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느린 걸음이
시간을 걸음마시키고 있다
시간을 더디게 끌고 가는 힘이
달팽이에게는 있다
생의 전부를 짊어진
달팽이는 사랑에도 생의 전부를 건다
등에 지고 다니는 달팽이집에는
사랑만 있고
사랑이 아닌 것은 어느 것도 없다
달팽이는 이 세상의 시간을
같은 속도로 이해하는
달팽이를 사랑한다
달팽이는 짧은 사랑도
길게 늘려 놓는다
-신광철, [달팽이의 사랑]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 년을 바둥거린 나에게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일까
- 김광규, [달팽이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