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의경 이야기- 시위진압당시 암담했던 기억.

미연시다운족 작성일 07.02.13 14: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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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던간에, 가장 골때리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때가 바로 확실한 동기부여 내지는 어떠한 계획없이 무턱대고 일을 수행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군 복무중에도, 시위상황대비라는 분명한 동기부여는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때는 정확한 작전계획없이 작전을 수행해야 할 경우가 있었다. 이때를 생각해보면 완벽한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맨땅의 헤딩의 결과는 뻔하다.
"중대가 작살나서 대원들 싸그리 부상당하면서, 한동안은 사기가 바닥을 치게 된다."


그중에서도, 맨땅에 헤딩중 최악의 맨땅에 헤딩이 될 뻔한 상황중 한가지가 아래에 있었던 상황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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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린 글에서도 몇차례 기술했던 내용이고, 또다시 반복하자면 지하철과 관련해서 파업이나 노조의 시위가 벌어지면 우리는 거의 서울시내 전지역을 드라이브 삼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각 지역에 산재한 지하철 기지창에대한 시위대의 기습점거에 대비해서 기지창경비및 지원을 들어가기도 하고, 또한 어떤지역의 지하철역에 시위대가 등장했다고 하면 그쪽으로도 시위대를 막으러 이동하는 등 결국 지하철과 관련된 시위는 결국은 24시간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는 경찰과 시위대의 지루한 술레잡기 였다는 기억이 가장 우선한다.

게다가, 11~12시에 복귀해서는 덜렁 2~3시간 정도 자다가 말고 바로 출동을 나가는 것도 거의 일상화된 생활이었고 어느때는 전국의 전의경 중대가 서울로 총집결해서는 매번 새벽출동시 경광등이나 사이렌의 사용은 금지가 될 정도의 은밀한 추격(?)을 하면서 쫓아다니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큰 상황(특히 한총련 새퀴덜이 포함된 시위)의 경우는, 그날의 상황종료및 부대복귀라는 경력조정시간이 되는 시간은 서울청에서 정해주는게 아니라 거의 시위대가 결정해 준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시위가 끝나야 부대로 복귀를 하지.. 우리나라는 시위대의 집회시간엄수는 정말 다른 나라이야기일 뿐이다.)거의 서울시내의 지하철운행이 종료되는 시점과 동일했다고 보면 된다. 지하철운행이 종료가 되면 시위대의 이동수단은 시위대의 이동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철노조의 경우는 언제 지하철기지창을 야간에 기습점거를 할지를 모르기때문에, 상황종료후 경력조정을 통해서 부대복귀를 할 중대는 부대로 복귀를 하고, 철야 경비지원근무를 들어갈 중대가 결정이 나게되고, 이 경력조정에 따라서 각 중대별로 웃음과 탄식이 교차를 하게 된다.


그래봤자, 철야근무를 선 중대는 다음날 큰 상황있으면 아침8시에 전날 숙영지에서 몇시간이나마 잠을 잔 중대들과 교대후 3~4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점심먹고 다시 상황출동을 나와야하고, 다음날 큰 상황이없는 경우라면 전날 부대복귀한 중대들중에서 몇개중대가 교대임무를 나와줘야 한다.(결국 규정대로의 취침시간은 보장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전의경의 단점중 한가지가 전역하는 그날까지 취침시간의 보장이 이루어 지지 못한다는 거다. 하긴 육해공군도 정도의 차이일 망정 유사한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하철노조및 철도와 관련된 시위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문제는 역시 우리가 시위대와 접전이 벌어질 경우가 가장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만일 철길에서 시위대와 대치할 경우, 시위대의 입장에서는 정말 철길에 쌓인 돌들은 무한정의 실탄이 놓인 천혜의 지형일 수 밖에 없다. 요즘이야 알방이라는 방패를 사용한다지만 우리때까지는 방패가 기동대나 방범순찰대나 구분없이 frp/투방(장방) 이었기에 특히 투방의 경우는 투석에 좀 취약한 면이 있었다.(쇠파이프나 각목에도 마찬가지...) 게다가 철로에 놓인 돌들은 이상하게 모난 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폭력시위대라는 것들은 시위를 위해서라면, 공공시설의 보도블럭이나 타일 혹은 다른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의 벽도 허물어서 투석에 사용하는 것들인데, 철도의 돌이라고 안던지겠는가?(에이팩 반대시위때는 아주 아파트 담을 허물어버린다음에 그 돌들을 투척하더만... 사진을 보여주랴?)

