자면 그건 규율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철규(이철규 열사)형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병원 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신문을 덮고 자면서도 원칙을 지켰습니다. 자신이 근무조일 때는 병원 순찰을 철저하게 하고 휴식조일 때만 잠을 잤습니다. 그런 생활을 몇 달동안 했습니다. 가투에 투입되는 것도 오더를 받는 조만 움직였습니다. 가투에서 싸울 때도 자기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타격조 일 때와 대열 보호조 일 때 일이 달랐습니다.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었습니다. 강철 같은 규율을 강조한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직력은 때로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습니다. 여의도 시위, 현대 골리앗 투쟁에도 녹두대/오월대가 투입됐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다른 조직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무장한 행동조직이지만 대중들 앞에서 보여 준 절제와 규율은 대단했습니다. 전투조직으로서 강건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혼연일체와도 같은 조직력 그 자체였습니다. 몇 백 대오가 되도 투쟁에서는 하나처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전경들도, 백골단도 그런 녹두대/오월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전대협 집회나 서대협 집회에서 보여 준 녹두대/오월대의 활약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직격탄이 날아와도 달아나지 않고 대열도 깨지지 않고 오히려 조직적으로 공격하는 무장조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복경찰이나 백골단도 이들의 행동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당시 이런 녹두대/오월대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의아함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녹두대/오월대의 그 저력 뒤에는 철저한 규율과 실천으로 무장한 힘이 있었습니다.녹두대/오월대가 창설됐을 때 건준위(민주총학생회건설준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백영권은 강제징집 영장이 나온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영권이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헌병대와 경찰은 그를 잡으려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태연하게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바로 녹두대/오월대가 그를 보좌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처럼 다니지만 단봉(쇠파이프)을 팔에 끼고 다니는 녹두대/오월대 대원만 해도 무려 50여명이었습니다. 영권이가 커피숍에 들어가면 그들이 입구와 곳곳에서 그를 보좌했습니다. 날고 긴다는 사복조 경찰 200여명이 있어도 녹두대/오월대 50명을 잡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떡 버티고 있으니 누구도 그를 검거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87년 대선을 앞둔 터라 그런 모습은 시민들의 눈에도 자주 띄었습니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막아내는 것을 지켜 본 시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녹두대/오월대가 있는 곳에선 시민들의 환호도 뒤따랐습니다. 음식과 음료수를 내 오고 때로는 담배값이라며 돈을 건네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녹두대/오월대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낳았고 찬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서울쪽 대학가에서는 극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녹두대/오월대의 추억과 기억이 이제는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젊은 날에 우리가 주장하고 내세웠던 것은 무엇일까요? 음모적이고 권력지향적인 것과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살면서 그 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살았던 그 때의 삶으로부터 지금의 삶을 영향받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교훈은 같습니다. 규율이 없는 조직은 조직력이나 단결된 힘이 없습니다. 원칙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선택 앞에 늘 놓여 있습니다. 가치롭고 당당하게 살 것이냐 아니면 권력이나 자본이면 모든 걸 저버리고 노예처럼 살 것이냐를 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닫힘학원작성일 2009-05-20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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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군대에서 먹고놀다온다고 말하는 여성부..
