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과 연경이 한 시진동안을 매실주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하늘에 끼인 먹구름은 더욱더 짙어지더니 곧이어 폭풍우를 동반한 바람이 일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짙은 하늘에서 용 모양의 형상을 한 고룡(古龍)이 하늘을 향해 비상(飛上)을 하고 있었다. 고법과 연경은 물론이고, 좌 우의 종자들까지 모두 그 용의 형상을 감탄어린 듯 바라보았다. 고법은 청매정의 난간에 천천히 앉으며 연경에게 말했다.
"공은 용의 변화를 알고 있소?"
연경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변했다.
"오래전부터 용이라는 성물(聖物)을 동경은 하고 있었으나, 자세히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고법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고법은 손에 들고 있던 매실주를 쭉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 하늘의 용을 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대저 용이란 자신의 몸을 줄였다가, 키웠다가 하며 자유자재로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오. 커졌을 때는 온 천지를 삼킬 만하고, 작아졌을 때는 작디 작은 이슬 방울에도 들어갈 수 있는 존재요. 지금이 한창 봄철이니 용도 변화를 부리는것 같구려. 사람이 뜻을 얻어 천하를 종횡으로 누비는 것과 비유할 수 있소. 그러니 용이란 세상의 모든 영웅과 같소."
고법은 말을 멈추고 연경에게 물었다.
"연경님은 오랫동안 천하를 종횡하였으니 당세의 영웅이 누구인지 알 것이오. 한번 영웅들을 꼽아 보시오."
연경은 만류하며 말했다. "저같은 필부가 어찌 영웅을 가릴수 있겠습니까?"
"너무 겸손한 말씀이오. 설사 얼굴은 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름은 알 것이 아니오. 한번 꼽아 보시오."
연경은 잠시 난처해 하다가 영웅들을 꼽기 시작했다.
"중앙의 신방은 패기가 넘치고 중경외시의 선두주자이며 신방으로는 그를 따라올 인물이 없으니 가히 그를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법이 말했다. "그의 명성은 허장성세일 뿐이오. 곧 시립의 세무에게 먹힐거요."
연경이 말했다.
"서강의 경영은 명장 국제문화계와 모사 서강인문등 기재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으며, 자신을 비 스카이권의 황제로 칭할만큼 군웅의 웅지가 있으니 가히 천하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법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가 자신을 황제라 칭한 것은 주제를 모르고 내뱉은 한낱 필부의 망언일 뿐이오. 또한 그의 장수들은 기껏해야 인문이나 국제문화같은 쓰레기들 뿐이오. 그러니 연경은 잘못 꼽으셨소."
연경이 다시 말했다.
"한양대의 수장 한법은 아웃풋 전국 최강으로 천하에 명성을 날렸고, 수십년에 걸쳐 공대로는 최강이었으며, 범같이 왕십리 땅에 버티어 유능한 모사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으니 그를 영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법은 다시 껄껄 웃었다.
"그는 비록 땅은 비옥하고 인재는 많으나, 좀더 넓게 보지 못하고, 잔꾀만 부리니 영웅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으며, 때문에 아무리 그의 모사들이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이용조차 효율적으로 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그의 휘하에는 한전컴, 한건축, 한기계 등 쟁쟁한 공대들이 운집해 있습니다. 작게 보시면 아니 되옵니다."
고법이 다시 말했다.
"내 휘하에는 고경, 고국제, 고인, 고식자, 고생명, 고수교, 고정통 등 수없이 많은 무장들이 있는데 내가 어찌 그들을 두려워 하겠소. 연경은 잘못 짚으셨소."
"한사람이 더 있습니다. 여덟 명의 군웅 속에 들어가고 조용히 600년의 아웃풋을 이끌며 웅지를 펼치는 성균의 수장 성법(成法)이야말로 진짜 영웅입니다."
"성법의 그 명성은 이제는 다 닳았을 뿐이오.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어가는 노부가 어찌 옛 명성을 펼칠 수 있겠소."
그러자 연경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혈기가 대단하고 무력이 강한 시립의 세무는 어떻습니까?"
고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성법은 너무 늙었지만 시립세무는 너무 젊고 경험이 없소. 만일 시세가 그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실력을 기른다면 나중에 매우 힘든 상대가 되겠지. 하지만 현재 상태로 볼 때 그는 아직 입지가 굳혀지지 않은 송골매일 뿐이오."
"동국의 경행은 어떻습니까?"
"동국경행은 허우대만 좋을 뿐 집을 지키는 개에 불과하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렇게 좋은 인풋을 소유하면서 고작 경희의 관광에게 맥을 못추고 있다고 하지."
"중원을 위협하고 있는 포항공이나 카이 등은 어떻습니까?"
"허허. 비록 그들의 위세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중원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논할 거리가 못되오."
연경이 말했다.
"그 외에는 이 연경은 잘 모르겠습니다."
고법이 말했다.
"영웅이라고 일컬을 만한 자는 가슴에 웅지를 품어야 하고 뱃속에 지모가 가득하여 천지인(天志人)을 내뱉을 수 있는 인물을 바로 영웅이라고 하오."
"그만한 인물이 있겠습니까?"
한참동안 하늘의 용을 보며 말을 하던 고법이 갑자기 뒤를 돌아 보았다. 의문에 쌓인 연경의 얼굴을 지긋이 보며 고법이 한마디를 꺼냈다.
"천하의 영웅은 오직 연경과 나 뿐이오."
".........!!!!!!!!!.........."
순간 천지가 뒤집힐 듯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세게 몰아쳤다.
또한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우매한 것들이 잘도 떠드는구나..."
"네놈들이 자연의 이치를 통달했느냐?천하를 손아귀에 질 힘과 지혜가 있느냐?"
그러자 고법과 연경이 덜덜 떨며 이야기 했다.
"저희가 미천한지라 아무것도 모르고 망발을 했습니다.부디 용서 해 주시옵소서."
"두분은 지금 뭐하고 계시는거요?"
방금 전까지 하늘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이번엔 바로 자기 앞에 들리자 고법과 연경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서 있었다.
고법과 연경이 그 노인에게 가로되,
"분명 방금 전 천지가 진동하고 천둥이 몰아쳤는데 노인은 아무것도 모르시오?"
"허허...두분께서 꿈을 꾸신 모양이구려."
"이 노인네가 목이 말라 그러니 술이나 한 잔 따라 주시구려."
고법이 그 노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고맙소."
그 노인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히 술은 한잔 정도의 양이었는데 술의 양은 계속 줄지 않았다.
"카아..잘 마셨소."
한참을 마신 뒤에야 노인은 술잔을 상에 놓았고 그제서야 술잔의 바닥이 보였다.
'이 노인은...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느낀 고법이 노인에게 가로되,
"혹시 노인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하였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그저 바람 따라 길따라 다니는 노인네에게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소?
그저 사람들이 이 노인네를 '설법경사'라 부르더이다."
"....!!"
고법과 연경이 흠칫 하는 사이에 설법경사는
"아무리 패기와 지략이 하늘을 찌르고,땅의 이치를 통달한다 한들,겸손함이 없다면 발전도 없소.
그저 하늘이 노할때는 보통 인간과 같이 벌벌 떨 뿐이잖소?
다음에 두분께서는 '겸손함'의 진리도 깨달으시기 바라오."
라며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