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 걸작 베스트10

이글아이12 작성일 07.10.29 19: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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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말 <뤼미에르>와 <멜리에스>의 단편에서 시작한 영화는 20세기 초 국가의 탄생을 만든 <데이빗 w 그리피스>에 의하여 장편 극영화로 정착한다.
이후 전함 포탬킨의 <에이젠 쉬타인>이나 현기증, 새 등 스릴러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서부영화의 아버지 <존 포드>등 명감독들에 의하여 <대중 예술>로 발전하며 20세기 인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20세기 100년간 수많은 걸작들이 발표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영화와 함께 인생의 희노애락을 나누며 살아왔다.

새로운 밀레니엄시대에도 여전히 영화는 사람들 가까이에서 삶의 벗이 되어주고 있다.

 

이글은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년대별로 미국영화 걸작 베스트10을 선정하는 글이다. 영화마다 전문가 혹은 영화전문지의 평론을 실으므로서 영화의 가치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필자가 선정한 이유는 영화마다 하단부에 밝혀 두었고, 선정작 외 년대별 걸작들도 별도로 언급해 두었다.

 

1910년대

1. 국가의탄생(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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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the birth of nation.
감 독 : 데이빗 와크 그리피스.
주 연 : 헨리 b. 월달, 릴리안 기쉬. 라울 월시

 

19세기말 유럽이 창조해 낸 영화기술은 20세기를 관통하여 21세기까지 압도적으로 대중을 지배할 문화상품으로 영화가 활짝 꽃 피운 곳은 일년 내내 햇빛 화사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였다.

미국의 영화 제작자들은 원래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활동하였으나 상영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는 등 에디슨을 비롯한 특허회사들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볼모지나 다름없는 캘리포니아로 이동, 지금의 헐리우드를 개척하게 되었다.

피난처나 다름없었던 그곳에서 허름한 곡물창고를 사들여 촬영소를 만든 세실 b 데밀의 서부극 '스쿼맨'과 3시간짜리 대작영화 '국가의탄생'이 만들어지게 된다.

바로 최초의 헐리우드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세계 영화 사상 최초의 대작 영화로 기록될 '국가의 탄생 (a birth of a nation)'은 이렇게 미국 서부에서 태어났다. 감독 데이비드 w 그리피스는 당초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던 중견 감독이었지만, 당시로선 대단한 제작비 10만 달러를 쏟아부은 이 영화를 찍으러 캘리포니아로 달려왔다. 친구 빚까지 끌어다 겨우 막은 제작비는 그러나 개봉후 미 전역에서 2천만달러 수입을 기록하며 영화 산업이 숨은 노다지임을 확인 했다. 전투 장면에는 5백명이넘는 엑스트라가 출연했고 박진감 넘치는장면을 위해 10m가 넘는 촬영탑을 세웠다. 당대 최고 인기 스타였던 릴리언 기쉬와 후에 영화 감독으로 활약한 라울 월시 같은 쟁쟁한 캐스팅 역시 이후 헐리우드 제작 방식을 예고한 '흥행 캐스팅'이었다.(디지털조선에서 일부 발췌)

 

이 시기에 나온 로베르토 비네 감독의 독일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년)도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에서 먼저 성행한 영화산업이지만 이글은 미국영화 중 걸작을 뽑는 글이므로 최초의 장편극영화로 기록된 국가의 탄생을 꼽았다.

 

1920년대

2. 장군(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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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the general.
감 독 : 비스터 키튼, 클라이드 브룩만.
주 연 : 비스터 기튼, 마리온 맥.

 

이 영화의 감독인 비스터 키튼은 세살때부터 무대에 선 슬랩스틱 코미디의 명배우였다. 키튼은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의 다수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한작품이 장편희극영화 <장군>이다.

<장군>은 "어수룩한 낙오자가 사내다운 용기를 증명해 보여 사랑하는 여자를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흔해 빠진 이야기지만 몇번을 보아도 신선하다. 정치성도, 사회에 대한 풍자도 없다. 단지 키튼의 독창적인 희극적 효과가 있을 뿐이다.

