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보야.... 그렇다고 죽긴 왜 죽어...?!! 이 바보야...... 너 먼저 그렇게 가 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죽긴 왜 죽어?!!! "
-_-
그런데......
욕실에 빨래바구니 가지러 오셨던 우리 어머니.......
우연히 보게 된 이 광경에 한참을 뒤에서 서 계셨나보다.........
갑자기 안방문을 잠그고 들어가셔서는....
서방복 없는 년이 역시 자식복도 없는거라며...
2시간동안 구슬프게 흐느끼셨다.........-_-;;
스님에게 해탈의 경지라는 최고의 목표가 있다면...
우리 폐인에게도 아무나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두개의 득도가 있었다!
바로......
일주일동안 머리를 안 감아도 가렵지 않은 경지와
세상 모든 무생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경지였다!
특히 무생물과 대화를 나누는 두번째 득도가 매우 힘이 들었다.
정말 폐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폐인들은,
길가에 돌맹이한테도 자기 아이이름 작명을 부탁하기도 했고...
계란후라이를 먹다가도 노른자한테 인생상담을 해주기도 했다......-_-
아무튼...
이 두개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설날에 딴 애들 다 세배드릴 때 세배대신 혼자,
알몸에 앞치마만 두르고 할아버지 앞에서 헤드스핀 하는 것만큼이나
아무나 할 수 없는 힘겹고 고된 일이었으리라......
-_-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폐인에게도 어김없이 때가 되면 배고픔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난 주방바닥에 주저앉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라면을 끓여서 먹고있었다.
" 어우~ 야! 신라면 너~!! 언제까지 사나이를 울릴 셈이니?!!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앗아가야 직성이 풀리는거냐고~?!! 어우~ 못됐어!! 증말~ 그댄 심술쟁이얌~!!! "
그런데 또 그때.......
아까 니조랄건으로 충격을 받으셨던 우리 어머니...
어느새 또 다시 다가와 이 광경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계셨나보다.......-_-;
하지만...
이미 한번 큰 충격을 경험한 그녀는,
아까보다는 훨씬 침착한 모습이었다......
엄마: 또 무생물이랑 대화하는구나... 폐인도 배는 고프니?
활화산: 그럼~ 민간인보다 더 고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아주 그냥 그릇까지 다 씹어먹고 싶어! 이 폐인이라는 직업이 알게 모르게 은근히 칼로리 소비가 높거든!
이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엄마: 라면 아직도 뜨겁니?
활화산: 응~ 유리냄비에 끓여서 지금도 팔팔 끓어! 근데 왜 그래? 맘~! ^-^*
엄마: 너 혹시... 살면서 팔팔 끓는 라면에 얼굴 3도화상 입어본 적 있니?
활화산: -_-;;
내가 1년이 넘게 집에서 폐인생활을 이어가자,
어머니도 인내심이 한계까지 치달으셨는 지...
급기야 제발 나가서 여자친구라도 사귀라고 하실 정도였다......
엄마: 젊은 애가 뺀날 집에서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딴 애들은 여자친구도 잘만 사귀더만! 넌 여자친구 하나 없니?! 엄만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아니 우리 아들이 왜 여자친구가 없는거야?! 요즘 여자애들은 눈이 삐었니?! 왜 널 그냥 두는거야?! 정말 이해를 못하겠어!! 정말 이해가 안된다구~!!!
활화산: 아~ 엄마...!! 역시 엄마밖에 없어~ +_+
그런데 그순간!!
어머니와 난 눈이 마주쳤고...
새삼 내 얼굴을 한참동안이나 지그시 바라보시는 어머니.......
엄마: 갑자기 이해가 된다......-_-
활화산: -_-;;
아무튼...
내 폐인생활의 하루하루는 이렇게 어머니와 함께
알콩달콩 심심치 않게 지나갔다.......
그러던 중...
폐인에게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다.......
낮에 라면먹고 누운 후..
목말라 물먹으려고 약 5시간만에 처음 일어났고...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방바닥과 등짝 사이에 쩌저적~ 장작패는 소리가 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하루종일 누워있던 자리를 보니...