그리고 철로의 침목이나 레일 역시 경찰이나 시위대 양쪽에게는 위험한 시설일 수 밖에 없다.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 붙이면, 시위대가 뒤로 물러날 가능성이 농후하고 반면에 시위대가 경찰을 밀어 붙일 경우 같이 받아 치던가 버티는게 정석이지만 때로는 시위대의 흐름을 한 템포 죽이기위해 경찰이 뒤로 물러나야 할 경우가 생긴다.(시위상황은 밀고 당기고의 완급조절을 잘 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밀집한 상태에서 물러날 경우, 철도침목이나 레일에 발이 걸려서 그냥 넘어져 버린다는 거다. 하지만 사람이라는게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는건 아니지 않은가? 그냥 넘어진 사람들을 밟던가 뒷걸음질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넘어진 사람에게 발이 걸려 같이 넘어져 버리는 불상사가 생겨버린다.

게다가 뒤로 물러날때는 아무래도 작전상이라 할 지라도 시위대는 분위기가 더 밀어붙이려 하고 대원들은 중대가 쪼개지지않게 하기위해서 심리적으로 쫓기는 경우이고 정말 그냥 밟아버리면서 밣힌 사람이나 밟는 사람이나 같이 넘어져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니 경찰이나 시위대의 입장에서는 부상자가 생길 수 밖에 없고, 경찰들 역시 까딱하다가는 대열이 엉켜버리면서 납치되는 대원이나 중대의 대열자체가 붕괴되버릴 위험도 농후 하다는 거다.






아마 전에 올렸던 글에도, 시위상황 나가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어??상황이 바로 진압경력들이 뒤로 빽할때가 가장 위험하면서도 어??경우가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중대여럿 작살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기동단 신병교육대에서 일주일간의 교육/대기기간중에, 당시 중대장으로 복무중인 분의 정훈교양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정훈교양의 내용은 현장경험자로 부터듣는 시위황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당시 우리기수 정훈교양을 들어오셨던 분이 특기대 75중대장님이었을 거다.

그분말씀으로는 서울청 발령을 받기전에는, 전남지방청에서 근무를 했었고 이때도 기동대에서 시위진압을 했었는데 철길에서 대학생 시위대가 철도 침목을 던져버리는 바람에 그 침목에 한 대원이 머리를 맞고 쓰러져버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걔가 럭비를 하다가 입대를 한 애라서 살아난거 같애, 신이 도왔다고 봐야지. 순간 그 애가 죽은줄 알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기타 이유로 해서, 철도관련 시위나 철길에서의 시위는 경찰이나 시위대 모두에게 위험이 닥칠가능성이 주변에 너무 농후한 시위 환경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이었나? 암튼 간에 우리중대/특기대 76중대/3기동대 32중대였나? 로 구성이 된 3기동부대장타격대로 철도노조와 관련된 상황에 출동을 나갔던 적이 있다.

이때의 상황도 서울청산하 전 중대가 총동원이 되서 거의 풀가동이 이루어졌던 걸로 기억하는데(타지방청 중대가 지원을 왔었는지, 아닌지는 기억 안남.) 우리가 속한 3기동대 부대장 타격대와 다른 기동대 부대장 타격대로 이루어진 두개의 타격대는 거의 종로구/성동구/광진구쪽을 그냥 계속 이동해서 돌아다녔던 기억밖에 안난다.


낮에는 거의 승차대기및 경력배열만을 한걸로 기억이 나는데, 반면에 일몰이후로는 정말 반복적으로 시위대에 대한 구체적인 첩보가 무전기를 통해 들렸고 계속적인 이동이 이루어졌다. 시위대가 계속 이동을 하므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이건 현재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각 지휘관들 역시 이동할때마다 관할경찰서 경비과장/정보과장이 포함된 작전회의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었다.