2002년 6월의 그뜨거웟던 감동과 열광의 도가니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고인이 되신.. 서해교전때 돌아가신분들...그분들 이름..한분이라도 기억하실런지.. 물론 군인의 의무가 나라를 지키다가 죽는다 하여도, 그분들도 군입대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다를바 없는 일반 시민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서해교전당시에 전사하신 분들의 시체가 '고속정 357호'에 있던 마지막 모습을 보신 분들이라면, 그당시 해군정보부쪽에서는 국가에게 계속해서
"북한해군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주의 요망한다"라고 말을하자, 국가에선 "햇볓정책이 활발한상황인데다가, 월드컵이 한창인 현 시점에서, 북한하고 관계 깰일있냐?"는 식으로 답변했습니다. 그리곤 6월 29일. 북한해군은 결국 NLL을 넘어, 결국 전사자 4명, 부상자 19명, 실종자 1명의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분들 이름이나 기억나십니까?? 직격폭격맞은 357호... 정확히 세발의 85mm포와, 총탄, 기관포탄을 뒤집어쓴 배였지만, 357호 승무원들은 고장난 자동형 40mm주포까지, 수동으로 바꾸어 가면서 싸워내었습니다. 20mm발칸포를 쏜 조천형 중사는 불길에 휩싸여서 전사하였고, 다른 발칸포를 쏘던 황도현 중사는 머리에 직격탄을 맞아 전사하셨지만, 그분들의 시체의 손가락에는 끝까지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었습니다. 375호 정장 윤영하 소령님은 이미 죽음을 앞둔 상태셨고, 부정장님은 양쪽 무릎이 없는 상태에서도 전투지휘를 계속하셨습니다. 윤소령님 앞의 권기현 상병은 K2기관단총을 한손으로만 사격하였습니다. 그럴수 밖에요.. 왼손가락 4개가 잘려져 나갔으니까요.. 그렇지만, 권상병님은 오른손만으로 탄창을 바꾸고, 왼손팔뚝위에 총을 올리고 다시 사격하셨습니다. (357호에는 남은 실탄이 없었답니다....한발도...) 이렇게 억울하고도 너무나 비참하게 돌아가신분들도 계신데.. 그분들 이름조차도, 또 그사건 조차도, 거론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6월 29일, 꼭 이분들의 명단과 함께 추모의 글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 피해자 명단. ○ 전사자(4명) * 소령 윤영하(28, 정장) * 중사 조천형(26, 병기사) * 중사 황도현(22, 병기사) * 중사 서후연(21, 내연사) * 병장 박동혁(21, 서해교전중 중상을 입은후 그해 9월 국군수도병원에서 사망 박병장은 교전중 자기몸은 온몸에 총상과 파편으로 찌겨나가도 의무병으로서 이리저리왔다갔다하며 부상자를돌봐 그나마 사망 자가 줄었다고합니다..박병장의 희생정신에 모든군의관들이 눈 물을 흘렸습니다...) (전사후 이분들은 국방부에서 전원 1계급 특진에 추서하였습니다.)
○ 부상자(19명) *상사 이해영 *중사 김현 *중사 김장남 *중사 황찬규 *상병 김면주 *상병 권지형 *일병 이재영 *일병 김상영 *병장 고경락 *상병 김용태 *일병 김택중 *하사 곽진성 *중사 이철규 *병장 김승환 *하사 전창성 *상병 조현진 *중위 조외건 *중위 이희완
○ 실종자(1명) *중사 한상국
그리고 유가족이 오열하는가는가운대 금강산 관광객들은 관광길에오르고.대통령은 조문조차 오지도않았고..국방부장관.합참의장은역시 관례상..핑계로참석하지안았습니다...그리고 그대로잊혀졌습니다......나라를위해 여러분의 아들..아니 대한의건아가..순교하였습니다....나라를위해 죽어도 개목숨만도 못한..이나라의현실에서...참 뭐라 말이안나오고..오직 군대가는 젊은이들이...건강하게 군복무를 마치길..기도합니다. 단돈 3000만원과 훈장쪼가리에 국가와 바로 우리들을 위해 죽는 그순간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으셨던 바로 이분들...
