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 다마토는 이처럼 타이슨에게 완벽한 기술을 심어주었지만, 실전에서는 그와 별개로 ‘강한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고 강한 펀치를 날릴 수도 있어도, 연습해 온 것들을 링 위에서 그대로 재현하려면 누구에게도 위축되지 않는 강한 심장이 있어야 하는 법 아닌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이렇게 반문하실 지도 모르겠다. “아니 타이슨은 원래 그냥 다 두들겨 패버리는 스타일 아닌가요? 타이슨이 타이슨인데 뭘 위축될 게 있죠?” 물론 타이슨이 유명해진 후 누구나 그를 두려워한 건 맞지만, 타이슨 본인의 내면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미 전편에서 얘기한 대로 타이슨은 내성적인 성격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너무나 강해보이는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타이슨 또한 ‘사각 링의 공포’를 떨쳐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데뷔전을 앞둔 어느 날, 타이슨은 다마토에게 무서워 죽겠다고 고백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타이슨의 이미지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마토는 이렇게 대답했다.
“두려움은 친구이자 적이다. 마치 불과 같다. 컨트롤만 할 수 있으면 널 따뜻하게 해 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너와 네 모든 걸 태워 버릴 수 있다. 초원을 달리는 사슴을 상상해 봐라. 반대쪽 덤불 속에 퓨마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느껴지는 두려움은 곧바로 생존을 위한 자연의 섭리로 작용한다. 평소에는 5~10피트만 뛸 수 있었던 사슴이 두려움 때문에 15~20피트를 뛰게 되지 않느냐.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두려움이 없으면 죽는다. 두려움은 우리를 싸우도록 일으키는 자연의 힘이다. 영웅과 소인배가 느끼는 두려움은 똑같다. 다만 영웅만이 그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설 뿐이다.”
물론 다마토가 이렇게 따뜻한 충고만 했던 건 아니다. 불량소년으로서의 과거도 있는 데다 복싱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겹친 타이슨은 다마토의 집에서 종종 말썽을 일으키곤 했는데, 하루는 다마토의 처제에게 타이슨이 상당히 불손한 말을 던졌다. 일흔 살이 넘은 노인이었지만 여전히 혈기를 숨기고 있던 다마토는 이미 근육질의 핵주먹 소년이던 타이슨의 눈을 똑바로 보며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이 자식아. 너 네가 터프하다고 생각하냐? 나가서 붙어 보자. 그 빌어먹을 대가리를 날려주마. 따라 나와!” 서슬 퍼런 다마토에게 바짝 쫀 타이슨은 두말없이 잘못을 빌었다.
다마토가 죽은 후 타이슨의 가장 큰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줬던 다마토의 처제 카미유
이렇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써가며 타이슨을 조련하던 다마토는 일부러 데뷔전 무대를 공식 아마추어 시합이 아닌 ‘언더그라운드 막싸움’ 경기로 잡았다. 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돈을 걸고 욕설을 퍼부어 대는 최악의 분위기였다. 상대들은 다들 타이슨보다 나이도 많고 힘도 셌다. 스타일도 아마추어 복서들의 화려한 기술들과는 거리가 먼 붕붕 휘둘러대는 막싸움 스타일들이었다. 데뷔전 직전, 타이슨은 술집 밖에서 멀리 지하철이 떠나는 걸 바라보며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상대가 날 죽일지도 몰라.’라 생각하며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타이슨의 천재성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스페인계 소년이었던 첫 상대는 3라운드를 버티지 못하고 KO되었다. 타이슨의 펀치가 너무 강했던 나머지, 튀어나간 상대 마우스피스가 대여섯 줄 되던 관중석을 넘어 날아가 벽에 부딪힐 정도였다. 사람들은 방금 공개된 신종 핵무기라도 보는 양 경악해서 타이슨을 바라보았다. ‘타이슨 전설’의 시작이었다.
상대를 KO시킨 직후 타이슨의 모습
한번은 굉장히 덩치가 큰 소년과 맞붙은 적이 있었다. 타이슨은 1라운드에 세 번씩이나 다운을 빼앗았지만 상대는 여전히 강한 눈빛을 보내며 일어났다. 타이슨 입장에서는 영화 ‘록키’에서 강조하는 ‘호랑이의 눈’을 실제로 본 느낌이었을 것이다. 1라운드가 끝나고 코너로 돌아온 타이슨은 손이 부러졌다고 얘기했다. 코치 테디 아틀라스는 본능적으로 거짓말이란 걸 알아채고 소리쳤다. “지금 부러진 건 네 손이 아니라 네 정신이야. 지금 네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면 영원히 성공할 수 없어.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말고 나가서 남자답게 싸워!”
하지만 상대의 근성에 질린 타이슨은 금방 지쳐버렸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대던 타이슨은 쉬는 시간마다 너무 지쳤다며 그만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심지어 경기 중 어깨에 강한 펀치를 한 번 맞았는데, 코치를 바라보며 그냥 다운되면 안 되겠냐고 눈짓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타이슨은 끝까지 버텨 판정승을 거두었고, 코치 테디 아틀라스는 타이슨이 그날 복서로서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고 회상한다.
이처럼 타이슨은 깔끔한 정식 경기장이 아닌 어수선한 술집에서 경험을 쌓으며, 욕설을 퍼붓는 관중들로 둘러싸인 살벌한 분위기와 마구 주먹을 휘둘러대는 상대들을 다루는 법을 배워갔다. 타이슨이 링에 익숙해질수록 그 천재성은 더욱 빛이 났다. 비록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판정의 불이익 때문에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지만, 프로 무대에서 타이슨은 물 만난 고기처럼 본격적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어느덧 타이슨은 챔피언에 도전하기도 전에 세계 헤비급 복싱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다. 당시 복싱의 메카 메디슨 스퀘어가든 복싱 부서를 이끌던 존 콘돈이 보낸 찬사를 들어 보자.