일몰전에는 시위대가 이동할 우려가 있다는 정보과 형사들의 보고에 따른 사전배열및 사전대기가 주로 이루어졌지만 일몰이후 부터는 본격적인 시위대의 등장및 이동이 구체적으로 보고가 되는 상황이므로 당장 전체 대원들의 경우는 아예 진압복을 입고 장비는 손에들고는 언제든지 바로 하차해서 배열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갗춘후에 이동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통로쪽에 앉은 대원들이나 중간 짬밥 이상되는 대원들은 조금이라도 신속하게 하차하기 위해서 한쪽다리를 통로쪽으로 약간씩 내놓구 있거나, 의자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앉으면서 긴장의 끈을 조이는 행동을 보이곤 했다.(뭐,반사적으로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고 보면 된다.)


각 대원들의 얼굴에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게 나타났었다. 이때는 고참들을 포함해서 전 대원들이 침묵을 지키면서 거의 무슨 소리만 나도 그쪽으로 시선이 집중될 정도의 적막감이 흐르는게 보통의 분위기 였다. 게다가 기대마내부의 분위기도 살벌하다.


유일하게 나는 소리라고는 나를 비롯한 중대/소대 수하나들의 무전기에 들리는 내용과 더불어서 중대수하나인 내가 알려주는 무전내용의 복창이 유일한 소리였다고 기억한다.


어느때는 무전을 통해서 들리는 첩보내용이 바로 대원들이 하차후 배열을 해야 할 상황이 임박한 것 처럼 들리자 기대마내부의 분위기는 침묵+살벌함이 흐르는 와중에 소대 부관님 동기인 해당경찰서 정보과형사가 우리 부관님을 만나위해 무의식적으로 기대마문을 반 장난으로 박차고 들어왔다가

일시에 시선이 집중된 우리들의 눈초리를 보구는 흠칫 놀라면서 "며칠 굶은 애덜마냥 눈에 살기가 도냐?" 라는 이야기까지 들은 적이 있다. 우리들이야 다른 대원이 장난치는 줄 알고 그랬지만 장난친 당사자가 타소대 대원이 아닌 경찰직원이라는 말에 바로 시선을 피했지만 말이다.





반복되는 이동, 이동후 바로 각 중대들은 지금은 기억이 안나는 광진구 쪽의 어떤 곳에 잠시 정차를하고, 지휘부는 또다시 동부경찰서로 작전회의를 들어갔었을 거다. 그 당시 기억으로는 동부경찰서 부근에 롯데리아가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작전회의를 들어간 중대장을 경찰서 주차장에서 기다리면서, 롯데리아 햄버거 광고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본 기억이 나니까 말이다.


작전회의가 끝날때쯤, 갑자기 지휘부가 다시 황급히 나오더니 우리가 이동한 곳은 한양여대근처(성동경찰서 관내)의 지하철 역으로 이동을 했다. 이동중이던 시위대가 그 부근의 지상으로 연결된 지하철 역을 점거를 하고 시위를 벌인다는 정보과 형사의 보고에 따라서 각 중대는 그곳으로 이동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여러 기동대장/부대장 타격대가 그 성동경찰서 관내로 긴급이동을 했지만 역시 시위대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 상태였고 지하철역 내부로 진입해 들어간 우리는 시위대가 시위를 마친후 지하철역 벽에 붙이고 간 유인물과 포스터,벽보만을 회수한 채로 다시 승차대기에 들어갔다.



"어이구~~ 고작 이거(유인물) 떼어내려구 참으로 먼길 왔다, 먼길 왔어~~"

"그런데, 철로 위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지하철 운행은 어찌되는 겁니까? 우리와 시위대를 다 깔아버리고 지나가지는 않을거고, 그렇다고 시위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면 아마 다음역에서 지하철 기다리던 사람들이 폭동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막차 운행시간은 연장되겠군..."





다시 기대마로 돌아가서 승차대기를 하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철도관련 사무실로 각중대들 이동을 하란다.

다시 이동을 한 후에 중대장님을 따라서 작전회의가 벌어지고 있는 사무실 입구까지 갔다가, 대원은 나 혼자 밖에 없어서 중대장님께 보고를 하고는 바로 기대마로 돌아와서는 무전청취를 계속하는데 시위대의 이동이 없는 듯 무전기에서는 특이 상황이 보고가 되지는 않고 있었다.


"별다른 특이상황도 없으니 천상 철야서거나 늦게 부대복귀 할 거 같다. 그러니 너희들도 좀 자고 애들도 좀 재워라, 피곤할 텐데 말이다."