백치 같음과 철학적인 것이 엿보이는 키튼 특유의 무표정과 절제된 신체적 움직임, 주인공이 싸워야 할 상대가 한 소대가 타고 있는 기차 혹은 한 부대가 주둔해 있는 적지라는 것, 기관차라는 거대한 기계덩어리로부터 무한한 희극적 효과들을 끌어내는 규모등은 당대 여느 코미디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동시대 슬랩스틱 코미디와 채플린 영화들이 연기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얼굴표정을 중시하고 영화가 단지 그것을 기록한데 비해 키튼은 특정한 카메라 위치와 시각적 효과, 정확한 타이밍, 편집리듬을 중요하게 여긴다.

<장군>이 영화사에서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 현대적 면모일 것이다. 카메라는 관객으로 하여금 곤경에 빠진 주인공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하고 그 곤경을 즐기게 한다. 그래서 관객은 주인공과 감정의 동화를 이루지 못한다. 또한 상황에 대한 불가피한 절망감을 보여주는 키튼 특유의 냉철한 무표정은 그러한 이화작용을 더욱 강화시킨다.


또하나 이 영화의 현대적 맛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 신사도를 물려받아 여성을 영화에서 곱게 다루던 시기에 여성을 세상안으로 끌어낸 점이다.

3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 아래서 재능을 잠식 당한 키튼은 다시는 <장군>과 같은 독창적 코미디를 만들지 못했다.
키튼은 채플린에 버금가는 유일한 희극영화인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채플린과는 아주 다른 현대적 감성으로 죽은 뒤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주진숙/중앙대 교수·영화학)

 

또 다른 후보작  찰리채플린 감독, 주연의 황금광시대(1925년)가 있지만 워낙 유명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이라 그와 함께 20년대 무성영화시대를 풍미했던 또다른 슬랩스틱 코미디의 제왕 비스터 키튼의 영화 '장군'을 뽑았다.

절대로 찰리채플린의 영화가 키튼의 영화에 비해 못하다는것은 아니다.

이시기 독일에서는 노스페라투. 메트로폴리스와 같은 걸작을 만들었고, 러시아에서는 전함 포탬킨을 만들었다.

 

1930년대

3. 바람과함께사라지다(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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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gone with the wind.
감 독 : 빅터 플레밍.
주 연 : 비비언 리, 클라크 케이블.

 

19세기말 미국. 남북전쟁으로 짓밟힌 남부 조지아주를 무대로 격렬하게 살아간 여인 스카렛 오하라(scarlet o'hara)의 이야기를 그린 10여 년만에 완성했다는 마가렛 미첼 여사의 동명소설을 영화한 상영 4시간의 불후의 명작이다.

600만 달러의 제작비는 당시로서는 전대 미문의 엄청난 것이며, 아카데미 작품(데이빗 셀즈닉), 여우주연(비비안 리), 여우조연(헤이티 맥대니얼), 감독(빅터 프레밍), 각색(시드니 하워드), 촬영, 실래장치, 편집, 특별상 등 11개 부문을 휩쓴 대작이다.

남자주인공 레트 버틀러 역으로는 원작자의 추천에 의해 클라크 게이블을 일찌감치 결정해놓고,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역의 배우를 찾지 못한 채 일단 촬영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촬영장에 들른 영국출신의 무명 여배우 비비안 리를 스칼렛으로 결정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두 주연의 역사적인 명연과 함께 전 배역진의 참신한 조화와 획기적인 칼라촬영, 헐리우드 최고의 각본가 7명과 셀즈닉 자신까지 참여한 완벽한 시나리오, 맥스 스타이너의 기념비적인 음악,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거액의 제작비 등이 한데 모여서 애틀랜타 역의 남군 부상병들 장면, 애틀랜타 대화재속의 극적인 탈출장면, 레트와 스칼렛의 폭발적인 러브 씬, 멜라니 역의 하빌랜드가 보여준 은근한 강인함 등 수많은 인상적인 명장면들을 탄생시켰다.(네이버 영화)

 

런닝타임 4시간짜리 대작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국내에서 1954년, 1963년. 1971년, 1977년, 1982년, 1993년에 개봉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85년에는 mgm의 필름 보관소를 사들인 테드 터너(cnn 사장)가 2년간에 걸쳐 25만 달러를 들여 필름을 완전히 복원시켜, 1989년에 공개 50주년 기념으로 재공개를 해 다시 화제가 되었었다.

