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탄핵의 찬반이나 그 과정의 당부(當否)를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탄핵정국으로 촉발된 극단적 대립과 국론분열이 더이상 방치된다면 건국 이후 반세기 이상 피땀흘려 쟁취하고 가꿔온 법치주의와 의회주의라는 이 나라의 근간이 자칫 흔들릴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회는 헌법에 의해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과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소추는 헌법·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엄정히 이뤄진 결정입니다.
국민여러분은 누구나 각자 이번 탄핵사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찬반 어느 쪽이든 당연히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뤄진 결과에 대해, ‘의회의 폭거’라거나 ‘의회쿠데타’라는 식의 비이성적 매도는 용인될 수 없는, 국회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은 헌정중단이라는 비상한 상황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법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이 일시 중지됐을 따름입니다. 비록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이지만, 선진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한 과정을 모든 국민이 함께 보고 겪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명확합니다. 한시바삐 평상심으로 돌아가 일상의 소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차분히 지켜봐야 합니다.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이를 겸허히 수용하는 것만이 우리 사회에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진정한 법치주의를 앞당기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지난 주말을 고비로 대규모 가두집회는 일견 진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탄핵에 관한 서로 상이한 견해와 입장을 이제 더이상 거리에서 표출하는 것은 정말 자제해야 합니다. 집단행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바로 목전에 당도한 17대 총선에 부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나아가 헌정질서를 근본에서부터 위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탄핵사태로 이어진 일련의 정치적 갈등이 대화를 통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당초 대통령과 4당대표가 참여하는 회담을 통해 정치적으로 충분히 마무리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이를 대통령과 각 정당 대표들께 충심으로 제의한 바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대화만이 우리사회의 분열을 막고, 사회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국민여러분!
지금 탄핵에 따른 극단적인 국론분열로 가정이나 일터에서 나라의 발전동력으로 쓰여야할 소중한 국민적 에너지가 아깝게 소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해야할 것은 나라의 진로 등 국가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국민적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 나가는 일입니다.
분열과 배척의 에너지를 통합과 화해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역사의 장강(長江)은 굽이굽이 돌아 대해(大海)로 흘러가는 법입니다. 여기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시대에 한 배를 탄 운명의 동반자들입니다. 더 이상의 선상난투로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침몰 위기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까지의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이번 탄핵정국으로 마감하고, 앞으로는 정말 대화와 타협의 정치,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 합니다. 대화할 줄 아는 대통령, 타협하는 국회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정부도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사회적 안정을 되찾고 총선을 공정하게 치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언론인 여러분께서도 민심안정과 사회통합을 위해 더욱 고민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각 정당의 대표께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헌재의 최종판단이 어떻게 내려지든 간에 모든 정당·정파는 이를 겸허히 수용할 것을 국민앞에 서약하는 모임을 가질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국민의 불안과 우려를 해소하는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국민여러분!
우리는 수많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오면서 오늘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한때의 소용돌이로 전진을 멈출수는 없습니다. 다시한번 국민여러분의 이해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