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번에는 체게바라에 대해 포스팅 해봤는데 ... 어떨지 ㅡ.ㅡ!!!
체 게바라
체게바라 가족
어린시절
체 게바라는 1928년 6월 24일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부유한 중산층가정에서 건축가인 아버지와 귀족 가문인 어머니의 사이의 5남매중 장남인 으로 태어났지만 미숙아로 태어나게 됩니다. 본명은(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어릴적 게바라는 허약 체질이라 2살 때 천식이 발병해 고생을 한적이 있었는데요. 이후 천식은 자신에게 평생 따라다니게 됩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건강을 위해 이따금씩 운동을 시키곤 했는데 게바라도 싫어하진 않아 축구와 미식축구를 즐겨 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게바라는 문학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재능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 이따금씩 시를 읽기도 하며 공부에도 열심 이었죠^^ 이렇듯 게바라는 유복한 유년기를 맞으며 생활하게 되죠^^
또한 열일곱살 때, 혼자서 모터를 붙인 자전거로4000마일이나 되는 아르헨티나의 중부지방을 돌아다니기도 하는등 밖에 나돌아 다니길 좋아하는 열혈 청년이었죠.^^
이후 천식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덕분인지 게바라는 의사가 되고 싶어 하여 1947년 자신이 원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의학부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좋은 생활만 있었던건 아니었습니다. 1950년 게바라의 부모는 결혼생활에 불화를 일으켜 이혼하게 되는데요. 자녀들은 어머니가 맡아기르게 됩니다. 장남인 게바라는 어려워진 집안 살림을 도와야 했는데요. 학비와 가족들을 위해 집근처 건설회사에서 사무원으로 일을하며 학업과 같이 병행하게 되죠.
체게바라 여행 시절을 다룬 영화의 한장면 모터 사이클다이어리
모터사이클 ....
이후 1952년에는 같은 의대 친구 알베르토와 여행기간동안 자주 고장이나 말썽을 일으키는 중고 모터 싸이클을 타고 남아메리카 지역으로 여행하게 됩니다. 이때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마련하게 되는데요. 여행을 하며 게바라는 남아메리카의 아름다움과 비참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한번은 길을가다 수백만 달러를 벌고있는 미국인이 운영하는 광산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게바라는 노동자들을 묘지를 보게 됩니다. 게바라는 안내인에게.
“묘지가 많네요. 얼마나 묻은거죠?
“한. 만명정도 묻혀 있을걸세..
“죽고 난뒤에 가족들은 보상을 받을수 있는건가요?
안내인은 고개를 젖습니다.. 게바라는 그때 심한 분노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비참히 살아가며 자신의 댓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쓰러움과 그 피와 땀을 빨아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함께 느끼게 되며 미국체제에 심한 반발감을 갇게 됩니다. 이때 게바라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이 세계 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은 혁명으로만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죠.
로멘티스트
이후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나병(문둥병)환자들이 있는 산파블로에 열하루동안 머물며 환자들을 돌보게 되는데. 그들이 떠나는날 비가 내리는데도 환자들은 고마워 하며 환송파티를 준비합니다.^^ 환송노래와 함께 세 사람의 환자 대표가 감사의 연설을 마칠 때쯤 게바라는 흐느끼며 울게되죠.
이후 게바라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
"어머니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나병환자들이 악단을 조직했습니다. 아코디언을 켜던 사람은 오른 손 손가락이 모두 없었는데 손목에 막대기를 고정시켜 손가락을 대신했답니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고....이 장면이 저에게는 이제까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로 남을 것입니다" ㅠ.ㅠ
그는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남아메리카인들을 사랑하며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위하는 로멘티스트 였던거죠^^
이후 친구 알베르토와 헤어지고 귀국하여 1953년 3월,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지 두 달만에 미래가 보장된 삶을 버리고 의사가운을 벗어던지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를 떠나 자신의 원하는 혁명의 길을 가려고 중남미 대륙을 탐사하는 본격적인 여행길에 나서게 됩니다. 그는 대륙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면서 민중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게 되죠.
게바라 에게 직접적인 사건이 된 사건이 발생 하는데요. 1954년 민중을 위한 개혁을 단행한 과테말라의 정권이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용병대의 쿠데타로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미국과 제국주의의 횡포에 분노했고 그 분노감을 못이겨 미국 체제에 맞서서 싸움에 뛰어들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에서 체 게바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맞서 저항을 하지만 결국 쫒기는 신세가 되어 아르헨티나 대사관으로 탈출하게 되죠.
미국의 정치공작
미국은 이 당시부터 직접적인 무력 침공보다는 CIA에 의한 비밀공작을 통해 다른나라를 식민지화 시킬조짐을 보이는데요. 그 첫 무대가 혼란기에 있는 과테말라의 정권이었습니다.
