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니]여동생을 사랑하는 법

땅콩이병장 작성일 07.02.22 1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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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전 늘 어머님만 보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 있었습니다.




혀니 : 엄마 밥줘


어머니 : 밥먹은지 한시간도 안지났다 붕어시캬.


혀니 : 그럼 언제 밥 또 먹어?


어머니 : ...




물론 20여년이 훨씬 지나 한층 성숙된 지금엔 많이 달라졌습니다.




혀니 : 어머니 밥 좀 주시겠습니까?


어머니 : 니 나이때면 나 말고 다른 여자한테 "여보 밥줘"그래야 정상 아니냐?


혀니 : 네...그 답변은 일단 밥부터 먹고 하는게 어떨지...


어머니 : 밥통에 밥, 냉장고에 반찬...너 두손, 두다리 튼튼... 셀프다...


혀니 : ...




30여년 기나긴 인생역정속에 한결같이 먹여주시는 어머님께 이자릴 빌어 감사드립니다.(__)




그리고 밥달라는 말 다음으로 많이 했던 말이 하나 더 있었죠.




혀니 : 엄마 백원만...


어머니 : 이런 말ㅗ도쳐 안ㅕ듣는ㅇㅎ 시키....없어 이 녀석아


혀니 : 그냥 쉽게 없다고 하시지...




물론 쉽게는 안주시죠.

그럴땐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면 한결 수월하게 백원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아버지의 얼굴을 뵙기가 어머니에게 백원을 얻기 보다 힘든다는데에 있습니다.




창피하지만 간혹 여동생의 저금통에서 몰래몰래 한개씩 두개씩 동전도 훔치기도하구요.

전 선천적으로 돈을 모을줄 몰라 저금통이란 아이템 자체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럴때마다 다음에 오빠가 성공하면 꼭 갚아주마라는 다짐을 꼭 해두곤 했습니다.




여차저차 어렵사리 백원을 구하고 나서 달려가는 곳은 동네 문방구안에 딸린 작은 오락실.

오십원짜리 쫀드기를 하나 사서 연탄불에 미디움으로 굽고 남은 50원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오락기앞에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오락을 하는 아이들보다 돈이 없어서 구경만 하는 아이들이 더 많은 그곳에서

전 구경하는 아이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애써 의식하며 거만한 자세로 쫀드기를

먹는둥 마는둥 아낍니다.




이유는 한가지죠...

오락을 하면서 쫀드기를 물고 있으면 오락하는 품위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다는거...

요샛말로는 간지가 철철 넘친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렇게 귀족적인 행동을 할때보다 남들의 귀족적 행동을 구경할때가 더 많았으니.

일찌기 경제적 소외감을 피부로 경험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늘 빈털털인데다 오락은 죽도록 하고싶고, 걸어다니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다들 파리같고 모기같고 하늘에서 우주선이 내?暠?거미줄을 펼쳐서 날 데려가지나 않을까.




마치 당구에 처음 맛들인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통들이 다 당구공처럼 보이는것과도

같은 현상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던 어느날,

동네 친구녀석이 좋은걸 보여주겠다며 절 동네골목으로 끌고 가더군요.

전에도 녀석은 그 골목에 절 끌고 가서는 늘씬한 서양누나들의 민망한 사진을 제게 보여줘서

3박 4일을 그 누나들의 환영에 잠 못이룬적이 있었습니다.




녀석 : 혀니야 이게 뭔지 아냐?


혀니 : 그게 뭔데?


녀석 : 이거 윗동네 중학생 형아가 준건데 이거만 있으면 오락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혀니 : 뻥치지마 그런게 어딨어~(암만 생각해도 이건 제가 원조같습니다.)


녀석 : 새끼 안믿네 따라와봐.




그리고 동*락실로 데려가더군요.

녀석은 주인아저씨의 행동을 주도면밀하게 살피고 갈고리모양의 자전거 브레이크줄로

동전구멍을 사정없이 쑤셔대자 신기하게도 코인이 쭉쭉 올라가는것을 목격하였습니다.




혀니 : 거래하자.


녀석 : 제시.


혀니 : 딱지 100장, 그리고 백구슬 열알.


녀석 : 약해.


혀니 : mbc청룡 선수들 싸인카드에 5반 민정이네집 전화번호.


녀석 : 딱 하루만이다.




세상을 다 얻은것 같았습니다.

제일 먼저 동생에게 달려가서 어마어마한 득템을 자랑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달리 제 동생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오락을 시켜준다고

하여도 싫다고 그러더군요.




동생 저금통 턴 죄값을 치루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것에 스스로 만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돈한푼 없이 실컷 오락을 즐기다 해가 져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시작되는 어머니의 무차별적이 회초리신공에 전 그만 신음 소리한번 못내고

그자리에서 기절한 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눈 사이로 보여지는 동생의 알듯 모를 듯한 미소...

