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근무형태및 규모가 우리때와는 전혀 다르게 변경이 되서 근무가 돌아가고 있지만(지금 이야기해도 보안에 걸릴게 없다는 이야기다. ^^)
내가 군복무하던 시절 서울청의 경우는 각 기동대별로 전담시설경비 근무가 존재를 하고 있었다.(이때는 방범순찰대에게는 중요시설경비근무를 안 시키던 때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 세운다. ^^)
1,2,3,4기동대+특기대 이렇게 5개의 기동대(56개중대)에서 유일하게 전담시설경비근무가 없는 기동대가 가장늦게 창설이 된 특기대였었다.(특기대는 96년 이후에 창설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서울청소속 경찰서 방범순찰대31개중대도 제외하고. )
따라서 특기대의경우는, 당일경력에 시설경비근무가 떨어지면 그날만와서 철야근무를 서고 부대로 복귀하던가 아니면 상황을 나가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1~4기동대의 경우는 1개중대이상 고정배치가되서 시설경비근무를 서야하는 근무가 존재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설경비근무의 경우는 두가지로 구분이 된다고 보면 된다.
(1) 시설중대 전담 근무
(2) 각 진압중대별 순환근무
(1)의 시설중대 전담근무의 경우는, 특기대를 제외한 1,2,3,4기동대에는 1~2개 이상씩의 시설경비만을 전담을하는 시설중대가 365일 고정경비근무를 담당한다.(기동대소속이지만, 시위진압임무는 전혀 안나가고 중요시설경비근무 만을 담당한다.)
그리고 1,2,3,4기동대중에서 시설전담을 맡은 중대가 가장 많은 곳이 4기동대가 가장 많다.
1기동대
모 중대가 한나라당 전담이었다는데...
2기동대
1715중대(전경)=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대.
3기동대
1030중대(의경)= 퇴임 전직대통령 사저 경비대
1038중대(의경)= 퇴임 전직대통령 사저 경비대
4기동대
1052중대(의경)= 퇴임 전직대통령 사저 경비대.
1056중대(의경)= 여당당사 경비대.
1606중대(전경)= 외국공관경비대.
1607중대(전경)= 경찰청 경비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아예 전담 시설경비중대를 배치하는 곳도 있지만, 반면에 (2)의 경우와 같이 해당기동대에 중요시설과 관련된 시설경비근무가 배정이 되서 진압중대가 1개중대씩 돌아가면서 순환식으로 한달간 근무를 서야 하는 임무도 있었다.
1,2,3 기동대가 이런 경우였다고 보면 된다.
1기동대.
= 1기동대의 경우는 해당경비섹터가 바로 미국대사관이었었다. 1기동대소속 진압중대중 1개중대가 돌아가면서 한달간의 미국대사관경비 전담근무를 맡아서 해야 했었다. 주간에는 광화문타격대근무로 출동나오는 다른 기동대소속 중대와 합동근무를 전담하므로 주간에는 2개소대가 근무, 광타중대가 철수를 한 야간에는 주간에 휴식을 취하던 1개소대가 철야근무를 선다.
따라서 1기동대의 각 중대들은 한달간의 미국대사관 시설경비근무를 들어올 경우 입을 "시설복"이라 불리던 사복을 두벌씩 보급을 받았었다. 복장이 확연히 구분이 되었었으므로 우리 아버님께서 광화문으로 나를 면회를 오셨을때 "저 옷이 다른 애들은 임무가 뭐냐?" 라고 물어보기도 했었다.(하지만 1,2,3중대는 미대관전담근무에서 제외되었었다. 얘들은 외국에서 높은 사람오면 시범도 보여야했고 시위상황에서 최고 선봉에 서면서 나름대로 히든카드의 개념도 있었다.)
2기동대.