p.s사진은 서해교전 당시 357호를 인양하여 전시한것으로
빨간점들은 총탄이 밖혀있던 자리입니다
당신의 남자친구 당신의 남편 당신의 아버지 .남동생이
이와 같은일을 당했다고 하여도 군대에서 놀구먹다 왔다고
할수있을지 다시한번생각해보게 되네요
잊었어작성일 2007-07-08추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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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터] 퍼왔습니다만.. 끝까지 읽어주세요
이글을 올린건 .. 김선일 씨에 대한 나쁜 생각으로 올린거이 아니라 .. 원본을 올리다 보니.. 이글을 읽고 우리는 사건이 있으면 그때 뿐 .. 몇달이 지나면 .. 잊어 버리는 건망증 .. 정말 우리가 뭐를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지모르고 지낸거 같습니다. 서해교전 중 전사 한분들 .. 지금 나라를 지키는 분들 .. 그리고 무었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국익이라는 명목하에 .. 저머나먼 이라크에 가게신 군인여러분들을 생각하며.. 이글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서해교전중 전사하신 황도현중사 동생분의 울분에찬 글입니다(여러분도 들어보셨을겁니다..서해에 북한해군이 갑자기쳐들어와서 교전이일어났던것을).. 끝까지 읽어라..분명 내가 말했었지..김선일이라는 사람 한명 죽은걸로 오바들 하지 말라고..그렇게 김선일이란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보이던 사람들이ㅍ이제와서는 조의금 돌려 받아라 국립묘지 망발하지 말라며떠들고 있더군..몇일전..당신들 김선일씨에 대해서아주 큰 우리나라 위인이라도 죽은듯이 슬퍼하고..너무 오바한다며..말한느 사람들에게 당신들 어떻게 말했었는지기억들 하나??그리고 김선일 부모..어처구니 없는 집안이구만..어떻게 자기 친자식 아니라고..죽은지 지금 몇일이나 됐다고..벌써..돈을 50억을 내놓으라..국립묘지라..조의금으로 지금..그 집안 사람들 몇억씩 들어왔던데..참..어이없군..다음 뉴스에서 보니까..아빠는 3번 재혼했고..그러니까..지금 부인이 4번째 부인..남매도 8남매는 되더만..어떤 집안이었을지..아무리 생각이 없고..개념이 없어도 그렇지..국립묘지..오바야..그 집안 아들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이렇게난린데..국민들이 위로 해주니까..눈에 들어오는게 없었던 모양인데..계모..돈독이 올라도 제대로 올랐군..분명..여행자보험에..가입 되어 있을테고..그 이라크에서 일하던회사 사장도 돈을 줬을테고..조의금으로도..몇억 들어왔다고 하던데..거기다가..50억을 달라..사람 목숨을 돈으로 계산한다는건..말도 안되지만..솔직히 따져서..김선일씨가 과연 살아있다면..50억을 부모에게 줄 능력이 있었을까..계모..당신..그돈..벌어서 어디다 쓸건데?당신 아들이 그렇게 됐다면..그렇게 가난을 잘 안다면..불쌍한 소년소녀 가장들..도와주거나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성금으로 내야 하는거 아냐??어이없구만..노무현대통령에게 이라크 파병 철회하라고 촛불시위 하지말고김선일씨 부모에게 조의금 받은거 다시 내놓으라고 시위해라..서해교전때 죽은 군인들이 얼마 받았는지 기억하고 있나..?겨우 3천이다..알고나 있나..??그런데 뭐..50억??그때..이렇게 온 국민들이 난리 치면서..위로 해줬나..?당시..조문객중에..시민분들이 몇명이나 오셨었는지..알고있나???나라를 위해서..당신들..누군지도 모르는 당신들 지키려다가..나라를 지키려다가..죽었어..찾아와서 미안해 하며..눈물까지도 바란적 없지만..그래도..적어도..위로의 한마디씩해주고 가길 바랬다..그런데..좆드컵으로..아주 신나들 있더군..진정으로 진정으로..위로 받을만한 죽음이었다고 생각했다..당연히 그럴줄 알았고..지금도 욕심이라고 생각안한다..가끔..찾아와서..정말 자신의 가족을 잃은듯..위로해주던분들도 있었지만..지금 김선일씨와 비교하자면..