진정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자전거브레이크줄은 어머니께 빼앗기고 전 다음날 녀석에게 약속한것 이외에도

두달동안 가방을 들어주는 노예계약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습니다.




그후로 전 동생의 저금통엔 손도 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생일엔 선물같은거 하지말라고도 말했죠.

그건 물론 동생의 생일에 선물을 주지않으려는 얄팍한 꼼수임은 두말하면 목아픕니다.




그때 생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매간의 우애가 사소한 자전거브레이크줄 하나로 갈리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서로 물질적으로 왔다갔다 하는건 잘 없지만 동생을 사랑하는 제 마음만은 아직 따뜻합니다.

물론 제동생은 자기는 아니라고 잡아떼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지가 어쩔겁니까?...지피나 내피나, 지살이나 내살이나, 같은곳에서 온걸...;;







갑자기 어릴적 추억이 떠오른건 며칠전 피시방에서 본 꼬마아이들 때문입니다.





한가한 오후에 뭐 마땅히 할일도 없고해서 동네 피시방엘 찾아갔습니다.

방학이라 그런지 피시방은 아이들로 무척이나 붐비더군요.




어렵사리 빈자리 하나를 꿰차고 앉아 컴퓨터를 켜고 이것저것 확인하는데

어두운 가운데서도 빛이 날 만큼 예쁘고 귀여운 아가씨가 마침 빈 옆자리를 청소하더군요

새로온 알/바생인것 같았습니다.




예쁘고 귀여운데 가만 있으면 사나이의 도리가 아니다란 판단이 들더군요.

지체없이 바로 약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습니다.




혀니 : 새로 오셨나??


그녀 : 네.


혀니 : 네 저도 여기 두번짼데.


그녀 : 네?


혀니 : 아니 전에 처음 왔을때 거 왜 얼굴 얍삽하고 머리는 닭벼슬 머리에 수염은 염소수염하고

까만 뿔테안경인가 낀 알/바생이 영 친절치가 못해서요...오늘 보면 한마디 해주려고...



그녀 : 저분?



그녀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보니 카운터에 게으르게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혀니 : 헛...네 맞아요 저시키...불친절한 시키...


그녀 : 사장님이신데요.


혀니 :;;;;;;;;;;;....커피 한잔만 부탁요.


그녀 : 셀픈데요.


혀니 : ;;;;;;;;;;;;;...자판기가?



그러자 그녀는 입술로 쫑긋거리며 출입구를 가르키더군요.

말이 심하게 짧은 아가씨였습니다.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그러나 참았습니다.

이쁘니까 용서가 되더군요.




뻘쭘하지만 그래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채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치워진 제옆 빈자리엔 꼬마손님이 자리를 잡으시더군요.

대여섯살이나 되보이는 여자아이, 그리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간의 대화를 들어봐선 남매같았구요.




하필 흡연석으로 자리잡은 이 철없는 아이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피시방을 둘러 보니 역시나 빈자리가 없더군요




혀니 : 꼬마야 자리가 없니?...니네가 여기 있으면 형아가 담배를 못피는데.


사내아이 : 자리가 없어서요...그냥...피세요 저흰 괜찮아요.


여자아이 : 아저씨 담배 나빠요, 피지마세요.


혀니 : 이 녀석이 당돌하게...아저씨가 아니고 오빠...오빠 알지?


여자아이 : 우리 아빠하고 비슷해 보이는데요


혀니 : ;;;;;




다신 이 피시방엔 안오리라 다짐했습니다.




꼬마녀석들 때문에 담배도 못피고 입안이 심심해서 오다리를 하나 사서 씹고 있었습니다.




여자아이 : 오빠 나도 오징어


사내아이 : 오징어 말고 조금있다가 오빠가 라면 사줄께.


여자아이 : 나도 오징어 먹고싶다.




그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유난히도 까맣고 반짝이는 여자아이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순간 흠칫 놀라 들고있던 커피를 쏟을 뻔했습니다.

그리곤 꼬마에게 씹고있던 오다리 하나를 들이댔습니다.



혀니 : 먹을래?...자 먹어.


사내아이 : 아저씨 괜찮아요 주지마세요.


혀니 : 괜찮아 임마 한번밖에 안빨았어.


사내아이 : 너 유진이 오빠가 뭐라 그랬어??...뭐 먹고싶다고 아무한테나 그러는 아니랬잖아.

그리고 오빠가 라면 사준다고 했잖아...




어린놈이 참 성격까칠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못내 아쉬운 듯 여자아이는 입을 삐죽대다가 어느새 게임 삼매경으로 빠져들더군요.




한 삼십여분의 시간이 흐른후...

