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국내대회에서 한국 선수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판정 때문이었습니다. 1998년, 1999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추성훈은 모두 3위에 그칩니다. 한국 유도계는 특정 대학 출신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밖에서 온 인재가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겁니다. 추성훈뿐만이 아니라 기존 한국 선수들도 특정대 선수를 이기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1987년 세계선수권 우승.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등 1980년대에 유도 경량급을 지배했던 ‘유도영웅‘ 김재엽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유도계를 떠난 지 10년이 다 돼 간다. 좋게 표현해서 나왔다고 말하는데 그간 마음 고생이 심했다. 한국 유도는 선수로 뛰던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다들 아시겠지만 ‘**대’가 문제다. 자기들 밥그릇만 챙긴 지도 40년 정도 됐을 거다. 여전히 ‘비**대’ 선수들은 권력의 힘으로 국가대표에서 제외되곤 한다. 윤동식 그리고 추성훈처럼. 추성훈이 왜 일장기를 달았겠는가."
[스포츠서울 2007-03-28]
한 명만 뽑을 때는 특정대 출신이 아니어서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던 그는, 세 명의 대표를 내보내는 국제대회에 비로소 국가대표로 나가 외국선수, 한국선수를 모두 물리치고 1위를 했습니다. 결국 국가대표 2진으로 발탁되어 아시안게임에 출전, 전 경기 한판승으로 금메달은 물론 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됐습니다.
추성훈이 한국대표로 금메달을 땄을 때 은메달은 일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자란 나라의 선수를 꺾고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후에도 국내에서 추성훈이 겪어야 하는 장벽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그는 "재일동포지만 일본에서 일본선수와 시합을 해도 경기장 안에서는 차별을 받지 않았다"라고 울분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한 tv방송사에서 추성훈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그 시절 추성훈이 시합장에서 카메라를 보고 했던 말이 너무나 인상 깊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바꿔야지. 말을 해도 안 됩니다, 여기는. 귀화한 다음에 일본에서 유도해야죠.”
결국 추성훈은 아키야마로 돌아갔습니다. 일본으로 귀화한 것입니다. 그의 꿈이었던 태극마크를 그는 버려야 했습니다. 귀화하고 불과 두 달 후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4차례 국제대회를 연이어 석권합니다.
부산 아시안게임에 일본대표로 출전한 추성훈은 한국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일본에 안겼습니다. 당시 한국 관중은 그에게 야유를 보냈으며 한 국내 스포츠신문은 이런 헤드라인을 뽑았다고 합니다. ‘조국을 메쳤다’
그가 조국을 * 건지 조국이 그를 내동댕이친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추성훈에게 조국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정말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조국이라는 것은 ‘나’를 자유롭고 존엄하고 평등한 시민으로 대접해주는 정치단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나를 차별하는 나라를 내 조국이라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추성훈을 아키야마로 내친 나라가 추성훈에게 조국의 배신자 운운했던 것은 가소롭기만 합니다.
하지만 추성훈은 온전히 아키야마로만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국민국가의 국민을 뛰어넘어 추성훈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경기복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동시에 수놓고 ‘추성훈과 아키야마 모두가 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아키야마의 나라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민국가라는 제도는 인간이 만든 도구에 불과한데 추성훈에게 그것은 불가항력의 사슬이 되었습니다.
2006년 12월 31일 추성훈-아키야마는 일본의 격투기 영웅 사쿠라바 카즈시를 꺽고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 됩니다. 이때 추성훈이 몸에 바른 로숀이 문제가 되어 결국 추성훈은 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합니다. 문제는 그가 이 로숀을 몰래 바른 것이 아니라 경기 전에 tv카메라를 포함해 모두가 보는 가운데 당당하게 발랐다는 점입니다.
그는 체질적인 문제 때문에 춥고 건조한 겨울날에는 의례히 로숀을 발라왔고 그때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격투영웅을 꺾자 갑자기 그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일본인들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링에서 추방해버린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이지메’라는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일단 추성훈이 상처를 입자 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이 이어집니다. 그와 일본의 유명 모델이 사귄다고 알려진 후 일본 언론은 이를 부정적으로 보도했으며 누리꾼들은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추성훈이 좋다면 한국으로 가라", "조센진과 사귀다니 일본의 수치다" 등의 반감이 나타났다고 일간스포츠지가 보도했는데 물론 모두 다 이런 것은 아니겠지만 추성훈이 받은 상처는 컸을 겁니다.
추성훈이 한국에서 활동했을 당시에 받은 상처에 대해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누가 봐도 성훈이가 이긴 경기였는데 판정에서 졌어요. 심판에게 항의했더니 심판 한 명이 성훈이에게 '네가 이해해라. 할 수 없지 않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랍니다. 저도 그 말을 들을 때는 가슴이 폭발할 것 같았는데, 성훈이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뉴스메이커 2001-01-25]
그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을 모델로 쓰기로 유명한 한 유명 스포츠용품업체의 모델이 됐을 때도 일본내 안티팬들이 그 회사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투브에는 그 광고영상에서 추성훈의 얼굴만을 지워낸 것이 올라와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추성훈은 복귀했습니다. 그 복귀전이 10월 28일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졌습니다. 얄궂게도 한국계 캐나다 선수인 데니스 강과의 대전이었습니다. 아키야마와 데니스의 대결. 누군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이 나라가 아키야마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가 평생 당해온 일을 생각하면 아키야마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한국 선수 생활 시절의 여권-
추성훈이 1회 ko로 이겼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본 순간 그 어느 국가대표의 승전보를 들었을 때보다 기뻤습니다. 한국인도 될 수 없고 일본인도 될 수 없었던 추성훈-아키야마가 다시 그의 세계로, 유일하게 그를 시민으로 받아주는 진정한 그의 조국, 격투의 세계로 귀향한 것입니다.
만약 그가 한국계 데니스 강이 아닌 토종 한국인 선수를 이겼어도 난 그의 귀향을 축하했을 겁니다. 이번 경기가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자신은 울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동화에서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얘기. ‘그리고 그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이 얘기처럼 그의 세계에서 오래오래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강요된 방랑자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일도 이제부터 시작이어야겠지요. 지금 수천 명의 불법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학교를 아예 못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과 결혼한 저개발국 사람의 아이들도 앞으로 어떻게 자라게 될 지 지금으로선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제발 이 나라가 그 아이들과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조국’이 되기를. 그리고 추성훈 선수가 자신만의 ‘조국’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일본인 추성훈의 복귀전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