"내일 나는 그이를 되찾을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야, 어쨌든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니깐(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는 스칼렛의 마지막 명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명작이다. 

30년대 걸작으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기전에 완성한 빅터 플레빙의 오즈의 마법사,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가 있다.

정 르느와르감독의 프랑스 영화 위대한 환상과 게임의 규칙, 알렉산더 도브첸코감독의 러시아영화 대지도 이시기에 만들어진 걸작들이다.

 

1940년대

4. 카사블랑카(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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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casablanca.
감 독 : 마이클 커티스.
주 연 :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에는 망명객, 반나치주의자, 피난민, 각국의 간첩들이 몰려있다. 카페를 경영하는 미국인 릭은 의협심이 강하고 주위 사람들의 신임을 받는 인물. 반나치 거물인 라즐로도 아내 일자와 미국으로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고 게슈타포가 그 뒤를 부지런히 쫓는다. 여권을 부탁하기 위해 어느날 일자가 카페로 찾아오자 릭은 착잡한 감회에 젖는다. 한때 사랑했던 사이인 것. 하지만 일자가 남편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된 릭은 부부에게 여권을 마련해주고 도피길을 돕는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카사블랑카>는 사랑과 증오. 전쟁으로 의해 변화된 인간상. 나치에 대한 레지스??운동을 그리고 있다.

원작은 <모두가 릭의 집으로 온다>는 희곡이었는데 영화로 먼저 제작된 경우.

제작을 맡은 워너 홍보사쪽은 <카사블랑카>라는 제목이 싸구려 맥주이름 같고 희곡이 흥행성이 없단 점을 들어 제목을 바꿀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43년 1월 이 영화가 개봉 될 무렵, 루즈벨트 대통령과 처칠 수상이 카사블랑카에 모여 연합군의 항전을 추구하는 서약에 서명함으로써 영화는 막대한 선전효과를 얻는다.

<카사블랑카>는 주인공들의 연기도 일품인데 험프리 보가트는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옛 연인에 대한 미련을 간직한 캐릭터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부부관계와 애정사이에서 갈등하는 유약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애초에 주인공으로 미국의 전 대통령 <로날드 레이건>이 물망에 올랐지만 키만 멀쑥하고 연기력이 모자란단 이유로 예선에서 탈락 되었다고.

재즈와 카페 그리고 지나간 사랑이라는 코드를 적당히 배합 한 점 역시 <카사블랑카>가 최고의 멜러물로 남는데 공헌을 했다.

발표 당시 영화평들도 다양하고 호의적이었는데 "무척 재미있는 해외도피자에 대한 영화"란 <뉴스위크>의 평론은 그중 압권.

영화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은 5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영화음악의 애창곡으로 기억된다.(시네21)

 

험프리보가트는 이 영화 한편으로 전세계 여성팬들을 사로잡았고, 지금도 그가 비내리는 공항에서 바바리 코트(트렌치 코트) 깃을 세우고 입고 나온 모습은 최고로 멋진 남성상으로 각인되고 있다.

사실 많은 전문가들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1941년 오손웰즈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시민케인을 꼽는다.  하지만 필자는 카사블랑카를 선정하였다.

40년대에는 이태리영화가 강세를 보이던 때로 로베르토 로셀리니감독의 무방비 도시, 비토리오 데 시카감독의 자전거 도둑이 이시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걸작들이다.

 

1950년대

5. 선셋대로(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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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set boulevard.
감 독 : 빌리 와일더.
주 연 : 월리암 홀덴, 글로리아 스완슨.

 

<선셋대로>는 할리우드에 관한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더 나아가 영화에 관한 영화로도 최고랄 만하다.

