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왠지 묘하게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네요.
이거저거 생각나는대로 읊어봅니다.....
1.
전에 우스개 소리로 일본 만화가들의 그림 진화를 이야기하던 게시물이 있었습니다. 10년을 지나면서 그림이 나아진 예들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그거 정말 진리입니다. 저도 겪었죠.
사람 인체를 그리는 데 미술학원의 배움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심지어 인체공부를 왜 하냐, 자기 스타일 망가진다, 라는 발언을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다 오류입니다.
미술학원에서 처음부터 사물의 뎃생을 가르쳐주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비공식으로나마 누군가를 가르쳐본 입장에서 느낀 거지만, 쌩초보는 사물에 대한 관찰이나 지각능력이 그림을 잘 그리는, 혹은 그림을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사람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거기에 선을 긋는다는 것도 훈련이 안되어 있습니다.
정석대로 간다면, 모눈그리기를 연습장 3권에 계속해서 하고 그게 그림을 그리는 근육들을 발달시켰을 때 간단한 사물을 그리면서 공간감에 대한 느낌을 확립해가면서 점점 더 복잡한 오브젝트들을 그린 연후에 인체에 대해서 들어가고 인체의 공부와 함께 크로키나 뎃셍을 해나가야 하는게 정석입니다. 얼마나 많이 관찰해보느냐, 얼마나 많이 생각해보느냐, 얼마나 많이 그려보느냐에 따라서 개인적 재능의 차이는 있어도 정석대로 파고들어 갈 경우 2-3년 안에 잘그려집니다.
정석대로 안간다, 지겹고 짜증나니깐. 단군신화의 호랑이과.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만, 그림을 잡다 놓다 하게 됩니다. 학교생활, 닥치는 생활고, 심지어는 귀차니즘까지 여러 가지 상황들이 그림을 그리려는 자신을 방해합니다. 그러면 마치 쳇바퀴 돌듯 하는 느낌이어서 그린다는 생각 자체도 하기 싫어집니다. 내가 이걸 해서 좋아, 해야 돼, 라는 느낌으로 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죠. 인체공부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눈앞에 모델들이 걸어다니고 있는데도 해석력이 좌절스럽습니다. 누가 옆에서 조언을 좀 해준다면...-이게 정말 갈증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좀 어줍잖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10년. 훌떡 가는 거죠. 그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와 그에 반해 그냥 때려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조언(?)들도 숱하게 들으면서 견디는 겁니다. 학습도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꾸 자신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혼자 좌절하는 거죠. 더더군다나 그게 밥벌이도 아닌 상태에서.
2.
그래픽을 밥벌이로 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 것들도 전부 그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자신이 하고 있는 취미가 밥벌이가 되어버리면 더이상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음악하는 사람들도 어린 치기로나마, 음악을 자꾸 즐기지 못하고 분석적이 되어버리는 게 싫다, 라는 이야기도 한다는데, 정말 치기입니다.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면, 분석적이 되는 것도 즐겁게 느껴야 하기 때문이죠.
저야 제가 좋은 하앍스러운 그림들 그려가며 연습중이고, 밥벌이가 되게끔 하더라도 내가 컨트롤해보겠어 하는 망상을 실천으로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만, 게임이나 만화 등등의 일로 뛰어들어 돈을 벌게 된다, 이 선에서 이야기는 틀려지는 겁니다. 해오는 요구가 있고, 표현을 해내야 합니다. 도전 정도가 아니라 전쟁이고 격무라는 이야기죠. 루카스아츠의 스카이워커 농장 같은 경우는 루카스가 앞에서 아이디어를 딱 보면서 평가를 합니다. 보고 뜨악하다 싶으면 그자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로 그려내야 합니다. 이거 못하면? 못버티는 거죠. 그런 환경까지는 한국땅이 아니더라도, 그만큼의 격무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단순히 아 난 이게 재밌어, 라는 생각인지를 숙고에 숙고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그림에 아직 흥미를 느끼는 수준일 뿐이라면, 시간은 그럭저럭 보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밥벌이로 한다? 정말 죽어라고 파야 됩니다. 자신이 생초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뭐 안그런 직업이란게 없겠습니다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