정치적 선전공작을 펼치면서 방송과 언론에 의한 유언비어와 악소문을 퍼뜨리며 과테말라의 합법적인 정부를 흔들어 놓게되죠. 예를 들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퍼뜨린다던지, 특정 지역을 점령 했다던지 하는 식의 소문을 퍼뜨려 교란하거나 저항할 수 없도록 하여 식민지화 시키죠.
이후 미국은 과테말라를 출발선으로 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군부 쿠데타를 펼치게 되는데요. 집권하는 독재자들은 거의 대개가 미국의 군사학교 출신이라는 점, 합법적인 선거에 의한 정부라 할지라도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헌법을 지켜야할 군대, 경찰, 의회가 등을 돌리거나 방관하며 미국의 뜻대로 미국식 민주주의 식민지화에 동참하게 됩니다.
혁명의 길
아르헨티나 대사관에 있었지만 체 게바라는 상황이 점점 나빠졌습니다.
당시 미국 CIA는 미국정권에 반기를든 체게바라를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즉각 사살에 처하도록 수배명령을 내린상태 였죠. 이후 체게바라는 과테말라에서 엘 파토호 라는 이를 만나게 되는데 자신이 이루고자 한 사상과 뜻이 통하여 1954년 9월 21일 혁명이론을 배우러 큰 꿈을 안고 그와 함께 멕시코로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
게바라와 친구 파토호는 맥시코 시티로 망명을 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극도로 비참한 생활을 하며 굶주리는 생활을 하게 되죠. 하지만 혁명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아 이곳에서 정치사상과 이론, 각국의 민족해방전쟁의 전술을 섭렵하며 이곳에서 서서히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경멸하며 고쳐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죠.
좌 쿠바 독재자 바티스타 우 피델 카스트로
독재 체재 쿠바
당시 쿠바는 미국의 사주를 받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바티스타가 독재정치를 하고 있었 는데요. 처음에는 그나마 괜찮은 듯 보였지만 독재 체제다 보니 부정부패는 일삼고 나라꼴은 말이 아니였죠. 민중들이 시위도 했지만 미국의 지원아래 진압하게 되죠. 피델 카스트로는 학창시절 이에 분노하여 무장 시위대를 조직해서 1953년 라디오중계소를 장악할 목적으로 1백 60여명의 민중을 이끌고 무모하게 쳐들어 가는데요. 결국 이것도 진압되고 학생이란 점을 감안해 2년 징역형을 살고 55년 석방되어서 멕시코로 추방당합니다.
쿠바로.......삐걱거리는 혁명
1955년 쿠바에서 체 게바라는 멕시코로 추방당한 피델 카스트로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요.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혁명과 사상 이야기 등을 밤세도록 시간 가는줄 모르고 토론을 하게 됩니다. 당시 다시한번 재기를 꿈구는 피델 카스트로는 게바라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느끼며 쿠바 전격대사로 임명하며 쿠바 해방운동에 가담해달라고 합니다. 게바라는 이를 수락하며 드디어 그는 실질적으로 혁명운동에 참여하게 되죠. ^^
맥시코에서 시골의 낡은 농장을 하나 구입하고 게바라는 대부분 농부들로 구성된 망명인 들과 함께 강도 높은 훈련과 사격훈련을 받으며 쿠바의 혁명을 준비하게 됩니다. 1956년 11월 26일 드디어 단 82명으로 구성된 초라한 인원이 툭스판 강을 타고 배를 타고 출발하게 되는데요. 이들 인원은 처음부터 출발이 삐걱됩니다. 중간에 가다가 연료가 떨어져서 바람에 떠밀리고 방향도 잃어버리죠. 또한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은 사전에 반란 계획을 알고 있어서 준비를 철저히 한 상태였죠. 결국 쿠바 무장 정찰군에 발각되어 배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들어서 실종되거나 죽어버려 82명인 저항군에서 20명만이 육지에 상륙하게 되는데 꼴이 말이 아니 였습니다. 무기는 대부분 잃어 버리고 파상풍이나 갖가지 질병에 걸려서 매우 지친 상태였죠.
또한 농민들로 훈련을 시킨터라 단결력도 없어서 없는 인원에 도망가거나 정부군에 밀고까지 해서 진퇴양난에 빠짐니다. ㅡ.ㅡ!!!