빌리 와일더는 ‘망상’과 ‘환영’이라는 영화 본성을 대단한 리얼리티로 꿰뚫어 본다.

3류 시나리오 작가 조(윌리엄 홀든)가 잊혀진 무성영화 스타 노마(글로리아 스완슨)의 선셋대로 저택에 우연히 들어간다.

노마는 음침한 집에 20년을 묻혀 살면서도 팬들이 여전히 자기를 갈망한다고 믿는다. 돈이 궁했던 조는 저택에 머물며 그녀가 컴백할 시나리오를 손질하고, 노마는 그를 연인으로 ‘사육’ 한다. 이 편집증 환자에 대한 냉소와 연민, 환멸과 애정을 오가던 조는 그녀로부터 탈출하려다 사살된다.


53세였던 스완슨은 실제로 10년째 은거하던 무성영화 대스타였다. 그녀는 영화 곳곳에서 노마 아닌 자기 모습을 절절하게 연기하며 스스로를 패러디한다. 시종 맥스는 더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다. 노마 전 남편이자 무성영화 거장인 맥스는 몰락한 채 옛 아내의 망상을 지켜주는 충복이 돼있다.

맥스를 연기한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도 걸작 <greed>(23년)를 남긴 할리우드 초기 명감독이고, 역시 불우했다.

영화속 <qeen kelly>(29년)도 슈트로하임 연출, 스완슨 주연 작품이다. <선셋대로>는 냉소적 세계관, 생생한 캐릭터, 시니컬한 대사, 세밀한 디테일이 어우러진 블랙 코미디의 고전이다.

살인사건을 취재하러 몰려든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영화를 찍는 것으로 여긴 노마가 반착란상태에서 연기를 시작하는 라스트신은 소름 돋는 명장면이다.(tr*el.cho*.com)

 

이 시기엔 일본의 명장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이 7인의 사무라이와 라쇼몽을 찍었던 시대이며, 페데리코 펠리니감독이 안소니퀸과 함께 길을 만든 때이며, 장 뤽 고다르감독의 프랑스영화 네멋대로 해라, 그리고 미국에선 알프레드 히치콕감독이 현기증을 만든 시기였다.

빌리 와일더감독은 이때  또하나의 걸작 뜨거운것이 좋아를 완성하였다.

 

1960년대

6.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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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bonnie and clyde.
감 독 : 아서 펜.
주 연 : 워렌 비티, 훼이 다나웨이.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는 1930년대의 부부 갱이었다. 금주령 시대(depression)의 이들은 감옥에서 나온 클라이드가 카페 여급 보니를 만나면서 갱의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떠돌이 모스가 가담하고 나중에 형 버크와 형수 블랑슈가 합세해 모두 다섯명이 한 차에 타고 차례로 은행을 턴다. 어 머니가 보고 싶다던 보니가 초원에서 어머니와 친척들을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시적이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실제 사진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미국의 '새로운 영화'의 효시 같은 작품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 마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 같은 작품이 된 이 영화에 주목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967년 12월8일자 커버스토리로 이 작품을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월남전이 기폭제였다. 월남에서의 폭력 그리고 이제까지의 미국은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는 관점이 젊은 영화인들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이지 라이더>는 이런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정점을 이룬 작품이다. 소자본으로 큰 돈을 번 이 작품부터 미국의 '새로운 영화'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전기적인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클라이드의 형 버크와 형수 블랑슈는 도중에 부상을 입고 떨어져 나가고 모스도 아버지에게 잡혀 결국 보니와 클라이드만이 벌집 같은 기총소사로 최후를 맞이한다.

