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
울산 g초등학교 6학년 학생 180여명은 지난달 22일 5명의 인솔교사와 함께 서울에 수학여행을 왔다. 그런데 둘째 날 국회 방문을 마친 뒤 다음 일정을 위해 의원회관 건물 오른쪽에 주차된 관광버스에 오르는 과정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검정색 세단과 정면으로 부딪친 아이는 다리에 심한 충격을 받은 듯 일어나지 못했다. 놀란 교사와 학생들이 아이를 살피는 사이, 문제의 세단에서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이 내렸다. 그는 자신이 타고 온 차로 인해 벌어진 사고와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선생님과 운전기사가 다리를 붙잡고 구르는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사이, 세단 뒷좌석에 앉아 있던 유 의원은 반대쪽 문을 열고 나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다친 아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의원회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고를 목격한 기자는 다리를 끌어안고 끙끙 거리는 아이를 담임선생님과 함께 사고 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친 학생을 태워 보낸 교사들은 놀란 아이들을 달래며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때 의원 수행비서로 보이는 20대 후반의 남자가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던 교사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애들을 몰고 왔으면 관리를 잘해야지. 왜 사고를 내게 하고 난리야. 선생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었어? 어디에서 와서는 이 난리를 만드는 거야."
그는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당황해하는 교사들을 반말로 다그쳤고, 보다 못한 기자가 "누구시냐? 아이들을 달래는 게 먼저 아니냐"고 했지만 남자의 반말과 삿대질은 여전했다.
"조금 전에 다친 애 쳐다보지도 않고 올라간 분이 국회의원이시죠? 당신, 그 분하고 같이 일하는 분이세요?"
기자가 이렇게 묻자 그는 그때서야 "나는 그냥 지나가는 제 3자인데 선생님들이 애들을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아 화가나 끼어든 것"이라고 궁색하게 변명했다. 그는 "조금 전 의원회관으로 올라간 유 의원과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교사들과 수행비서의 말싸움이 거칠어지자 의원회관을 지키던 경위가 내??비서의 행동을 자제시키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기자는 그날 오후 인솔교사 허모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가 "다친 아이의 상태가 어떠냐"고 묻자 허씨는 "아이의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했고 잘 수습됐다"고만 답했다.
- 차 주인(유기준 의원)이 사과했나요?
"교감 선생님이 직접 와서 이 사건이 더 이상 커지지 않기를 바란다. 더 이상의 관심을 끊어 달라."
며칠 후 다친 아이의 담임교사 이모씨는 "아이가 mri 검사까지 받았고 현재 두발로 다닐 정도로 괜찮으니 역시 문제가 커지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전해왔다.
사고는 잘 수습된 듯 하지만...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날 오전 국회에서 있었던 초등학생 교통사고는 잘 '수습'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 의원이 이날 교통사고 과정에서 보여준 처신은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유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차주로서 다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예의가 아니었냐'는 질문에 "그때는 자고 있어서 정신이 없었고 아이가 걸어 오기에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올라왔다"며 "하지만 비서관에게 잘 처리하라고 지시했고 나중에 선생님과 학부모에게 아이가 조심하지 못해서 난 사고에 심려를 끼쳐 드려 미안하다는 전화도 받았다"고 했다.
더불어 선생님들에게 반말과 삿대질한 수행비서에 대해서는 "그 얘기를 보고 받았다"며 "다른 의원을 모시는 비서가 현장을 목격하고 선생님들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심하게 말한 것 같다, 어떤 의원의 수행비서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국회의사당은 참관을 원하는 사람이 3일전에 예약만 하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열린 국회'라는 취지로 만든 제도인데, 하루 평균 700명의 학생과 국민들이 국회를 찾는다. 그런 국회에서 의원과 수행비서가 권위적이고 군림하는 인상을 준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일일 것이다.
다친 아이는 유 의원으로부터 진심어린 위로를 받고 인솔 교사들에게 반말과 삿대질을 했던 젊은 수행비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 며칠간 사고 수습 과정을 지켜보며 국회에서 다친 어린이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