끈질긴 투쟁
하지만 이들 혁명군은 무모하게 1만 2천여 정규군 사이의 게릴라 작전을 시작합니다. 치고 빠지면서 공격하며 신념 하나로 끈질기게 대항하죠. 또한 이들 게릴라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미국 언론까지 자신의 기지에 초청해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면서 전세계에 자신들의 존재와 혁명을 알리기도 하여 소문을 타고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항군들에게 힘을 합치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되죠^^~
결국 2년간 끈질기게 저항한 끝에 1958년 12월 마침내 쿠바 바티스타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 하는데 1959년 1월 1일, 독재자 바티스타는 현금과 보석 자루를 훔쳐 비행기에 싣고, 아무 에게도 알리지 않은체 주변 측근들을 모두 버리고 홀로 도망치게 됩니다. 이로써 마침내 쿠바는 미국의 독재 체제에 해방되게 됩니다.
체 게바라 의 생활
이후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의 정권을 잡게 되고 체 게바라는 혁명정부에서 상공부 장관 겸 중앙은행 총재직을 맡았는데요 게바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급료를 5천페소에서 1천2백페소롤 줄인 일이 었습니다. 또한 쿠바의 지페는 미국에서 인쇄되면서 마음대로 남발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하지않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찍어내며 지폐 제한선도 두었습니다. 그는 새벽 서너시까지 피로도 잊은 채 일을 하고 일을 맡으면 그일과 일치시키도록 노력할 정도로 열심이었죠^^
그는 쿠바 총재가 되어서도 부스스한 머리에 빗질도 하지않고 군복을 항상입고 다녔는데요. 이것 때문에 옷이 하나뿐이란 소문도 있죠^^또한 사치나 물질적 인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새구두나 옷은 관심이 없었고 좋은 음식도 먹지 않았으며^^ 또한 특권을 받는걸 싫어해서 자신을 항상 주의를 기울일 정도이죠^^ 또한 쿠바 혁명당시 피델 카스트로는 지도자 라서 앞장서지 못했던 반면에 체 게바라는 항상 최전방에서 앞장서며 활약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부하들에게 신뢰가 높았죠^^ 항상 약자를 생각하고 노동자들과 같이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할 정도며 아무 길바닥에서 퍼자며 노동자들과 같이 생활하는걸 좋아했습니다.^^
또 다시... 다시 한번
이후 체게바라는 자신과 정치가 맞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맞지않은 옷을 걸친것처럼...불편해 하죠. 정치보단 자신은 미국 민주주의 체제에 맞서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위해 몸으로 직접 뛰는걸 원했죠. 결국 여러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개입으로 세계의 가장 뜨거운 격전지가 된 콩고로 다시한번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콩고에서 도착해서는 실상과 다르다는걸 알고 실망하게 됩니다.
쿠바와 같이 해방을 향한 열정감이 전혀 없었죠.
총을 쏘을때도 눈을 감고 허공에 쏘으는가 하면 단 한발도 안쏘은 사람도 있었죠.ㅡ.ㅡ 이들은 매우 보수적이라 흑인들 사이에 백인이 지휘 한다는걸 반감으로 가지면서 불만또한 싹트게 되는데요. 또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전에 콩고 병사들이 탈영해버려 의지가 없다는걸 깨닫고 솔선 수범하여 같이온 쿠바군인들과 싸우지만 이들의 하소연으로 다시 쿠바로 돌아가게 됩니다.
해부대위의 체게바라
로멘티스트의 죽음
결국은 다시 문화적으로 동질인 볼리비아로 떠나 혁명을 위해 잠입을 하지만 혁명에 큰 동질감을 못느낀 볼리비아 인들은 결국 내부의 밀고로 미국 CIA의 사주를 받은 볼리비아 경찰에 의해 체포당하여 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이시대의 마지막 로멘티스트는 총살당하게 됩니다.
체게바라는 총재로 활동할 당시 경제 개혁에는 실패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의사출신이라 의료개혁만큼은 확실하게 추진했는데요. 지금까지 쿠바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무료의료 시설은 체게바라의 작품이죠.^^ 해마다 3-4천명이 되는 관광객이 쿠바로 의료관광이 올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가 유명하게된 계기는 잘생긴 얼굴도 한몫하는듯 ㅡ.ㅡ
현실에 충실한 리얼리스트가되자 하지만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게바라-
불펌금지 : http://blog.naver.com/junhenqkrwns/
음 체게바라 역시 괴리가 많습니다... 체게바라 명언마져도 괴리가 있을 정도니
암튼 참 갈리는것도 많고 괴리도 많고 쿠바를 떠난 이유도 카스트로가 너무나도 공산주의에
열렬해서 떠났다는 설도 있구 ... 암튼.. ㅡ.ㅡ!! 죽음에 대한 괴리 설도 많고 ...
요즘 북한이랑 상태가 안좋아서 이거 올릴까 말까 하다가 올렸는데 ....걱정 스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