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행시의 주인공이었던 건달들이 이번엔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바짝 다가온 가을을 맞아 손을 씻고 여인을 만나 새삶을 찾겠다는 내용. 하지만 표현은 여전히 건달이다.
대동소이한 이 건달 편지들을 읽어보면 인삿말부터 건달답다.
'그리운 숙! 여름 나뭇잎들이 삽자루파 조직원들처럼 우글대더니, 겨드랑이로 파고드는 아침 찬바람은 어릴 적 맛보았던 사시미 칼처럼 섬뜩하군요.'
'물러가는 여름을 보니, 우리 망치파에게 패배해 쫓겨나던 삽자루파 애들이 추억처럼 떠오릅니다. 여름은 이렇게 꼬리를 감춰버릴 모양입니다.'
자신을 믿어달라는 하소연과 사랑의 고백.
'숙! 내 사랑을 어떻게 그대에게 보여드려야 한단 말입니까? 손을 씻었으니 믿어주십시오. 사채업자 옷을 벗겨내듯이 내 모든 껍데기를 벗겨 속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아, 박터지게 그리운 그대! 그대는 온몸에 용문신을 새기느라 수만 번 바늘에 꽂히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도끼파 조직원 20명에게 포위됐을 때보다도 더.'
여인의 용모 칭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대의 입술은 우리편 행동대장이 삼돌이가 칼을 맞고 흘리던 피보다 붉고, 그대의 눈은 쌍눈깔파 보스인 쌍눈깔의 눈빛보다 더 빛납니다. 그대의 흰 얼굴은 제 칼 앞에서 하얗게 질렸던 쇠사슬파 조직원의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아직 건달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두꺼비파에게 납치당해 자동차 트렁크 속에 갇혔을 때도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았습니다. 목아지만 남겨놓고 땅 속에 파묻혔을 때보다도 답답합니다.'
마침 건달은 편지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대가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속을 꺼내 그대의 정원 예쁜 장미나무에 걸어놓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