= 2기동대의 경우는 해당경비섹터가 바로 청와대진입로담당이었다. 코롱주차장이라는 곳에 한개중대가 근무를 나와서 서야 하는데 이 근무 역시 한달간의 진압중대별 순환 근무였었다. 코롱주차장을 볼때마다 느끼는 거였지만 정말 좁았다. 도대체 거기에 어떻게 1개중대의 기대마가 주차를 하는지... 게다가 2기동대 섹터의 경우는 서울청/정부종합청사/경복궁 지하철역이 가까워서 청와대와 관련한 기습시위가 벌어질 위험이 많았다.
3기동대.
=우리 3기동대의 경우도, 해당경비섹터가 바로 2기동대 반대편의 청와대 진입로 담당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대마를 경복궁내부의 주차장에 대기를 했기 때문에 도리어 좋은 점도 있었고 나쁜 점도 있었다. 우리도 한달씩 돌아가면서 근무를 섰었다. 대략 9개월에 한번 돌아왔나? (당시 3기동대소속 진압중대가 30,31,32,33,34,35,36,37,39 이렇게 9개 중대였으니까 대략 9개월에 한번씩 근무를 섰었다고 보면 되겠다.)
1기동대의 경우는 미국대사관 시설경비를 들어가는 중대는 한달간 시설복이라 불리는 사복을 입고 근무를 섰었지만, 반면에 청와대진입로 경비를 들어가는 2,3기동대의 경우는 시설복이 아닌 경찰근무복을 입고 근무를 섰었다. (청와대 경비대인 120경비대 애덜이 사복입고 돌아다녔음.)
이 청와대진입로 경비라는 걸 맡게되면, 근무 전날인가? 중대지휘관들과 수하나들은 기동단으로가서 교양을 듣게되고 다음날부터 한달간의 지루한 근무를 서게 된다.(교양은 철저하게 받지만, 어차피 이미 수하나들의 경우는 2번정도의 근무를 섰었던 짬밥이므로 교양을 안받아도 대충의 내용을 숙지를 하고 있다.)
이렇게 고정적으로 한달간의 시설경비근무에 들어가게되면, 해당 중대는 서울에서 아무리 대규모의 시위상황이 발생을해도 그 시위와는 상관없이 경비근무만을 계속 서게 된다. 어찌보면 9개월에 한번씩 쉬라고 내려주는 참으로 한가하고 편안한 근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한달간 경비근무만을 서야 하므로, 한달 후 근무교대를 하고나면 해당중대의 전투력이 좀 약해진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를 하고 있다. (한동안은 기동대장이나 부대장소속 타격대로 데리고 다니지를 않아서, 소위 말하는 비격대소속 중대의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대략 1~2주 정도 또 훈련 빡시게 굴리고 나면 원래의 전투력은 회복은 하지만, 그 기간동안은 대원들 입에서 개거품을 물 수 밖에 없다.
뭐, 그렇다고 훈련을 안 하는 건 아니었다.
2기동대의 경우는 말그대로 정말 손바닥만한 주차장에서 중대원들이 대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3기동대의 경우는 그 넓디넓은 경복궁주차장+앞마당이 우리의 대기장소였으므로 훈련을 거기서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복궁에 찾아온 관광객들이 전부 빠져나가는 대략 7시이후에는, 근무자를 제외한 전중대원들이 집합해서 훈련을 한다고 부산을 떨었는데 원래 이 기동대의 훈련이라는게 훈련하면서 복명복창뿐만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훈련을 해야 하고(실제 상황에서도 이렇게 악을 쓰면서 진압을 하니까..)
게다가 우리때는 방패짱의 "대열정비!"라는 구령에 전중대원들이 미친넘들처럼 악을 써가면서 방패를 머리위로 들어올렸다가 세로부분을 땅에다가 찍어서 위력과시를 하는 동작이 존재를 하고 있었다. 1개중대원들의 방패를 땅에다가 찍어서 위력을 과시하는 동작이 일사분란하게 맞아들어가니 소리는 좀 큰 정도가 아니었다.
소리의 크기만 차이가 있을 뿐, 1명이 치는 소리나 1개중대가 치는 소리나 똑같이 난다.(이거 동작안맞으면 그날 깨스다...) 하긴 대장/부대장 타격대소속 3개중대씩 연합훈련을 할때는 해당 중대들이 방패를 찍는 소리가 한번에 딱 맞아 떨어진다.