보니는 사실은 전기의자에 앉아 죽어갔다. 이 기총소사의 처절한 라스트에서 보니는 성적 오르가슴을 느꼈을 것이라는 평이 있다. 클라이드가 성 불구자여서 잠자리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평론가는 30년대에 있어 은행은 서민의 착취기관이요 클라이드의 갱단은 이를 공격함으로써 권위와 질서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보니는 시를 썼다. 그들의 행각을 쓴 시는 일종의 발라드다. 그 마지막 연은 이렇다.
"어느날 그들은 함께 내려갈 것이다/사람들은 이들을 나란히 묻을 것이다/아주 적은 사람들에겐 슬픔-/그리고 법에게는 구원이리라/그러나 그것은 보니와 클라이드를 위한 죽음일 뿐."
데이비드 뉴먼과 로버트 벤튼의 시나리오는 아서 펜이 프랑수아 트뤼포에게서 영감을 얻어, 특히 그의 <피아니스트를 쏴라 >를 생각하며 지시한 것이라고 평론가 폴린 킬은 적고 있다. 클라이드 역의 워렌 비티가 제작했다.
폭력과 시정 그리고 30년대에 대한 향수를 발라드식으로 구성한 이 작품에서 폭력은 베트남전과 무관하지 않다.

아서 펜은 이 작품의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내가 이 영화중에 묘사한 것은 베트남에서의 폭력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또) 클라이드가 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 나는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했다."
보니 역의 페이 더너웨이는 모자와 시거로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일본에서 붙인 제목인데 우리가 그대로 사용했지만 원제는 <보니와 클라이드>이다.(안병섭/영화평론가·단국대 교수)

 

필자는 스타일리쉬한 영화를 좋아한다. 위에 카사블랑카를 선정한 이유도 같다.  60년대에 나온 걸작목록을 보면 정말 쟁쟁한 작품들이 많다.

아라비아의 로렌스(1963) 감 독:데이비드 린.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감 독:스탠리 큐브릭.

팔과 이분의 일(8 1/2)(1963) 감 독:페데리코 펠리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감 독:로버트 와이즈.
페르소나(1966) 감 독:잉마르 베르히만.
달콤한 인생(1960) 감 독:페데리코 펠리니.
정사(1961) 감 독: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졸업(1967) 감 독:마이크 니콜스.

그러나 필자는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보여준 스타일쉬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감히 선정해 보았다.
 

1970년대

7. 대부(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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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the godfather.
감 독 :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
주 연 : 마론 브란드, 알 파치노.

 

2차대전이 끝난 1945년. 비토 클레오네(말론 브랜도)의 집에선 막내딸 코니의 결혼식이 거행된다. 전쟁 영웅이 되어 돌아온 셋째 아들 마이클(알 파치노)은 언제나처럼 아버지 일에 냉소적이다. 아버지 비토는 시칠리아섬에서 죽음의 위협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온, 뉴욕 최대마피아 조직의 보스. 큰형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조직의 수장이 될 준비를 하고 있고, 양자인 톰은 패밀리의 변호사겸 참모격으로 비토와 서니를 보좌한다.

 

마리오 푸조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코폴라 감독은 클레오레라는 한 가족사를 통해 미국사회의 어두운면에 접근한다.

<대부>는 말론 브랜도가 지휘하는 한 조직이자 가정인 집단의 이야기.

이 집단은 정서적인 응집력이 강하고 애정보다는 충성과 의리에 의해 굴러간다.
<대부>의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영화가 주인공인 비토보다 마이클의 비중이 강조된 점에 놀랄만하다. 코폴라는 푸조가 그려냈던 40년대 미국사회의 심장부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좀더 경제적인 길을 택한다.

알 파치노가 연기한 마이클은 영화 초반부에는 아버지 비토와 대립항으로 존재한다.

그는 아버지가 일궈낸 조직을 혐오하는대신 가족의 애정을 소중이 여긴다. 하지만 두사람의 관계는 마이클이 아버지에게 닥친 위기를 공유하고자 할때 화해국면을 맞는다.

마이클은 아버지를 해친 적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자신에게 지워진 임무를 완수하려는 경향으로 급속히 기운다. 그리고 결국 완성해 낸다.

가족은 다시 안정된 궤도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앞엔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능가하는 비극적인 가족사가 기다리고 있다. 한 세대의 고통과 부담은 다음세대로 이전되고 왕좌의 주인은 교체된다. 여기서 미국이라는 공간의 역사는 클레오네 집안의 잔혹사와 접점을 모색하게 된다.

