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항문 농양
그렇게 치루관 첫번째 놈과 평생을 함께 살 생각으로 살다가 작년 10월 중순 즈음…
2차 백신을 앞두고 갑자기 엉덩이 부근이 또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아프다 지나겠지 싶었다.
20년이 지났으니 항문 농양이란 것을 잊어버렸다. 2~3일 지나니 점점 아픈 정도가 세졌다. 이거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만져보니 이번에는 치루관 맞은편 괄약근..그것도 안쪽으로 참외 배꼽이 작게 느껴졌다. 마침 한참 TV에서 치질약 ‘치X’ 광고
가 많이 나와서 약국에 가서 치X 25,000원에 구매하고 더불어 좌약 같은 연고도 같이 구매했다.
치X도 먹고 좌약도 넣고 이틀을 지내봤는데 효과는 없고 점점 불편함은 커져갔다.
사무실에서 앉아 있으면 점점 커지고 압박이 된 농양으로 인해 자세를 수시로 바꾸고 또 수시로 일어나서 몇 걸음 돌아다니고
앉았다를 반복했다.
금요일.. 2차 백신 맞는 날이 되었다. 안되겠다 싶어 아침 9시 백신을 맞고 마침 집 근처에 있는 대형 항문외과에 갔다.
항문 농양이란다.
이렇게 불편할 정도로 어떻게 버텼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오늘 백신을 맞았다고 하니 수술은 힘들다고 한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니 일단 주말 동안 항생제를 처방해 줄테니 자연스럽게 농이 줄어들면 다행이고 재발하면
오라고 했다. 월요일은 회의도 있고 바빠서 차주 화요일 재방문을 예약했다.
‘항생제니까 주말 동안 먹으면 없어지겠지'
아…ㅆ… 금, 토, 일 3일을 한숨도 못잤다.
농양은 더욱 커져서 아예 앉을 수 없게 되버렸고 백신 부작용인지 항생제 때문인지 토요일 새벽부터 잠이 깨서
한숨도 못 자고 틈틈이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엉덩이에 갖다 대면 그 때 만큼은 통증이 사라졌다. 아주 잠시지만.
주말 내내 반누워 상태로 지내고 아파서 끙끙 소리만 내서 간호하는 여자친구는 도울 방법이 없으니 전전긍긍 했다.
월요일 새벽까지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못 자고 결국 카톡으로 임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출근 못한다고.
월요일 아침 병원까지 걷는 길이 너무나 멀었다.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마치 노인처럼 상체를 숙이고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최대한 천천히 갔다.
오죽 느렸으면 길 가는 할머니가 나를 추월해서 먼저 걸어가시더라.
“선생님 죽을 것 같습니다.”
원래 다음 날 방문이었지만 당일 방문하여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나자마자 한 말이었다.
바지를 내려 침상에 옆으로 눕게 하고 무릎을 가슴까지 웅크리라고 하더니 비닐 장갑 손가락으로 괄약근에 사정없이 넣었다.
순간 “악!!!!” 비명을 질렀다.
세상 모든 고통이 내게 온 듯, 눈 앞이 순간 하얗게 변하고 식은 땀이 비오 듯 났다.
‘동성애자들 이 개XX들 이런 짓을 즐긴단 말인가 변태XX들’ 속으로 탄식이 나왔다.
“당장 수술합시다. 정말 아팠겠네.”
두 마디 의사의 말이 2021년에 들어 본 최고의 기쁜 말이라고 뽑아본다.
수술 하기 전 진통제를 놔주라는 의사의 말에 간호사가 주사실에서 엉덩이에 진통제를 주사를 놔줬다.
맞고 3분여 지나니…… 와…신세계다.
2015년 라섹 수술로 안경 벗어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토록 항문이 편안할 수 없으니 세상 살 맛난다는 말이
이 느낌이구나 싶었다. 주사를 놔준 간호사가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수술 전 피검사, 엑스레이 검사, 소변검사 등 돌아다니며 앉는데도 전혀 엉덩이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그 농양이 있다는 느낌만 들었다. 통증이 사라지니 집에 그냥 가겠다고 말 할까도 생각해봤다.
하반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해서 난생 처음 척추 마취란 것을 경험했다.
농양 때문에 벽보고 앉을 수 없으니 마취전문의가 검사했을 때와 동일한 자세로 옆으로 최대한 웅크리고 누우라고 했다.
척추 중간에 따끔~ 한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아래 엉덩이로, 허벅지를 타고 정강이, 발가락 끝까지 따뜻한 기운이 퍼져갔다.
점점 시간이 지나며 하반신 느낌이 없어…지기 보다 내 살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침상에 엎드리라고 하더니 수술실로 밀고 갔다. 정신은 말짱했다.