그러니, 그 관광객들도 빠져나가고 저녁무렵의 조용한 시간대에 100명이 넘는 인원이 거의 미친넘들처럼 고래고래 악을 쓰고 다니면서 방패를 찍어대니, 저기 지붕파란집 경호실에서 당장에 관할경찰서인 종로경찰서로 연락을 하고는 했었다.
그러니 놀란 경비과장이나 경찰서장이 당장에 우리들 훈련을 중단시키기위해서 달려 올 수 밖에 없었고,
"왜 3기동대는 각 중대들마다 매달 돌아가면서 이 지뢀들이냐~~!"고 혼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경찰서장=기동대장. 경찰서 과장급=기동대부대장.
이렇게 동급의 계급을 지닌 높으신 분들이 직접 행차하셔서 입에 거품을 무는판에, 과장보다 한계급아래의 경감인 중대장들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냥 찌그러져 있어야지...
이 종로경찰서의 경비과장님이나 경찰서장님이 당시에는 입에 거품을 물망정 이렇게 훈련을 하는우리들을 잘 봤는지는 몰라도 상황출동을나가면 항시 우리 3기동대를 일선에 세우고는 했었다.(작년 05년당시의 종로경찰서장은 3기동대를 너무 싫어해서, 2선으로 뺀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었다.)
우리에게는 훈련이라는게 힘든 일이었고, 또한 저기 높으신 분들에게는 진땀날 정도로 혼날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훈련을 지켜보며 사진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좀 즐거운 일이었나 보다.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사진촬영을 하기도 하고, 같이 기념사진을 찍자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진압복에서 나는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을 터인데...)
당시 외국관광객들이 우리들을보구
"당신네들은 어떤걸 주임무로 하는 경찰입니까?"라는 질문에
"we are auxiliary riotcop"(우리는 시위진압을 하는 경찰기동대 의경입니다.) 이라는 말을 하고는 했었으니까.
우리야, 당연히 훈련이라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정작 10 여일 정도지나고 우리들의 눈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다는 걸 느낄때쯤이면
"아~ 훈련을 하자고 건의를 해야 겠구나."
"이러다가 중대 나가리 되는거아냐?"
"타격대에서도 쫓겨나서 비격대중대로 갈 수도 있다."
라는 위기의식에 잡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쩌랴, 한번만더 종로경찰서로 연락을 오면 그때는 상상에 맡기겠다는 종로경찰서의 엄포가 있었는데 말이다. 같은 총경계급이라도 종로경찰서장은 우리의 지척에 있었고 우리의 두목 3기동대장님은 저기 수서에 계셨으니...)
뭐, 그럭저럭 한가한 근무였지만 저기 경복궁주차장에 대기를하면서 안 좋은때 중 한가지가 바로 밥차가 와가지고 배식을 할때 우리를 경악하면서 쳐다보는 관광객들의 시선이었다.
우리중대의 숙영지인 3기동대 본대(송파구 문정동/ 수서역)에서 밥차가 출발을해서 경복궁 주차장까지 온다. 밥차가 오면 천상 경복궁주차장내에서 배식을하고 밥은 기대마내에서 먹어야 하는데 우리가 밥을 배식받는 모습을 보는 외국인들의 시선이 흥미 반/경악 반 이었다는거다.
하긴, 성인 남자 한명 몸눕히기도 비좁은 배식용 천막을 설치해놓구, 거기에 한개소대병력들이 왕래를해가면서 배식을 받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놀라기도 하겠지만 말이다.(아마, 근무복만 아니었으면 무료급식소에서 무료급식을 받는 거지떼인줄 알았을게다.)
반면에 가끔은 이벤트도 있었다. 일종의 알바의 개념이라고 해야할까?