여자아이 옆자리에 빈자리가 생겼는데도 사내아이는 앉을생각을 안하더군요.




혀니 : 임마 저기 자리 났잖아 다른 사람 앉기전에 얼릉 앉아라.


사내아이 : 아니에요 전 게임 안해요


혀니 : 아씨... 니가 옆에 있으니까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사내아이 : 죄송해요 저 뒤에 있을께요...그리고 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두 꼬마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여자아이 : 오빠 나 라면 안먹어도 돼...오빠도 앉아서 게임해.


남자아이 : 나 게임 안해도 돼...너 라면 먹어...점심도 안먹었잖아.


여자아이 : 그럼 이거 같이하고 라면도 나누어 먹어.


남자아이 : 아니야 괜찮아 오늘은 니생일이니까 니가 다해.


여자아이 : 오빤 배 안고파?


남자아이 : 이따 밤에 아빠 오시면 같이 저녁 먹으면 돼...




녀석들의 대화를 듣고 나니까 갑자기 가슴속을 뭔가가 후비고 지나가더군요.

그러나,

녀석들의 사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오지랖 넓게 동정심을 부려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섣부른 행동에 어린친구의 마음에 상처가 갈지도 모른다는 두?遲?앞서더군요.




이제 유치원이나 다닐법한 어린 꼬마의 키보드위에 얹혀진 손은 추위에 터서 까칠한 상태가

이루 말할수 없었고, 녀석들의 옷차림은 또래의 평범한 가정집의 아이들이 하는 옷차림과는

거리가 멀었고 조금은 남루하고 추워보이기까지 하더군요.




누군지도 모르고, 처음봤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이아이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전 아까 그 까칠한 알/바생을 불러 라면을 하나 시켰습니다.




혀니 : 출출한데 라면 하나만 해주세요 단무지 많이요...이것도 셀프?


그녀 : 아뇨 선불...천원




여전히 말이 짧은 그녀...

이쁘니까 한번더 용서 해줬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혀니 : 만수냐?...형이다...아까 말한거 어떻게 되었어?


동생 : 이거 또 시작이네...내가 만수냐?


혀니 : 알아알아...그래...지금?


동생 : 미치겠다 진짜...또 왜그러는데?


혀니 : 뭐야 급하다고?...나 라면도 시켜놨는데?


동생 : 어쩌라고 이 미친자야.


혀니 : 옆에 아무나 주고 오라고? 지금 급하다고?...바로 지금 가야한다고?


동생 : 끊어...졸려죽겠는데.


혀니 : 그래 급하다니까 할수 없군...마침 옆에 누가 있네...얘네들 주고 가면 되겠다.




전화를 끊고 전 사내아이에게 말을 했습니다.




혀니 : 형아가 지금 급한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부탁하나만 하자.


사내아이 : 뭔데요?


혀니 : 내가 지금 이거 선불로 끊었는데 두시간이 남았어.

그리고 라면도 시켰는데 못먹게 생겼네...아깝잖아...

니가 대신 좀 시간 채우고 라면도 좀 먹어주면 안되겠니?


사내아니 : 네??...그래도 돼요?


혀니 : 내가 아까워서 그래 너라도 해라...라면도 아까우니까 배불러도 그냥 니가 먹고...알았지?


사내아이 : 네 고맙습니다...아저씨.


혀니 : 아나 시키...형이라니까...그럼 형 간다.



모기 목소리만하게 안녕히 가시라는 녀석의 인사소리를 뒤로 하고 카운터에 불량스럽게 앉아있는

불친절한 사장시키한테 계산을 했습니다




혀니 : 저자리 꼬마들이요 두시간 더할건데 선불 계산해주시구요, 라면값도 해주시구요.

사장 : 사천팔백원요.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뭔가 울컥 하더군요.




혀니 : 아나 진짜 여기 사람들은 원래 다 그렇게 말이 짧아요?

그리고 요즘 커피 셀프하는 피시방이 어딨어?...여기 다신 오나봐라.




이시키는 안이뻐서 용서가 안되더군요.




심경이 복잡하다보니까 별게 다 트집이 잡히더군요.




물론 그아이들 제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구요.




갑자기 제 동생과의 앙금을 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다못해 제동생이 좋아하는 호빵이라도 몇개 사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앞 마트에 들러 제가 좋아하는 야채호빵3개 그리고 동생이 좋아하는 단팥호빵 2개를

고르고 나니 주머니에 돈이 없더군요...

그렇다고 고른걸 취소할 수 도 없고해서 마트 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제 동생 이름으로 외상지고 나왔습니다.







제 동생과 저...

이제 그만 어색함을 접어야 할건데 앞날이 캄캄합니다.






필요하다면 피시방에서 보았던 꼬마녀석에게 동생을 사랑하는법을

교육받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by hyu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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