 

<대부>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큰 몫을 차지한다. 노세대인 비토 역의 말론 브랜도가 무겁고 강한면에 치중한다면 알 파치노는 참신한 젊은 세대의 이미지를 선보인다. 패밀리의 주변부 역을 소화내낸 로버트 듀발이나 다이앤 키튼 등 실력파들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시네21)

 

필자가 꼽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 바로 대부시리즈이다. 말론브랜도의 대부 이미지는 최고의 남성상으로 꼽고 싶을 정도이다.

스탠리 큐브릭감독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도, 조지루카스감독의 스타워즈, 우디알렌감독의 애니홀, 호금전감독의 협녀도 대부의 강렬한 이미지를 깰수가 없다.

 

 

1980년대

8. 성난황소(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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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raging bull.
감 독 : 마틴 스콜세지.
주 연 : 로버트 드니로.

 

<성난 황소>는 마틴 스콜시스와 로버트 드 니로 짝이 만든 흑백 권투영화이자 뉴욕의 뒷골목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통 권투영화는 아니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권투영화 <록키> 시리즈가 보여주는 노동계급 영웅의 성공을 위한 무대나 영웅주의자의 무대로서의 권투 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콜세지는 권투영화와 전기영화를 결합시켜 관객의 전통적인 기대들을 당황스러울 정도로 뒤집음으로써 할리우드 장르들의 모순들을 두드러지게 하고 그것들을 철저하게 재고찰한다.


거의 항상 그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욕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분명 걷고 대화하기에 상 쾌한 우디 앨런의 뉴욕 거리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폐점 후 >처럼 <성난 황소>의 뉴욕은 거친사람들, 복잡한 거리, 끊임없이 이어지는 싸움, 창녀들의 장소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개념을 빌어온다면 '뉴욕적임'으로써 도시 그 자체와 거의 관계가 없고 오히려 거기 사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뉴욕에 대한 공유 된 이미지이며 집단적인 기표이다.

 

<성난 황소>의 뉴욕은 한때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제이크 라모타의 힘의 반영이며 혼란스러운 폭력의 장소이다.
폭력은 미국영화에서 널리 사용되며 종종 오락의 기본 토대가 된다. <성난 황소>는 난폭한 권투시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또한 가혹한 싸움들로 폭력을 전경화 한다. 하지만 그 폭력은 매력적이면서도 혼란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오히려 서사구조나 사실주의의 양식적 관습의 사용과 주인공 라모타의 마음의 풍경으로서의 표현주의적 현실을 통해 링 위에서나 가정 모두에 걸쳐 있는 미국생활에 있어서의 폭력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주로 제이크 라 모타의 실제 삶에 기초하고 있는 이 영화는 제이크의 삶을 지배하는 폭력의 상징으로서 권투시합장면을 사용한다.

그는 권투시합이 없을 때도 말다툼, 협박, 구타 등이 아니면 어느 누구와도 교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특히 두 번의 결혼생활, 사실상 매니저 역할을 하는 동생 조이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질투와 폭력은 타인 들에게 상처를 주는 동시에 그 자신에게도 파멸만을 안겨 준다.

이런 행위들은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을 몰아내고 마침내는 비만한 몸으로 마이크 앞에서 관객을 웃기는 삼류 배우로 전락한 그가 행사하는 자학적 폭력으로 귀결된다.

이 영화에서 '오락'은 폭력 못지않은 처벌이고 희생이다. 그것은 고통을 주고받기 위해 사용하는 육체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출구이며 상처를 입히기 위한 사적인 욕구를 공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한때 눈이 멀었지만 지금은 볼 수 있다"는 성경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제이크는 비판받을 인물이긴 하지만 동정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젊은 제이크 라 모타와 늙은 제이크 라 모타, 긴장된 챔피언으로서의 제이크와 몰락한 삼류배우로서의 제이크는 모두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에 기대고 있다. (변재란/영화평론가)

 

2007년에 와서 디파티드로 마틴 스콜세지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게 되는 명장중의 명장이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1976년작 택시드라이브를 비롯 90년작 좋은친구들 등 그의 작품은 모두 필자의 스타일에 맞는 영화였다.