경복궁에서 무슨 복원행사라던가, 사극촬영이 있으면 말잘듣고 단번에 다수의 인원을 급조하기쉽다는 이유로 우리중대 기대마로 행사/촬영팀의 섭외 담당이 와서는 인원지원을 요청하고는 했었으니 말이다.
"그냥 분장하고 서 있어주기만 하면 됨다~~, 출연료+식사제공 다합니다." 라는 말로 중대장님께 허락을 구하면 중대장님께서는 근무자+ 적정대기인원을 제외하고 대략 소대당 5~6명씩해서 20명이 약간 안되는 인원들을 행사장으로 보내주고는 했었다.
뭐, 그래도 아침에 갔다가 점심때 조금 지나서는 행사/촬영마치고 기대마로 복귀를 했지만 말이다.
이들이 갖고 온 촬영비의 경우 70%정도는 그 대원이 갖고, 나머지 30%는 출동지에서의 간단한 과자파티의 비용으로 사용을 했었다. 어차피 그 대원이 서지못한 근무를 다른 대원들이 대신 서줬고 하루종일 기대마에서 대기를 하는데 약간의 주전부리는 아무래도 가축적인 분위기를 가족적인 분위기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촬영가면 뭐 하냐?"
"그냥 분장해준다고 송진을 발라주는데, 이거 장난아니게 얼굴 가렵습니다~~"
"밥은 뭐 나오구?"(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
"도시락 나옵니다. 근데 큰 상황때 우리들 먹으라고 나오는 도시락이 더 좋습니다."
"야, 그래도 찐밥이 아니라 밥솥에 한 밥 아니냐?"
"사실, 밥솥에 한 밥이라 그런지 먹구나면 인간적으로 먹은 한끼식사다 싶은 생각은 듭니다."
"그나마 다른 엑스트라들이 안먹는다고 밀어 놓는거 우리가 다 대신 먹어 주기도 합니다."
"남긴 것도 집어먹는다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설마 그런 넘이 있다는건 아니겠지?"(순간 그넘 흠칫 놀라더니, 물끄러미 막내를 쳐다본다.)
"오늘 저녁에 막내넘 밥 많이 줘라. 반찬하고 국도 팍팍 밀어주고."
"내 저넘 밥먹는거 보면 꼭 배고파서 입대한 넘 같으니...."
"하긴, 저 덩치 유지하려면 먹기도 많이 먹어야 겠지, 몸싸움할때 시위대 새퀴덜이 저넘은 피해서 미는 거 봐라..."
"솔직히 이런 말까지 안 하려구했지만 말입니다. 저넘 분장한다고 수염붙인 얼굴로 다른 사람이 안먹는다고 밀어놓은거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얼굴보면 정말 눈물납니다. 그러다가도 설마 저넘 쓰레기통 뒤지는거 아닌가 싶어서 나름대로 관망도 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걸리면 개망신 아닙니까?"
"막내야, 여기있는 과자하고 음료수 그냥 네가 다 먹어라..."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이 단역의 역할도 보직에 따라 틀리단다. 좀 움직일 수 있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면 괜찮은데 허리를 대충 30도 정도로 숙이고 있어야하는 대신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그냥 몇시간동안 그자세로 굳어 있어야 된다는거다.(과거 북한에서 했다던 1000삽뜨고 허리 한번펴기 운동에 버금가는 중노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쩐지, 우리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다 있었구만..."
"제가 이거 한번 다녀올때마다, 우리 조상들의 인내심에 감탄을 한다는거 아닙니까?"
"하긴, 예전에는 조선8도를 걸어서 돌아다녔으니, 당시 조선군사들의 행군량에 비하면 특전사의 천리행군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특전사 출신 우리중대부관님의 레파토리 중 한가지= 내가 특전사시절에 천리행군을 할때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근무를 서고, 대기를하고 어느때는 관광가이드 노릇도 하지만 서울시내에서 대규모 상황이 발생을 하게되면 시위대가 언제 청와대로 밀고 들어올 지 모른다는 가정이 생겨서 우리들도 부대로 복귀를 안 시켜준다.(아직까지도 종로나 대학로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주장하는 바의 마지막은 청와대로 밀자고 하는판이니... 내 세상에 sofa개정과 관련해서 청와대로 밀어파와 미국대사관으로 밀어파가 의견충돌로 나중에는 서로 맞장뜨다가 조금 더 맞은 넘이 우리들에게 와서는 "경찰 좀 불러주세요~" 라는 말을 하는 뭣같은 시츄에이션도 있었다.)