너무..하잖아..김선일이란 사람과 비교도 안되는 분들이지만..일하러..위험하단거..뻔히 알면서도..자신을 위해서 이라크로 떠났다가재수 옴 붙어서 붙잡혀서 살해 당한..김선일씨와나라를 위해서..국민들을 위해서..그 위험과 싸우다..정말 재수 드럽게 없어서..하필이면..X새끼들이..하필이면..그때 들어와서..어떻게든 막으려다..돌아가신..분들이야..당신들 지금 이렇게 말짱히 평화롭게 사는거다..그분들 때문이야..그리고 지금도 나라를 지키고 계시는 군인여러분들 때문이고..그렇게 나라를 위해 죽어갔는데..당신들을 위해죽어갔는데..티비보면서..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그런 생각 하는거 조차..우스운거 아는데..정말..서럽고..당신들..이렇게 비교 하는거 충분히 유치하고..우스운거 아는데..그래도..이럴수 있어..?우리형..우리형은..지금에 비해서 얼마나 초라했는지..알고들 있어?내가 이러면..우리 형을 부끄럽게 만들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그래도..너무하잖아..그분..김선일씨..나도 명복을 빌고..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했어..그런데..그러면서도..당신들..하는거 보면서..왠지 점점그 사람에 대해서 참 우스운..질투란 감정이 들더군..사람들이 더 많이 더욱더 슬퍼하고 위로할수록나는 점점 당신들이 싫어졌고..그사람이 싫어졌어..얼마나..서럽고..얼마나 비참했는지..겨우..3천이었다..겨우..3천..우리형이 그 젊은나이22살때..나라를 위해..당신들을 위해서..그 젊은나이에..멋지게 살아보지도 못하고..겨우 3천이란 돈과..나라에서 주는 훈장이란..쪼가리랑 우리형을 바꿨어..X발..지랄들 하지마..그따위..3천..그게..그게 나라를위해서 싸우다가 전사한 댓가냐..당신들..좆드컵으로 신나서 있을때..우리들은..가족을 잃은 슬픔으로..가장큰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기억이나 할까..그런 사람이 있었다는걸..황도현 중사..당신들 이름이나 알고있어??기억이나 해??좆드컵..그 즐겁고 뜨거운 열기속에..뜨거운 가슴을 가지고..정말..멋지게 살길 원했던 젊은 청년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던걸..이번에 궤축할때..묵념하고..검은..리본..가슴에 달고..하더라..X발..좆드컵땐..묵념도 하면 안되냐..조금만 신경 써줬어도..당신들에게 헛되지 않은..정말 자랑스러운 죽음이 되었을꺼야..아..우리나라..정말 좆같다..X발 정말 유치하네자신의 조국을 위해..우리들을 위해서 전사하신故윤영하 소령님 故황도현 중사님故한상국 중사님 故조천형 중사님故서후원 중사님 故박동혁 병장님 그외..여러 국가유공자 분들..삼가 冥福을 빕니다#########################################################################################################이라크에서 참수당한채 발견된..미국인 닉버그씨의 부모님들은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는 보상마저 거절하고백악관에서 미군의 철수와 이라크내 모든 민간인 신분의 미국인들에 대한안전을 보장해줄것을 요구하며 지금도 시위를 하고있습니다..조의금이 이미 10억이 넘은 고김선일님의 친부와 계모..그리고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협상대표 외삼촌이라는분..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고인의 명예를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건지요..욕심을 넘어 추잡한 탐욕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김선일씨를 추모하고 애도해 하시는분들께서는2002년 6월의 그뜨거웟던 감동과 열광의 도가니속에서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고인이 되신..서해교전때 돌아가신분들...그분들 이름..한분이라도 기억하실런지..