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선수에게 너무 악의적인 글이지만 글 자체는 상당히 재미있어서 퍼왔어요 ------------------------------------------------------------------------------------ ------------------------------------------------------------------------------------
2012년 4월 우리는 박제가 되어버린 (K리그전용)천재 스트라이커 박주영과 인터뷰를 가졌다. 장소는 신림동의 허름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저도 그런때가 있었지요.."
한국의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르고 있는 김천둥을 보고 박주영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수염을 깎지지 않아 덥수룩한 얼굴, 초췌한 몰골은 이제 더 이상 그가 과거의 박주영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냄비언론의 도발로 한때 한국축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박주영은 이제까지의 스스로 몰락했던 입천수 리니종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서울의 한 고수부지에서 혼자 공을 차고 있었는데, 중학생에게도 번번히 골을 빼앗기는등 거의 절망적 인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최근 있던 조기축구회에서 쫓겨났어요"
목이 마른지 물대신 술로 목을 적시고,박주영은 담배를 물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는 잠시 옛 기억이 나는지 눈을 감았다. 고교시절 7개 대회 중 4개 대회 득점왕을 시작으로 카타르 청소년 대회 특히 이대회는 박주영이 처음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된 가장 큰 계기가 된 대회이자 그의 불행에 시초였다.
그는 이 대회에서 4경기 9골로 화려하게 등장 한 후 곧바로 프로무대로 데뷔 14경기 9골 A매치 2경기 연속골, 국가대표 두경기 연속골로 그의 (K리그전용)천재성을 확인시켰다.
불행의 시초는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였다.
동료들에게 패스를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테크닉으로 골을 만들려다, 브라질 선수에게 백태클을 당해 십자인대파멸로 꼬박 2년간 병원에서 재활 훈련에 힘썼다. 겨우 아시아에서나 통할 실력으로 유럽,남미팀에 들이대다가 결국 실력이 뽀록나 부상까지 당한것이다..
언론에선 더이상 복귀가 불가능한게 아니냐며, 연일 박주영에 대한 기사를 썼지만, 박주영은 당당히 복귀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예전의 박주영이 아니였다.
무엇엔가 쫓기듯 골을 소유하면 동료들에게 패스를 하지 않고 혼자서 골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 플레이가 지속되자 언론과 팬들은 하나 둘 그에게서 멀어졌다.
게다가 한국최고의 축구천재라던 박주영을 보고 "한국에서는 저런선수도 축구천재냐?우리팀 물당번도 저정도는 한다.."며 황당함을 금치못한 외국프로팀 감독들이 모든 한국선수들을 낮게 평가하기 시작함으로서 외국진출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한국선수들이 박주영에게 집단소송을 제기함으로서 이미 박주영은 파산직전에 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주영으로서는 마지막 기회라 볼 수 있는 2007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성화 감독에게 그는 부름을 받는다.
K리그 120경기 출장 11골 4어시스트 이 초라한 성적의 청년에게 박성화는 언론과 국민들의 비난을 과감히 뿌리치고 박주영을 부른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박주영을 원톱으로 가동 시킨 대표팀은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경기서 중국에게 져 월드컵 8회 연속진출 실패란 좌절을 맛보게 된다.
지난 2005년 독일월드컵서 4골을 뽑아내며 이탈리아 명문구단 라치오로 이적한 "이동국"을 기용않고 박주영을 기용한 박성화 감독은 물론 박주영에게 비난의 화살을 계속 되었다.
이일로 박성화 감독은 자살을 하게 되고, 박주영 또한 죄책감에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으로 떠나버린다.
"힘들었어요."
인터뷰 중 문득 박주영은 말한다.
중국으로 쫓겨나듯 도망친 박주영은 중국 C리그 3부리그 선수로 뛰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20경기 34골을 뽑아냈어요. 근데... 숙소에서 자던 중에 괴한의 습격을 받았어요... 근데 하필이면 칼이 관절에 박혔어요...
하지만 제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공안도 그렇고 팀내 동료 선수들도 쉬쉬하며 넘어 가더라구요.. 서러웠어요.
그러다 지금은 은퇴한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미드필더 박지성의 설득으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고한다.
지성이 형한테 4억 정도 빌려서 축구용품가게를 하려고 했어요..
지성이형한테 4억을 받고 이제부터라도 정말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마음먹었는데 갑자기 개천수가 나타나더니 .. 주식에 투자하라는 겁니다.. 무조건 5배로 불려준다고 온갖 감언이설로 저를 꼬셨죠. 개천수가 4억다 투자하라고 했지만 저는 불안해서 2억을 개천수에게 주고 "형 나한테 줄땐 10억으로 돌려줘야해." 라고 했습니다.. 그게 개천수의 마지막 모습이였습니다. 3개월동안 연락이 안되서 측근에게 물어보니 개천수가 저외에도 최용수,조재진,정경호에게도 똑같은 숙법으로 돈을 받아내서 해외로 도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지성이형 볼 면목도 없고. 그러나 2억이 있었기에 2억을가지고 축구용품가게를 차렸지만 2년만에 쫄딱망했죠.... 지성이형은 괜찮다지만.. 볼 면목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강원도 산골에 쳐 박혀 살았어요. 부모님 뵐 면목이 안생겨서 줄곳 설이나 추석때는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기고 했다고...
제가 이렇게 된건 운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솔직히 내가 한때는 개동국보다 잘하지 않았습니까?"
개동국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는 박주영을 보고 취재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 바르셀로나FC 소속의 골잡이로서 4년연속 프리메라리그 득점왕을 차지 한 한국이 낳은 전설적인 축구선수 이동국을 개동국라고 표현하다니..
"솔직히 전 운이없어서 그렇게 된거에요. 십자인대만 파열 안되었다면, 개동국따위 보단 휠씬 더 좋은 성적을 냈을겁니다."
그의 초라한 자취방 구석에는 이미 7년이상 읽고 또읽고 수천번 읽어 이미 너덜너덜해진 2005년 6월2일자 "굿데이"의 "박주영. 로베르토 바지오를 뛰어넘는다, 박주영! 맨유가 손짓한다!, 레알단장, 축구천재 박주영에 매우 큰 관심.." 등등의 기사를 담은 종아쪼가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