그때야 하염없이, 언제 끝나려나 싶은 상황을 무전으로 청취를 하면서 부대복귀시간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해는 져서 주변은 어두운데 사람하나 없는 경복궁주차장이 의외로 썰렁하게 다가오니....
어느때는 시위대의 일부가 청와대로 밀고 들어올 수도있다는 말에 전진배치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진압중대덜이 모두 막아주고 있으니 그냥 목길만 차단하고 뻗치다가 복귀를 하기도 하고...
어느때였더라?
하루는 일몰 후인데, 거의 부대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져 가는무렵 갑자기 종로경찰서 무전망으로 부터 다수의 시위대가 청와대쪽으로 이동중이라는 무전내용이 청취되었다.
들리는 내용이 국군기무사령부 옆길을 통해서 다수의 시위대가 청와대쪽으로 진입을 했고, 최외각초소에서 시위대의 이동을 발견하고 바로 경비대+종로경찰서에 보고를 한 거였다.
그 당시에는 그쪽 길로 돌아오면 우리 근무자나 청와대 경찰경비대의 최고외각 초소보다 훨씬 전진배치 되어있는 경찰관근무자의 시선을 피해서 진입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이 경비지원을 나가는 기동대 진압중대의 기대마가 경복궁이아닌 외각초소부근에 대기를 한다. 따라서 요즘같은 배치에서 는 이 글에서 우리가 겪은 골목길을 통한 시위대의 침투는 거의 불가능 해진다.
"시위대? 이시간에?"라는 생각에 무전에 귀를 기울이면서 바로 주변대원들에게 "조용!, 열 스물 서른 하차준비! 기습시위대가 진입하다가 발각되었다는데 우리근무지 같다!"라는 말을 하면서 바로 지휘관들에게 상황을 보고할 때 쯤
종로경찰서 무전?【??우리중대에게 이들을 차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전원 하차! 하차!"
"열,스물, 서른 각자 준비되는데로 장비들고 뛰어!"
"중대 뛰어!"
"뛰어!"
이렇게해서 전대원들 바로 장비들고뛰는데 기무사령부정문 맞은편에 있는 경복궁박물관인가? 하는 출입구쪽에서 시위대를 차단을 하게 되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경복궁이 문만 안닫았어도 더 빨리 차단을 할 수있는 경복궁내부에서 통하는 지름길이 있었지만, 경복궁이 폐장을 했으므로 그 미술관이 산재해있는 거리를 통해서 시위대의 뒤를 쫓아서 차단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게 또 만만치 않게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게 우리를 힘들게 했다.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시위대의 뒤를 쫓으면서 이들을 앞질러서 차단을 한다는게 쉬운게 아니었다. (우리의 존재를 파악하는 순간 시위대도 같이 뛰는 판이니 거리는 더 벌어지게 마련이니.)
하지만, 우리는 시위대를 앞질러서 차단을 했다.
숨을 몰아쉬면서 바로 시위대를 인도에서 "ㄷ"자형태로 차단을 했고 뒤이어 연락을 받고 달??종로경찰서 경비과장과 경비과/정보과 형사들.
그리고 비슷하게 달??청와대경비대소속 전투경찰들.(대략 두개분대정도? 사실 예전에 청와대경비대에 의경중대가 있을당시에는 이들 전투경찰들보다 출동속도가 더 빨랐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이 어떤거였는지는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난다. 확실히 기억하는건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겠다는거였나?