물론 군인의 의무가 나라를 지키다가 죽는다 하여도,그분들도 군입대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다를바 없는 일반 시민이였습니다.더군다나 서해교전당시에 전사하신 분들의 시체가 '고속정 357호'에 있던마지막 모습을 보신 분들이라면,김선일씨 참사가 뭐가 대수라고...까지 생각되실 겁니다.그당시 해군정보부쪽에서는 국가에게 계속해서"북한해군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주의 요망한다"라고 말을하자,국가에선 "햇볓정책이 활발한상황인데다가, 월드컵이 한창인 현 시점에서,북한하고 관계 깰일있냐?"는 식으로 답변했습니다.그리곤 6월 29일.북한해군은 결국 NLL을 넘어, 결국 전사자 4명, 부상자 19명, 실종자 1명의 결과를 만들었습니다.그분들 이름이나 기억나십니까??직격폭격맞은 357호...정확히 세발의 85mm포와, 총탄, 기관포탄을 뒤집어쓴 배였지만,357호 승무원들은 고장난 자동형 40mm주포까지, 수동으로 바꾸어 가면서 싸워내었습니다.20mm발칸포를 쏜 조천형 중사는 불길에 휩싸여서 전사하였고,다른 발칸포를 쏘던 황도현 중사는 머리에 직격탄을 맞아 전사하셨지만,그분들의 시체의 손가락에는 끝까지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었습니다.375호 정장 윤영하 소령님은 이미 죽음을 앞둔 상태셨고,부정장님은 양쪽 무릎이 없는 상태에서도 전투지휘를 계속하셨습니다.윤소령님 앞의 권기현 상병은 K2기관단총을 한손으로만 사격하였습니다.그럴수 밖에요.. 왼손가락 4개가 잘려져 나갔으니까요..그렇지만, 권상병님은 오른손만으로 탄창을 바꾸고,왼손팔뚝위에 총을 올리고 다시 사격하셨습니다.이렇게 억울하고도 너무나 비참하게 돌아가신분들도 계신데..6.25였던 그제까지도,너무 김선일씨만 이야기가 나와서...그리고 김선일씨가 영웅시 되는게 이분들에 비해 억울하고김선일씨의 부모님들이 원망스럽습니다!이틀후면 서해교전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2주년이 되는 때인데..그분들 이름조차도, 또 그사건 조차도, 거론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6월 29일, 이틀후에 꼭 이분들의 명단과 함께 추모의 글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 피해자 명단.○ 전사자(4명)* 소령 윤영하(28, 정장)* 중사 조천형(26, 병기사)* 중사 황도현(22, 병기사)* 중사 서후연(21, 내연사)* 병장 박동혁(21, 서해교전중 중상을 입은후 그해 9월 국군수도병원에서 사망)(전사후 이분들은 국방부에서 전원 1계급 특진에 추서하였습니다.)○ 부상자(19명)*상사 이해영*중사 김현*중사 김장남*중사 황찬규*상병 김면주*상병 권지형*일병 이재영*일병 김상영*병장 고경락*상병 김용태*일병 김택중*하사 곽진성*중사 이철규*병장 김승환*하사 전창성*상병 조현진*중위 조외건*중위 이희완○ 실종자(1명)*중사 한상국29일..진정 인터넷에서 추모의 바다를 이루어야할분들은 바로 이분들입니다..단돈 3000만원과 훈장쪼가리에 국가와 바로 우리들을 위해 죽는 그순간까지방아쇠를 놓지 않으셨던 바로 이분들...진정한 애국자들을 위해 거대한 추모의 물결이 내일 우리 대한민국을 뒤덮는그런 2004년 6월29일이길 빕니다..김선일씨의 죽음은 억울하지만 3천만원 50억? 이건 모르겠습니다.생명을 돈으로 따질수야 없지요. 하지만 국립묘지 안장.. 이건 아닌것 같네요..국립묘지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교하신분들이 안장되는곳이죠.김선일씨는 위험하다는것을 알고서 돈을 벌기 위해 그곳에 가신분이죠.무능한 정부탓에 억울하게 아까운 생명을 빼앗겼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한일을하다 돌아가신것은 아니죠.. 고인의 명예에 먹칠을 넘어서 X칠하는 일은 없었으면하네요
뛣작성일 2005-06-29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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