작전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중대장님이, 조용히 나를 무전으로 부르더니 무슨 던킨도너츠 박스를 내밀면서

"작전회의 들어온 지휘관들에게 이거 한박스씩 주더라, 여기 관내 경찰서 예산 많은가 보다.네 생각나서 가지고 왔으니까 먹고가라."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아까 1소대장님께서 커피한잔 드시고 싶어하시던 눈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넌 안먹겠다고?"

"전 괜찮습니다."(난 사실 던킨도너츠 안 좋아한다. 아직도 내 돈내고 사먹어 본 적이 없다.)

(피식 웃으며) "그럼 다음 지시가 있을때까지, 애들 근처 공중전화에서 전화도 시키고 봐서 근처 가게에서 야식조달도 눈치껏 해라. 부대장님 지휘차에서 눈총받을 정도로 너무 노골적으로 하지말고, 알았지?"

"열,스물, 서른 각 소대 지휘관분들 지마로 모이시라고 해라. 중대장님께서 티타임 갖자시니까."





별다른 일은 없이 계속적인 이동및 깨스분위기로 대원들만 피곤해 질 수 있으니 어느정도 긴장을 풀어주기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압복은 계속 입고 있었다.)

이후에 한번인가 두번을 더 지하철역을 몇군데 긴급이동으로 찍고 왔었었고,

결국은 새벽두시에 어디 지하철노조가 점거한 기지창으로 진입해 야간작전을 들어가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수하나와 분대장들을 불러 모아서는


"야, 아무래도 들리는 무전이나 분위기를 보니 야간 작전에 들어갈 것 같다."
"야간작전이라 말입니까?"

"전혀 모르는 낯선 지형인데, 거기서 야간작전?"
"구체적인 계획도 없지 않습니까?"

"너무 위험한 거 아냐?"
"노조 시위대가 사전에 대비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냥 작살나는거 아닙니까?"



대충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이 아니라 급조된 작전이라는게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였다.

일단은, 우리와 다른쪽에서 상황대비를 하고 있던, 다른 기동대소속 격대들이 기지창근처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쪽격대에 배속된 중대에 있는 동기들과 이야기를 해도 구체적인 작전계획및 사전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야, 이동해 오면서 무슨 이야기들은거 있냐?"
"우리도 긴급이동하라는 소리듣고 종로에서 바로 이동해왔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도 경력증강이 이루어지는건, 뭔가 있다는거 아냐? 그리고 현재 지휘관들 눈치를보니 당장 오늘 새벽에라도 투입될 분위기던데?"

"지금 이동해온 우리들 보다는 너네 3기동대 부대장격대가 가장 먼저 도착했으니 무슨 이야기라도 들었을 거 아냐?"


결국 소득은 전혀 없었다..





당시 우리 기동대 지휘관들의 경우 그런식으로 작전에 대원을 투입할 분들은 아니었기에, 부대장님께서도 사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못했다라는 결론 밖에 나지를 않는다.

대충 다른쪽 기동대소속격대들의 분위기를 봐도, 우리와는 별다른게 없어보이고 "도대체 작전계획을 제대로 알고 있는 넘들은 누구인가?"라는 생각밖에 안들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냥 한숨만 나는 상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새벽에 우리는 처음 접해보는 낯선 지형이다. 게다가 철도기지창에 있는 연장, 침목, 돌등과 같은 무한정 널려있는 시위 무기들...

곳곳에 쌓여있는 공사자재로 인해서 이건 시위입장에서는 매복할 수 있는 벙커가 되기도하지만, 우리들의 경우는 이동/퇴로를 방해하는 상당히 위험한 장애물이고 말이다.


결국은 당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중대가 찢어지지 않도록 정신을 놓지않고 뭉쳐다니면서 서로가 서로의 사각을 커버해주는 것 밖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고, 괜히 애꿎은 깨스분위기만 잡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깨스는 깨스고 거기에 비례해서 담배+화장실은 계속 보내줬던 걸로 기억한다.





잠시 후 무전에서 들리는 작전개시 명령에 바로 전대원 장비들고 하차를 지시하고는 바로 중대장이 타고 있는 지마로 달려갔다.


중대장이 나를 보더니 "수하나, 앞장서라." 란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기지창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난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중대장이 전달을 안해 준거다.)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바로 같은 격대소속 다른 중대의 뒷꽁무니를 보구는 그쪽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첫단추부터 잘못 꼬여진 상황.)