우리는 막고있고, 시위대는 가겠다고 하더니 약간 우리들을 밀려구하다가 부대로 복귀할 시간에 이렇게 야간구보를 한 후의 언짢아진 우리들의 표정을 본 시위대측에서 그냥 돌아가겠단다.(내일 다시오겠다나?) 게다가 종로경찰서 경비과/정보과 형사들의 탁월한 협상능력도 있었고....
지금도 느끼는거지만 종로경찰서/영등포경찰서의 경비과/정보과 형사들의 능력은 대단하다못해 타의추종을 불허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하야, 돌발상황 대비차원에서 일정한 거리까지는 시위대를 둘러싼채로 시위대의 해산을 유도했고 이들의 해산을 지켜본 후 우리도 기대마로 승차를 했다.
우리가 둘러싸고 가는거에 대해서 시위대측에서 약간의 항의가 있었으나, "그냥 경찰들이 에스코트해서 경호하듯이 둘러싸고 간다고 생각하십시요, 꼭 높은 사람 된 기분아닙니까?" 라는 경비과장의 반 농담에 그냥 시위대도 수긍하고 가더만....
시위대야 일단 청와대부근에서 해산을 했지만, 언제 다시 야간에 기습시위가 벌어질 찌 모르는 상황이라서 시위대의 완전해산이 보고가 되고, 지하철의 운행이 완전 종료가 된 이후에 우리중대도 부대로 복귀를 했다.
9시쯤에 부대로 복귀하기위해 출발을하는게 정상적인 복귀인데 지하철운행마감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부대복귀시간에 상관없이 다음날도 어김없이 정상적으로 이곳으로 출동을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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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근무지에는 기무사령부가 포함이 되어 있었다. 아니 기무사령부 앞길도 포함되었다는 말이 맞겠다. 물론 우리가 근무에 관한 교양을 들을때 기무사령부를 상대로 기습시위가 벌어질 경우 대처하라는 지시를 받지는 못했다.
정작 기무사령부를 보면서는 "도대체 저기가 뭐에 쓰는 곳이냐?" 라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심지어는 "기무대? 먹는거냐?" 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이건 기무대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군복무도중에는 전혀 마주칠 일이 없는 곳이므로 우리와 는 관계가없는 곳으로 생각을 했으므로 기무부대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보면 된다.
육군들도 무궁화4개의 총경계급인 우리 기동대장님을 가리키면서 무궁화3개는 대령인데 무궁화 4개는 뭡니까? 라는 질문을 하는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육군을 잘 모르는 만큼 육군도 우리를 잘 모르니 당연한 거였다. 마주칠 일이 몇번이나 있었겠는가?
실제로, 나도 전역후 몇년동안은 기무대에서 근무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대체 기무대와 헌병대의 차이가 뭡니까?"라는 질문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35사단 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입소했을당시, 기무대라는 곳에서 차가 나오면서 "너네들 고생한다~!"라면서 선탑자가 사탕을 주길래 "기무대라는 곳이 뭐하는 곳입니까?" 라는 질문을 했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여기? 놀구 먹는데야."라는 답변을 들었으니 더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긴, 특전사 출신덜에게 부대에서 뭐했냐? 라는 질문을 하면 "어~ 그냥 산속에서 길만들면서 걸어다니던가 뛰어다녔던 거 같애" 라는 말 밖에 안한다.
가끔 기무사령부의 문이 열리는게 보였는데, 기무사령부의 내부가 잠깐 보이면 입초근무자 1명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도통 보이지를 않았었다. 오죽했으면 "폐건물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썰렁했냐면, 한여름에도 기무사령부 앞길 근무자는 싸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 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 입초근무자 근무교대인지 이동인지를 할때는 앞발을 무슨 중국권법 팔극권의 "진각"을 하듯이 "쾅~!" 내리찧고 이동을 하는데,
"저 넘, 전역후 트라스트 판매량증가에 일조를 하겠구만.."
"저렇게 교대를 하는 걸보니 안에 사람들이 있기는 한 가 봅니다?"
지금? 기무대에 대해서는 알려줘도 싫다. 어차피 보안아니겠는가?
-디펜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