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그릇

하얀바람 작성일 03.08.23 0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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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에 담긴 엄마의 밥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모습니다.

가족들 밥을 다 푸고 난 뒤 맨 마지막에 밥을 담는 엄마의 밥그릇.

다른 가족들 밥그릇처럼 소복하니 먹음직스러운 게 아니라 언제나

주걱에 남은 밥풀과 누룽지를 모두 긁어 담아 한쪽이 납작하게 눌려진 모습이다.

밥은 나이 순으로 푼다고 할머니한테 들으면서 자랐는데, 엄마의 밥그릇은

언제나 제일 마지막으로 밥이 담겨졌다.

"엄마, 왜 엄마 밥은 예쁘게 안 담기고 못생겼어?"

어린맘에 속이 상해 물으면 엄마는

"맨 마지막에 푸는 밥이 맛있단다"하셨다.

그 말이 정말일까, 하며 바라보면 엄마는 정말 맛있게 드시곤 했다.

가난이 뭔지 몰랐던 어린 시절, 감자조림 하나로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우리집이 부자인 줄 알았다.

식구들 밥을 다 푼 뒤 남는 밥을 주걱으로 긁어 엄마의 밥그릇을

채우던 그때는, 그냥 밥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게 속상했다.

그런데 집 나와 자취하는 지금 밥통에 남은 밥을 주걱으로 싹싹 긁어

밥그릇에 훑어 담을 때면 엄마가 생각난다.

못생긴 엄마 밥그릇이 생각나 마음이 저려온다.

이제는 온 가족이 둥그스름하게 소복이 담긴 하얀 쌀밥을 먹어도 되는데,

다 큰딸 밥을 마지막에 푸셔도 되는데, 여전히 엄마의 밥그릇은

한쪽이 납작하게 눌려 제일 마지막으로 식탁에 오른다.

맨 마지막에 담는 밥처럼 엄마는 식구들을 위해 무엇이든 양보하고

당신것은 챙기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사랑에서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제는 내 작은 사랑을 드리고 싶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그릇에 소복하고 풍성하게 밥을 담아 엄마에게 드리고 싶다.

출처: 엽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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