간호사 3명이 들어오더니 2명은 항문에 근접한 양쪽 허벅지를 최대한 옆으로 당기고 1명은 투명 박스 테이프로 고정시킨다.
젠장 내 부X도 보였겠지.
게다가 내 항문 주위 털들을 바리깡으로 깎아주기까지 한다. 아무리 늙게 봐도 간호사 3명 모두 20대 여성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X팔리지는 않는다.
일단 코로나 마스크도 꼈고 그것보다 3일 동안 엉덩이 아파서 잠을 못 잤더니 X팔린 것보다 아픔이 먼저더라.
이윽고 담당 의사가 오더니 "금방 끝납니다. 간단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작했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소리도 나고 뭔가 작은 드릴 소리도 나고 ‘칙칙~’ 뿌리는 소리도 나고… 생생하게 들린다.
엎드려서 얼굴을 팔에 괴고 있자니 머릿 속에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가? 군대 갔을 때 어머니가 연결해준 부대장한테 운전병 가주겠다고 한 제안을 거절한 기억도 나고
전처랑 이혼하던 과정도 기억나고 …'
한참 오랜만에 과거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갑자기 의사가 외친다.
“아, 환자분 이게 보니까 치루가 있네. 원래 항문 농양은 짜고 오늘 바로 퇴원하는데 치루도 같이 합시다. 내일 퇴원해요.”
엉겁결에 “네에? 네!!” 하고 또 5분인가 더 ‘칙칙~’ ,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다시 사색에 잠겼다.
수술은 다행이 잘 끝났다.
하루 입원했는데 코로나로 면회는 불가해서 여자친구가 퇴근하고 칫솔과 충전기를 갖다 줬다.
약 두 달 간 거즈를 수시로 교체했다.
회사에서는 20~30분 간격으로 집에서도 수시로 피고름이 섞인 거즈를 교체했다. 덕분에 거즈를 3박스나 샀고
처음 좌욕기도 사봤다. 실리콘 재질로 된 것인데 인터넷 쇼핑몰에서 8천원 후반대였다.
병원비는 건강보험과 실비도 적용 받아 실제 지불한 비용은 약값,진찰비..약 2만원 정도가 전부다.
현재 약 4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했고 2달 전 의사로부터 더 이상 오지 말라는 완치 통보를 받았다.
단, 치루는 끝났지만 항문농양 수술 한 곳이 다시 치루로 변해서 분비물이 나오게 되면 수술하러 오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농양이 치루관으로 발생할 확률이 50~60% 이상 이라고 한다.
이미 각오는 했다.
한 번 수술 받아보니 수시로 거즈갈이와 매일 2~3회 좌욕이 귀찮은 것 뿐이지 수술 자체는 부담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던 항문의 촉촉함과 때때로의 피똥이 치루 때문인 것을 20년 넘게 인지 못하고 살았더랬는데…
그게 없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문이 건조해 있다. 퇴근하고 샤워하기 전에 팬티를 보면 분비물도 없고 항문 주변도 건조해 있다.
정말 좋은 세상에 태어난 것을 다시 감사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1, 2로 나눴습니다.
갑자기 생각 나기도 했고 적다 보니 읽어 보시는 분들 중 혹시 현재 또는 앞으로 겪을 경험일지 모르니 참고해 보시라고
최대한 상세히 적었습니다.
치루, 치핵 등 치질을 쪽팔리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걸려보고 관심 있게 찾아보니 성인 남녀가 흔하게 많이 걸려 있고 말을 안 할 뿐이더군요. 또 모르고 있고요.
(하긴 누가 남의 팬티 속을 치질있나 보겠어요?)
엉덩이 고민하시는 분들 바로 꼭 병원 가세요.
그리고 일반 개인병원 말고 항문 전문병원 큰 곳에 가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절대 공중 화장실 비데 쓰지 마세요 !!
제 항문 농양 원인이 공중 화장실 비데를 사용한 겁니다. 집에도 비데가 있어서 편하니까 회사 공용 비데를 썼습니다.
병원에 방문했을 때 의사에게 얘기했더니 말씀하시더라고요.
공중 화장실 비데만큼 더러운 게 없다.
그 오염된 물을 세게 쏴서 괄약근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균이 들어가서 치루 농양이 생겼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 뒤로는 절대 공중화장실 비데를 안 씁니다.
다이X에 ‘비데용 물티슈’가 있더군요. 물에 잘 녹는 비데티슈.
물티슈 형태인데 조금만 힘줘도 찢어지더라고요. 사무실에 2개 정도 여유 분을 놓고 그걸로만 닦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