분명히 격대별로 뭉쳐서 이동은 하고있는데, 정작 문제는 같은 격대소속 3개중대중에 선두에 설 중대와 중간에서 대열 유지및 선두중대와 교대를 해야 할 중간중대및 퇴로를 확보할 세번째 중대가 전혀 결정이 안 된 상태에서 이동을 하고 있는 거였다.(점점 꼬여가는 상황.)


조용히 무슨 개천의 시멘트길을 따라서 이동을 하는데 (서울인데도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 포장이 된 길이었다.)

바짝 긴장해서는 조용히 무전청취를 하면서 정면만 응시하며 이동해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동 중간중간에 1,2,3소대로 뛰어가서는 분대장들과 수하나들에게 절대로 중대가 찢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자라는 이야기를 전달했지만 결국은 그냥 조용히 긴장된 상태로 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내부에 몇명이 있는지,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도 알 수가 없는 상황에 혹시 관할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의 첩보제공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관내무전??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반응도 없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암담한 생각에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정말 작전들어가기가 싫었다. 시위대의 해산이 목적인지, 차단인지, 아니면 전원연행인지 계획조차 없으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무전기도 조용하고, 우리도 평소 이동시에는 거의 민폐에 가까울 정도의 수준으로 고래고래 악을 써가며 복명복창과 대열정비를 하며 구령을 붙여서 이동을 하던 평상시와는 다르게 기도비닉을 유지한채로 조용히 앞만보며 이동을 하면서 대원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때 쯤에 갑자기 선두에선 격대들의 야광봉이 멈추는가 싶더니 대열 전체의 이동이 중단되었다.


"전 격대및 중대을 다시 기대마로 철수한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서 서로 쳐다볼수 밖에 없었고, 바로 대열을 돌려서 기대마로 철수를 했다.(내심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작전 계획을 바꿀 예정인가?"
"어쨌든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바로 기대마로 돌아온 후, 타중대 혹은 타 격대에 있는 동기들이나 수하나들에게 물어봤지만 자신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부대장지휘차에 있는 본대작전반 대원에게 물어볼 시기도 아닌 거 같고..



"지하철노조 상황이 내일이 본게임(?)이라 내일도 전중대가 서울로 집결인데, 이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

"어차피, 지금은 대장격대들은 복귀했고 부대장격대들만 나와있으니 내일은 대장격대들이 일선에 서지 않을까 싶다."

"그럼 우리처럼 대장격대였다가 부대장격대로 팔??중대들은?"
"내일은 부대장격대로 출동나가겠지.."




막상 기대마로 돌아왔지만, 다시 작전이 개시되는건지 아니면 어떻게 되는건지의 상황을 모르겠으니 긴장되면서도 지루한 대기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청무전망으로 "모든 부대장격대들은 건국대로 이동!"이라는 지시가 내?都?


단순한 이동명령이었지만, 계속되는 대기보다는 약간이라도 움직이는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새벽 3시가 넘은 상황에 다시 모든 부대장격대들이 건국대로 이동을 했고,

"도대체 무슨 일로 다시 건국대로 이동인가?"
"설마 다른 시위대가 건국대로 진입하나?"(노조 시위대들 원래 운동권학생회와 연관
되어 학캠퍼스를 아지트로 삼을때가 많이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건국대 주변에 도착을하니, 일단은 대원들을 잠시나마 취침을 취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챙들에게 불침번을 담당을 하고(무전청취를 해야 하므로, 하급기수에게는 철야시 불침번을 안 맡김.) 차초를 세운 후에 주변분위기는 다시 고요해젔다.


챙들이 이렇게 야간에 불침번을 서지만, 잠자는 시간이 좀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근무시간동안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잡담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불침번 근무 자체를 좋아하는 대원들도 상당수 있다.(분대장이나 열외가 잠이 안오면 짱박아 놓은 먹을거나 야식으로 분위기도 화목해지기도 하고..)


난 하도 신경을 써서 그런지 건국대 도착후 혹시 무슨 일이 발생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무전기 역시 조용했고 나 역시 챙들과 몇마디 잡담을 하다가 새벽 5시쯤 기대마로 가서 잠을 잔거 같다.




