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는 “없다”는데 靑은 “찾으라”하고
김성덕 기자 / 2008-03-20 14:39
-이대통령, 현실과 동떨어진 '현장 사례' 수차 언급
-청와대, '나 몰라라'… 관계 기관 '이건 아닌데'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각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탁상행정을 질책하면서 실례로 드는 구체적 사례가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런 이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브리핑하거나 심지어 “맞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지방의 한 톨게이트 이야기를 꺼내며 “하루에 오가는 차량이 220대인데 사무실에 직원까지 근무하는 곳이 있더라”고 실례를 들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차라리 차량을 무료로 통과시켜주면 사무실 유지비나 직원 급여는 절약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집행과정에서 낭비되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 전국 대부분의 고속도로를 관할하는 한국도로공사에 확인해 본 결과, 이 대통령이 언급한 톨게이트는 없었다.
현재 차량 통행량이 가장 적은 곳은 중부고속도로의 지곡 톨게이트로 하루 평균 1400~1500대 수준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것과 상당한 차이가 난다.
대통령 발언 이후 9일이 지난 19일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못 찾을 뿐”이라며 “곧 찾겠죠”라고 답했다.
열흘이 다 돼 가지만 사실 확인이 전혀 안 된 것은 물론, 대통령 말을 그대로 사실로 믿고 있는 것이다.
현재 도로공사는 전국의 고속도로 차량 통행량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어 전화 한 통이면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홈페이지에도 이를 공개해 전국 고속도로의 차량 흐름을 알 수 있다.
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어떤 근거로 말씀하셨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현대건설에 근무하셨으니까 과거 아주 오래된 통계를 가지고 말씀하신 게 아닌가 한다”고 추측했다.
이 관계자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통행량은 금방 알 수 있다”며 “대통령 발언 후 한 번 더 신경 써서 알아봤지만 그런 영업소는 없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농산물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언급한 배추 한포기 가격도 실제 가격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 대통령은 18일 농림수산식품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산지에서) 900원짜리 배추가 서울 가락시장에서 3000원, 5000원 한다”며 “농민은 원가도 안 되게 팔고 수요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배추를 사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락시장에 문의한 결과 최상품 배추의 경우 한 포기에 1600원 선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동관 대변인은 “서울시장 하실 때 가락시장 배추 값을 얘기하신 것 같은데 취지는 농산물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5일 쌀 소비 장려 차원에서 언급한 묵은쌀 유통 방안도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묵은쌀의 연간 보관료만 6000억원이 드는데 가격을 낮춰서 공급하는 식으로 기회비용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는 묵은 쌀 보유량이 많지 않다”며 “연간 보관료 6000억원도 처음 듣는 얘기다. 예전에 알고 있던 얘기를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물가관리를 주문하면서 17일 “생활필수품에 해당하는 품목 50개를 집중관리 하라”고 지시한 것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통계청은 현재 소비자물가지수 품목 489개를 조사한 뒤 국민생활과 밀접한 152개를 골라 ‘생활물가지수’라고 해서 관리하고 있는데 이 대통령이 느닷없이 50개를 말하면서 관계기관은 부랴부랴 50개를 다시 추려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정부는 50개를 선정해 놓고도 아직 발표조차 못하고 있다. 소비자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서 최종 결정한다지만 과거 개발시대처럼 행정력으로 물가를 관리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데다 해당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눈치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의욕을 가지고 공직사회를 개혁하고 민생을 챙기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보다 세밀하고 정밀한 계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본 세상 바꾸는 미래, 고뉴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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