마치 살인현장 시신자리 표시해놓은 것처럼...
매우 낯익은 형상하나가 그려져 있었다.........-_-;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먹고 다시 누우려고 내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살짝 열려진 안방 문 틈새로 보이는 매우 침울한 어머니의 모습!
두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장농에 힘없이 기대어 계셨다.
약간의 우울증이 있는 우리 어머니는 가끔씩 이렇게 갑자기 우울해하셨다...
또 마침 안 그래도 주부우울증이 매우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였기에...
나로서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걱정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계속 저렇게 우울증에 빠져있도록 방치하면 안되겠다 싶었다!
활화산: 맘~ 또 우울해?
엄마: 바다나 한번 보고왔음 좋겠다........ 하아....
활화산: 바다? 바다보면 우울한 게 좀 풀릴 것 같아? "
엄마: 응......
그래!!
어머니의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들인 나밖에 없다!!
또한 내가 우울할 때 하던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다....
난 사명감을 가지고 어머니의 우울증을 반드시 치료하고자 마음먹었다!!
여기서 보다시피!
폐인에게도 효심은 있는 것이다......
아님...
폐인에게는 본디 효심이 없는 것인데...
이 활화산이 워낙 천성적으로 착해서 효심이 지극한 것일 수도 있고...... *-_-*
볼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 이순간 독자분들의 잔뜩 구겨진 미간을......... -_-;;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우울한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릴 몇몇의 도구와 소품들을 챙겨
그녀가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그녀의 가슴에
내 기필코 바다를 선물하리라!!
엄마: 왜?
활화산: 바다보고 싶다며? 바다보여주려고!! 자~ 이거 받아! 오늘 이 아들만 믿고 따라오면 맘의 우울증은 오늘로써 완전 완치되는거야!!
난 어리둥절한 어머니의 손에 CD 플레이어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난 내 앞에 넥타이핀 케이스랑 폴더형 핸드폰
그리고 빨래집게를 몇개 벌려놓았다.
어머니의 눈은 더욱 어리둥절해지셨다...
엄마: 뭐할려고 안방을 이렇게 어지롭혀~?!! 빨리 안 치워?!
활화산: 에이~ 참! 이 아들만 믿으라니깐! 내가 오늘 그대의 우울증을 확실히 완치시켜준대두~!! 바다가고 싶다며? 내 오늘 그대 가슴에 바다를 선물하리라~!!
활화산: 자~ 이럴 때 CD 플레이어 입을 엄마가 말할 때마다 손으로 딱딱딱 움직이는 거야. 외국영화 입맞추며 더빙하는 식으로.. 어때? 얘 진짜 고래같지? 진짜 왠만해선 고래역 아무나 안 시켜주는데.. 엄만 지금 많이 우울하니깐 특별히 양보하는 거야! 대신 연기 잘해야 해~ "
엄마: -_-;;
드디어 우울한 어머니를 즐겁게 해주기위해!
그 화려한 막이 오르고.......
활화산(범고래): 크억~!! 고래님!! 우리 애들이 다 당했습니다...!! 상어 그 자식이..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엄마(고래): .........................
활화산: 아~ 나 참!! 왜 아무말도 안 해?!! 범고래가 상어 그 자식이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놀라면서... 뭐야?! 상어 그 놈이...!! 감히 나한테....!!! 이래야지~! 똑바로 좀 해줘. 이게 도대체 몇번째야?! 고래역 자신없음 지금이라도 손 떼! 하겠다고 줄선 사람많아~!!
엄마: ............................
활화산: 자~ 다시!!!!
그렇다...
난 신이 났던 것이다......
늘 혼자 1인 2역하며 하던 놀이를
누군가 같이 한다는 생각에...
난 어느새 어머니 우울증을 망각해버린 채....
서서히 고기놀이에 도취되고 있었다.......
오로지 나에겐 고기뿐이었으리라.....
무아지경에 빠진 나에겐 어머니의 우울증은...
서서히 먼 산의 개짖는 소리마냥 희미해져가고 있었다........-_-;
활화산(범고래): 크억~!! 고래님!! 우리 애들이 다 당했습니다...!! 상어 그 자식이..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