"야, 근무교대자 깨우지 말고 잘사람은 자고 깰 사람은 알아서들 해 둬라. 어차피 내가 깨 있으니 근무자 한명 줄여도 상관없지 않냐?"

하긴.. 말은 이렇게 했지만 5시쯤 내가 기대마로 들어가서 잘때쯤 일어나서 나온 후임이 잔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 후임이야 고맙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정작 그넘이 잠자리에 든 시간을 따져보면 그런소리 듣기도 민망한 시간이고....



눈을 좀 붙이고있을때 쯤, 갑자기 서울청 경비망 무전이 터졌고 재빨리 눈을 떠서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니 나오는 무전내용은.


"금일 철도노조관련 시위상황은 협상타결로, 시위계획 자체가 전면 취소가 된 상황이다. 따라서 금일아침까지 철야를 나온 중대들에게는 수고했다는 치하종시를, 부대에서 출동대기중인 나머지 중대들에는 경력취소로 인한 경력조정후 다시 출동계획을 조정하겠다."


무전을 듣고나자, 휴식과 취침부족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우리들을 생각하면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지만, 근 이틀간을 정신없이 지낸걸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허탈했다.


"결국은 어제 기지창 진입작전이 중단 된건 막판 협상에 기대를 걸어서였던가?"


바로, 부대장지휘차에서도 연락이 왔다. "얘들아 돌아가자, 아침밥은 부대로 다시 가져가서 먹는다."(출근시간에 길거리에서 배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민폐 덜 끼치고 좋을거 같기는 하다.)


어차피 본대에 같이 숙영하던 중대야 상관없지만, 타 기동대에 있던 동기들과는

"언제 보냐?"
"담에 큰 상황벌어지면 보겠지, 아님 시설근무때나~"

"낼모레 토요일에 큰 상황 있기는 하다더라."
"여의도에서 보겠군."



결국 근 이틀간의 반복적인 긴장된 이동및 작전이 있었지만, 결과는 "협상타결로 인한 작전종료"였다. 결국은 아무일도 안벌어진거다, 물론 대원들도 노조시위대도 아무도 다친사람은 없었기에 가장 바람직한 결과가 발생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한 일이었다. (남들이 보면 꼭 내가 폭력에 중독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날 야밤의 거의 아무런 계획도없이 진행되다시피 한 기지창 진입작전을 생각해보면 아무일없이 끝난게 정말 다행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만일 다음날 시위가 벌어졌다면, 천상 우리들도 출동을 나가야했을터인데 아마 이미 상당수 떨어진체력으로 상황대비 자체가 힘들었을 거다. 물론 전날 철야를 한 부대장격대들 보다는 부대에서 잠을 잔 대장격대가 일선에 섰겠지만, 시위상황이라는 건 변수가 많아서....





가끔 서울청이 아닌 타지방청의 전의경중대들의 작전을 보면서 "과연 저런식의 작전계획을 세운 넘들은 누구인가? 아니 계획 이라는거 자체가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반면에 서울청의 작전의 경우는 소수의 경찰이 상대적으로 몇배의 시위대를 상대해야 하는 만큼 치밀한 작전을 바탕으로 한 작전이 이루어지게 마련인데, 전날의 기지창진입작전 역시 도대체 왜 대규모의 경력들이 계획도 준비도 없이 야간에 기지창으로 진입작전을 벌여야 했는지도 난 지금도 의문이다. 만일 시위대와 접전이 붙었다면 작전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상당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었으리라.





사실, 난 이당시의 작전계획이 전달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 우리 신임중대장을 상당히 의심하고 있다. 왜 직장상사던 군대고참이던 간에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아랫사람의 조언은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상급자라는 걸 내세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걸 자신의 권위를 확보하는 수단이라고 생각을 하는 부류. 그리고 모든 계획을 자신만이 독점하면서 이런 독점 자체를 자신의 권위확보라 생각하면서 절대로 주변사람들과 공유하지 않고 만일 일이 잘못되었을경우 주변사람을 나무라는 경우 말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겪은 우리중대장이 이런 스타일이었다.


어쩌면 우리중대장이 평소의 습관대로 "중대장의 권위확보"라는 생각으로 작전계획자체를 알려주지 않는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고는 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거라고 본다.(경찰대 출신의 전임중대장님이 정말 좋은 경찰관이자 좋은 지휘관이었다.)
-유용원군사세계-11713463496376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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