빔 벤더스감독의 파리 텍사스, 세르지오 레오네감독의 원스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쥬세페 토르나토레감독의 시네마천국과 같은 작품이 80년대에 나온 명작들이다.

 

1990년대

9. 쉰들러리스트(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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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schindler's list.
감 독 : 스티븐 스필버그.
주 연 : 니암 리슨, 벤 킹슬리.

 

오스카 쉰들러(라이엄 니슨)는 나치당원으로 거물들과의 인맥을 바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가이다.

1939년 폴란드는 2주 만에 독일군에 점령되었다. 쉰들러는 이곳에 식기공장을 세워 전쟁기간에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그는 유대인 회계사 스텐(벤 킹슬리)과 함께 공장의 문을 연다. 유대인을 무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어 돈을 많이 벌어들인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폐쇄하라는 명령이 내린다. 유대인들에게 이유도 없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쉰들러 공장의 노동자와 함께 스텐도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어둠 속에서 끊이지 않는 총성과 불꽃을 바라보며 쉰들러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크라코우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심한 노동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지낸다. 쉰들러는 광기어린 친위대의 젊은 장교 괴트(레이프 파인스)와 개인적인 친분을 두텁게 한 뒤, 식기공장을 다시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괴트의 감시 아래 있지만 공장이 다시 가동되어 스텐과 직공들도 다시 일하게 된다. 노동력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은 찜통 열차속에 짐짝처럼 채워져 죽음을 향해 떠난다.

이런 일들을 겪은 쉰들러는 고민하다 유대인을 살려내자는 결단을 내린다.
전쟁 동안 축적한 재력을 바탕으로 유대인 한 사람당 값을 쳐주고 괴트와 협상한다. 자신의 고향인 체코에 공장을 세우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산다는 명목이다.

 전에 자신의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 그 가족 등 스텐과 함께 모두 1,100명의 유대인 명단을 작성한다.

이들은 극적으로 체코행 기차에 탄다. 잘못되어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머리를 깎이고 옷이 벗겨져 한 방에 모인 그들의 머리 위에서 살인 가스가 나올까 질려 일그러진 모습, 공포에 떠는 가장 비극적인 인간의 모습의 한 장면이다.

쉰들러의 유대인들은 체코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종전을 맞기까지 인간적인 생활을 한다.
전쟁이 끝난 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금이빨을 뽑아 만든 반지와 전범으로 몰릴 쉰들러를 염려해 모두의 서명이 된 진정서를 써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들이 준 반지에는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세계를 구한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반지를 받아든 쉰들러는 더 많은 유대인을 구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제작 연출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나치들의 잔인한 광기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이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출연자 모두 폴란드와 이스라엘의 무명배우들로, 장소도 실화의 현장인 크라쿠프에서 실제 그때의 공장을 사용해 촬영한 흑백영화이다. 1993년 제6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두산 세계대백과)

 

필자는 미국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적이 별로 없다. 쉰들러리스트는 눈물을 흘리게 만든 몇되지 않는 영화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최고의 흥행감독이지만 영화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e.t와 쉰들러리스트와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주의감독으로서도 평가를 받고싶어 했던 감독이다. 미국의 아카데미는 그런 그에게 쉰들러리스트로 감독상을 거머쥐게 해주었다.


 

2000년대

10. 반지의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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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the lord of the rings : the return of the king.

감 독 : 피터잭슨.
주 연 : 일라이저 우드, 리브타일러, 올랜도 블룸.

 

the *지 선정, “영화 역사를 바꾼 위대한 10대 걸작영화!” 이 한마디로 모든걸 대변할 수 있는 영화

 

사실 이글을 쓰면서 2000년대 작품은 아직 진행 중이기때문에 선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은 앞으로 3년이내 이만한 작품이 다시 나올까? 하는 생각에 이작품을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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